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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 쉽게 읽기 9) 이원적 정통성

대통령제의 숙명

by 김광민

대통령제의 숙명, 이원적 정통성


이원적 정통성(dual Legitimacy)은 대통령제의 핵심 특징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대통령과 국회라는 국민으로부터 직접 정통성을 부여받은 두 개의 권력기관이 공존한다. 이원적 정통성은 대통령의 독주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다. 국회가 대통령과 분리된 독자적인 정통성을 갖고 있으므로,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법률을 통해 행정부를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회의 대통령 견제는 자칫 대립과 교착으로 흘러갈 위험성이 있다.


'여소야대' 국면에서의 극심한 갈등은 이원적 정통성의 문제점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상황이다. 대통령의 소속 정당이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면, 대통령과 국회가 사사건건 충돌하여 국정이 교착되는 상태(Political Gridlock)에 빠질 수 있다.


국회는 대통령의 정책이나 법안을 반대하며 막아서고, 대통령은 국회가 통과시킨 법률안에 대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하며 맞서게 된다. 양측 모두 "국민의 뜻"을 명분으로 내세우기 때문에 타협이 어려우며, 결국 국정이 마비되는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국정 마비 상황이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것이 문제로 작용할 수 있다. 대통령은 "국회가 발목을 잡아서 일을 못 한다"고 비판하고, 국회는 "대통령이 불통과 독선으로 국정을 운영한다"고 비판할 수 있다. 이처럼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쉬워 국민으로서는 누구의 책임인지 판단하기 어렵게 되어, 극심한 여론 분열로 이어질 위험도 크다.


반면 의원내각제에서는 국민에 의해 정당성을 부여받은 권력은 국회가 유일하므로 이원적 정통성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없다. 국회 다수파가 행정부(내각)를 구성하고, 그 수장(총리)을 선출한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융합되어 있어 정책 추진은 신속하지만, 다수당의 횡포를 견제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한국 현대사는 이원적 정통성으로 인한 갈등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은 국민의힘 소속이지만 국회는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여소야대' 상황에서, 국회가 통과시킨 법안(김건희 여사 특검법, 양곡관리법 등)을 대통령이 거부권으로 맞서는 대결이 반복되었다. 이는 이원적 정통성이 낳는 교착 상태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25차례나 이어졌다. 이는 이승만 대통령의 45회에 이어 역대 두 번째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3선을 한 데 반해 윤석열은 재임 2년 반 만에 탄핵 된 것을 고려하면 윤석열의 거분권 행사가 오히려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다.


13057_25336_3152.jpg 윤석열 정부는 거부권을 25차례나 행사하며 국회와의 갈등을 고조시켰다. 사진=단디뉴스


이렇듯 이원적 정통성은 대통령제 민주주의의 안정성과 견제 기능을 보장하는 핵심 원리이지만, 동시에 정치적 타협과 협치의 문화가 성숙하지 않으면 언제든 국정 마비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적인 딜레마를 안고 있다.


이원적 정통성에 따라 국정이 교착될 때 대통령이 이를 해결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식은 정당을 우회하여 개별 의원들과 소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정당의 조직력이 약할 때 작용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에서 주로 나타나는데, 이는 미국의 독특한 정치문화에 기인한다.


미국 의원은 한국 국회의원보다 '소신 투표'나 '이탈 투표'를 하는 경우가 잦다. 이는 충성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자신의 정치적 생존에 더 유리하게 만드는 구조 때문이다. "미국 의원의 진짜 보스는 당 지도부가 아니라, 자신을 뽑아준 지역구 유권자"다.


우리나라는 중앙당이 막강한 공천권을 가지고 있다. 국회의원이 되려면 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한 공천(관리)위원회의 '공천'을 받는 것이 거의 절대적이다. 아무리 지지도가 높아도 당 지도부의 눈 밖에 나 공천을 받지 못해 정치생명이 끝나는 경우가 발생하고는 한다. 2008년 친박연대가 대표적이다. 친박연대는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의 당권을 대통령이었던 이명박계(친이계)가 장악하면 박근혜계(친박계) 의원들을 공천에서 배제하면서 이들이 탈당해 무소속 연합을 결성하면서 만들어진 정치 조직이다. 공천에서 탈락한 후 한나라당을 탈당해 2008년 15대 총선에 친박연대를 표명하는 무소속으로 출마한 의원은 김무성, 유기준, 한선교 등 16명이었는데, 이 중 12명이 당선되었다. 이는 후보자 개인의 경쟁력과 무관하게 중앙당의 결정에 따라 공천이 이뤄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듯 공천에 중앙당의 영향이 크다 보니 의원들은 자신의 소신보다 당의 방침(당론)을 따를 수밖에 없는 강력한 압박을 받게 된다.


maxresdefault.jpg 친박연대는 대한민국 정치에서 중앙당의 공천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사진=오마이티비 캡쳐


반면 미국은 예비선거(Primary Election)를 통해 유권자가 직접 후보를 뽑는다. 미국에서는 당 지도부가 특정 후보를 '공천'하는 제도가 없다. 대신, 당의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예비선거(경선)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 예비선거에서는 해당 지역구에 거주하는 당원과 일반 유권자들이 직접 투표하여 우리 당을 대표할 후보를 선출한다. 따라서 미국 의원은 워싱턴 D.C.에 있는 당 지도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자신의 지역구 유권자들의 생각과 가치관에 맞춰 행동하고, 그들의 지지를 얻어 예비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후원회 제도 역시 미국 정당의 조직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미국에서 의원 후보들은 선거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스스로 조달해야 한다. 물론 당의 지원도 있지만, 대부분은 지역구 내 개인 후원자, 각종 이익단체(PAC, Political Action Committee), 로비스트 등을 통해 자신만의 후원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이렇게 재정적으로 독립해 있기 때문에, 당 지도부가 자금 지원을 끊는 방식으로 압박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자신의 후원자나 지역구의 핵심 농업, IT, 군수산업 등 이익단체의 요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후보자 중심의 미국 정치 문화 또한 정치인이 정당보다는 지역 유권자에 더욱 민감하게 만들고는 한다. 미국 정치는 '정당 중심'이라기보다는 '후보자 중심'의 문화가 매우 강하다. 유권자들은 당의 이름값만 보고 투표하기보다는, 후보자 개인의 경력, 공약, 가치관, 지역 사회에 대한 기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따라서 의원들은 당의 정체성 못지않게 자신만의 '개인 브랜드'를 구축하는 데 힘쓴다. "나는 우리 당의 방침과는 다르지만, 우리 지역의 이익을 위해서는 소신껏 행동하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재선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 의원들이 정당의 통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보니 미국 의회에서는 당론에 얽매이지 않는 소신 투표나, 당의 이익보다 지역구의 이익을 우선하는 모습, 그리고 여야 의원 간의 초당적인 협력(Cross-party cooperation)이 한국보다 훨씬 활발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미국의 정치 문화는 대통령이 의회와의 갈등을 대통령의 주도권을 활용해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준다. 대통령은 개별 의원과 접촉하여 해당 선거구 주민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법안이나 정책에 대한 지지를 끌어낼 수 있다.


대통령이 정치적 교착 생태를 해소하는 또 다른 방법은 포퓰리즘(populism)에 기대는 것이다. 야당과의 대립 상황에서 개별 의원과의 협상으로도 강등을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면 대통령은 의회를 우회하여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의회를 우회하는, 이른바 의회 배제는 야당과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켜 장기간의 국정 불안으로 이어질 우려도 크다. 특히 이러한 장기간 국정 불안은 정치적 해결의 가능성을 완전히 봉쇄하는 극단적 상황을 일으킬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야당과의 소통을 뒤로하고 극단적 대립만으로 정권을 유지하다 결국 군사 친위쿠데(self-coup)타를 선택한 윤석열의 사례가 그것이다.


이처럼 이원적 정통성은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최악의 경우 국정 마비와 극심한 대립을 낳지만, 최상의 경우 권력 남용을 막는 '브레이크'가 되고, 국정의 안정성을 담보하며, 나아가 국가적 위기 앞에서 '위대한 타협'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결국 이 제도의 성패는 구조 자체보다는, 그 구조 속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각자의 정통성을 존중하며 대화와 타협에 나서는 '정치 문화의 성숙도'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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