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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 쉽게 읽기 29)조희대의 사법정치

제1야당 대통령 후보의 정치적 운명을 둘러싼 사법정치

by 김광민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제1야당의 유력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은 단순히 한 개인의 형사 사건을 넘어, 법치주의와 정치의 경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대법원 상고심에서 이례적으로 빠르게 진행된 파기환송 절차와 그 이후 고등법원에서 벌어진 재판기일 연기 등 일련의 과정은 ‘사법정치(judicial politics)’의 관점에서 심층적으로 분석될 필요가 있다. 특히 사법부가 특정 사건에 대해 보여준 전례 없는 속도전과 그에 따른 정치적 파장, 그리고 대통령 당선 시 발생할 수 있는 재판 중단 문제까지, 이 사건이 한 정치인의 운명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삼권분립 체제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사법정치!


'정치의 사법화(judicialization of politics)'는 국가의 주요 정책이나 정치적 갈등이 사회적 공론화나 정치적 협상 과정이 아닌, 사법 과정에서 결정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는 사법부가 행정을 집행하거나 사실상의 입법권을 행사하며 정치의 영역을 점차 침범하고, '정치'와 '사법'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양상을 낳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헌법재판소가 행정수도 이전(2004), 통합진보당 해산(2014) 등 굵직한 현안을 결정하며 이러한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재명 후보의 사건은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일선 법원까지 정치적 갈등의 한복판에 놓이게 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사례와 차별화된다. 이 사건은 정치권의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가운데, 누가 당선되어도 피의자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냈고, 법관의 독립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정치적 평가가 개입되는 위험성을 드러냈다. 이재명 사건은 법원이 한 정치인의 유무죄를 가리는 단순한 법률적 판단을 넘어, 대선 국면 전체를 좌우하는 결정적 변수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정치를 사법 과정에서 해결하려 한 전형적인 사법정치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이재명 파기환송.jpg 이재명 파기환송 결정 보도


1·2심 판결의 상반된 결과


이재명 후보는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되었다. 검찰은 크게 두 가지 발언을 문제 삼았다. 첫째는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1처장과의 관계에 대한 발언으로, 특히 해외 출장 중 함께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둘째는 백현동 개발 사업 관련 발언으로, 성남시가 국토교통부로부터 혁신 도시법상 의무조항을 들어 압박받았고, 이에 따르지 않으면 직무유기를 문제 삼겠다는 협박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1심 재판부는 이 두 가지 발언에 대해 일부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반면 2심 항소심은 1심 판결을 뒤집고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김문기 관련 발언 중 골프부분은 이재명 후보의 기억에 관한 발언일 뿐 행위에 관한 발언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백현동 발언은 국토부의 법률에 의한 요구로만 의미를 한정하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처럼 1심과 2심의 판결이 완전히 엇갈리면서, 사건의 최종 판단은 대법원의 몫으로 넘어갔다.


법리 오해를 지적하며 대법원으로 향한 사건


2심 판결에 불복한 검찰은 대법원에 상고했고, 이로써 사건은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회부되었다. 대법원은 2심의 무죄 판결이 공직선거법 제250조 제1항에서 정한 허위사실 공표죄의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보았다. 특히 대법원은 김문기 골프발언에 대해, 피고인이 김문기 등과 함께 간 해외 출장 기간 중에 김문기와 골프를 친 것이 사실이므로 이는 행위에 관한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백현동발언에 대해서도, 국토부가 성남시에 직무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한 사실이 전혀 없는데도피고인이 허위의 발언을 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2심 재판부가 이러한 허위 사실을 간과하거나 왜곡했다고 판단하여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로써 사건은 다시 2심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게 되는 파기환송 절차를 밟게 되었다.


전례 없는 대법원의 파기환송 속도전


이재명 후보에 대한 대법원 상고심은 초고속으로 진행되어 법조계 안팎의 강한 정치적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대법원은 2025년 4월 22일 오전 사건을 소부인 제2부에 배당했다. 조희대 대법원장 같은 날 오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곧바로 합의기일을 진행했다. 이틀 후인 24일 두 번째 합의기일을 진행해 대법관 표결까지 마쳤다. 사실상 전원합의체 회부 후 이틀 만에 결론을 지은 것이다. 그리고 약 1주일 후인 5월 1일 파기환송 결정을 하였다. 이는 통상적으로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사건의 최종 확정판결까지 평균 50개월(4년 2개월)이 소요되고, 상고심 심리에만 평균 10.9개월이 걸리는 것과 비교했을 때 매우 이례적인 속도였다. 전직 대법관조차 "한 달 만에 대법 선고가 나온 건 처음 본다"고 언급하며, "어떻게든 정치적으로 말이 나올 테니 최대한 빨리 하자는데 의견이 모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전례 없는 속도전은 사법부의 중립성을 지키려 한 조치로 표명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사법부가 대선 국면이라는 정치적 한복판에 뛰어들었다는 비판을 낳았다.더불어민주당은 이를 사법 쿠데타이자 대법원이 정치의 한복판에 뛰어든 것이라며 맹렬히 비판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법치의 복원이라며 환영했다. 이처럼 대법원의 신속한 절차 자체가 정치적 논란의 핵심이 되면서, 사법부가 특정 후보에게 유죄 취지의 결론을 대선 직전에 내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이는 사법부의 신속한 판단이 정치적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기보다는, 오히려 고도로 정치화된 사건의 시급성을 인지하고 정치적 파장을 관리하려는 시도로 해석되며, 그 자체로 사법정치의 직접적인 표출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ㅋ파기환송심의 초기 속도전

파기환송 속도전.jpg 사진 = 매불쇼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 직후, 사건은 서울고등법원으로 송부되었다. 파기환송된 사건은 기존 2심 재판부(형사6부)가 아닌 새로운 재판부(형사7부)에 배당되었다. 서울고법은 사건 기록을 대법원으로부터 접수한 지 하루 만에 재판부를 정하고 첫 공판기일을 5월 15일로 잡았다. 이는 대선 후보자 등록 마감일(5월 11일) 직후이며 공식 선거운동 기간(5월 12일~) 중에 재판이 진행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재판부는 심지어 재판 지연 논란을 막기 위해 우편 대신 법원 집행관을 통한 인편 송달을 진행하는 등 이례적으로 신속한 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이 같은 초기 속도전은 불과 며칠 만에 전격적 중단으로 바뀌는 역설적 상황을 맞이했다. 서울고법은 5월 7일, 첫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6월 18일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이는 순수한 법률적 판단이라기보다는 정치적 고려가 개입된 결정으로 해석된다. 대법원의 초고속파기환송 결정이 사법 쿠데타라는 비판을 받는 등 정치적 논란을 야기하자, 고등법원이 사법부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재판 중단을 택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처럼 속도와 중단이라는 상반된 절차가 고도로 정치화된 사건에서 번갈아 나타난 것은 사법부가 정치적 압력에 얼마나 취약한지, 그리고 그 압력 속에서 나름의 출구를 찾으려 고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통령 당선 시 재판의 운명


현행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訴追)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의 핵심 쟁점은 형사상의 소추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이다. 법조계에서는 소추를 공소 제기(기소)에 한정하여,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은 중단되지 않는다는 견해와, 공소 제기 이후의 공판절차까지 포함하여 재판이 중단된다는 견해가 첨예하게 대립했다. 기존의 명확한 판례나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이재명 후보가 당선될 경우 이 재판이 어떻게 될지는 불분명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법률적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당선 시 진행 중인 형사재판을 정지하도록 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대통령에 당선된 피고인의 형사재판을 재임 기간 동안 정지하도록 명시하고 있다.국민의힘은 이 법안이 이재명 후보를 위한 법이라고 비판하며 강력히 반대했지만 , 민주당은 정치적 악용을 방지하고 국정의 안정성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며 법안을 밀어붙였다.


민주당은 헌법 제84조에 대한 압도적 다수설이 재판 중단이라는 주장을 펼쳤지만, 법을 명시적으로 제정하려는 시도 자체는 다수설만으로는 부족하며 사법부의 판단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법안은 사법부의 판단 영역에 입법부가 직접 개입함으로써, 사법정치를 입법적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사법과 정치의 경계가 모호화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은 대선이라는 초유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법적 절차가 어떻게 사법정치의 전형이 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대법원의 초고속파기환송과 고등법원의 전격적 연기라는 상반된 절차는 사법부가 정치적 압력에 대해 나름의 방식으로 대응하는 과정이었다. 법원 스스로 사건의 시급성과 성격을 고려하여 판단했다는 점은, 법원이 이 사건을 단순한 법리적 다툼이 아닌, 고도로 정치화된 사안으로 인식했음을 의미한다.


이재명 후보의 사건이 최종적으로 어떤 법적 결론에 도달하든 관계없이, 이미 그 절차적 과정만으로도 심각한 정치적 함의를 가진다. 사법부의 결정이 정치적이라고 평가되는 순간, 법관의 독립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 사건은 사법부가 특정 정당으로부터 사법 쿠데타라는 비판을 받거나 정치의 도구로 전락했다는 비난을 받는 상황을 연출했다. 이러한 논쟁은 장기적으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존경심을 약화시키고, 모든 고위공직자 관련 사건을 법리가 아닌 정치적 셈법으로 바라보게 만들 수 있다.


이 사건은 향후 고위공직자 관련 형사 사건에 대한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통령의 소추특권에 대한 해석을 둘러싼 입법부와 사법부의 충돌은 향후 헌정 질서의 중요한 과제로 남을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입김으로부터 사법부를 보호할 수 있는 명확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공직선거법위반과 같은 정치적 사안에 대한 재판 절차의 투명성과 일관성을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사건이 남긴 교훈은 법이 정치의 도구가 되어서도, 정치가 법의 영역을 무력화시켜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최종적인 사법적 판단은 한 정치인의 운명을 결정하겠지만, 이 사건의 전개 과정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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