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비>로 보는 모성, 모성은 본성인가 학습인가
“태초에 여자아이가 있었던 이후로 언제나 인형이 있었죠. 그러나 인형은 변함없이 아기 인형이라, 여자아이들은 엄마 역할만 해야 했죠.”
영화 <바비>의 도입부, 여자 아이들이 아기 인형을 부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내레이션이다. <바비>는 시작부터 강렬한 충격을 선사한다. 웅장한 배경음악과 함께 여자 아이들은 가지고 놀던 아기 인형을 내려치고, 부순다. 아이들의 거친 움직임은 배경음악 탓인지 꽤 비장해 보이기도 한다. 이는 여자 아이들이 '엄마'의 역할을 벗어나 주체로서의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장면이다.
영화 <바비>는 관객에게 ‘학습된’ 모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자 아이들은 태어나면 당연하게 아기 인형을 가지고 논다. 자연스레 엄마의 역할을 학습하게 되는 셈이다. ‘위대한 어머니의 힘’과 같은 달콤한 말로 여성을 현혹하기도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여성은 '어머니'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사회로부터 길들여진다. 직장 대신 남편의 아내 역할을, 꿈 대신 아이의 엄마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하도록 말이다. 이처럼 어린 시절부터 사회적 강요를 저도 모르게 습득해 온 아이들은, 위대한 어머니가 되고자 스스로를 희생한다. <바비>는 바로 이 지점을 지적한다. 영화 도입부에서 아기 인형을 가지고 노는 여자 아이들의 모습은, 모성을 답습시키는 사회의 ‘교육’을 의미한다. 사회는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어머니로서의 자질을 여성에게 학습시켰다. 어머니의 자질을 갖추지 않은 여성은, 인간의 본성을 어긴 파렴치한이 된다. 즉, 모성은 여성의 다른 자질을 고립시키는 구조적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를 바탕으로 봤을 때, 여자 아이들이 아기 인형을 내던지고 부수는 장면은 다양한 해석을 지닌다. 우선 ‘어머니됨의 거부’로 해석 가능하다. 아이들은 아기 인형을 보살피고 아껴주는 대신, 인형을 거칠게 거부한다. 이는 사회적 관념에 대한 저항으로 볼 수 있다. 내재되어있던 본성이 학습된 것임을 깨닫고, 주체적으로 이를 깨부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폭력은 동반될 수밖에 없다. 영화 <바비>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 속 아이들은 여성 역시 ‘엄마’가 아닌, ‘무엇이든’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스스로 그 벽을 부수고 나온다. 인형을 던지고 부수면서 말이다. 평등은 마냥 평화롭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약자가 강력한 목소리를 내야만, 그제서야 세상은 평등에 한 발자국 가까워진다. 또한 이 장면은 ‘기득권의 시선’으로 해석된다. 아기 인형을 부수는 장면은 다소 거칠고 폭력적으로 묘사된다. 여기서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과연 누구의 시선에서 폭력적인가. 약자인 여성에게 이 행위는 분명 '저항'이었다. 그러나 가부장제를 만들어, 여성에게 어머니의 역할을 씌운 기득권에게는 단순한 ‘폭력’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기존 관습의 전복은, 기득권에게 위협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장면은 아이를 향한 폭력이 아닌, ‘어머니됨’을 탈피하고자 저항하는 여성의 움직임으로 바라보는 것이 마땅하다. 진정한 평등은, 기존 관습과 윤리의 전복으로부터 시작된다.
세상에 너무나도 만연하게 퍼져있는 개념인 ‘모성’에 대해,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모성은 실체가 있는 것일까. 특정 집단의 이데올로기를 위해 누군가가 만들어낸 개념이 아닐까. 자식을 향한 사랑을 말하고 싶다면, '모성'이 아닌 다른 단어로 정의하는 게 올바르지 않을까. 이처럼 영화 <바비>는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관습에 질문하고, 저항하고 있었다. 영화 속 아이들이 인형 <바비>를 통해 ‘어머니됨’을 거부한 것처럼, 현실의 우리 역시 영화 <바비>를 통해 ‘모성’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