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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사람을 부르는 방식

에필로그

by 오시리스 김일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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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에서 하루를 쉰 뒤, 카트만두로 향했다. 분명 온몸은 고단하고 쉬고 싶었지만, 마음은 자꾸 창밖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좇고 있었다. 묘했다. 산길에서 걸었던 시간들이 현실 속 나의 시간이 아니라, 잠시 다른 차원의 시간 속에 다녀온 것만 같았다. 산을 내려왔으니 이젠 다 끝났다고,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할 수 없는 감각이 몸 어딘가에 남아있었다.


카트만두에 도착해 짐을 풀고 나니, 그제야 조금은 여행자의 얼굴로 돌아왔다. 이제 먹고, 마시고, 걷지 않고도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시간. 몸은 반색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이 한가로움이 낯설었다. <제임스> 형님이 느닷없이 "야, 여기 북한 옥류관 있다는 거 알지? 오늘 진짜 평양 냉면 한 그릇 어때?" 설마 했는데 진짜 있었다.


카트만두 한복판에, 북한 간판이 당당하게 걸린 옥류관이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살짝 이국적인 평양냉면이었다. 냉면은 시원하고 담백했다. “맛있게 드십쇼~”라는 이북 사투리가 섞인 인사말은, 네팔에서 듣는 가장 정겨운 한국어가 되어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타멜 거리로 나서자, 걷는 발걸음이 확연히 달랐다. 배낭 없이, 등산화 대신 가벼운 신발을 신고, 오르막도 없는 길을 걷는다. 길거리 가게마다 쏟아지는 향신료 냄새, 오토바이 경적 소리, 관광객들 흥정하는 목소리가 뒤섞인 혼란 속에서도, 묘하게 귀에 맴도는 건 산길의 침묵이었다.


찻집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내 앞에 놓인 커피잔과 지난 며칠간 매일 손에 쥐었던 블랙티 잔을 번갈아 떠올렸다. 산 위에서 마셨던 블랙티가 커피보다 더 그리워질 줄은, 누가 알았겠나. 산에서는 한 잔의 블랙티가 고산병과 싸우는 무기였고, 지금 여기선 그 블랙티가 설산의 풍경과 함께 내 기억의 일부가 되었다.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오니, 주인장이 손님들을 위해 닭백숙 한 상을 차려냈다. 네팔 민속주가 곁들여졌다.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에겐 그 어떤 만찬보다 감격적인 환대였다. 식탁에 둘러앉아 서로의 잔을 채워주며, 트레킹 중에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을 꺼내놓는다.


서울에서 온 20대의 진희 씨는 혼자 트레킹을 왔다고 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속으로는 그 용기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60대 부산 아저씨는 한 달 넘게 혼자 산길을 걸었다고 한다. 모두 각자의 이유로 산을 찾고, 각자의 사연을 품고 산을 오른다. 같은 길을 걸었지만, 각자의 발걸음에 실린 무게는 서로 달랐을 것이다.


우리가 가슴에 품고 온 풍경과, 포터들이 어깨에 지고 오른 짐의 무게와, 혼자 걸어온 사람들의 고독과, 함께 걸어온 사람들의 연대감. 그 모든 것들이 한자리에 섞여, 각자의 산이 되었다. 그 산은 네팔의 안나푸르나일 수도, 저마다의 삶 속에 있는 마음의 봉우리일 수도 있었다. 어떤 산이든, 한 번 오르고 나면 그 산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다음 산은 어디일까. 그 산에서 만날 사람들은 또 어떤 이야기들을 품고 있을까. 산행이 끝난 줄 알았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다음 산을 꿈꾸고 있었다. 그게 산의 매력인지, 인간의 어리석음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렇게 끝난 줄 알았던 여정은, 다음 여정을 부르고 있었다. 그게 산이 사람을 부르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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