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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또 이런 길을 걷고 싶다.

에필로그

by 오시리스 김일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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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을 돌아, 다시 샤모니에 도착했다. 출발했던 그 자리, 처음 발을 내디뎠던 도시로 되돌아온 것이다. 우리는 샤모니 시내에 자리한 작은 야영장에서 이틀을 머물며, 여정을 정리하고 충분히 쉬기로 했다.


소박한 아영장이었지만,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추고 있었다. 물도, 전기도, 뜨거운 샤워도. 트레킹 내내 등에 짊어졌던 배낭을 내려놓고, 비로소 긴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몸은 여전히 굳어 있었고, 무릎의 통증은 남아 있지만,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평온함이 천천히 번져 나왔다. 샤모니의 공기는 여전히 상쾌했고, 거리에는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트레커와 여행자들로 북적였다.

광장과 식당가에는 왁자한 웃음소리가 넘쳤지만, 우리는 조용했다. 작은 카페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제까지 산 위를 걷던 우리가 그들 사이에 있다는 것이, 이상하면서도 다정하게 느껴졌다.


커피를 마시고 빨래방에 들러 트레킹 내내 입었던 옷을 세탁했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나씩 하면서 작은 안도감을 느꼈다. 시내를 천천히 걸으며, 맥주와 맛있는 음식을 즐겼고, 흥겨운 사람들 틈에서 편안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샤모니 야영장에서 이틀을 보내고, 우리는 스위스 제네바로 향했다. 제네바는 샤모니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레만 호수 주변을 돌아보면서 샤모니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이질적 분위기를 느꼈다.


말끔한 사람들이 가득한 식당에서 이번 여행이 정말 끝났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또렷해졌다. 도시의 정돈된 일상 앞에서, 며칠 전 알프스를 걷던 우리 자신이 어쩐지 이 도시의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하늘을 가르고, 대륙을 건너, 다시 익숙한 일상의 무게로 되돌아오는 길.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땐, 지난 두 주간의 여행이 벌써 오래전의 일처럼, 아득한 꿈처럼 느껴졌다.


이 여정의 의미는,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서야 생각할 수 있었다. 걷는 동안에는 그저 다음 고개를 넘는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밤이면 피곤한 몸을 텐트에 눕히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일상 한복판에서 문득 ‘우린 TMB를 다녀왔지’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제야 이 여행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생각할 수 있었다.


뚜르 드 몽블랑.

걸음마다 서로의 감정이 달랐고, 장소마다 기억이 새겨졌다. 장대한 산군 앞에서는 스스로의 작음을 느꼈고, 예측할 수 없는 날씨와 자연의 흐름 속에서는 겸손함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일들 속에서도, 결국 길은 이어졌다. 우리는 우리만의 속도로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나아갔다. 어떤 날은 비에 젖어 떨면서 걷고, 어떤 날은 햇살 아래 고개를 넘으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우리에겐, 그 모든 시간이 TMB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그 풍경의 일부로 우리도 그곳에 있었고, 함께 걷고, 함께 숨을 고르며, 어떤 말보다 깊은 교감을 나누었다. 트레킹은 끝났지만, 그 길은 여전히 나의 마음 안에서 계속되고 있다.


언젠가 또, 이런 길을 걷고 싶다.

다시 배낭을 꾸리고, 그런 풍경 속으로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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