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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Mar 20. 2023

울버린도 울고 갈 손톱! 베트남 남자들 기상천외한 유행

일러스트by하노이민언냐

공포에 휩싸이는데 필요한 시간, 단 0.3초! 평생 느껴보지 못한 터치 하나에 모든 오감이 살아난다. 뒷덜미가 서늘해지며 모공까지 바짝 쪼그라든다. 고개를 돌리니 팔뚝에 휘감은 용과 눈이 마주쳤다. 서늘함이 등골까지 밀려오는 찰나의 순간이다.



아담한 체구에 아름다운 실루엣의 베트남 여성들은 파티를 즐길 줄 안다. 그리고 이를 진작에 알아본 프랑스인들이 착 붙는 디자인에 몸매를 부각하는 아오자이를 탄생시켰다는 이야기는 이미 유명하다. 변태적 심미주의에서 빛을 본 아오자이지만 동시에 베트남의 미를 증명하기도 한다. 그리고 하노이에서 큰 충격을 선사한 유행이 두 가지 있다. 기상천외, 높은 수위의 유행도 그렇지만 더 놀란 건 이 모든 게 여성이 아니라 남성들로부터 시작되었단 사실이다.


1. 엑스맨, 울버린도 울고 갈 긴 손톱!


유럽에는 우버, 한국엔 카카오 택시가 있다면 동남아시아는 Grab 그랩 택시가 있다. 신호가 무의미한 베트남의 교통 상황은 그야말로 카오스! 그래서 하노이에서 택시는 삶의 일부, 아니 수족 같은 존재다. 특히 월, 수, 금요일 아침 8시 반이면 그랩을 손꼽아 기다리며 하루가 시작된다. 프랑스어 오전 수업을 위해 L’IF(L’institut francais de Hanoi)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목적지에 간신히 아니 역시나 5분 늦게 도착한 나는야, ‘지 투 더 각 투 더 지각생‘! 건물 앞에 도착하자 마음이 급해져 한 손은 택시 문을 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요금을 건넸다. 바로 그때! 윽! 나도 모르게 비명이 새어 나왔다. 전신 소름을 유발하는 기이한 느낌이었다. 이런 터치, 처음이야! 소름 유발자의 주인공은 바로 기사님의 새끼손톱이었다. 울버린도 이길 손톱은 포물선을 그리며 손목을 스치더니 옅은 스크래치까지 남겼다. 소름의 감촉은 여운이 되어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수업 내내 이따금씩 몸을 떨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날 이후 택시를 타면 본능적으로 기사님의 손톱에 시선을 집중하는 습관도 생겼다. 그리고 긴 손톱과의 만남이 꾀 잦다는 걸 발견했다. 손가락도 길이도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하루 이틀의 귀차니즘에서 산출된 게 아니란 것이다. 여성인 나로서도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다. 앞집의 동네 슈퍼 사장님, 오토바이 주차장 관리인,  기사 아저씨들 뿐만 아니라 그랩 배달원이나 피자 가게 직원 등 젠지 세대도 기른다. 여성들은 네일숍에서 관리를 받지만 남성들은 관리라면 아웃 오브 안중! 먼지가 잔뜩 낀 충격의 손톱을 목격하며 이는 자동 몸서리는 우리의 몫이다. 보기만 해도 비위생적인 유행이 대체 어떻게 생긴 걸까.


긴 손톱은 힘든 육체노동을 하지 않는 부유층에 대한 동경에서 출발한다?

VS

"고생 안 하고 산다고 티 내려는 거야. 정작 잘 사는 사람들은 다 손톱 깎고 다녀."

베트남 여성들은 아담한 체구에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다. 전 세계를 통틀어 생활력이 강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맞벌이 부부는 그저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다. 이런 사회 분위기의 배경은 여러 강국들과의 전쟁에서 찾을 수 있다. 오랜 전쟁은 남성 기근현상을 가져왔다. 참전으로 전사하거나 목숨을 구하더라도 불구가 된 경우가 흔했다. 그렇게 누군가의 아빠, 남편, 아들 그리고 오빠와 남동생의 부재를 메꾼 게 바로 여성들이다. 가정은 물론 동네, 지역 커뮤니티 나아가 사회를 지탱해 왔다. 이런 강한 여성들의 활약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젖먹이 아이를 업고 밭일도 하고 노부모도 모시고 가정일도 했듯 어린 자녀도 돌보고 오토바이로 출퇴근도 하며 저녁밥도 짓는 일상은 여전하다. 그에 반해, 남성들의 라이프 스타일은 상당히 여유롭다. 한창 업무에 매진할 오전 9시 또는 10시에도 한가롭게 담배를 입에 물고 본격 수다타임을 즐기는 남자들! 그들의 호방한 웃음소리는 어느 골목에서든 울려 퍼지더란 말이죠. 왠지 긴 손톱이 잘 어울린다는 느낌적인 느낌, 나만 그런가?

출처 soha.vn


하지만 로오옹~ 네일의 클래스가 우리가 아는 형태가 아니다. 열 손가락 다 기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엄지 또는 새끼손톱만 기르는 등 스타일도 제각각이다. 긴 손톱에 집착하는 문화는 내추럴 본 농경국가라는 배경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커피 수출국 세계 2위에 빛나지만 일찍이 쌀 수출국으로서 더 이름을 날렸던 베트남이다. 지금도 하노이, 호찌민, 하이퐁, 다낭 등의 대도시를 제외하면 대부분 농사를 짓고 산다. 노동층의 대부분이 농민이란 뜻인데, 농사를 지으면 당연히 손톱을 기를 여유 따위 없다. 그러니 긴 손톱은 육체노동 프리, 고생 프리의 삶을 표출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웨이러미니~잇! 코안 다아(Khoan đã)~ 잠깐만요~


평등의 상징이자 노동의 가치를 가장 높이 쳐야 할 사회주의가 노동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모자라 부유함을 동경한다굽쇼? 손톱이 길면 힘든 노동을 하지 않아 부유층의 인상을 준다는 말에 놀랐다. 여기에 이성에게 어필하려는 허세 또한 더해졌다고 하니.. 순간 길에서 본 현대판 한량, 모닝커피 타임을 즐기던 사나이들이 떠오르지 말입니다. 흡연과 해바라기 씨앗으로 대낮의 수다를 즐기는 남자들의 참신한 매력 어필 포인트! 어의가 로그아웃 하셨습니다. 실제로 긴 손톱을 기른 남자들은 기사화되기도 했다. 특히 아잉 리우 꽁 후옌(Lưu Công Huyền)은 보도될 당시 34년간 기른 손톱으로 화제가 되었다. (지금까지 기르는 중이라면 40년을 훌쩍 넘겼다.) 한 번은 손톱 하나가 절단되는 아픔을 겪었는데, 당시 우울증을 겪을 정도로 힘들었기에 또 부러지면 고통에 죽어버릴 것이라고 했다. 부부는 당연히 각방 확정, 비가 오면 손톱에 비닐을 씌우는가 하면 옷을 갈아입을 때도 도움이 필요하다. 불면 날아갈까 만지면 부서질까, 어떤 보물보다 극진한 대우를 받는 손톱이다. 이쯤 되면 손톱과의 로맨스로 불려도 될 정도다. 그가 손톱 자랑에 여념이 없는 동안 부인은 묵묵히 집안일을 하더라는 대목이 잊히지 않는다. 그의 아성에 도전하는 후발주자도 있다. 기른 지 5년이 된 Phân Đức이다. 12 센티가 된 그는 1990년 생으로 젊은 피에 해당한다. 30대 초반의 그는 놀랍게도 Yên Bái에서 휴대폰 수리를 한다. 12 센티의 손톱으로 정교한 손동작이 요구되는 수리가 어떻게 가능한 걸까. 각자 지역 명물(?)로 많은 관심과 애정을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이성에게도 어필이 되는지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주위에 아는 베트남 여성들에게 질문을 던져 본다. 손톱이 긴 남자들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말이다. 돌아오는 답은 열이면 열! 질색하더라. 역시 국경을 초월해 긴 손톱 남자는 매력적 일리가 없다. 그저 게으르고 비위생적으로 보인다는 답만 했다. 누구도 반기지 않는 롱 네일 유행을 하루빨리 포기하는 날이 오길, 플리즈~(20대의 베트남 친구는 코를 파려고 기르는 것 같다는 참신하지만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기도 했다.)

출처 baodautu.vn

2. 팔, 다리, 어깨를 타고 승천하는 드래건! 누구나 어깨에 용 하나쯤은 태우고 다니잖아요?


한국 타투가 아기자기 하이틴 학원물이라면 베트남은 스펙터클한 할리우드 블록버스다. 제 아무리 레이저 시술로 제거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지울 생각으로 하는 이도 없다. 평생 지니고 살아야 할 타투를 그것도 몸을 덮을 크기는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타투 사나이는 하나 둘 셋… 언카운터블! 셀 수 없을 정도다. 장미도 있지만 잉어나 용, 호랑이 등 파워풀한 디자인이 주를 이룬다. 이쯤 되면 도시 전체가 갱스터 집단은 아닌지 의심이 인다. 거리마다 빨간 국기가 흩날리고 딱딱한 초록색 제복을 입은 공안을 떠올리면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다. 타투라면 기성세대에 반기를 드는 록 스피릿, 자유의 상징이 아닌가.

출처 https://www.danangtattoofestival.com/ 다낭 제1회 타투 페스티발 공식 포스터와 사이트

쫄보 한국인은 하노이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그랩 기사님의 팔뚝 문신에 압도당하곤 했다. 목적지까지 가는 내내 제대로 된 경로 주행을  확인하며 동공 지진을 일으킨 건 안 비밀! 그리고 남몰래 기사님의 인생을 한 편의 누아르 영화와 연관시켜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했다. 제멋대로 제작한 영화만 해도 수백 편은 넘는다. 물론 등줄기에서 땀이 흐르는 긴장감과 피로는 모두 내 몫이다. 어둠의 비즈니스에 평생을 헌신한 형님들 비주얼이지만 손가락도 열 개, 팔도 두 개로 멀쩡한 걸 보면 갱스터 탈퇴의 이력은 애초에 환상에 불과하다는 결론이지만 말이다.


그 대담함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거지요?


베트남 사람들에게 타투에 대해 물어보니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거친 남성성을 과시하는 지극히 동물적인 본능이 첫 번째다. 힘 좀 쓰는 남자들은 죄다 마초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접촉 사고 나면 뒷목부터 잡고 웃통부터 벗어던지던 한국의 옛 모습과 같은 흐름으로 이해해도 될까. 보험 시스템이 미비한 베트남은 교통사고가 나면 초고속 도망이 상책인 분위기지만 말이다. 그리고 패션 아이템이나 액세서리로 여기는 편이라고 한다. 물론 모두가 타투를 반기지 않으며 부정적인 시선도 분명히 있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는 실제로 거친 암흑의 세계에 몸 담았을 경우다. 작년 가을, 하노이의 중심지인 호안끼엠에 사는 L은 사색이 되어 말했다. 지난밤, 총성이 나고 온 동네가 난리가 났었다고 말이다. 다음날 아침, 도로는 통제되고 공안이 수사를 진행했지만 총을 맞은 사람은 사람은 사망했다고 한다. 주목할 점은 그녀가 사는 동네는 호안끼엠의 ‘22 항부옴 문화 예술관’에서도 가까운 가장 번화한 거리라는 점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필수 코스로 지나는 거리다. 후미진 골목도 아닌 오픈된 공간에서 총성이라.. 이건 인사동 한복판에서 살인사건이 난 셈이다. 더 놀라운 건 사건에 대한 기사가 한 줄도 기사화되지 않았다. 확실한 수사 결과도 없어 주민들은 갱스터들의 권력다툼으로 예상했고 그렇게 흐지부지 영화 같은 에피소드 하나로 남아버렸다는 후문이다. 행정이 집결된 수도, 하노이도 이 정도이니 도시 곳곳에 분포된 갱스터 집단은 여전히 총기,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은폐된다는 것도 이때 알았다. 이런 소행은 역시나 타투 군단의 소행이 대부분이라나.. 역시 어깨의 승천하는 용은 무시할 게 못된다.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사로잡히니 말이다. 음지에 있던 한국의 갱단들은 점점 기업화되고 합법화된 경로로 사업을 확장한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말이다. 어느 쪽이든 위험하고 무서운 세계다.


하지만 덮어놓고 누아르적 시선을 두지 말자. 베트남의 타투 문화는 음지가 아닌 양지임을 증명하는 예가 있다. 이름하여 ‘Vietnamese Tattoo Festival’! 맥주나 커피 페스티벌은 알겠는데 타투 페스티벌이라니! 축제까지 열리는 걸 보면 베트남에서 타투가 얼마나 유행인지 짐작이 가지 않나. 가슴 서늘한 사연 없이 취향에 따른 패션임을 다시 한번 증명한다. 2023년 5월 다낭에서 열리는 축제는 제1회로 SNS와 온라인에서 대대적인 홍보 중이다. 여기서 잠깐! 정부의 허가를 얻은 것도 신기한데 입장 연령 제한은 커녕 10세 이하 아이들은 무료라굽쇼?! 아이 동반을 허용하는 분위기! 쿨해도 너무 쿨하다.

Lightly Coffee

부쩍 흐린 날씨가 계속되는 하노이! 하늘처럼 마음에도 흐린 구름이 끼기 쉬운 요즘 조금이라도 반짝이는 광채를 찾고 싶을 때, 들리는 커피숍이 있다. 이름마저 환한 ‘Lightly Coffee’(라이틀리 커피)!  여행객으로 북적대는 호안끼엠 중심가에서 조금 벗어난 카페에는 대형 타투를 한 사장님이 있다. 처음에는 무뚝뚝한 표정에 외국인인 나를 조금 경계하는 듯했다. 하지만 베트남어로 물꼬를 트자 친절한 메뉴 설명은 물론 사진을 찍도록 가게에서 퇴장까지 해주는 배려도 잊지 않는다. 박력 넘치는 타투를 한 그의 과거는 어떨까. 제멋대로 망상에 젖지만, 라테를 한 모금하자 부질없는 상상은 싹 사라진다. 산미 반 고소함 반의 그의 커피에 그저 건실한 청년 바리스타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렸다. 선혈이 낭자한 과거를 연상하기엔 정직하게 맛있는 커피다. 아무래도 타투 하나에 헛다리를 짚어버리는 한국인은 베트남에 적응하기엔 아직 멀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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