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노이 민언냐 Mar 08. 2023

베트남에서 한국 드라마에 입덕한 한국인

한국 드라마, 베트남을 접수하다            일러스트by하노이민언

베트남 하늘 아래, 천상천하 유아독존! 고운데 재밌고 가슴 뜨신 감동까지 주는 만능 사기 캐의 향연. 베트남은 지금 K-Drama 시대!

넷플릭스 베트남 인기 순위 탑 10, 단 2 편을 제외하고 모두 한국 프로그램

하노이에 와서 체감한 한국 드라마의 인기는 생각보다 더 뜨겁다. 


할리우드, 홍콩 영화에 열광하고 톰 크루즈, 주윤발 세대를 지나왔기에 감회가 더 새롭다. 하지만 5년 전 드라마를 보며 뒷북치는 ’응어이 한꾸억 người Hàn Quốc’ 인건 안 비밀! ‘박서준’의 열혈팬인 프랑스인 R에게서 8년 전의 출연작을 추천받았다지요. 또르르. 해외에서 더욱 뜨거운 ’ 수출 한정판‘ 애국자는 뒤늦게 한국 드라마에 입덕 중이다. 열 중 아홉은 본다는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도 ‘시크릿 가든‘ 이후로 업데이트 되지 않았다면 유죄일까. 뒤늦은 한국 드라마 시청에는 베트남 친구들의 공도 크다. K- DRAMA, K- POP에 진심인 T, H 그리고 베트남어 선생님 L은 한없이 뒤처진 내게는 발 빠른 엔터테인먼트 소식통이다. 특히 요즘 L과 함께 빠진 드라마가 있다. 바로 ‘Khóa Học Yêu Cấp Tốc, 코아 혹 이요우 껍 똑’으로 일명 ‘급속 사랑학‘, 바로 ‘일타 스캔들’이다. 영원한 워너비, 전도연 ‘님’의 명랑 로맨스가 대체 을매만이냐. 쌍수 들고 환영했… 지만 역시 사건사고의 핏빛 그림자가 스멀스멀 덮치더라. 그래도 유쾌 지수 가득 한 캐릭터에 감동한다. 마의 구간인 6화에서 나가떨어지는 저질 ‘드라마 지구력’을 자랑하는 나도 10화를 거뜬히 넘겼으니, ‘저슷두잇’ 정신을 드라마로 증명한 셈이다.

베트남판 태양의 후예, Hậu Duệ Mặt Trời

아시아 최초로 한국 드라마를 공영 방송한 베트남!



이러한 관심은 한류가 시작하기 전부터 시작되었다. 1995년 아시아 최초로 국영방송을 한 ‘VTV1’의 ‘내 사랑 유미’부터 가을동화, 대장금, 의가형제 등 수많은 작품들이 인기를 얻었다. 그중 일등공신은 단연 ‘ 태양의 후예 (2016)‘고 말이다. 아시아는 물론 남미 전역을 걸쳐 전 세계 20여 개 국가로 수출된 전설의 드라마다. 특히 베트남에서의 인기는 사회적 현상으로 번졌다. ’ 유시진 대위, 강모연‘ 패션은 엄청난 이슈로 떠올랐다. 송혜교 화장품에서 군복까지 그야말로 ‘태양의 후예 신드롬’이었다. 군복을 입고 웨딩 촬영도 불사할 정도였으니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상상이 가지 않나. 2018년에는 리메이크를 할 정도였다. 비록 시청률과 화제성은 참패했지만 원작의 인기는 증명된 셈이다.

죄측쩐꾸앙 기자의 페이스북, 우측 출처 VINATIMES.NET

한국군을 홍보하는 드라마가 방송되는 것 자체가 ‘오욕’이다.


하지만 모두가 열광한 건 아니다. 젊은 세대를 향한 거센 비판도 있었다. 부족한 역사인식이 화두로 떠오른 것이다. 반 세기 전만 해도 전쟁의 고통 속에 고군분투하던 역사를 떠올린다면 당연한 반응이다. 한국군은 미국과 함께 참전한 적군이 아닌가. 베트남 일간지 ‘뚜오이째’의 쩐꽝티(Trân Quang Thi) 기자는 페이스북에서 소신 발언을 하며 많은 호응을 받았다. 돈을 위해 파병 나온 군인들을 군국주의 상징으로 미화시킨 드라마라며 비판했다. 또한 한국군이 감행한 잔인한 민간인 학살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과거이며 한국군을 홍보하는 드라마가 방송되는 것 자체가 ‘오욕’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을 예로 들기도 했는데 일본군을 찬양하는 드라마가 한국이나 중국에서 방송된다면 어떻겠냐고 말이다. ’ 유시진 대위의 군복 룩‘으로 웨딩 촬영을 하는 등 엄청난 인기를 얻었지만 단순한 유행으로 받아들이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주장대로 감히 떠올려 보았다. 일본군복을 입은 MZ세대들이 명동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말이다. 분노를 넘어 살의에 가득 찬 자신을 마주하게 되지 않나.

 블러디 문 페스트, 내가 니 할매다, 고고시스터즈

드라마 리메이크는 태양의 후예 만 뿐만이 아니다. 본격적인 판권 구입과 제작은 2000 년대부터 과속화되었다. 베트남 버전으로 재탄생된 드라마는 ‘Gia đình lá số 1’(하이킥 시즌 1, 2017, 시즌 2, 2019), ’Ngay ấy mình đã yêu’(연애의 발견 2018), ‘Nhà thọ Balanha’(으라차차 와이키키 2020) 등 수십 편에 이른다. 영화 '수상한 그녀' 또한 '내가 니 할매다'(2015)로 '써니'는 '고고시스터즈' (2018), '완벽한 타인'은 '블러디 문 페스트'(2020)로 리메이크되었다. 블러디 문 페스티벌은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245만 명으로 역대 흥행 순위 1위라는 기록까지 세워 큰 화제가 되었다.

베트남 판, 러닝맨(짜이 디 쩌 찌) 제작 발표회

지각 변동은 한국에서 시작된다. 베트남 예능계를 씹어먹는 K-Culture!


한국의 예능 또한 활약이 상당하다. 유튜브에서는 자막이 완벽하게 탑재된 최신 ‘런닝맨’ 영상이 업로드되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런닝맨 이외에도 ‘1박 2일’과 ‘복면가왕’은 아예 베트남 버전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그 결과는 대 투 더 박,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특히 런닝맨 ‘Chạy Đi Chờ chị(쩌이디쩌찌, 그냥 달려, 2019)’는 첫 방송을 시작한 뒤 유튜브 누적 조회 수가 3억 뷰 이상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2019년 베트남의 올해의 예능상까지 수상했지만 코로나로 2021 년 9월 시즌 2로 마무리해 아쉬웠지만 말이다. 1박 2일 또한 출연진의 인기 급등은 물론 시청률과 화제성 모두 승승장구 중이다. ‘2 ngày 1 đêm 하이 응아이 못 뎀’ (1박 2일)은 리얼리티 관광 홍보 프로그램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는 점에서 차별화되고 있다. 베트남 전역의 유적지, 관광지를 소개하며 웃음과 정보성까지 잡은 것이다. 시즌 2까지 방송했으며, 올해 뗏(구정) 특별판으로 제작되어 많은 화제를 모았다. 한국 예능의 베트남 버전은 vtv3 채널의 ‘아빠! 어디가?’(Bố ơi mình đi đâu thế?) 또한 빼놓을 수 없다. 4명의 연예인이 자녀와 함께 떠나는 여행을 담고 있어, 온 가족이 시청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이미 시즌 4까지 방송되었지만 여전한 인기를 누리는 중이고 말이다. 이외에도 JTBC의 음악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바라던 바다’ (Biển của hy vọng) 또한 Viettel Media에서 판권을 인수했다. 이쯤 되면 핫한 프로그램의 척도는 베트남 판권에 따라 판가름 난다고 해도 될 정도다.

올해 흥행한 베트남 영화, 냐 바 부

탄탄한 시나리오와 보장된 시청률은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제작자들이 한국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비평도 있다. 하여, 최근 오리지널 시나리오와 제작을 위한 노력을 쏟고 있다. 특히 뗏(구정) 연휴를 기점으로 상영된 코미디 가족 영화는 최대 관객수를 동원하며 한화 약 230억 원(4,500 억 베트남 동)의 수익을 거두었다. 베트남의 유재석으로 불리는 국민 MC, Trấn Thành 쩐 타잉(한국인 엄마를 둔 가수, 하리원의 남편)이 제작에 참여하고 주연까지 맡은 이번 영화의 성공은 베트남 영화 신기록을 세워,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쩐타잉의 제작 참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유튜브 조회수 1억 천만 회를 돌파한 웹드라마 대부(Bốgià, 2020)를 시작으로 2021년 영화 ‘대부’를 개봉했다. 지난 3년의 노력이 ‘냐 바 부’로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이런 흥행 돌풍은 베트남 엔터테인먼트 계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성과였다. 하지만 기뻐하기는 아직 이르다. 관객들의 혹평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한국을 포함한 해외 영화로 기준이 높아진 팬들을 만족시키기에는 시나리오와 영상의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평가다. 팬심과 뗏 연휴에 볼 영화가 없어서 봤을 뿐이라는 의견도 많다. T는 리뷰에서 ’쩐 타잉과 제작사에게는 성공, 베트남 영화로는 실패‘라는 후기로 가장 많은 공감을 받았다. 특히  86개의 댓글이 달리며 갑론을박을 벌이기도 했고 말이다. 국민 MC 쩐 타잉의 팬이냐, 아니냐의 논쟁은 팬덤으로 번지는가 하면 H는 쩐타잉이 아니었다면 '4000 억 동이 아니라 천억 동도 수익이 나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등의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실제로 영화에 대한 평가는 80 프로 이상이 혹평이었다. 쩐 타잉의 성공을 축하하지만 지겹고 감동도 없었다는 A와 V는 시나리오의 허술한 내용 지적과 억지웃음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출처 VN Express

한국 영화 산업 그리고 문화 산업이 그러했듯 베트남 또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하지만 문화 산업에 투자하고 관심을 가지는 베트남을 통해 과거의 한국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판권 구매보다 합작의 러브콜을 보내는 것도 그런 이유다. 한국이 그러했듯, 언젠가 V-Movie나 드라마 등을 통해 V-wave가 불어닥치는 순간이 올지 모른다.

‘어디서 MSG를!’

‘Đưng thêm mắm thêm muối! 등템 맘 템 무오이!‘


'일타 스캔들'을 남편에게 전도했더니 토요일 밤 10시(한국 시각 자정이 드라마 업데이트 시간)를 손꼽아 기다리게 되더라. 지난주 종방하며 주말의 행복이 사라진 허망함에 몸부림치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 여운은 베트남어 공부라는 명목 아래, 자막을 바꿔가며 반복 시청 중이다. 흥미로운 표현은 외국어 자막을 비교하는 재미도 있다. 칸의 여왕이지만 정작 불어 자막이 없어 근거 없는 배신감에 부르르 떠는 1인! 아쉽지만 영어, 일어, 베트남어로 사부작사부작 거린다. 그러던 중 ’MSG 치지 마‘(‘어디서 MSG를!)란 대사에 꽂혀 자막 검열에 들어갔다. 사실 일어야말로 어학적으로 가장 유사한 언어가 아니던가. 기대는 깨라고 있는 거죠~ 일본어 번역이 가장 실망스러웠다. 겁 없는 단순화와 생략의 향연은 고등어 반 토막에 뼈만 발라낸 번역 수준이다. 대본을 제대로 읽었는지 묻고 싶다. 넷플릭스에 투서도 날리고 싶지 말입니다. 언어 체계가 다른 영어도 오역의 범위를 최소화하고자 노력하는 게 역력했는데 말이다. 그중에서도 어법, 단어, 성조, 달라도 많이 다른 ‘띠엉 비엣’ 베트남어가 가장 충실했다. MSG를 ‘느억  nước mắm ’의 표현을 찾아 쓴 번역가에게 치어스! ’ ‘느억 ’이 베트남에서는 빠질 수 없는 양념이니 이해가 된다. 이 표현, 놓치지 않을 거예요~ 한국 드라마 위상이 자막만으로 확인되는 순간이다. 한베 번역가에게 박수를 보내며, 이제 주말에는 무슨 드라마를 볼지 고민에 빠지는 1인이다.



피. 에스. ‘맘(느억 맘, mắm)’, 소금(muối)을 치다는 ‘MSG/처럼 ‘과장하다, 살을 붙이다.’를 의미한다.



작가의 이전글 K- Food의 베트남 점령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