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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Mar 01. 2023

K- Food의 베트남 점령기

한국의 매운맛에 빠진 베트남.       일러스트by하노이민언냐

그저 딸기를 샀을 뿐인데… 정채불명의 가루가 똿! 평온한 나의 삶도 이렇게 막을 내리는 건가요.


미스터리 한 가루가 딸기 박스에서 발견되었다. 그 순간 스쳐 지나가는 수만 편의 스릴러 범죄 영화들! 쩡이는 봉투를 흔들어 보이며 해맑게 웃었지만 엄마는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당장 내려놔~ 딸아~ 이건 함정이야!

입이 고급진 만 10세의 따님은 한국에서는 없어서 못 먹는다는 망고, 용과 등의 열대 과일을 돌같이 본다. 덕분에 엄마는 1.5 - 2배 가격인 딸기, 골드 키위, 한국 사과를 눈물을 머금고 산답니다. 또르르~


얼마 전, 귀한 따님의 입맛을 존중해 딸기를 샀다. 성장기 비타민 섭취는 중요하니깐요~ 한 박스라고 해도 500 - 600 그램으로 종이 포장이 더 으리으리했다. 딸기를 보자 따님은 기쁨의 점핑을 시전 한다. 너만 행복하다면야, 쿨럭~ 딸기는 못 참는 쩡이는 빛의 속도로 달려들어 박스 오픈! 하지만 본 적 없는 수상한 가루가 숨어있었다. 쩡이는 고개를 갸우뚱, 엄마는 소름이 쫙! 오만가지 상상의 나래가 펼쳐질 즈음, 딸의 손에 든 봉투를 얼른 뺏았다. ‘악, 악, 악’ 100 데시벨의 내적 비명을 지른 건 안 비밀! 용기를 내어 봉투에 손을 뻗는다. 폭탄을 해체하듯 조심조심 봉투를 여는 나는야 ‘마더!’! 영화의 영향인지 이런 건 후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킁킁 냄새를 맡아보자. 무취하군. 그렇다면 남은 건 미각인가. 이윽고 비장하게 새끼손가락 투입! 가루를 살짝 찍어 입으로 돌진한다.


범인은 바로 ‘muối, 무오이’, 너구나! 한번 빠져들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그 맛! 르 셀(le sel), 시오(塩しお), 솔트(sault)군요.


명탐정 코난의 포스로 정체를 알아냈지만 삼엄한 과정에 비해 결과는 너무 하찮았다. 누구나 아는 짭조름함, 소금일 뿐이었다. 역시 시커먼 심성의 중생 눈에게는 온 세상이 시커멓게 보이는 법이다. 어두컴컴한 바닥을 보인 엄마는 뒷걸음질 칩니다. 소금 잡고 온갖 범죄 영화를 떠올린 탁한 영혼의 엄마는 웁니다. 그런데 소금과 딸기? ‘소금은 순대’가 국룰인 한국인은 당황스럽다. 딸기에 염분이라니, 이건 피자에 묵은지 이상의 어색한 조합이다. 과일에도 조미료 치는 거 실화냐. 알고 보니 베트남 딸기는 신맛이 강하다고 한다. 연유나 소금을 더해서 먹는다고 한다. 사실 딸기 외의 과일에도 소금을 첨가하는 걸 종종 볼 수 있다.


베트남 음식에서 소스는 주인공이다.


베트남의 소스 사랑은 유명하다. 한식에서 소스는 있으면 좋지만 없되는 선택의 영역이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절대 빠뜨릴 수 없는 필수, 주인공이다. 그래서 '베트남 미각의 완성 = 소스'의 공식이 과언이 아니다. 소스는 분짜나 넴(베트남식 만두)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과일에도 첨가하니 말 다했지 말입니다. 특히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느억맘(생선 베이스의 액젓류), 새콤 달콤한 칠리소스, 소금 등이 식탁을 차지하고 있다. 미각으로 보면 주로 단짠의 공식에 충실한 편이다. 하지만 최근 다양한 수입 소스가 소개되며 요식업계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뜨겁게 떠오르는 뉴페이스, 강한 한국의 맛이 등장했다. 두둥!

조미료계의 원조 슈퍼스타는 일본의 ‘아지노모토’!


K-Food 붐이 일기 전에 이미 MSG의 저력을 과시한 브랜드가 있었으니, 바로 아지노모토다. 첫 MSG나 다름없는 아지노모토의 인기 비결은 육수다. 과거 사골과 각종 식재료가 귀했던 베트남은 진한 육수를 끓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맹물에 가까운 연한 국물에 면만 퐁당퐁당 먹으며 미각보다는 허기를 채우던 시절이 있었다. 이때, 아지노모토가 등장하며 ‘육수‘의 판도를 바꿔놓는다. 사골, 고기 없이도 아지노모토 하나로 맛있는 육수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와우, 미라클~ 마법 파우더로 각광받으며 MSG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아지노모토는 지금도 조미료계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시장점유율이 무려 64프로! 압도적이다. 하지만 정면 승부를 던진 브랜드가 있다. 국민 어머니 혜자 선생님의 ’ 그래, 이 맛이야~‘! 대상 그룹의 미원이다. 3년 전부터 베트남 시장에 진출해 레드 로고 ‘miwon’를 정중앙에 박고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점유율은 아지노모토에 못 미치지만 미원 또한 14프로를 웃돌며 선전하고 있다.

한국 밥상에 김치라면 베트남은 느억맘(nước mắm, 피시 소스)!


베트남은 느억맘을 뺄 수 없다. 분짜, 퍼, 넴(베트남식 만두)을 떠올리면 늘 있는 소스가 바로 느억맘이다. 한국에서도 요즘 유행 중인 느억맘은 일명 피시 소스로도 불린다. 흔히 액젓을 떠올리는데 ‘cá cơm 까 껌’(멸치와 비슷한 생선)을 소금 등으로 6 - 1년까지 발효시키기 때문이다. 여기에 레몬즙, 라임즙, 식초 또는 설탕 등의 조미료를 더해 단맛을 내는가 하면, 다진 고추와 마늘을 넣어 매운맛을 내기도 한다. 디핑 소스에서 면을 넣어 먹는 등 그야말로 변화무쌍, 천의 얼굴인 셈이다. 이쯤 되면 소스가 메인인 베트남에서 유독 강렬한 한국의 맛이 대세로 떠오른 이유가 뭔지 궁금해진다.


K- Drama의 주인공은 모두 매운 라면에 소주 아닌가요?

한국 음식의 인기 비결은 K- Culture에서 찾을 수 있다. K- Drama에서 주인공이 매운 라면과 떡볶이를 먹는 장면이 나오면 어떤 광고보다 더 큰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꼬레노(팔도)', ‘신라면(농심)‘, ‘진라면(오뚜기)’ 그리고 '불닭 볶음면(삼양)' 등 윈 마트 Win Mart(구 Vin Mart)나 편의점 Cirkle-K, 일본 마트 체인점인 토미분 등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먹방 Mukbang을 타고 날아오른 불타는 매운맛!


한국의 맵고 자극적인 맛의 대유행은 ‘유튜브’를 빼고 설명할 수 없다. 이제 ‘mukbang 먹방‘은 고유명사가 되어 모르는 이가 거의 없을 정도다. 유튜브에서 mì cay를 검색하기만 해도 무수한 연관 동영상이 뜬다. 특히 ‘Sally’s Stories’의 불닭면 동영상이 큰 주목을 받아 조회수가 158만 회를 넘었다. 불닭면은 2012년 첫 출시 이후 2만 5천 동에서 3만 동의 가격으로(한화 1200 원에서 1500 원)으로 판매되고 있다. 이는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신라면과 함께 매운맛의 대표주자로 불린다. 오뚜기의 북경짜장 또한 매출 반을 차지할 정도며, 팔도의 코레노는 2006년부터 베트남을 위해 특화된 상품으로 꾸준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

유튜버 Sally's Stories의 불닭볶음면 먹방 동영상
베트남에서 활동하는 Woossi와 가수 하리원의 유튜브

현지인 버금가는 유창한 베트남어로 젠지세대들의 큰 사랑을 받는 한국인 유튜버 ‘woossi’와 '체리 혜리' 또한 한식의 인기를 더욱 뜨겁게 했다. 프로 먹방러인 우시와 뷰티, 라이프 스타일 등을 공유하는 체리혜리는 꾸준히 한식 먹방을 업데이트 중이다. 한국인 엄마를 둔 인기 가수이자 베트남의 유재석으로 불리는 mc 쩐 타잉( Trân Thanh)의 와이프인 하리원도 빼놓을 수 없다. 3개월 전에는 풀무원 떡볶이를 방문하고 요리와 먹방을 선보였다.


사실 먹방 르네상스는 코로나에서 시작되었다. 코시국에서 가장 강한 통제를 실시한 국가가 베트남이다. 당시 통행증이나 장바구니를 지참하지 않으면 외부출입이 불가능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결국 집콕 생활에서 유튜브를 시청하는 이들은 더욱 늘어났고 당시 강렬하고 자극적인 맛에 고통스러운 반응을 보인 영상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2020년, 매출 상승효과도 톡톡히 보았고 말이다. 실제로 2018년과 비교해 베트남 라면 소비량이 4프로를 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세계 인스턴트 라면 연간 소비량 1위이던 한국(2013년부터 8 연속 1위)은 2021년부터 베트남에 1위를 내주었다. 매번 마트의 라면 코너를 지나칠 때마다 ‘삼양, 팔도, 오뚝이, CJ, 미원, 농심’ 등이 장악한 걸 보며 몰래 뿌듯해하는 1인이다.

 K- Food의 행렬에 ‘Dookki’도 빠질 수 없다. 2018년 호찌민에서 처음 문을 연 Dookki는 떡볶이 붐을 타고 인기 급상승했다. 현재 30 개 이상의 지점을 보유했다. ‘버거 킹’이나 ‘서브웨이 샌드위치’도 해내지 못한 걸 우리 ‘두 끼’가 해낸 겁니까? 특히 주목할 대목은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미딩’ 지역이 아닌 하노이 전체에 걸친 로컬에서 사랑받고 있다는 것이다. 브라보! 엄지 척!

마루 식당

김밥에 디핑소스?

베트남 친구 N은 20대! 젠지 세대에 맞게 젊음의 거리, 동다의 한식당을 추천했다. 인테리어부터 한국 기와집을 연상시키며 이름 또한 ’Maru’다. 입에 촥촥 붙는 간판에 비해 메뉴판이 너무 파이팅 넘친다. 다이내믹한 메뉴판에 정신을 못 차린다면 기본이 최고다. 기본에 충실한 채소 듬뿍 ‘야채 김밥’으로 정했다. 김밥 한 줄에 9첩 반상이 왓! 사장님은 반찬에 진심이었다. 밑반찬에서 한국이 밀리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그리고 김밥에 함께 나온 건 뭐다? 바로 마요네즈와 케첩 그 어디쯤의 선홍색 디핑 소스다. 처음엔 잘못 나온 줄 알았지만, 직원은 김밥에 찍어먹으라고 설명했다. 한국음식을 베트남 직원에게 지도편달받는 이 상황, 혼란스럽네요. 역시 또 한 번 말릴 수 없는 베트남의 소스 사랑에 지고야 말았다. 그런데 말이지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보는 주입식 교육의 산물, 민언냐는 찍어봤다고 합니다. 아삭아삭 야채와 디핑소스의 만남.. 색달라.. 하지만 난 김밥은 김밥만 먹는 게 베스트라는 고지식한 입맛의 1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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