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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Apr 08. 2023

오스카 수상자 ‘콴’과 뉴진스로 본 베트남 보트피플

베트남, 현대 역사의 그림자         일러스트 by하노이민언냐


“My journey started on a boat. I spent a year in a refugee camp. And somehow, I ended up here on Hollywood’s biggest stage. They say stories like this only happen in the movies. I cannot believe it’s happening to me.”


저의 여행은 보트 한 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난민 캠프에서 일 년을 지냈고, 어쩌다 할리우드의 가장 큰 무대인 여기까지 왔네요.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는 영화에서만 일어나는 거라는데, 제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요. “


3월 12일에 열린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이하 ‘오스카’)이 SNS는 물론 각종 언론매체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아시아계 배우가 한 명? 아니, 두 명이나 수상했기 때문이다. 백인의 축제로 불리던 ’ 화이트 오스카‘에 대체 무슨 일이죠? 유색 인종 아니 ’ 비백인 ‘ 수상과 그런 영화가 7관왕을 석권한 건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여우주연상자인 미셸 여(양자경)는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으로 동양인 최초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 할리 베리’ 뒤로 비백인으로서 두 번째 쾌거다. ‘미나리‘의 윤여정 배우가 여우조연상 수상을 했을 때를 떠올리기도 했다. 수상 뒤 이어진 소감 또한 감동 모먼트이긴 마찬가지다.


Ladies, don’t let anyone tell you that you are past prime.(레이디스! 그 누구도 당신의 전성기가 지났다고 말하게 두지 마세요.)”


이 언니, 연기도 잘하고 이렇게 멋지기 있기 없기? 요즘 인생이 오르막보다 내리막처럼 느껴지는 내 심장은 요동친다. ’ 비백인‘인 것을 제외하면 공통점이 제로지만 방구석 관객으로서 기립손뼉 치게 만드는 몰입감이다. 오스카는 역시 아무나 받는 게 아니지.

출처 Decider,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의 한 장면

또 다른 역사의 주인공은 같은 영화에 출연한 Kế Huy Quan 께 후이 콴이다. 떨리는 목소리에 눈물을 쏟는 그를 보고 울컥하지 않은 이가 있을까. 내적 기쁨의 함성을 지른 사람, 푸쳐핸접! 스스로를 살아있는 ‘아메리칸드림’으로 칭한 콴의 수상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단순히 아시아계 배우가 일구어낸 성공담이 아니다. 영화보다 더 극적인 유년시절을 거쳤기 때문이다. 바로 ‘보트 피플’로 말이다.


“나의 여행은 보트 한 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콴의 한마디가 베트남을 흔든다.

출처, 좌 fulcrum.sg과 우 facebook

여섯 살에 나라를 떠났지만 스스로 베트남인이라 밝힌 감동적인 소감! 하지만 가슴을 울리는 따뜻함만 선사한 게 아니다. 치열한 논쟁을 부르는 엄청난 파급력도 발휘했다.


facebook에서 ‘Anti-reactionary academy’가 쏘아 올린 포스팅 하나에 뜨거운 여론!


베트남 출신 남자 배우, 콴의 오스카 수상이란 타이틀은 그의 정체성 논란에 불을 지폈다. 글쓴이는 중국계 아버지, 홍콩계 어머니를 둔 그는 일찍이 배를 타고 베트남을 떠났다는 점을 강조했다. 홍콩 난민 캠프와 말레이시아를 거쳐 미국에 정착한 사람이 어떻게 베트남인이냐고 반문하며 말이다. 이 글은 표면적으로 한 배우의 뿌리를 지적하는 듯 보였지만 저변에는 정치적, 역사적 논쟁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보트 피플은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해로를 통해 나라를 탈출하는 난민을 일컫는다. 당시 베트남은 남북 전쟁 끝에 북부가 승리를 거두었고 패전한 남부에서는 대대적 인구 이동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대부분이 상업 종사자 즉 자산가와 지주 나아가 고위관계자 등의 사회 기득권이었다. 전쟁 후 모든 걸 버리고 하루아침에 국제 난민의 길을 자처한 것이다. 바로 북 베트남의 승리는 사회주의 정부의 통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산 국유화는 물론 경제, 유통, 정치 등 전반에 걸친 핍박은 남부를 통째로 뒤흔들기 충분했다. 물론 사회주의체제 변환에서 가장 큰 압박과 위기를 마주하게 될 이들은 남부 기득권 세력, 지배층임이 명백했다. 그렇게 망망대해에 배를 띄운 이들은 약 150만 명, 하지만 모두 해피 엔딩을 맞이한 게 아니다. 목적지에 닿기도 전에 죽음으로 끝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몇 달 동안 중국 해안에 정박했다가 굶주림으로 죽거나 해적에게 학살된 시체가 해안을 떠다니는 일 또한 잦았다. 사망 집계는 20만 명이지만 이마저도 추산일 뿐 실제로 더 많다는 게 정설이다.


fulcrum.sg에서 이엔 웅우엔 안 루옹 기자는 온라인상의 콴을 배척하는 여론에 주목한다. 공격적 성향의 여론에 선을 넘은 애국심과 정부의 관여를 지적했다. 단순한 포스팅을 넘어 사회주의 체제의 정보 통제와 여론 선동을 보여주는 예라며 신랄한 비판을 한 것이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정부의 간섭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미심장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출처 https://fulcrum.sg 디엔 웅우엔 안 루옹 기사

‘경계를 넘은 사람들 người vượt biên’


베트남에서는 ‘보트 피플’이라고 물으면 하나같이 갸우뚱한다. 즉각 알아듣는 이가 드물 정도였다. 금기어를 뱉은 건지 걱정이 슬며시 밀려왔다. 혹시 옆 테이블에서 신고를 한다던가. 공안 출동 그리고 철커덩 철커덩 수갑 채우러 온다던가. 온갖 망상과 함께 급 찾아드는 쫄보 모먼트란! 결국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H에게 물어봤다. 곰곰이 생각에 잠기며 고개를 갸우뚱하기는 그녀도 마찬가지다. 결국 오스카 수상자인 ‘콴’의 이름을 대자 바로 이해했다. 친절한 H는 영어가 아닌 베트남어까지 알려주었다. 보트 피플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기회도 잘 없지만 영어보다 베트남어 단어를 더 많이 쓴다고 한다. 깜언! 베트남 어로는 응어이 브엇 비엔! ‘경계를 넘은 사람들 người vượt biên’이었다. 물론 ‘vượt biên 브엇 비엔’은 ‘밀항하다’의 뜻이 있지만 ‘경계를 넘다’라는 직역이 더욱 와닿는다. 항해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형적 그리고 유형적으로 존재하는 ‘선’을 넘고자 함이니 말이다. (thuyền nhân 투엣년; 영어를 직역해 ‘배 사람’이란 단어도 있다.)

출처 VN Express

아시아계 배우의 오스카 수상은 1985년 이후 두 번째이자 베트남 계다. 1971년 사이공, 오늘날의 호찌민에서 출생했는데 갑분 중국계 미국인? 아시아계 미국인?


세계 곳곳의 SNS, 뉴스에서는 콴의 수상을 보도하고 인터뷰를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한 줄의 기사도 찾아내기가 어려웠다. 베트남인이라고 스스로 정의한 그에게 박수는커녕 아예 뉴스를 덮으려는 인상마저 들었다. 명실상부 최대 유력 매체인 베트남 익스프레스(Vietnam Express) 또한 보도에 소극적이었다. ‘아시아계 미국인 배우의 오스카 수상’이라고 한 줄 요약하며 마무리한 것이다. 이게 최선입니꺄. 간혹 보이는 다른 기사들도 다를 바가 없다. 베트남인이라는 언급은 쏙 빠져있다. 그저 ‘중국계 미국인의 오스카 수상‘이라 설명할 뿐이다. 이는 작년 베트남계 미국인 여자 가수 ‘싱기타 카우르’의 그래미상 수상에서 보인 반응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지 말입니다. 그녀의 수상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베트남의 자랑스러운 인물'로 칭송했으니 말이다. 이에 호주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스대 약대 교수인 응우옌반투안 교수는 소신 발언을 했다. BBC 인터뷰 중 싱기타 카우르와 콴을 향한 온도차를 지적한 것이다. 기사를 찾아보는 한국인도 섭섭함이 맥스로 치닫는데, 같은 보트 피플 출신인 그는 오죽하랴. 엄밀히 말해 중국계(중국계 아버지, 홍콩계 어머니) 부모 아래에서 태어난 ‘người Việt gốc Hoa 응어이 비엣 곡 호아’인 콴은 사실 중국계 베트남 사람, 화교다. 하지만 당시 남부 경제를 지탱하던 상업 종사자 대다수가 화교 출신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을 모두 중국인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게다가 베트남인이라고 스스로 밝혔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계 미국인으로 선을 긋는데 열중하는 베트남을 보면 어딘가 게운치 않다.

출처 위키디아, 1970년 대 보트 피플

보트 피플에 대한 베트남의 시선


콴의 수상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보트피플’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현 정부에서는 보트 피플을 자국민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친미세력, 자본주의 계층의 대대적인 탈주로 여겨 현체제에 반대하는 반동분자 즉 변절자로 여긴다. 실제로 전쟁 뒤 남부에서 사상 재교육 대상이 대대적으로 이뤄졌으니, 그들이 겪었을 불이익과 핍박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나라를 등진 매국노로까지 불리는 그들!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보트 피플의 이력은 대대손손 주홍글씨로 남아있다. 이쯤 되면 현대판 연좌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현 집권체제로서 부정하고 감추고 싶은 역사의 이면인 것이다. 어째서 ‘H’나 ‘L’ 등 보트 피플에 대해 말을 아끼며 예민한 주제임을 명시했는지 알 것 같다.


베트남에서 케이컬처의 위력을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이 있나요? 오 마이 오 마이 갓! 두말하면 입 아니 손가락만 아프다. 하지만 요즘 가장 핫한 그룹이 정치적 필터링을 의심받고 있다.

한국에서 공수한 뉴진스 앨범

데뷔와 동시에 미국 빌보드 차트 상위권 진입이라는 쾌거를 이룬 괴물 신인 일명 ‘새 청바지’! ‘뉴진스’다. 한창 아이돌에 빠진 초딩 5학년 딸 덕에 엄마는 오늘도 뉴진스의 하입보이를 듣습니다. 한창 2PM과 제이팍에 더 열광할 나이인데 말이지요. 특히 하입보이에 맞춰 춤을 추는 쩡이! 템포가 너무 빨라! 엄마는 수백 번 배워도 마음만은 앞설 뿐 몸은 삐거덕삐거덕. 춤을 알려주며 함께 추길 원하는 딸아~ 신 로이! 이번 생은 틀렸다. 상큼한 뉴진스의 춤이 너울너울 아리랑 동작으로 변질되는 순간이다. 음악적 취향을 존중하는 엄마는 한국에서 앨범까지 공수했다. 요즘 시디는 음반보다 첨부된 포토 카드가 더 핫하다는 사실! 라테는 말이야~는 넣어둬, 넣어둬! 포토 카드를 펼치며 최애 멤버가 누구냐고 묻기 시작한다. ‘오 마이 오 마이 갓~’을 부르는 ‘하니 팜’을 동시에 고르는 모녀! 달달 상큼함이 터지는 그녀의 미소는 세대를 아우른다. 게다가 베트남계 호주인이라나, 하노이에 사는 1인으로서 내적 친밀감이 제멋대로 쌓여버렸지 말입니다. 한국인도 이렇게 뿌듯한데 베트남 사람들은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하지만 정작 베트남은 뉴진스를 모르는 눈치다. 미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주목받는 중인데 말이다. 한국 드라마와 아이돌 무대를 동시간에 소비하는 베트남이 뉴진스를 모른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일본 미용실 te.to.te

얼마 전 들린 일본 미용실은 일본인 미용사를 제외하고 모두가 20대 초중반의 직원들이다. 내가 가면 모두 한국인 맞춤 수다에 돌입! K -Drama, K - Pop으로 이야기 꽃을 피운다. 하지만 뉴진스를 아무도 모른다. 베트남 멤버인 하니에 대해 열변을 토해보지만 반응은 같다. 스텝들은 평소 내가 모르는 아이돌이나 드라마를 모두 꾀고 있어 오히려 업데이트를 해주는 존재인데 말이다. 서프라이징! 이웃의 태국만 해도 블랙 핑크에 환호하며 특히 자국 멤버인 ‘리사’는 여신급이다. 매번 국빈대접을 받는 건 언급할 필요가 없다. 갓세븐의 ’ 뱀뱀‘은 또 어떻고? 상당한 부와 인기가 상상을 초월한다. 성공한 자국 가수들을 향한 특급 대우! 하지만 베트남은 잠잠하다 못해 모르쇠~ 수준이다.


알고 보니 ‘하니 팜‘ 조부모님이 보트피플이란 주장이 제기되었다. 베트남계 호주인이라는 점에서 정부가 뉴진스를 공식 기사화시키지 않고 나아가 대중에게 퍼지지 않도록 삭제 조치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가끔 한인 타운 등지에서 뉴진스의 노래가 들리곤 하지만 여전히 공공 매체에서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이에 주위의 베트남 사람들에게 보트 피플에 대한 규제가 있냐고 물어봤다. 현지인들은 입 모아 말했다. 베트남 정부의 정보 관리는 상당히 엄중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보트 피플 또는 정부를 비판하는 매체는 엄격한 규제를 받는다고 말이다. 실제로 작년 1분기 동안 ‘유해 포스트’로 분류되어 3천 개가 넘는 포스팅이 소셜미디어에서 삭제되기도 했다. 허위 정보 유포 등의 현행법 위반을 이유로 들었지만 명백한 언론 통제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페이스 북뿐만이 아니라 구글, 유튜브, 틱톡의 콘텐츠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삭제는 물론 플랫폼 기업들을 상대로 1조 3천300억 동의 세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이런 배경을 알고 나면 뉴진스가 잠잠한 것도 수긍이 간다. 실제로 온라인상에 이미 하니 팜의 가족사가 파헤쳐지는 중이니 말이다. 하지만 젠지 세대들 중 뉴진스 팬임을 자처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인터넷으로 빠르게 퍼지는 정보를 백 프로 차단하는 건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나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뉴진스가 공론화되진 않지만 베트남 멤버가 케이 팝 아이돌로서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는 걸 반기고 동경하는 젠지 세대들 또한 많다. 2주 전에 방문한 사이공의 한 편집샵에서 뉴진스의 ‘OMG’을 듣고 놀란 1인! 음악을 듣고 신나게 따라 하는 내게 상기된 표정으로 환한 미소를 보이던 그녀들을 잊을 수가 없다. 케이 팝의 팬을 자처하던 두 명의 레이디스~ 깜언 녜~ 그 마음 변치 않기로 약속해요~


“나는 바닥에 있어봤고 역사가 반복될까 두렵다. 제발 뭘 하든 다시 추락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

키호이콴 -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


할리우드에서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스타들 중 한 명인 콴! 보트 피플 출신임을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공식 발표한 콴의 한마디는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둔 어두운 역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얼마 전 인터뷰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인생의 바닥을 일찍이 겪은 그는 역사의 반복이 두렵다며 담담하게 고백했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림자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인생 한편에 그 무게를 이고 살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고 돌아갈 수 없음을 증명하며 세계 곳곳에서 퍼져 있는 것이다. 전쟁을 끝이 났지만 여전히 집권 공산당에게는 감추고 싶은 역사의 중심에서 표류하는 보트 피플! 빛의 속도로 이뤄낸 경제 성장과 문호 개방의 베트남! 하지만 여전히 그 이면에 부정당한 채 숨 쉬고 있다.  

자유 베트남 임시정부(自由越南臨時政府, Chính Phủ Lâm Thời Việt Nam Tự Do) - 출처 구글

P.S. 보트 피플은 홍콩,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등의 동남아시아는 물론 호주, 캐나다, 프랑스, 영국, 독일 등에 퍼져 정착했다. 현 정부를 향해 비판하는 영상은 물론 베트남 민주화 독립운동을 진행했다. ‘자유 베트남 임시 정부’로 망명정부가 미국 맬리포니아주에 존속하기도 했지만 이는 2013년을 끝으로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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