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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May 18. 2023

하노이 VS 사이공? 호찌민? 당신이 몰랐던 호찌민!

베트남 지역감정                 일러스트by하노이민언냐

Sài Gòn! Không phải là ‘Hồ Chí Minh’mà.”

사이공! 호찌민이 아니라고요. “


뭐가 잘못된 거죠? 진지한 표정으로 호찌민이 아니라 사이공이라고 정정하는 중년의 신사! 사이공과 호찌민은 ‘토마토, 토매이토‘, ’웥어~, 워러~’의 차이가 아니었다.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이 서너 개~’는 동생뿐만이 아니랍니다. 베트남, 최대 경제 도시인 호찌민은 현지에선 다른 이름으로 불린단 걸 아시는지? 사이공? 호찌민? 찐 이름이 뭐냐? 정체를 밝혀라!


“사이공? ‘머나먼 사이공’? 그게 호찌민이라고?”


‘미엔박 (miền bắc)‘ 북쪽의 하노이가 수도로 행정을 담당한다면 ‘미엔남 (miền nam)’ 남쪽의 호찌민은 경제 도시다. 지금이야 잘난 척하며 소개글을 올리지만, 고백컨데 베트남에 오기 전엔 베알못이었다. ’ 퍼‘와 뮤지컬 ‘머나먼 사이공’만 떠올리고 로빈 윌리암스 아저씨가 목놓아 외치던 ’굿모오니잉~ 베트남’, 베트남 전쟁이 다였다. 사이공과 호찌민이 같은 도시란 사실도 하노이에 와서 알았다. 그때의 나, 머리 박아!  선처 없이 다그치리라.


그런데 하노이와 호찌민을 단순한 행정 도시와 경제 도시로 정의한다면 성급한 일반화다. 한 번이라도 두 도시를 여행해 봤다면 안다. 같은 나라로 불러도 될지 의문이 들정도로 다르기 때문이다. 문화, 교통 법규, 의식, 언어적인 특징 등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건 완전 다른 나라 수준이다.

사이공 맵과 핑크 성당

2년 전, 미국인 친구 Y 부부와 함께 처음으로 호찌민 여행을 갔다. 특히 남편 A는 한국,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에서 15년 이상의 캐리어를 쌓은 ‘아시아 전문가’! 그런 A와의 여행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떠날 수 있다. 특히 배만 채우면 그만인 ‘똥 입’인 나와 달리 그들은 미식가 부부! 한식은 물론 전 아시아 음식에 해박하고 직접 요리도 할 정도다. 하여 식당도 무조건 믿고 간다. 특히 고급화된 로컬 식당 ‘Home Kitchen Xứ Quảng’(홈 키친 스 꽝)은 그들이 아니었다면 절대 모를 레스토랑! ’ 베트남 마스터 셰프‘ 우승자가 셰프로 있는 만큼 럭셔리한 인테리어도 인상적이다. 하여 지난 연말 엄마, 언니와 여행을 갔을 때도 함께 갔다. 베트남 음식을 좋아하는 언니를 위한 회심의 레스토랑이랄까! 짜잔~ 어떠냐? 이래도 여동생을 똥입이라 부를 테냐. A 부부와 함께 했을 때는 크리스마스라 만석이었지만 두 번째 방문에서는 평일 저녁이라 제법 한산했다. 조용한 매장에 감동한 1인! 럭키 어스!

가게에 들어서자 중년의 신사분이 다가와 친절하게 매장 안내를 도왔다. 다른 직원들이 영어에 서투른 데 반해 그는 상당한 수준의 영어를 구사했다. 빨간 산타 모자를 눌러쓴 선한 미소의 그는 사진을 찍는 우리들을 곰곰이 보더니 식당에 숨겨진 포토 스폿을 안내해주기도 했다. 음식 서빙은 물론 연신 서비스와 맛의 만족도를 확인하러 우리 테이블로 오곤 했다. 친절한 서비스에 용기를 얻어 슬쩍 베트남어를 시도한다. 남부에서는 말을 알아듣기 힘들어 베트남어를 고이 숨겨두는 소심한 1인! 하지만 그는 베트남어를 배웠냐며 반갑게 말을 쏟아냈다. 하지만 역시! 남부 억양의 폭격에 압사당했다. 악, 하나도 모르겠어~ 결국 영어로 선회하고야 말았다. 이건 방언 수준이 아니었다. 외국어라고 해도 믿을 너무 다른 억양과 발음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결국 내적 고뇌에 빠진다. 여태껏 쏟아부은 수업료가 떠올라,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하지만 남부의 사투리는 나만 그런 게 아니더란 말이지. 호찌민에서의 쓴 경험을 하노이 토박이 L, H, T에게 토로하니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한다. 베트남 사람들에게도 어렵다고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고 말이다. 훗, 이로서 베트남어 자존감은 지켜낸 건가. 현지 사람들조차도 남부에서는 말을 못 알아 정도라고 하니 외국인인 내가 모르는 건 당연하는 반응이다.

“Sài Gòn!”

홈키친 스꽝


퀴세라세라 욜로 남부! 노 페인, 노 게인의 치열한 북부! 자녀 교육도 다르다.


베트남은 눈부신 경제 성장으로 포스트 차이나로 불리지만 중부, 다낭과 같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교육 환경이 여전히 열악하다. 특히 중부는 홍수 피해가 잦아 매년 우기에 모금 운동이 이는 게 당연할 정도고 말이다. 이런 지역일수록 공부를 인생 성공의 키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개천에서 용 나려면 공부가 최선인 셈이다. 학원인프라가 없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학구열로 자수성가의 전형을 꿈꾼다. 이는 중부뿐만이 아니라 북부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영어에 대한 열의가 뜨겁기로 유명하다. ’ 아폴로’, ‘에이팩스’ 등의 거대 프렌차이저 영어 학원들이 하노이에도 많다. 주목할 점은 학비가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란 거다. 물론 12 개월의 장기 등록할 경우 학비는 할인률로 저렴해지지만 3 개월 수강을 해보니 달 수강료는 20만 원 정도로 결코 싸지 않다. 한 달 100 만원이면 고수익인 하노이의 물가를 고려하면 오히려 비싼 학비다. 게다가 한 반에 12명 이상을 훌쩍 넘기는 인원, 하지만 배치된 원어민 강사는 1인과 베트남 어시스턴트란 걸 떠올리면 학비는 사악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업 시작과 끝에는 자녀 픽업을 위한 오토바이와 차량으로 교통 체증이 생길 정도로 가득 모여드니, 얼마나 교육열이 높은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남부는 온도차가 있다. 일찍이 미국, 프랑스의 서양 문물이 확산된 배경도 있지만 날씨와 환경적인 이유로 타 지역과는 사고방식이 다르다. 열대 과일이나 곡물 등 비옥한 땅의 수혜를 받은 덕분에 상당히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다. 산업화가 되기 전, 농경 사회였던 베트남은 자연환경이 생활 수준의 8 - 9할을 좌지우지했다. 돌아보면 과일이 주렁주렁하니 미래를 위한 희생은 통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오로지 롸잇 나우! 현재를 즐기자는 주의다. 이는 교육을 향한 태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당장의 행복을 미루고 미래를 꿈꾼다는 건 있을 수 없다. 하여 공부보다 현재에 충실한 세상 쿨한 부모들! 공부에 목숨 거는 북부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자식들을 향한 교육열이나 강제성도 덜한 편이다. 일찍이 동양의 욜로족이 먼저 뿌리내린 것이다

흔히 북부에 사는 외국인들은 남부를 향한 애정이 한층 강해진다. 딱딱한 인상에 웃지 않는 북부에만 있다 남부로 가면 180도 다른 분위기에 반하는 것이다. 친절하게 미소를 띠며 어디를 가도 영어가 통하니 1시간 45분의 비행으로 파라다이스가 열리는 것이다. 외국 문화가 빠르게 유입되며 서비스 직원, 시장은 물론 로컬의 퍼 가게도 영어로 의사소통이 원활할 정도인 사이공! 실제로 관광지에서 벗어나 로컬 한 그릇에 3천 원인 완탕 가게를 가도 여자 직원들은 영어로 서빙을 했다. 북부라면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롯데 백화점에서 영어가 통하지 않는 직원이 대다수인 걸 떠올리면 극과 극이라고 할 수 있다.

호찌민 전쟁 박물관

사이고니즈, 베트남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허용하지 않는다.


’ 호찌민‘이란 명칭은 사이공 사람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역사의 일부다. 남북 전쟁에서 공산주의인 호찌민 정부가 승리를 하며 사이공의 이름을 호찌민으로 지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찌민이 아닌, 사이공을 고집한다. 사이공으로 불릴 당시가 그들에게는 벨에포크, 황금기였기 때문이다. 눈부신 경제 성장과 발전된 선진 문화에 대한 자긍심 또한 최고조였다. 당시 경제 성장이 뒤늦었던 북부는 오히려 남부 발음을 배우고 흉내를 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세련되고 부유한 교육을 잘 받은 인상을 줬기에 특히 하노이에서는 여성들 사이에서 남부 발음이 유행하기도 했다.

호찌민 우체국

사이공을 여행할 당시 발음을 교정받은 경험도 있다. 택시를 타고 연상의 남성을 부르는 ‘Anh 아잉‘으로 기사님을 불렀더니 난색을 표했다. 고개를 강하게 저으며 남부 발음인 ‘앙’으로 하라는 것이다. 지금이란 뜻의 ‘bây giờ’ 또한 북부의 버이져가 아닌 버이여~ ‘đúng rồi(맞아요)‘도 둥조이가 아닌 등로이로 발음해야 한다. 남부어에 자부심이 있어 북부 발음을 듣는 것 자체를 거북해하기도 한다. 2달 전 하노이에서 5년을 넘게 살다가 호찌민으로 이사를 한 일본인 친구 M은 하루는 베트남어 선생님의 완고한 발음 교정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그녀의 선생님은 모든 북부식 발음을 일일이 고치고 같은 단어를 수 없이 반복하는 열정을 보였다. 오랜 시간 하노이의 북부 발음에 익숙했던 M은 결국 녹다운 당해, 수업을 보류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렸지만 말이다.

하노이오폴리와 하노이 군용 트럭에 탄 여행객

실제로 북부와 남부 사이의 지역감정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 베트남 친구로 부터 들은 한 사연은 지역감정이 얼마나 깊은지 정확하게 보여준다. 20대 중반의 A는 동갑내기와 연애하며 결혼까지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깊어진 젊은 커플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양가 부모님들은 극렬하게 반대를 하고 나섰다. 결국 둘은 눈물의 결별을 해야 했다. 그런데 반대의 이유가 남다르다. 출신 지역이 걸림돌이 된 것이다. 남자 친구는 하노이 출신이지만 여성은 사이공 출신이라는 게 이유였다. 종교, 학력, 집안, 빈부 차이 등 다른 이유는 1도 없었다. 상견례는커녕 서로의 부모는 약속이나 한 듯 상대를 만나주지도 않았다. 북부 사람은 인색하고 돈밖에 모른다고 여자 쪽에서 반대했다. 그리고 남부 사람은 사치가 심하고 미래를 위한 준비성이 전혀 없다며 살림을 못할 거라며 남자 쪽 부모는 강하게 반대했다. 선입견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다.

옛 화폐


사이공 사람들이 북부를 향해 반감을 가진 건 역사적인 배경뿐만은 아니다. 호찌민은 여전히 베트남의 경제 도시다. 당연히 행정 도시인 하노이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내지만 여기서 창출한 이윤이 죄다 북부를 재정비하는 데 이뤄진다며 불만을 가지는 것이다. 사실 북부의 고속도로, 각종 하수도 정비와 행정을 위한 비용으로 국가 예산이 집중 편성되고 있으니 그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것도 이해가 간다. 코로나로 고통받던 2년 전, 하노이와 호찌민의 온도차는 컸다. 행정도시인 하노이를 향한 지원과 컨트롤이 적절히 이뤄져, 사상자나 피해가 덜한 반면 사이공은 매일 사이렌이 울리고 수백 명의 확진자가 나와 유령도시라는 말이 돌정도였다. 거리마다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넘치고 곡소리가 날 정도로 최악의 상황에 치닫았지만 정부의 지원은커녕 방치당했다며 반감이 커지기도 했다.


하노이와 호찌민 아니 사이공! 남부 발음보다 북부 발음에 더 정이 가버린 하노이 민언냐는 호찌민의 찬란한 전성기인 사이공이라고 부를지, 오늘날의 호찌민으로 부를지부터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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