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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Jun 08. 2023

카페에 커피? 카페에서 분짜! - 꽌 까페 사용법

베트남의 카페 문화            일러스트by하노이민언냐

3년 된 서당개는 풍월을 읊고 3년 산 하노이에서 민언냐는 커피에 눈을 뜬다.


베트남의 꽌 카페(커피숍, quán cà phê)는 특별하다. ​

‘웰 컴 투 더 카페(cà phê) 월드!’


30대 후반까지도 ‘커알못’이던 민언냐! 하지만 지금은 슬기로운 카페생활을 한지 어언 3년 8개월이다. 이젠 ’ 하노이는 꽌까페(quán cà phê)‘라는 슬로건을 외칠 정도다. 하노이에서 처음 시작한 블로그의 포스팅 중 7할이 카페 이야기고 말이다. 사실 기승전 단맛에 집착하는 1인으로서 쓰디쓴 커피는 매력이 1도 없었다. 카페에 가도 일절 커피를 시킨 적 없는 내게 한 동료는 혀를 차며 말했다. “민 샘은 인생의 쓴 맛을 아직 모르네~“ 녜녜, ‘그 맛! 영원히 알고 싶지 않네요.’ 속으로 반항하던 1인이다. 의도치 않아도 어차피 쓴 인생, 커피까지 보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원래 인생이란 게, 맘대로 되는 게 없지 않나. 세치 혀라도 달콤하게 하자고 마음먹었다. 하여 38년 외길 인생, 노 커피로 살았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180도 바뀐다.

하노이 생활에서 뺄 수 없는 3요소라면 ’까페(베트남어로 커피는 까페 cà phê)와 퍼(phở) 그리고 꽃이라고 당당히 말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다이소’도 울고 갈 가성비는 소비생활의 죄책감도 덜어주었다. 2천 원이면 가능한 카페 투어를 달리고 또 달리지만 여전히 새로운 스폿이 넘친다. 골목을 돌면 숨은 고수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닮은 듯 다른 공간에서 하루 4 - 5만 동(한화 2천 원 - 2천5백 원)이면 완벽한 여행자 모드 온! 이러니 안 마시고 배겨?

그리고 알게 된 베트남만의 '까페 문화' 개봉 박두! 두둥!

1. 진동벨이 뭐죠? 먹는 건가요?


‘페라 카페 Phê la ’, ‘하이랜즈 커피 Highlands’, ‘스타벅스 Starbucks’ 등 몇몇 프렌차이저를 제외하면 셀프란 없다. 마시고 난 음료를 치우지도 않는다. 머물던 자리, 깔끔하게~라는 로고가 여기서는 무용지물인 셈이다. 베트남은 건물 입구가 좁고 뒤로 갈수록 넓어지는 긴 네모의 구조가 많다. 프랑스에 지배받던 시절, 도로에 노출된 평면 면적에 따라 세금이 부과되었다. 그래서 세금 폭탄을 피하기 위해 생각한 게 바로 내부가 깊어지는 긴 복도식 구조였다. 공간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려, 좁은 계단을 이용해 상층도 세우게 되었고 말이다. 그래서 도로변에는 다닥다닥 레고를 끼운 듯 빡빡한 건물의 행렬이 주를 이루게 된 것이다. 앤티크 한 멋을 그대로 유지하는 하노이답게 카페 또한 내부구조만 변경해 영업하는 곳이 대다수다. 그 결과 직원들의 무릎관절이 애를 써주고 있지 말입니다. 셀프서비스가 없으니 2층이든 3층이든 루프 탑이든 트레이에 음료를 싣고 달린다. 총총걸음으로 조용히 뒤따라와 물을 건네고 주문한 음료와 디저트까지 코앞에 가져다준다. 자네, 관절약은 먹고 있는가? 튼튼한 하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직업이랄까. 게다가 마시고 난 음료도 치우지 않으니 직원들이 미처 정리 못한 테이블이 생기는 건 일상다반사다. 그렇다면 이때 필요한 건 뭐다? 협동 정신! 서로 돕고 사는 거죠~ 앉고 싶은 이들이 직접 남겨진 잔들을 스윽 밀고 커피 타임을 시작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남겨진 컵 하나, 휴지 하나에도 경기를 할 정도로 뒷걸음질 쳤지만 지금은 알아서 척척 치운답니다. 우리 민언냐가 달라졌어요~ 사실 명당을 점령하기 위한 노력이란 건 안 비밀! 커피 타임의 승패는 자리싸움 아닌가요~ 이런 오픈 마인드! 하노이가 아니면 꿈도 못 꿀 일이다.


2. 카공족 논란? 놉! 카공족에 관대한 베트남 카페!

한 잔을 시키고 6인용 대형 테이블에 앉는다고 눈치 주는 이가 있게? 없게? 노 바디, 노 바디 벗 미! 슬금슬금 눈치를 보고 여기 앉아도 괜찮냐고 묻게 되는 건 손님인 나님이다. 하지만 카페가 미어터질 듯이 바쁠 때가 아니라면 노 워리~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다. 심지어 카공족들만을 위한 공간을 따로 내어 분할을 한 카페도 많다. ‘working room 작업실’이라는 푯말을 달고 ‘정숙’하길 요구하는 카페, 브라보~ 자고로 와이파이는 카페에서 써야 제맛! 원 테이블 원 콘센트의 아량에도 치어스. Chủ ơi!(쮸 어이, 사장님), 깜언(cảm ơn)! 나 홀로 카페가 부담스럽지 않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어떤 테이블에 앉아도 어떤 방을 차지하고 앉아도 누구 하나 눈치 주지 않는 까페 cà phê, 최고!

3. 분짜아~ 시키신 분! 카페에서 커피만 마신다? 베트남 카페, 다 된다!

조용한 어느 Ba Đình (바딘) 골목! 숨은 로컬 카페의 천국인 바딘에서 평소 가고 싶어 저장해 둔 회심의 커피숍 리스트를 촤악 펼친다. 그리고 별 다섯 개에서 4.3의 호평에 빛나는 H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의 픽은 H, 너다!

카공족에 관대한 하노이 카페 덕분에 1 인 1 대형 테이블도 노 프로블름! 하노이의 카페에서 젊은 세대가 몰리는 곳들은 작업하는 이들을 향한 배려가 깊다. 연인들, 친구들끼리 온 손님들도 누가 먼저 앉아 조용히 작업 중이라면 들어오지 않는다. 이야기 목적의 방으로 피해 준다. 특히 방이 여럿 있는 카페에서 굳이 먼저 온 손님의 얼굴을 빤히 보며 같은 테이블에 앉는 건 절대 흔한 일이 아니다. 이날은 어찌 된 일인지 눈 밑의 주근깨까지 훤히 보일 정도로 초근접 거리에 한 여인이 앉았다. 그 기세가 흥겨워 털썩하며 미지근한 바람이 일고 나무의자와 바닥의 마찰로 ’끼이익‘ 소리까지 났다. 타인에게 시선을 잘 주지 않는 1인이지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청바지에 흰 티셔츠 그리고 하얀 힐을 매치한 그녀는 나의 패드와 얼굴을 향해 뜨거운 시선을 보내왔다. 이럴 땐, ’찡긋‘ 미소로 화답하는 거칠 것 없는 40대 아줌마! 가벼운 미소를 날리자 그녀도 멋쩍은 듯 따라 웃었다. 주문한 음료가 한 잔 도착하자 한 모금 마시던 그녀! 이내 명랑한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내가 신경이 쓰였는지 밖으로 나가 통화를 하는 센스를 발휘해 준다. 고마운 맘이 퐁퐁 솟아나려는데.. 역시.. 끝까지 가봐야 한다. 알고 보니 피해 준 게 아니라 동행을 데려왔다. 꽃무늬의 샤라라 원피스에 베이지 스틸레토 힐의 또 다른 여성이 등장한다. 그리고 시작된 끝없는 부스럭부스럭, 찹찹찹, 라이브 에이에스엠알 ASMR이란 이런 거였군요.

주섬주섬 봉지를 꺼내더니 ‘견과류’와 말린 과일을 똿 펼친다.

음.. 이 조합에는 왠지 맥주가 당기는데요~ 평소 같으면 먼저 자리를 떴겠지만 이날만큼은 왠지 모를 용심이 났다. 왜 그런 날 있지 않나. 괜히 걸지도 않은 싸움에 혼자 발이 걸려 허우적 대는 날 말이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주문한 박시우의 얼음이 녹지 않고 찰랑이고 있었다는 거다. 딸랑 두 모금 삼킨 나는 억울한 마음이 들어 그저 앉아있기로 했다. 부산 아줌마의 끈기를 쓸데없이 발휘하는 나란 여자!

돌아온 건 완패! 케이오 패! ​


시선을 패드에만 고정한 나는 어딘가 익숙하지만 낯선 냄새에 코를 이어 뇌까지 흔들리는 걸 느꼈다. 고소한 원두 향을 기대했지만 티피오에 전혀 맞지 않는 냄새가 퍼진 것이다. 정체가 뭐냐? 음악으로 청각을 패드로 시각을 차단했던 나는 후각까지는 어찌하지 못한 것이다. 호기심에 슬쩍 고개를 들어 시선을 던진다. 그리고 목격한 충격의 현장, 흐헙! ‘퍼와 분짜’로 푸짐한 잔칫상 한 판이 펼쳐졌구려. 음악 볼륨을 내리니 후루룩후루룩, 찰진 면치기 소리까지 들렸다. 퍼와 분짜에 진심인 레이디들! 난데없는 먹방에 당황했다. 한 사람은 아예 구두까지 쿨하게 걷어 차고 맨발 투혼을 보인다.

간식은 알겠지만 젓가락 들고 먹는 분짜라굽쇼? 알싸한 고수 냄새 솔솔 나는 국물 후루룩 ‘퍼’라굽쇼?

일본 첫사랑 영화의 정석인 ‘러브 레터(Love Letter, ラブレター)‘를 연상시키던 갬성 카페는 그렇게 무너졌다. 훈남 주인공 ’ 후지이 이츠키’가 가늘고 새하얀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길 것만 같던 커다란 창문도 고서가 가득하던 삐걱대던 책장도 사요나라! ’ 고수‘ 냄새로 물들기 시작했다. 창문을 활짝 열어도 나는 분짜 냄새! 갬성은 와사삭, 바람과 함께 부서진 지 오래지 말입니다. 결국 짐을 챙겨 내려왔다. 하지만 감성 파괴에 부들부들 떨던 내가 얌전히 퇴장할 리가 만무하다. 1층 카운터로 고! 이럴 때 필요한 건 뭐다? 신속히 퇴장하는 스피드와 간디도 울고 갈 정직한 고자질이다. 목격한 광경을 직원에게 설명하니, 오히려 눈을 반짝이며 예상치 못한 질문 폭탄이 쏟아졌다. ​


‘ chị muốn ăn gì? Chị cũng muốn bún chả? Chị biết bún chả đúng không?  


‘chị(연상의 누나, 언니 호칭, 찌)는 뭐 먹고 싶어요? 찌 분짜 먹을래요? 분짜 알죠?’

왓 What? 나니 なに? 꾸아 Quoi? 뭐.. 뭐라고요?​


다급히 손사래를 치며 뒷걸음질 쳤다. 자네, 너무 적극적인데? 이런 ‘질문 폭격기’ 청년을 봤나! 이럴 땐, 후퇴가 답이다.

​​

미리 불러둔 차에 몸을 실으며 기사님께 여쭤봤다. 애매할 땐, 현지인과의 팩트 체크가 정답이란 주의! 기사님은 얘기를 듣더니 싱긋이 웃기만 했다. 엠 어이(em ơi)! 대체 어디가 웃음 포인트죠? 동그랗게 눈을 뜨고 혼자 진지한 내게 설명이 이어졌다. 로컬 카페에서는 배달이 일상이라고 한다. 카페에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 건 집에서 배달을 시키는 것과 똑같다고 말이다. 근처의 식당에서 주문, 배달과 취식이 가능하다니! 이런 프리 스타일, 처음이야! 카페에서 커피만 마시는 한국인이 잘못했네.

붉으락푸르락 괜한 열을 올린 응어이 한꾸억(người Hàn Quốc, 한국인)은 푸슈슈~ 힘없이 쓰러졌다. 아까의 나, 왜 때문에 화낸 거냐? 역시 ‘앵거’는 함부로 끌어올려선 안될 일이다. 음식 배달이 이상하지 않는 로컬 카페! 베트남은 퍼와 분짜에 진심이었다. 함부로 열폭한 민언냐는 이날도 유죄! 땅! 땅! 땅! ​안 되는 거 빼고 다 되는 하노이라는 교훈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디스 이즈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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