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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Jun 14. 2023

펄럭이는 무지개에 요동치는 학교 - 프라이드 위크

베트남 국제학교와 LGBTQ           일러스트by하노이민언냐

‘마더, 빠더, 젠틀맨‘? ’ 투 마더, 투 빠더‘의 시대가 왔다. 평화롭던 하노이의 프렌치 유치원! 견학 활동을 위해 날아든 학부모 동의서 한 장에 하노이가 들썩인다. ‘mother 엄마’, ‘father 아빠’ 옆에 참하게 놓인 작은 네모 칸 둘! ‘V’ 표시만 하면 되는 빈칸에 그들이 뿔났다.



외국인 기업의 투자가 활발한 베트남! 특히 하노이는 해외 파견으로 다양한 국적과 인종이 함께 살고 있다. 다양한 국제학교들은 각각 IVY, SAT, 미국, 캐나다, 영국 등 다른 교육 체계를 따르지만 공통점도 많다. 특히 수업일수를 압도하는 잦은 방학과 세계적 흐름에 부흥하는 이벤트가 많기로 악명 높은 국제 학교! 세계 어린이의 날, 여성의 날, 지구의 날 등 크고 작은 기념행사가 한 해를 꽉 채운다.


야금야금 크고 작은 행사를 따라오는 건 각종 코스튬, 준비물의 습격! 헉헉 대며 준비물을 챙기는 건 학부모의 몫임을 나중에 알았지 뭡니꺄. 물론 학교는 일주일 전 학부모 알리미 앱( DOJO )이나 이메일로 사전 공지한다. 문제는 이메일을 보는 둥 마는 둥(8할은 만다.)하는 게으른 1인이란 거다. 같은 레지던스에 사는 B, P 등의 도움으로 허겁지겁 챙긴 게 한두 번이 아니다. 3년이 넘었으니 스스로 챙길 법도 한데.. 그게 안된다. 사람이 쉽게 바뀌면 씁니꺄~ 학교 소식을 전해주던 메신저, 친구들도 하나 둘 베트남을 떠나고 나 또한 기존 레지던스에서 30 - 40분 떨어진 한인 지역으로 이사했다. 다행인 건 그새 아이들이 직접 소식을 전할만큼 컸다는 거다. 길치 엄마를 살뜰히 챙기는 쭌이에 이어 재깍재깍 학교 소식을 알리는 쩡이까지! 니들이 수고가 많다.

대대적인 단체 이메일을 일주일 전부터 돌리는 부지런한 학교지만 나 같은 엄마도 꽤 많은 걸까. 디데이가 가까워질 때쯤 ‘DOJO’에도 알림이 뜬다. 이런 부지런한 학교를 보았나. 이메일 까막눈인 나로서는 도조까지 없으면 큰일 날 뻔했다.

“Y6 has to wear something blue.”


알럽 유니폼~ 한국에서도 어린이집, 유치원을 빼고 줄곧 유니폼만 입어 온 쩡이와 쭌이! 덕분에 신속한 등교 준비가 가능했지 말입니다. 유니폼, 뽀에버! 하지만 하노이에서는 이벤트성 논 유니폼 데이가 분기에 하루 이틀은 있다. 지난 금요일이 바로 그날이었다. 이번에도 학교 단체 메일을 스팸처럼 사뿐히 거른다. 이틀 전, 딸을 통해 급히 들어서 다행이지만 말이다. 학년별로 정해진 컬러로 옷을 입으라 굽쇼? 일곱 빛깔 무지개는 노랑, 초록도 있는데 말이죠~ 노랑, 초록, 주황 등 걸리면 일회성 새 옷 찾아 강제 쇼핑을 떠나야 할 판이다. 두근두근, 공지를 확인한 결과, 6학년은 블루! 브라보! 파랑은 해볼 만하다. 우리에겐 청청 패션이 있잖아요~ 마침 세컨더리, 쭌이도(8학년) 블루, 당첨! 세상에서 프라이드 위크가 제일 쉬웠어요~ 이런 미션은 쌍수 들고 환영한다. 스릉흔드~ 프라이드 위크!


“엄마, LGBTQ+가 뭔지 가르쳐줄까? L은 레즈비언, G는 게이, B는 바이, T는 트랜스젠더, Q는 퀴어! 학교에서 배웠다.”

 

쩡이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읊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무지개 깃발과 프라이드 위크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지난 한 주, 프라이드 위크를 기념하는 뜻으로 학교에서는 성교육과 LGBTQ에 대해 배운 것이다. 쭌이와 쩡이는 게이와 퀴어의 경계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흡수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사실 감동을 받기도 했다. 문득 애초에 편견은 기성세대가 정해놓은 틀에서만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세계적 화합의 장으로만 여긴 건 너무 단순한 발상이었을까. 성차별, 인종차별과 같은 선상에서 성소수자들을 바라보려는 생각은 성급했던 걸까.

떠이호가 내려다보이는 선선한 밤하늘, 스카이라운지에서의 평화로운 비어타임이 갑분 100분 토론이 되다니!


2주 있으면 베트남을 떠날 P, 미국 장기 출장을 앞둔 포르투갈의 E와 비어 타임을 가졌다. 그리고 뜻밖의 소식도 접했다. “Min, 댓글 확인 안 했어?” 질문에 감을 전혀 잡지 못했다. 평소 학교 소식을 꼼꼼히 체크하고 알려주던 프렌치 메신저, ㅍ의 말에 동공지진이 일었다. 뭘 놓친 거지? 공지는 모두 확인했는데…... “Oh, this is why I like her. 내가 이래서 민을 좋아한단 말이야.” 가볍게 웃으며 내 손을 잡는 그녀! 파란 의상 준비에 꽂힌 엄마는 어떤 이슈에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댓글은 이미 뜨거웠다. 몇몇 학부모들이 반발의 코멘트를 달았고 학교는 이를 삭제하며 더 큰 반향을 산 것이다. 반발이 심해지고 아예 자녀들은 유니폼을 입고 등교할 것이며 이벤트에 참여시키지 않겠는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댓글은커녕 공지에도 한발 아니 두발 늦은 1인은 멍해진다. 프라이드 위크 이벤트에 어떤 저항도 없던 나와 달리 이어진 열띤 논쟁! 학교에서 할 행사로 타당한 지를 따지던 그녀들은 열정적으로 의견을 피력했다. P은 물론 아들을 다른 국제 학교에 보내는 E도 불만을 토로하긴 마찬가지다. 사실 그녀의 아들 J는 고작 만 6세다. 동료나 친구들 중 게이 커플도 많아 적대감은 없다고 재차 강조를 하지만 일주일 내내 성소수자들에 대해 배운 아들이 집에서 질문을 한 모양이다. 사실 여섯 살 된 남자아이로서 당연한 반응이다. 이에 학교에서 이렇게 중요한 사안으로 거론되는 이유를 알 수 없다며 혼란을 야기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했다. 쩡이의 절친 동갑내기(11세) 딸, M을 둔 P 또한 입장은 같았다. 성교육만으로도 많은 질문과 궁금증을 가질 시기에 이른 나이에 여러 정보가 한 번에 주입되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정치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개입되는 것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말이다.

마더, 파더? 노! 이제는 마더 둘, 파더 둘!


“Bonjour, ca va?” “おはよう! “ “Good morning.” “안녕하세요? “ “Xin chào. “

일명 ‘하노이의 외국’으로 불리는 떠이호(Westlake, Tây Hồ)! 레지던스 로비에 있으면 각국의 인사말을 듣는 재미가 있다. 특히 프랑스인이 많기로 유명하다. 한인 지역인 ‘미딩’이나 일본인 지역, ‘킴마’만큼 아니지만 탄탄한 커뮤니티는 물론 레스토랑, 유치원, 학교, 뮤지컬 및 공연 예술 아카데미도 있다. 직원, 선생님은 모두 백 프로, 불어로 의사소통을 하며 ‘그들만의 세상’에 사는 것이다. 그런데 프렌치 유치원에서 학부모 항의가 일어났다. 논란의 중심에는 ‘학부모 동의서’가 있었고 말이다. 견학 활동을 위해서는 학부모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이때 나간 서류의 작은 동의란, 두 칸에 반발이 생겼다. 서류라고 하기도 무색한 종이 한 장에 형식도 초 간단! ‘mother 엄마’, ‘father 아빠’ 옆에 네모 칸이 각각 있고 동의여부만 ‘V’로 표시하면 게임 오버! 여기까지 왜 때문에 반발이 생겼는지 아는 사람, 푸쳐핸접! 당신은 좌뇌 우뇌 멀티 발달형! 하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면 낙담하지 말자. 나도 처음에는 아무리 봐도 감이 오지 않았다. 정답은 ’ 엄마와 아빠‘가 한 가정에 한 명씩 존재한다는 발상의 오류다. ‘엄마 둘 또는 아빠 둘’인 가정을 염두에 두지 않은 통념에 대한 반발인 것이다. 하지만 지적을 한 부모가 여럿이었다. 엄연히 엄마가 둘이거나 아빠가 둘인 가정아 있는데 엄마와 아빠라는 이분적 동의서에 반대를 표한 것이다. 결국 유치원에서는 ‘엄마와 아빠’가 아닌 ‘부모 parents’ 란을 두 칸으로 만들면서 상황이 정리되었다.

인류 화합과 공통성의 포르투갈, 자유, 평등 그리고 박애의 상징, 프랑스?


프라이드 위크에 대한 반발은 P, E뿐만이 아니다. 하지만 이걸 단순히 시대에 뒤처지는 발상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러기엔 ‘종교’, ‘이념’ 등 각자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특히 포르투갈은 인종차별이 적기로 유명하다. 북미, 서유럽, 북유럽, 러시아 등과 비교해도 인종차별 사건이나 축구장 훌리건도 훨씬 적다. (물론 코로나 이후로 증오 범죄가 증가하고 2020 년 원정경기를 간 프로 축구 선수 ‘무사 마레라’가 차별을 당하는 사건도 발생했지만 정부가 민감하고 심각하게 대처했다. 포르투갈이 여전히 차별이 적음에 이견은 없다.) 다인종, 혼혈사회를 유지한 역사도 6세기를 넘을 정도니, 인류화합과 공통성을 전면에 내건 정치적 이념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 또한 ‘유럽인’으로 지칭하기보다 오랜 가톨릭 교리 그리고 ’ 기독교인‘으로 살아온 문화적 사회적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프랑스 또한 가톨릭 문화에 기반한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말이다. 


하여 프라이드 위크를 학교에서 하느냐 마느냐 찬반을 놓고 시대착오적 발상인가, 아닌가로 판단긴 무리가 있다. 온전한 이해와 지지는 거의 불가능한 법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종교, 무이념의 회색분자이지만 감히 목소리를 내보자면 이유 막론하고 이미 세상에 공존하고 있음은 인정하자는 주의다. 인종차, 성차별이라는 유구한 과제를 이고 지고 사는 오늘날, 성소수자들의 존재 또한 외면할 수 없는 숙제 중 하나다. 하나의 이념, 종교로 세상이 뒤집어지던 시대는 이미 지나오지 않았나. 작은 스마트폰 하나면 지구 끝에서 끝까지 눈을 마주치고 목소리를 듣고 뉴스를 공유한다. 이미 직면해 있는 상황과 대상에 등을 지고 서있기란 쉽지 않다. 호불호나 지지의 범주를 벗어나 이해는 몰라도 ‘다양성 인정’의 차원으로 바라봐야 베스트를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차단이나 비판보다 공존에 더 힘을 쏟는 게 어떨까. 그게 다음 세대를 위해서도 베스트라는 무지개적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준성이 담임선생님과 학기 마지막 상담이 있어 화려한 착장은 피해야 하는 슬픈 엄마!


최대한 참하게 보이고자 애써야 하는 날이 바로 학부모 상담이다. 하지만 소심한 지지도 하고 싶지 말입니다. 그래서 택한 게 뭐다? 바로 삭스! 양말이다. 백만 년 만에 꺼내 신어 보는 새하얀 구두와 ‘퍼플‘양말의 하모니! 여기서 끝나면 섭섭하다. 알록달록 목걸이에 옐로 빅백을 둘러매고 출동! 그리고 연인이자 사업 파트너로 매일을 햄 볶는 깨소금 게이 커플에게도 사진을 보냈다. “chúc mừng pride week!”라고 말이다. 물론 퍼플 양말 사진은 덤이다. 이에 박장대소를 터뜨린 H! 답에서 까르르~하는 유쾌한 그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양말 사진을 본 그는 ’Weird’라고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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