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는 스팸전화와 플러팅 일러스트by하노이민언냐
F*** you! 삐~삐~삐~
그놈이다! 멈추지 않는 F욕설의 향년! 놈의 목소리에 평화롭던 하노이의 오후는 무참히 짓밟히고 있었다.
스팸 전화가 이렇게 대담하고 집요한 줄 몰랐다. 덕분에 청불 영화에서나 듣는 대사를 현실에서 만나게 되었고 말이다. 뱉지도 담지도 말아야 할 F 욕설의 생생함과 수위 높은 성희롱을 베트남에서 경험할 줄이야! 그것도 세상 무해할 줄 알았던 국민 sns, Zalo (짤로)로 말이다.
“베트남에서는 누구나 ‘짤로’ 하나쯤 갖고 있잖아요.”
한국에선 카카오톡, 일본은 Line, 유럽과 북미는 Whats app이 필수다. 베트남은 Zalo고 말이다. 베트남에서 남녀노소 국적 불문, 누구나 짤로 하나쯤 품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국민 앱, 짤로우~ 멤버십은 물론 포인트 적립, 이벤트, 인증 등 기승전 ‘짤로’로 통한다고 할까. ‘일기’ 형식으로 소소한 일상과 사진도 공유할 수 있어 단순한 연락 수단을 넘어, 그야말로 만능 앱이다. 하지만 거주 4년이 다 되어 하루아침에 계정을 삭제한 1인이 있다. 대세를 거스르는 눈물겨운 짤로 탈퇴! 왜 때문이죠?
일일 연속극이던 일상이 스릴러로 갑분 장르 전환, 실화냐!
‘지잉~ 끼익~ 낑~ 삐이이~ 찌지지익~’
지금 여러분은 바이올린 … 아니 소음을 듣고 계십니다. 지그재그로 삐걱대는 방황하는 활과 소음! 부들부들, 긴장한 어깨, 나 떨고 있니? 잔뜩 찌푸린 미간은 ‘파가니니’급의 진지함이지만 현실은 어깨부터 새끼손가락까지 뻣뻣해져, 잡음을 뽑는 초보자다. 이런 악력, 헬스장에서 쇠질 할 때나 쓰란 말이지. ‘ Relax! 릴랙스’하라는 H의 말에도 의지와 달리 저항심을 보이는 몸뚱이다. 꺾이지 않는 뻣뻣함을 자랑하는 불굴의 한국인! 유연한 보잉은 역시 무리인가… 코로나로 시작된 강제 실내생활이 지겨워질 때쯤, 손을 대어버린 바이올린이다. 물론 바이올린을 힘겨워하던 딸의 고통을 공유하고자 한 엄마의 무모함도 있지만 말이다. 이유가 어떻든 제 손으로 시작한 바이올린이다. 남을 탓하기도 늦었다. 40대 엄마는 웁니다. 또르르~ 새로운 곡을 받고 고군분투하던 오후, 모르는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사실 시간을 막론한 (아침 7시에도 밤 8시에도 울리는 클래스~) 스팸 전화, 메시지는 베트남에서 놀랍지 않다. 현지인도 모르는 번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손절하는 게 원칙이다. 한두 번 답하지 않으면 멈추니 말이다. 하지만 이날 유독 끈질기게 진동이 울렸다. 전화가 올 때마다 폰과 연동된 스마트 와치의 진동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연습 중, 왼쪽 손목의 진동이 멈추지 않자 불청객이 따로 없었다. 평소 메시지 확인과 답변, 알림, 일일 운동량 확인등 편의성의 끝판왕인 스마트 와치! 하지만 불필요한 연락 한통도 거르지 않고 죄다 잡아내는 와치의 영민함은 이날 방해가 되었다. 결국 수업이 마무리될 때쯤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다. 수업이 끝난 후에도 계속되는 끈질긴 스팸전화에 말이다.
포기를 모르는 ‘낯선 ‘ 번호! 그 놈이다, F*** Y**!
결국 들이받아버린 열정의 부산 뇨자! 스팸 전화는 같은 전략을 공유하나요?! 빛의 속도로 ‘알로, 쨔오, 찌!’를 시작으로 쏟아내는 베트남어! 자네, 숨은 쉬나~ 호흡곤란이 걱정될 정도의 격양된 한 청년의 목소리였다.
“Hello, I am a foreigner. So I don’t understand Vietnamese! Would you please stop calling me?”
이럴 땐, 베(트남어) 알못으로 일관하는 게 정답이다. 불리한 상황에선 모르쇠가 가장 안전하다. 외국인이니 전화 그만하라고 단호하게 답하자, 상대방은 당황했는지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목소리만으로도 어린 게 가늠되었다. ‘아, 음, 아, 음’ 더듬더니 갑분 “웨어 아 유 프롬?”을 시전 한다. 폰콜입니꺄, 무작위 추억의 폰콜을 아신다면 당신은 완벽한 X세대! 신박한 시도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신상정보를 캐묻는 질문에 오히려 웃음이 터졌다. 어이가 없으면 웃음이 터진다는 걸 실감한 1인! 의외의 성실함에 헛헛한 웃음을 섞어 “ BYE 바이~”로 통화를 종료했다. 대화의 흐름이 신선해, 곤두선 신경도 잠잠해졌달까.
미치도록 성실한 스팸 전화, 그의 활약은 지금부터가 진짜다.
그렇게 일단락되는 줄 알았지만.. 상대를 너무 쉽게 봤구나. 안일한 한국인의 스마트폰은 본격적으로 욕설 폭격을 맞는다. 앙증맞은 프사에 반대되는 거친 입담의 짤로 메시지! 급기야 성희롱 메시지까지 등장했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 그리고 소름이 돋았다. 한두 번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한결같은 욕설에 위협을 느꼈다. 그리고 ‘차단’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차단은 그 어떤 방어책도 되지 않더라. 짤로는 카톡과 달라, 친구가 아닌 낯선 이의 프사를 검색하는 건 물론 메시지 전송과 채팅방으로의 초대도 가능하다. 한마디로 부르면 맥없이 불려 가는 ‘짤로 헬’이다. 채팅의 릴레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했던가. 그의 손가락은 눈보다 빨랐다. 차단에 차단을 거듭했지만 불쾌한 대화를 거부할 틈도 없이 계속해서 다른 아이디로 연락해 왔으니 말이다.
이쯤 되면 흔한 장난 전화로 보기는 어렵다. 연락처와 프로필을 바꿔가면서 끝없이 연락하는 건 정상적인 패턴이 아니다. 장난이라고 하기엔 과한 수고가 드는 행위지 않나. 스팸 연락에 우호적이지 않는 게 나뿐만은 아닐 텐데, 거친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많이 있을 텐데 말이다. 그제야 혹시 아는 이는 아닐지, 표적이 된 건지 등 꼬리에 꼬리를 문 불길한 상상이 엄습해 왔다.
모두가 의심스럽다. 넌 누구냐.
문득 몇 되지 않는 인간관계를 짚어보게 되었다. 어제의 꽃 배달원도 떠오른다. 정문과 후문에 대한 오해로 통화를 하며 짧은 언쟁이 오가긴 했다.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후문과 정문을 착각한 것이다. 물론 돈을 지불하며 깍듯이 사과했다. “신 로이”를 일관했다. 잘못한 친구는 빠른 인정과 사과가 답이라고 초딩때 배웠잖아요~
그리고 떠오른 다른 한 명!
작년 4월 코비드의 통제가 완화되기 전의 일이다. 당시 정부는 하노이와 인근 도시 사이의 도로를 전면 통제했다. 택시는 물론 남편의 귀가도 불투명했기에 차와 기사님의 도움 또한 기대할 수 없었다. 문제는 당시 쭌이가 프랑스 병원에서 막 교정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교정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은 진료가 필수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차편을 구하기 힘들어 전전긍긍하기 일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이웃이자 절친 P가 자신의 차와 기사를 쓸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곤 했다. 그녀의 기사 Q는 단정한 옷차림에 영어를 잘하고 넉살이 좋은 베트남 사람이었다. 베트남어 공부를 하는 걸 알고 베트남어로 말을 걸어주는 친절함을 보인 그! 실전회화에 늘 목이 마른 어학 덕후에게는 그저 감사하기만 했다. 틀린 발음까지 고쳐주는 현지인이라니, 이런 기회 놓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금세 찝찝한 기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Hãy đi chơi cùng nhau nhé.” (렛츠 고 앤 플레이 투게더)
처음에는 잘못 들은 건가 하고 웃어넘겼다. 빈말 범벅의 인사치레로 여겼다. 하지만 쩡이와 P의 두 딸을 발레 학원에서 픽업하는 길에 Q가 또다시 함께 놀러 가자는 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지난 대화의 흐름이 석연치 않다. 갑분 놀자는 말에 스스로 되짚어보게 되었다.
“남편이 바쁘겠네, 자신의 가족은 다른 도시에 살고 자신은 자취를 한다, 주말에 자신은 일하지 않고 쉰다.”
그가 말한 걸 하나하나 맞춰보니... 감이 왔다. 이거슨 플러팅! 다행히(?) 동승한 아이들은 영어만 할 뿐 베트남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 베트남어에 열정적이던 나는 베트남어 대화, 그 자체가 감격이었다. 눈치 없는 어학 덕후의 사회성 결여가 한몫한 해프닝이지만 그 뒤로는 그녀의 차를 타는 일은 없었다. 같은 목적지도 개인 기사를 이용하며 각자의 차로 이동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는 P를 동반했고 아니면 절대 타지 않았다.
이런 경험은 사실 나뿐만이 아니다. 베트남어를 하는 외국인 여성이라면 한 번쯤 겪게 된다. 베트남에서 직장을 다니며 베트남어에 능한 S 또한 업무 외에는 베트남어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녀는 그랩 택시에서의 쓰디쓴 경험을 털어놓았다. 간단한 회식 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랩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베트남어를 잘하는 S는 당연히 베트남어를 했다. 그러자 박항서 감독에서 시작된 대화는 점점 ‘베트남 남자’의 우월성을 광고하는 그야말로 노골적인 플러팅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랩은 일반 택시보다 요금이 높고 본사에 신고도 가능해 비교적 안전한 편이라 여겼지만 큰 오산이었다. 당시 그녀는 불쾌감 이전에 공포심이 들었다. 목적지로 향하는 내내 핸드폰을 꼭 쥔 채 경로대로 운행 중인지 확인해야 했고 말이다. 무탈한 귀가는 했지만 그날의 ‘야간 그랩 승차’는 여전히 공포스러운 기억으로 남았다.
실낱같은 접촉! 하지만 하나하나 짚어 보니 게운치 못한 거 실화?!
F*** you 전화 사건 뒤로 짤로 계정은 완전히 삭제했다. 물론 도를 넘은 모욕적인 메시지를 손 놓고 당하지만은 않았다. ‘such an idiot’이란 반박도 했던 나! 그렇게 짤로의 마지막 대화는 잊지 못할 욕설로 마무리되었다. 그 뒤 2주 정도 스팸 전화가 비이상적으로 폭주했다. 이후 배달 주문은 하지 않고 마트에서 간단한 주문도 남편을 통해 했다. 이동도 철저히 기사를 대동했다. 지금까지 무사히 생존해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면 지나가는 해프닝이지만 떠올리면 소름이 돋는다. 나쁜 녀석의 번호는 널리 퍼뜨려도.. 블러 처리하지 않아도 되겠지?! 번호 공개란 소심한 반격(?)을 걸어본다.
피. 에스. 베트남 친구 H는 남편과 함께 스팸 전화를 걱정하고 수위 높은 내용의 메시지에 진심 어린 걱정을 해왔다. 현지인으로서도 이번 사건은 도가 지나치다고 여긴 것이다. 미딩 경찰서에 신고를 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안심하라는 카톡도 보내왔다. Cảm ơn em H! 깜 언, 엠 ㅎ! 어디든 악인도 선인도 있다는 교훈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