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노이 민언냐 Oct 10. 2021

레고 머리의 비밀 - 로컬 미용실 ‘빈즈’ 헤어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             -일러스트 by하노이민언냐

Devil is in the details.
Le bon Dieu est dans le détail .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

(헬스장에 막 들어선) 나; “헙! MM, 너도?”

(운동하던 일본인 친구)MM; “앗! 민, 혹시 너도?”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

나는 이 속담 한마디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믿는다.

로컬 미용실에서 첫 헤어 커트를 하고 다시 한번 깨달았다.

승부는 디테일에서 결정된다고 말이다.

하노이 전체를 꽉 누르고 있던 록다운이 완화되었다. 백신 공급도 원활해지고 코로나 케이스도 20명대 이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록다운이 완화되면서 내가 제일 먼저 한 건, 미용실 예약이었다. 하지만 다들 나처럼 더벅머리를 잘라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내가 자주 가는 일본 미용실 ‘쿠카이’에 LINE(일본은 라인 LINE, 한국은 카톡 Kakao Talk, 베트남은 잘로 Zalo다.)으로 예약을 문의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보통 30분 내에 답이 오는데, 답변이 오지 않아 직접 미용실로 찾아가기로 했다. 원래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법이다.

록다운이 완화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격리 펜스가 설치되어 있는 골목길이 눈에 띄었다. 우리 집에서 호수로 가는 통로가 막혀 있었다. 미용실 ‘쿠카이’는 호수 바로 앞에 있기에 그 통로를 거쳐야만 도착할 수 있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큰길로 빙 둘러 가야 할지 포기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 메시지가 왔다. ‘쿠카이’였다. 일주일 내내 예약이 풀이라고 미안하다는 답변이었다. 일주일을 더 기다리라니 너무 길었다. 나의 머리는 이미 이리저리 제멋대로 머리가 뻗치기 시작했다. 쭌이, 쩡이는 또 어떻고. 둘은 반짝이는 두 눈이 머리에 덮인 지 오래다. 한주를 더 기다렸다가는 바야바가 친구 하자고 할 판이었다. 그래서 다른 미용실을 찾아 가보기로 결심했다. 막힌 펜스를 뒤로 하고 돌아가려는데 노란 2층 건물이 눈에 띄었다. 저런 건물이 원래 있었나 하는 호기심에 가까이 가보기로 했다.

건물의 한 귀퉁이에 자그마한 간판이 보였다. 빨간 가위가 깜박깜박거렸다. 그리고 미용실 간판이 내 눈앞에 똿! 하고 있었다. 이름하야 ‘빈즈’ 헤어!



이렇게 코 앞에 두고 여태껏 왜 한 번도 눈치 채지 못했을까. 아무리 주택가라고는 해도 난 이 골목을 2년 동안 거의 매일 다녔다. 물론 록다운의 기간을 제외하고 말이다. 마치 판타지 영화처럼 한 순간 내 앞에 튀어나온 듯했다. 마법처럼 말이다.

역시 고기는 씹어야, 길은 헤매야, 가게는 찾아야 제맛이다.

아직 문을 열기 전인 것 같았다.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빗자루질을 부지런히 하고 있었다. 도트무늬의 긴 블랙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뒤를 돌아보았다. 하긴 대낮에 시커먼 마스크를 쓴 수상한 이가 가게 앞을 계속 왔다 갔다 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신경 쓰였을 것이다. 그리고는 바로 환한 미소를 띄웠다.

“Come come, please come in.”

영어가 능숙해서 왠지 안심이 되었다. 호떠이에서 외국인들을 많이 맞이 해본 솜씨였다. 그리고 가게에 들어서는 순간 의심이 눈 녹듯 사라졌다.

이렇게 예쁜 곳이라면 한 번쯤은 내 머리를 맡겨도 되겠다 싶은 확신이 생겼다.

일반 가정집을 개조해서 미용실 만든 것 같았다. 그녀는 이 가게를 연지 15년이 되었다고 했다. 주로 90 프로 이상이 외국인 손님이라고도 덧붙였다. 샴푸실로 가서 누우니 오래된 원형 등이 보였다. 오래되었지만 운치 있어 보였다. 두피와 어깨를 마사지하는데 거의 40분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녀의 두피 마사지가 너무 좋아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록다운으로 뭉친 어깨의 피로가 사라졌다. 이래서 하노이에서 마사지를 끊을 수가 없다. 가격도 한국의 반이니 웬만한 외국인들은 모두 마사지를 즐긴다. 모든 터치에 간지러움을 느끼고 꽈배기가 되는 우리 남편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바닥의 타일마저 고풍스러운 이 미용실은 여느 로컬 미용실과는 다르게 더 아기자기한 구석이 있었다. 일단 예쁘면 반은 먹고 들어가는 성향이다.

하지만 막상 마사지를 끝내고 의자에 앉으려니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내 머리는 그냥 싹둑 단발에 앞머리를 자르면 되는 심플한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늘 일본 미용실에서만 손질해왔다. 좀 더 기다렸다가 쿠카이로 갈걸 그랬나 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내 두피와 머리는 이미 그녀의 손안에 넘어갔다.

그녀는 머리를 사등분하더니 길고 검은 집게로 머리를 휘휘 감아 틀어 올렸다. 마치 삐삐가 된 것 같았다. 나도 그저 그녀가 하는 걸 지켜볼 뿐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마사지할 때는 얼마나 하노이에 있었는지 왜 왔는지 등 제법 화기애애하게 떠들던 우리였다. 하지만 커트를 시작하자 그녀는 말이 없어졌다. 굳게 앙 다문 그녀의 입술에서 왠지 모를 결의가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예약 손님이 오후에 있고 록다운 이후로 내가 첫 손님이라고 했던 게 떠올랐다. 그럼 2달 넘게 가위를 손에 들지 않았던 거겠지. 아니, 프로라면 마네킹을 잡고 연습하지 않았을까 따위의 무수한 질문들로 내 머리는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떠오른 마지막 질문.

‘나 지금 떨고 있니? 이대로 괜찮은 걸까?’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연식을 보여주는 가격표였다. 주인아주머니 아니 원장님 말씀대로 15년이 되긴 했나 보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으니 말이다. 참고로 나의 머리는 250만 동이었다. 한화로 하면 만 2천5백 원정도다. 일본인 미용실인 ‘쿠카이’에 비하면 아주 저렴하다. 쿠카이는 커트와 샴푸에(마사지를 잠시 해주지만 아주 짧은 순간이다.) 3만 원을 훌쩍 넘긴다.

개인적인 만족도는 나쁘지 않다. 가성비도 좋고 마사지도 좋았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쿠카이는 매번 미용사 예약을 하고 날을 잡아서 가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다. 참고로 이 미용실에서는 커팅에 소요되는 시간보다 마사지가 더 길었다. 쿠카이는 반대다. 마사지는 부수적인 과정이고 커팅에 한 시간 가까이 걸린다. 그리고 계속 스타일링에 대한 의견을 물어가며 컷팅을 한다. 뭐가 맞는 걸까.

머리 드라이까지 거의 1시간 10분 정도가 걸렸다. 이 정도 가격이면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다. 그때는 드라이를 한 머리였기에 찐 머리가 어떨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드라이기로는 머리 감고 건조하는 데만 쓰는 내가 감히 드라이 발을 무시한 게다. 미용사는 쉽게 쉽게 동글동글 잘한다는 그 드라이 발이다. 집에선 몇 십만 원짜리 드라이기도 구제 못한 나의 똥손이 넘볼 수 있는 테크닉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결심했다. 아이들도 빈즈에서 자르도록 하자고 말이다.

오후가 되어 우리 집에 가니 쩡이는 머리를 잘랐냐고 팔짱을 끼고 나를 보았다. 한참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하는 말!

“엄마, 혼자 가서 잘랐나? 별 차이 없는데?”

그리고 쩡이의 말을 듣고 그제야 내 머리가 짧아짐을 눈치챈 상남자, 쭌이가 말했다.

“어? 엄마, 머리 했어? 예쁘다!”

이쯤 되면 우리 아들은 ‘리액션 봇’이다. 내가 남편의 아들을 낳은 게 맞구나! 둘은 한결같이 똑같은 반응을 보여 준다.

그리고 더벅머리의 어린이 야수들도 머리를 자르고 싶어 했다. 사실 쩡이는 기르고 싶은 마음 반 그리고 자르고 싶은 마음 반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저분하게 기르는 건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간 모은 용돈으로 장난감을 살 수 있도록 허가하는 조건으로 쩡이도 자르기로 했다.

학교 온라인 수업이 모두 끝난 시각은 3시 30분! 그리고 외출 준비를 하고 걸어서 빈즈 헤어에 도착한 시각은 3시 40분이었다. 아이들도 오랜만에 하는 미용실 나들이에 한껏 신이 나있었다. 아니지, 각자 모은 용돈으로 무슨 장난감을 살지 서로 의논하느라 더 설레여하고 있었다. 쭌이는 레고, 쩡이는 인형 집을 산다나.

건물에 도착하자 둘은 수다를 멈추고 미용실 안을 두리번 댔다. 먼저 도전하기에는 겁이 났는지 서로 “니가 먼저!”를 외치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훈훈한 양보의 현장이었다. 쩡이는 오래비의 등을 힘껏 밀었다. 시설에 까다로운 쭌이도 미용실이 싫지 않았는지 순순히 착석했다.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쭌이는 특히 위생적인 면에서 굉장히 예민한 편이다. 유치원 화장실을 못 가서 변비에 걸리던 녀석이다. 이것도 아빠의 유전자지만 말이다.


우리를 맞이한 스타일리스타가 남자로 바뀌었다. 원장인 줄 알았는데 다른 스텝이 한 명 더 있었던 것이다. 조금 불안했다. 하지만 그의 말투나 제스처에서 강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매우 의욕적이고 거침이 없었다고 할까. 그리고 쭌이의 커팅이 시작되었다. 사실 쭌이는 머리발이 반이다. 그래서 쩡이보다 더 신경을 쓰는 편인데 늘 보여주는 사진이 있다.

그게 누구냐면 바로 ‘남주혁’이다. 나도 안다. 글을 읽는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할지. 딱히 남주혁의 팬이라서가 아니다. 그저 사진 한컷이 굉장히 스타일리시해서 캡처해놓고 늘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단 한 번도 그대로 이발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최소한 반에 반은 깎아주겠지 하는 일종의 의식 같은 거다.

어 결과는 음.. 뭐랄까.. 엘리트 분위기로 단정해졌다. 대기업 임원, 그러니까 이사님의 아우라가 솟는다. 뭐 이왕이면 꿈은 크게 꾸는 게 좋으니 임원 포스가 좋긴 하지. 그리고 벅수보다는 뭐든 훨씬 나은 모습이었다. 이렇게 마무리하자. 나는 아들 쭌이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애미가 되고 싶다.

쩡이는 긴장이 되었는지 많이 웃지 않았다. 커트하는 내내 나와의 신경전이 있었다. 분명 더 짧게 그리고 단정하게 잘라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설득과 회유를 시도했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나의 의도를 눈치챈 쩡이! 스타일에 대해선 확고한 신념이 있는 딸내미다. 이건 나를 닮은 거겠지. 남편은 늘 옷을 고르고 패션쇼를 좋아하는 쩡이를 보며 미래가 보인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건 바로 나다.

쩡이는 급기야 숨어있던 두 손을 꼬물거리며 두르고 있는 케이프를 살짝 걷었다. 마스크를 주려고 하나보다 해서 다가가니, 양손의 집게손가락을 겹쳐서 ‘엑스자’를 만들어 보였다. 오동통하고 작은 두 손가락이 단호했다. 그만 자르라는 사인을 보낸 걸로 보아 내 뜻은 관철시키기 어려워 보였다. 길이는 내가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가격은 어린이는 12만 동으로 6천 원정도였다. 3인에 한화로 약 2만 5천 원이니 나쁘지 않은 가격이다.

머리를 다 자르고 나니 어느새 비가 내렸다. 하지만 서둘러 뛰어가는 도중 다시 비가 그쳤다. 역시 하노이의 날씨는 변덕스럽다. 쩡이는 앞머리가 너무 짧다고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오히려 너무 길게 잘렸다고 있는 불평 없는 불평으로 선수를 쳤다. 그리고 너무 예쁘다는 폭풍 칭찬으로 위기를 넘겼다. 쩡이도 입을 삐죽 대더니 더 말이 없었다. 그리고 포마드로 2대 8 가르마탄 듯 한 우리 쭌이는 무슨 레고를 살 건지, 자신은 이미 오래전부터 봐 둔 게 있다며 들떠있었다.

걱정과 긴장을 뚫고 도전한 베트남의 현지 미용실은 괜찮았다. 하지만 다음에는 쿠카이로..

왜냐고? 내가 드라이를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 화근이었다.

집에 와서 머리를 다시 감고 말려보니 압! 하는 소리가 절로 났다. 디테일이지만 내 앞머리와 옆머리의 선이 레고처럼 급하게 뚝 뚝 떨어진다. 예고 없이 그냥 ㄱ자로 떨어지니 옆광대 부분이 매우 어색하다. 아무래도 옆광대가 광활한 얼굴인데 더 도드라져 보였다. 레이어드를 해서 옆선을 자연스럽게 내려서 빼야 그나마 커버가 조금 아주 조금 더 되는데 말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응, 그럴 수 도 있지. 하지만 난 누구보다도 내 얼굴을 자세히 보는 여자다. 그리고 우리 남편은 백날 설명해도 모를 미지의 세계이기도 하다.

오 마이 딸내미, 쩡이는 앞머리를 다듬는 과정에서 숱가위를 과하게 휘둘렀다. 중간에 멈추겠지 멈추겠지 했지만 멈추지 않고 급발진하더라. 신나서 휘두르기에 그냥 둬봤다. 내 머리가 아니라서 이기도 하지만 신나 보였다. 그 미용사가 말이다. 그랬더니 쩡이 말대로 앞머리가 다소 듬성듬성한 부분이 있다. 이것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수 있지만 나는 안다. (쩡이도 처음에는 매우 어색해했다.)

쭌이는.. 앞머리는 짧고 뒷머리는 아직 덜 잘린 채로 다소 덥수룩하다. 이건 베트남 스타일일까. 하지만 너무 깎아버리면 아예 재생 불가능이지 않나. 그냥 뒀다. 록다운도 끝나고 오랜만에 가위를 들었을 미용사 마음대로 하시라고 뒀다.

나쁘지 않지만 100 프로 만족은 아닌 로컬 미용실!!

싸게 그리고 2달 넘게 못 잘랐던 머리를 잘랐다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

그리고 하나 더!

머리를 자른 다음날, MM과 헬스장에서 만났다. 그리고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아는 건 초코파이뿐이라고 하던데, 이번에는 틀렸다. 말을 하지 않아도 바로 알았으니 말이다. 그녀도 나와 같은 레고 머리가 되었구나 하고.. 우리 둘은 쌍둥이 머리를 하고 있었다. 슬쩍 물어보니 역시나 쿠카이가 예약이 안되어 로컬 미용실에 갔다고 했다. 그리고 이름은 ‘하’미용실이었다.

‘하’ 미용실! ‘하’든 ‘빈’이든 하노이 스타일이 이건가 싶다. 나쁘지 않지, 한! 번! 은!

그렇게 우린 ‘하노이’ 스타일!! 둠칫 둠 둠칫!

작가의 이전글 호떠이 아싸 8살 쩡이, 10살에 인싸 되기- 2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