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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Oct 13. 2021

부엉이와 올빼미, BIS와 BTS

극한체험 '인터내셔널 페어'         일러스트 by 하노이 민 언니

2019. 11. 2. 토요일


"Which school do your kids go?"

"BT …. no, BIS?!"


 하노이에 온 지 딱 2주! 그리고 아이들이 학교에 다닌 지 딱 5일!​


 "Which school do your kids go?너거 애들 어느 학교에 다니노?" 하고 누가 물어도 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마치 뇌가 버퍼링이 걸린 것처럼 5를 멈추게 되었다. 그리곤 "B …. BIS?!" 하며 버벅거리기 일쑤였다. 스스로도 BIS(British International School)가 아니라 BTS라고 대답할까 봐 두려울 정도였다.  그런 상태서 '이번 주는 인터내셔널 주간입니다.' 하는 이메일을 받았으니... 내 머릿속에는 수십 개의 물음표가 해파리처럼 둥 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 우리가 전학을 온 시점은 딱 ‘하프 텀 브레이크’Half term Break'가 끝났을 때였다. 이름도 숨넘어가게 긴 이 단어를 직역하면, ‘반 학기 방학!’ 의역하면, ‘또 방학이 가?’이다. 그렇게 하노이에 오고 보니 OMG! 인터내셔널 주간이다 뭐다 행사가 줄줄이 사탕처럼 끝이 없었다. 듣도 보도 못한 이 상황에 적응이 안 됐다. 원래 국제 학교가 이런 건지 아니면 BIS가 유독 행사가 많은 학교인지 알 길이 없었다.(방학이나 학기 시작은 상이하지만 국제 학교의 행사 일정이나 횟수는 어디든 비슷비슷하다.) 그 당시 학교에서 온 이메일의 내용은 바로 다음과 같았다.


Dear. Parents.​


 이번 주는 인터내셔널 위크!


드디어 기다리던 인터내셔널 페어가 11월 2일 토요일 BIS에서 열린다.


각 반에서는 무대의상을 반드시 준비하도록!


​ 또한 인터내셔널 뷔페가 교내 메인 빌딩의 로비에서 11월 4일부터 11월 8일까지 마련된다. 오전 8;30까지 음식을 준비해서 가져오면 된다. 음식을 준비해 참여하고자 하는 학부모들은 각 반의 담임들에게 이메일로 자신의 음식 이름을 …



 ‘머라노? 인터내셔널 위크? 인터내셔널 페어? 인터내셔널 뷔페? 이건 또 뭐고?’

이건 뭐 애들을 학교에 보낸 게 아니라 NASA에 보내 놨나 싶을 정도였다. 단어는 알겠는데 해석이 안된다고나 할까. 이 학교는 역시 한결같이 설명이 부족했다.


 이럴 때 베스트는 직접 가보는 거다. 일단 토요일에 인터내셔널 페어가 있다고 하니 우리는 아침 일찍 학교에 갔다. 나는 이 학교에서 새하얗고 커다란 철교문이 가장 낯이 익었다. 우리들 눈앞을 지나가는 이들은 모두 국적 불문하고 낯설었다. 누가 학부모인지 교사 인지도 분간이 안 갔다. 단, 한 분 교문에 설치된 간이 테이블에서 입장객을 챙기던 한국인 J 선생님을 빼고 말이다. (J 선생님은 우리 쩡이와 쭌이의 입학시험 당시 학교 투어와 시험을 치도록 안내를 도맡아 주셨던 분이다.)


​ 나와 아이들은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많은 인파와 큰 규모에 완전히 압도당해버렸다. 넓은 교정은 많은 부스로 꽉 차있었고 가족단위의 많은 사람들이 부스 사이사이를 걷고 있었다. 우리는 한동안 교정 한가운데 길 잃은 양처럼 멍하게 서 있었다. 쩡이는 이미 알록달록한 솜사탕에 마음이 빼앗겨 있었고 쭌이와 나는 막 시골에서 대도시로 상경한 듯 어벙한 표정으로 쉴 새 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냥 학예 전인가 보다 했는데, 이건 진짜 대규모 축제였다. 하지만 넋 놓고 서있을 여유가 없었다. 우선 인터내셔널 페어에 대해 궁금해할 남편(하노이 주재원에게 토요일은  또 다른 금요일! 월 화 수 목 금금의 생활을 한다.)을 위해 빛의 속도로 사진을 찍어 전송했다.


 그리고 놓을 뻔했던 정신줄을 다 잡 다음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실 페어 전날, 각 반의 단톡방에는 페어에 대한 간단한 공지가 올라왔다. 단톡방에서는 한국 부스는 메인 건물의 오른편에 설치되어 있노라고. 또한 떡볶이, 튀김 등의 아이들이 좋아할 여러 종류의 분식 음식이 준비되어 있다고도 하였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음식에 든 비용은 다 함께 N 분의 1로 지불할 예정이며, 각 반 대표에게 페어 당일에 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거스름돈 하나까지 정확히 봉투에 넣어왔다. 돈을 내지 않아 미납자라는 딱지를 붙인 채, 하노이 생활을 시작할 순 없지 않은가.(돈 문제는 정확한 게 좋다.)


 아이들은 당장이라도 각종 액티비티에 뛰어들고 싶어 했다. 마음이 조급해져만 갔다. 1분 1초라도 더 빨리 봉투를 내는 미션을 끝내고 싶었다. 이대로 지체하다간 사람들이 더 늘어나, 부스 앞에서 줄만 서다가 하루가 끝이 날 것 같았다. 또한 대부분의 활동이 무료였기에 하나라도 더 시키고 싶은 마음들었다. 너무 속물적인 발상일까. ( 마트에서 소고기 반갑세 안내 방송 듣고 잽싸게 뛰어본 사람은 내 맘 알겠지. )

 분명 단톡에서 페어에 도착하면 한국 부스에서 톡을 보내라고 했다. 그러면 대표돈을 받으러 오겠다고 했다. 생각보다 부스는 더 많았고 학교는 더 컸다. 한국 부스를 찾는데만 시간이 꾀 걸렸다. 그래도 수많은 인파 속에 찾아갈 수 있었던 건 떡볶이 냄새에 반응한 쩡이의 후각 덕분이었다. 쩡이의 최애 분식 음식인 떡볶이가 우리를 살린 것이다. 브라보~ 떡볶이! 브라보~ 신이 내린 쩡이의 후각! 도착하자마자 반대표 엄마들에게 바로 톡을 보냈다.


두리번거리며 서있는 우리를 보자 마음이 쓰였던 모양이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으신 어머님이 먼저 말을 걸었다. 나는 사정을 설명하고 반 대표 맘을 아는지 묻기 시작했다. “정신없죠? 근데 여기는 다 세컨더리 대표들이고 프라이머리 대표들은 없어요. 우리도 프라이머리 대표는 누군지 다 모르는데….” 그렇지, 학교가 크니 학년도 많고 학급도 많다. 대표는 반마다 있으니 얼마나 더 많겠는가. 대표들끼리도 누가 누구인지 정확히 다 모른다는 말에 수긍이 갔다. 점점 페어의 열기는 더 해져, 서로의 말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프라이머리의 학생들이 준비한 무대 공연이 시작된 것이다. 아, 이게 이메일에서 말한 바로 그 무대다.


 그때, 누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쭌이 어머님? 반갑습니다.” 하는 것이다. 먼저 알아봐 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쭌이의 반 대표 엄마는 학기 중간에 와서 정신없겠다는 말과 함께 다음에 꼭 보자고 했다. 나는 무슨 은밀한 거래를 하듯이 수줍게 봉투를 전했다. 그리고 다급하게 질문을 던졌다. “쩡이가 3학년 *반인데 혹시 반 대표가 누군지 아세요?”라는 질문에 그녀는 미안해하며 “YEAR3 *(그렇지, 여기는 국제 학교니 3학년*반이 아니라 ‘YEAR3 *’인 것이다.) 요? 잘 모르겠어요. 죄송해요~’” 하는 답을 하며 떠났다. 다시 한번 심기 일전해야 했다. 그리고 이번엔 쩡이 반의 단톡에서 글을 가장 많이 게시하는 대표 엄마로 보이는 아이디를 찾기 시작했다. 전화를 해서 어떻게든 이 미션을 빨리 완수하고 싶었던 거다. 그리고 보이스톡을 걸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이번에 전학 온 3학년 *반 쩡이 엄마입니다. 혹시 지금 어디 계세요? 제가 음식비를 드리려고 부스 앞에 있거든요.”


“지금 제가 거기 없어요. 부스를 등지고 오른쪽으로 나오세요. 그리고 나오는 길 따라 안쪽으로 쭉 들어오세요. 그럼 음식을 사다 먹을 수 있게 긴 테이블이랑 의자들이 있어요. 거기서 큰 부엉이 그려진 티셔츠 입고 있는 사람 찾으시면 돼요."


“아, 부엉이요? 네에...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우리는 눈에 불을 켜고 부엉이만 찾았다.


 “엄마, 저기!” 쩡이가 말했다. “어디?” 나는 목을 길게 빼고 쩡이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다. 그때 오래비 쭌이는 한숨을 쉬며 “니는 앵무새랑 부엉이도 모르나. 바보.” 하고 쩡이를 한심해했다. 쩡이는 바보라고 말을 듣고 약이 올라했고 쭌이는 그런 쩡이를 모른 척하며, 부엉이의 특징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부엉이는 있잖아. 귀가...유치원에서 안 배웠나?"만 9세의 입에서 "라테는 말이지"식의 멘트를 듣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다.

 이 많은 인파 속에 부엉이라니... 그 어디에서 부엉이는커녕 비둘기도 찾을 수 없었다. 이제는 쩡이와 쭌이도 지친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하루를 다 날리는 건가.


대표 엄마에게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았다. 그때, 떠오르는 한 사람! J 선생님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시 게이트로 돌아가 J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J 선생님은 한국 부스에서 나온 떡을 먹다 말고 일어나, 우리와 함께 길을 나서 주셨다.


 “부엉이요? 따라오셔요. YEAR 3 대표님이 누구 셨더라 저희도 대표가 새로 선출된 지 얼마 안 돼서~?"


 사람에게 후광이 비친다는 게 이런 걸까. 그녀에게서 후광이 비췄다. 하늘에서 내려온 구원자였다. “어머님, 확실히 사람이 너무 많아서 찾기가 쉽지 않네요. 부엉이라…” 역시 내게만 어려운 게 아니었나 보다. 나는 뜻하지 않게 위로를 받고 있었다.


 그렇게 10분 정도 함께 헤매다가, 작년 YEAR 2 *반의 대표를 만났다. J 선생님을 알아보고 인사를 하러 온 것이었다. YEAR 3 대표에게 인수인계를 한 장본인이니 소문의 부엉이 티셔츠의 주인공을 아는 유일한 안내자였다. 그리고 J 선생님의 부탁과 ‘전’ YEAR 2 대표 엄마의 가이드로 우리는 ‘현’ YEAR 3 대표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인사를 하고 봉투를 내는 순간, 알아챘다. 그건 부엉이가 아니었다. 귀가 없는 올빼미였다.


그건 부엉이가 아니라 올빼미입니다만...


 이 한마디가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걸 간신히 참고 돌아섰다. 왠지 알 수 없는 허탈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오는 피로감을 느꼈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쩡이와 쭌이는 내 손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미리 봐 두었던 부스를 향해서 말이다. 그렇게 코로나 시국에는 꿈도 못 꿀 인터내셔널 페어의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아이들은 머리를 대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아침 일찍부터 길을 나서고 여기저기 그 넓은 학교의 끝과 끝을 누비고 다니느라 고단했을 테지.


‘까똑’


단독에서 공지가 떴다. 미납자 리스트가 뜨기 시작했다.


역시, 돈 문제는 확실한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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