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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Oct 20. 2021

호떠이에서 국제 요가 자격증 따기 2탄

레깅스와 가스의 인과관계.            일러스트 by 하노이민

Inhale and Exhale (숨 들이마시고 내쉬세요.)


헙! 더 이상은 무리다.


우르르 쾅쾅 쾅


배에서 천둥이 치고 꿀렁댄다.

주말 12시 - 18시까지 수업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단 한 번의 휴식시간! 3시 반쯤 숨이 끝까지 차오르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20-30분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베트남 사람들은 주로 1층 요가원의 카페에서 식사를 함께 했다. 매번 함께 가자고 권유를 해왔지만 나는 쉽게 끼지 못했다. 음식이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아나토미적인 이유였다. 한 번은 함께 식사를 하는데, 끊임없이 음식을 권해왔다. 그리고 그날 뱃살을 잡아준다던 레깅스가 사람까지 잡을 뻔했다. 레깅스가 복부를 꽉 누르다 보니 가스를 피할 수가 없었다. 체형보정에는 탁월하지만 소화 불량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그날 실감했다. 레깅스를 평상복으로 입는 여성들, 진심 리스펙트 한다. 특히 그날은 파리브리타 트리코나사나(Parivritta Trikonasana는 산스크리트어로 직역하면 삼각 회전 자세다. )와 같은 트위스트를 하는 날이었다. 30분이 지나자 슬슬 가스가 찼다. 쉽게 종식시킬 수 있는 수준이 아님을 직감했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가면, 사운드 폭발에 망신 각이었다. 더 나아가 어글리 더티 코리안이 된다. 이건 나 하나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국제적 명성이 달린 사안이다. 초인적인 힘으로 참기 시작했다. 안색이 점점 노랗게 변하며 안 좋아지자, 마제나와 투이가 번갈아 가며 와서 괜찮냐고 물었다. 현기증을 핑계로 도중에 화장실을 갔다. 급한 불을 끄고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우르릉 쿵쿵' 다시 번개가 쳤고 수업이 끝날 순간만 기다렸다. 그리고 그날 집까지 힘껏 달렸다. 축지법을 쓴 듯 15분 거리를 8분 만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마자 벽을 더듬더듬 붙잡으며 화장실로 직행했다. 그 뒤는 말을 아끼겠다. 후략이다. 남편의 말로는 베트남의 문화 중 하나가 음식을 권하고 그걸 응하면 매우 좋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처럼 음식을 먹었다가는 방귀쟁이가 되어 공중 부양을 할 것 같았다. 아직도 미스터리다. 그들은 그렇게 많이 먹고 어찌 그리 마르고 또 어찌 그리 트위스트를 잘 해냈을까. 베트남의 MZ 세대는 아이돌 저리 가라 할 만큼 정말 날씬하다. 내가 그렇게 먹는다면 가스로 민망한 상황이 계속되었을 것이다.

제니스 요가원에서 수료한 '아사나 요가'는 한국에서 주로 하던 것과는 달랐다. 부산에서 자주 접했던 건, 다이내믹한 동작이 많은 '빈야사'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요가라 함은 여름 비키니를 위한 반짝 3개월 트레이닝이었다. 하지만 아사나는 산스크리트어로 육체 수련의 의미다. 요가 동작을 통해 몸과 정신을 컨트롤할 수 있는 단계를 목표로 한다. 일정 부분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나 또한 수업이 진행될수록 쌍욕보다 무념무상이 되어갔다. 쌍욕도 에너지가 있을 때 떠오르기 때문이다.

몸이 힘든 게 포즈였다면, 진정한 고난의 끝판왕은 따로 있었다. 동작은 계속 수련하다 보면 늘기 마련이다. 그리고 잘 안되던 것을 해냈을 때, 나름의 성취감과 쾌감도 있었다. 그건 남들은 모르는 내 안의 빅토리다. 하지만 뇌로 승부를 봐야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스트레스였다.


상대가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리고 모든 동작을 오로지 자신의 음성 하나로 설명한다고 생각하세요.

그 정도로 정확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거쳐야 했던 단계가 바로 아! 나! 토! 하게 힘든 아나토미(Anatomy)! 해부학이 있는 날에는 뒷줄에 앉아서 상모 돌리기를 하는 한 명이 있었다. 그건 바로 나! 고딩시절의 상모 돌리기가 40대에도 계속되다니. ‘정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의 산증인이다. 한글로도 어려운 치골(pubis), 대퇴골(femur) 등의 명칭을 모두 영어로 암기해야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전문가 양성 코스인 TTC는 정확한 용어로 명확하게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을 가장 중요시했다. 견갑골(shoulder blades)을 외회전(outer rotation) 할 것이냐 내회전(inner rotation) 할 것이냐를 한국어로도 설명하기 벅찬데 영어로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정확한 명칭과 가이드라인이 너무 디테일하다고 생각했다. 이내 더 어렵게 학습시키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고 남몰래 음모론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마제나와 투이는 0부터 10까지 명확하길 원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이를 상대로 동작을 설명한다고 상상하라는 것이다. 그 정도로 클리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고 보니 그들의 설명은 하나같이 매우 정확해 귀로만 들어도 다 이해가 되었다. 엎드린 개의 형상을 한 포즈, 다운 독(Adho Mukha Savanasana 압도 무카 사바 나사나)을 할 때 그 진가가 드러났다. 우리는 고개를 들지 않고도 그들의 설명만으로 다음 동작이 가능한 미라클을 경험했다. 나 또한 14년의 영어강사로 살았다. 하지만 나의 언변은 맥을 못 추고 있었고 나의 자존심 또한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2인 1조의 실습에도 목소리가 달달 떨렸다. 정확한 발음을 몰라 네이버 영어사전을 검색하는 나 자신을 보며 쓴웃음이 나왔다. 고 3 때도 이렇게 영어를 열심히 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 특히 그녀는 360도가 돌아가는 해부학 모형을 자주 이용했는데 ‘조니’라고 불렀다. 이리저리 조니가 돌아갈 때마다, 내 목도 함께 돌아갔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엘리베이터 안 거울에 비친 나는 ‘뭉크(Munch)’의 ‘절규(scream)’가 되어 갔다. 몸은 몸대로 그리고 뇌는 뇌대로 힘들었다.


넌 누구냐.

거울 속 나, 낯설다.


이건 뭐 평화를 주는 요가가 아니라 군대 노역을 하고 온 노동자의 얼굴이었으니.. 젊음까지는 아니더라도 늙으면 안 되는데.. 요가를 할수록 2배속으로 노화가 진행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온몸이 당기지 않는 곳이 없었다. 수업을 향하는 발걸음은 50 킬로 모래주머니를 발에 낀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15분이면 걸어갈 거리를 25분이 걸려 도착을 하곤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늘은 쉴까 하는 악마의 속삭임이 들렸다. 결국 3-5분 지각하고 애들 핑계를 댄 적이 있단 건 쉿! 비밀이다.


민, 목소리에 힘이 있어 좋아요. 하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더 들어보세요.

더 귀 기울여 보세요.


하루는 반 전체를 대상으로 각자 한 동작씩 티칭 하는 날이었다. 투이(Thuy)는 목소리에 힘이 있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더 들어보라고 했다. 사실 당시에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강사로서 정확하고 긍정적인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긍정의 기운을 전달하고 싶었다. 하지만 6개월의 과정을 끝내갈 때쯤 깨달았다. 매번 하늘로 솟기만 하는 목소리는 늘 긍정적일 수 없다고 말이다. 수련의 마지막 필수 코스인 '사바사나(Savasana의 뜻은 송장 자세다.)'와 같은 긴장을 푸는 이완 동작에서는 목소리를 죽이고 각자의 호흡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스스로 답을 찾게 만드는 그녀의 수업에 점점 익숙해져 갈 때쯤, 6개월의 긴 TTC(Teachers Training Course)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네 인생은 반전의 총집합 체다.

시험이 코앞인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신기루처럼 모든 일정이 무산되었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싶었다.


드디어 시험 날짜인 2월 7일 일요일이 다가왔다. 고지가 바로 앞에 있다. 비비안과 나는 출석률도 좋았고 매주 제출해야 할 과제도 모두 다 냈다. 요가원에서 요구한 10회의 추가 요가 수업, 과제 등 요구되는 모든 미션은 완수되었다. 이제 TTC의 하이라이트인 실기 시험과 해부학, 철학의 필기시험만 통과하면 끝! 국제 요가 지도자 자격증이 손에 들어온다. 스스로 멋지다 생각했다. 이 어려운 걸 다 해낸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 기쁨도 잠시였다. 2월부터 다시 코비드 케이스가 조금씩 발생하기 시작했다. 아차, 코비드란 놈을 잊고 있었다. 하노이는 엄격한 출입국 관리로 코비드 청정지역의 모범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그놈은 흙 발로 걸어 들어와 모든 걸 해집어 놓으려 했다. 사실 시험이 잡힌 2월 초만 해도 정부는 록다운의 통보를 하지 않았다. 코비드가 극소수였기 때문이다. 비비안과 나의 마음은 급해졌다. 일정대로 시험을 치르고 자격증을 수료하고 싶었다. 오히려 2월 7일을 넘기면 언제 재개될지 기약이 없었다. 제니스 요가원은 모든 결정을 다수결로 하자며 원생들에게 결정을 넘겼다. 우리는 당연히 기존 일정대로 진행되길 희망했다. 특히 비비안은 프랑스로 4월에 귀국할 예정이었기에 누구보다도 마음이 급했다. 페이스북에 마제나가 시험 일정에 관해 의견을 묻는 글을 올렸다. 압도적으로 숫자가 많은 베트남 사람들은 누구 하나 먼저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반응이 없이 시간만 가니 더 답답했다. 마제나는 실습을 위해 서로가 서로의 학생이 되어야 하니, 최소 5명이 모이면 시험을 치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스케줄대로 함께 칠 사람들을 구하는 포스팅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일정이 미뤄지면 두 발 뻗고 잘 수 없을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물거품처럼 사라지지 않을까 불안했다. 당장 오늘 아침에 뭘 먹었는지도 기억이 잘나지 않은 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절박한 글은 한참을 별 관심받지 못한 채 외로이 있었다. 그러던 중 딱 한 사람! 드디어 누군가 입을 열었다. 의과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예비 의사인 N이 시험 날짜를 미루자는 의견을 냈다. 정작 그는 출석 미달에 과제도 제때 내지 않았다. 시험을 치든 안치든 이미 정해놓은 불합격자였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그의 의견이 게시되자마자 10명이 훨씬 넘는 베트남 사람이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르 Like를 누르기 시작했다. 비비안과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다. 당연히 시험도 불투명해졌다. 우려한 대로 시험 예정일의 2주 뒤, 베트남 정부가 록다운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제니스 요가원이 예정대로 시험을 진행하지 않자, 우리는 불만을 제기했다. 직원을 학생으로 하든 어떻게든 시험을 치르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웬걸. 마제나는 루리에게 직접 학생을 3명씩 데려오라고 하는 게 아닌가.

화르르! 불타오르네!


순간 명상이고 뭐고 마음에 분노의 불꽃이 일었다. 요가 시험에 학생이 되어 달라고 하고 친구들을 직접 데리고 오라니. 그것도 일요일 12시에 말이다. 이게 말인가 막걸리인가. 순간 우리는 귀를 의심했다. 맥이 탁 풀리고 허탈했다. 2400 USD를 내고 200시간의 요가를 한 명분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실기시험은 몰라도 해부학과 철학 필기시험을 먼저 치르겠다고 요구했다. 그리고 받아 든 시험지! 악! 블랜딘과 작년에 수료를 불합격한 재수생들의 말로는 객관식이라고 했는데, 이건 전혀 달랐다. 객관식이 있다더니, 이건 뭐 죄다 주관식이었다. 요가 시험이 아니라 (쳐보진 않았지만) 의과대학 시험인가 싶을 정도의 난이도였다. 군대 두 번 가기 싫은 예비역처럼 나 또한 절대로 재시험은 치고 싶지 않았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숫자 욕을 중얼대길 3시간 30분, 어디선가 나를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뼈다귀 조니가 비웃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무기한 연기된 실기 시험만이 남았다.

Philosophy철학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생각해 보면 나는 운이 좋았다. 무기한 연기된 시험을 걱정하던 친구들은 삼삼오오 모여 나의 요가 학생이 되어 주었다. 스스로 기니피그가 되어준 것이다. 찐 우정이 아니고서야 이건 쉽지 않은 일이지. 정말 감동이었다. 주 2회 많게는 3회를 나와 아침마다 함께해 주고 용기를 주었다. 블랜딘, 잉, 아챠나, 마미 등 모두 나를 응원해 주었다. 그 결과 망각의 우려와는 달리 오히려 요가 티칭을 더 다듬을 수 있었다. 마제나가 수업시간에 했던 모든 영어 설명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외웠다. 책이 너덜너덜해지고 툭 치면 툭하고 나올 정도로 암기했다. 실전에서는 시간 관리를 못해 포즈 당 5분이 아니라 7분으로 초과가 된 것을 제외하면 감점은 없었다. 철학과 '마'의 아나토미도 그럭저럭 해냈다. 노력에 가산점을 준 느낌이 있지만.. 열심히 한 건 사실이다. 내가 생각해도 꽤 괜찮은 결과다. 초반에 목소리에 삑사리가 나고 흔들렸지만, 마지막으로 갈수록 안정을 찾았다. 마지막에 트리 포즈에서 나도 모르게 후들거리며 균형이 틀어진 것만 빼면.. 아 그리고 또... 시선이...

시험을 치른 당일에 알게 되었지만, 합격자는 비비안과 나 단 두 명이었다. 으쓱해지는 순간이었다. 제니스 요가에서는 저조한 합격률에 두 달이라는 유예기간을 더 주었다. 그리고 4월, 수료식에 온 합격자들은 나를 포함해 총 아홉 명이었다. 물론 작년에 불합격한 2 명도 포함한 숫자다.

만약 누군가 다시 한번 TTC와 같은 요가 코스를 수강할 의향이 있냐고 묻는다면, 나의 답은 ‘I don’t know.‘다. 장작 6개월의 산을 넘을 수 있을지는 사실 자신이 없다. 하지만 한 가지 그리운 건 있다. 큰 요가실에서 두 명의 구루를 포함해 17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같은 동작과 호흡을 하던 그 뜨거운 공기다. 코비드로 단체 활동이 금지된 게 이유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홈트로는 설명이 안 된다. 그 진풍경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안다. 이게 진짜 요가다.

이 한 장의 수료장을 위해 달렸다.


P.S. 철학 시간에 투이가 했던 말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다.

You are the sky.

Everything else is the weather.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 날씨를 지나고 있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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