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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Oct 28. 2021

하노이의 피 터지는 과외샘 섭외기

일러스트 by 하노이 민언냐

카톡!

"쭌이 어머님, 회비 주신 거 맞지요?"

(봉투의 돈을 펼친 채 사진을 전송해 왔다.)

"선생님, 혹시 금액이 적게 들어갔나요? 제가 한국에 갔다 와서 헷갈려서요."

"아닙니다. 회비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게임을 시작하지. 여기서 어색한 부분을 추리해 보시라. (영화 ‘쏘우’의 말투다.)


​하노이는 사교육 없이는 못 사는 세상이다.

과외 선생님들은 구원자들이다.


코비드로 학교를 열지 않는 하노이에서 과외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 없다. 6개월이 넘게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실제 사람 선생님을 만나서 수업하는 기회가 과외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니터만 잡고 있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부모의 불안감과 과외 선생님이라는 사교육 시스템! 이보다 더 완벽하게 들어맞는 필요충분조건이 있을까. 온라인 스쿨 이외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한국 부모들만의 고민이 아니다. 프렌치 클로에, 마농, 아갓도 일주일에 2번의 프랑스어 과외와 테니스 수업을 받는다. 일본인 친구인 케이와 유즈키 또한 소그룹의 축구 교습실이나 테니스 수업 그리고 수학, 영어 과외를 하고 있다. 국적을 불문하고 모든 가정에서 선생님들을 모시느라 고군분투 중이다.

한국인들의 거주 지역인 경남 일대의 학원들 또한 록다운으로 문을 닫고 있다가 지난달부터 다시 열었다. 10인 이하의 수업이 가능해진 것이다. 모든 학부모들이 기쁨의 함성을 지르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경남 지역이 아니라 호떠이에 있어 국, 영, 수 중심의 보습학원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멍 때리는 쩡이와 코파는 쭌이를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 하노이에서 바이올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사실 바이올린과 피아노는 부산에서도 배우다가 왔다. 나의 교육열은 36.8도로 미지근한 편이다. 펄펄 끓게 능동적이진 않지만 한 번 시작하면 계속하자는 주의다.

하노이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게 바이올린이었다. 바이올린 선생님은 베트남어 어학원의 원장님을 통해 소개받았다. 아는 사람이 없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학원의 원장님께 물어본 것이다. 다행히 지인을 통해 소개를 받을 수 있었다. 1시간당 700만 동, 한화로는 3만 5천 원이다. 한국과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 출신의 그녀는 부산에서 수업을 해주던 선생님보다 훨씬 꼼꼼하고 열심히 지도해 주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2년 동안 계속 수업을 이어가고 있다. 하노이에서 개방 현도 제대로 못 키던 쭌이와 쩡이에게 얼마나 실망을 했던가. 부산에서 일한다는 핑계로 아이들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내 탓도 있지만, 악보도 제대로 못 읽는 아이들을 보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건 '나비야'인지 '학교 종이 땡땡땡'인지도 분간이 가지 않았다. 쩡이야 6개월을 하고 왔지만 쭌이는 2년이나 했는데 말이다. 돈을 날렸다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수업을 들으면서 실력이 쑥쑥 자라는 게 눈에 보였다. 물론 쩡이는 주어진 연습을 제대로 하지 않아 선생님께 혼나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 러! 나 'No pain, no gain.'인 세상이 아니던가. 때로는 엄하게 대하는 그녀의 교육법은 내 맘에 쏙 들었다. 쩡이에게 혀 짧은 소리로 "귀여워."를 연발하며 시간만 딱 채우고 가던 부산의 선생님과는 차원이 달랐다. 지금은 미뉴에트, 징글벨 등 제법 음악다운 음악을 연주해 준다. 쩡이는 여전히 바이올린은 힘들다고 연습할 때마다 징징 대지만 말이다. 하노이의 과외 물가에 비해 수업료가 쪼~끔 비싸지만 굉장히 만족하고 있다.

하노이에서 아이들이 잉여시간에 헐렁헐렁 뒹굴뒹굴 대는 게 보기 싫었던 나다. 쭌이와 쩡이를 뭐라도 더 시키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부산에서 들고 온 전자 피아노가 가장 먼저 생각났다. 피아노로 가자! 방과 후에서 설렁설렁 배운 피아노지만 아예 '0'에서 시작하는 다른 악기보다야 낫겠지 싶었다. 첫 피아노 선생님은 한국인이었다. 같은 건물에 사는 다른 한국인으로부터 소개를 받았다. 처음에는 쩡이와 쭌이도 잘 따르고 호탕한 웃음소리도 좋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호떠이와 시푸차의 많은 가정을 돌며 수업 중이었기에 1분 1초가 꽉 차있었다. 호떠이와 시푸차는 한국인 선생님들이 아주 귀한 지역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말이다. 결국 나중에는 시간을 맞추는 것에서도 여의치 않아 수업을 중단해야 했다... 는 게 공식적인 중단 이유다.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한 번은 작년 1월 초 코비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부산을 10일 정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러고 나서 수업을 다시 시작했는데 회비 계산에서 실수를 한 것이다. 원래 회비보다 더 많이 넣고 말았다. 내가 실수가 먼저 했지만 선생님은 알고도 먼저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톡으로 봉투 안에 든 현금을 펼쳐서 찍은 사진만 전송해왔다. 그리고 아무 문제없다는 그녀의 톡, 그럼 사진은 대체 왜 보낸 걸까. 아무래도 찝찝함이 가시지 않아, 탐정 놀이를 좀 해보았다. 예전에 은행으로 입금한 적이 있음을 기억해 낸 것이다. 입금 이력을 보았다.

'아차' 싶었다. 더 많은 금액을 내고야 말았다. 그리고 톡으로 사과를 한 건 누구? 나였다. 회비 금액을 착각했다고 말을 하고 돈을 돌려받기 위해 사과의 톡을 보낸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어머님, 원래 다른 데서는 이 금액으로 받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주신 줄 알았어요. 쩡이와 쭌이만 이 수업료를 받고 있으니, 다른 어머님들께는 비밀로 해주세요."

이건 무슨 바우 와우 소리지. 소개를 해준 집과 동일한 레슨비를 지불해온 걸 서로 뻔히 아는데 말이다. 오히려 큰소리치는 그녀의 톡을 아무리 곱씹어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 번 조곤조곤 그리고 '앗, 뜨거라!' 하게 따져봐 줄까 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이건 내가 더 잃을 것이 많은 게임이었다. 그녀는 나의 연락처와 주소를 다 알고 있는 반면에 내가 그녀에 대해 아는 거라곤 달랑 하나, 카톡뿐이었다. 그렇게 스케줄이 맞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고 바로 수업을 접었다. 물론 카톡 방도 나와, 차단시켜버렸다. 사실 수업을 안 하면 볼 일도 없을 테지만, 차단은 내 나름의 소심한 복수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바로 옆 동네 시푸 차에서 학부모와 싸우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한다. 원인은 돈 때문이었다고 한다. 학부모의 주장은 선불을 줬는데 수업을 다 안 채우고 도망갔다는 것! 그 뒤로 그녀의 소문은 듣지 못했다. 어디서 또 수업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없다.

피아노 선생님을 다시 구하려니 막막했다. 그러던 차에 네팔인 친구 아챠나가 Jade라는 베트남 선생님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너무 만족한다며 강하게 추천을 했다. 음대에서 지휘를 전공하고 플루트로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한 그는 시간당 60만 동, 한화로 3만 원의 수업료를 받고 있다.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100점이다. 쩡이와 쭌이도 그와의 수업을 아주 좋아하고 무엇보다도 플루트, 콘트라베이스, 트럼펫, 클라리넷 등을 들고 와 아이들과 합주도 해주고 있다. 그런 날에는 나도 하던 일을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거실에서 악기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수업을 60분이 아니라 90분을 해줘서, 오히려 미안할 때가 더 많다. 그래서 2살 난 그의 아들을 위해 한국 과자를 함께 챙겨 주곤 한다. 항상 "안녕하세요." 하고 한국말로 인사를 하는 그는 음악 선물을 해주는 산타와 같다. 아이들의 실력은 어떻냐고? 한국인 선생님과 '나비야'를 쳤던 쩡이와 쭌이다. 바이엘만 잡고 수개월을 보낸 아이들은 Jade와 '엘리제를 위하여'를 완주한다.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

개인적으로 한국인 선생님들과 비교하면 베트남 선생님들이 훨씬 만족도가 높다. 물론 음악이라는 한정된 경험치이지만 말이다. 기본적으로 모두 책임감도 있고 프라이드가 높은 편이다. 베트남에서는 오케스트라에 입단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라고 한다.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그 수가 적으니 당연한 결과다. 실력 면에서도 확신이 가는 베트남 선생님과의 과외는 기대 이상의 결과를 주고 있다. 베트남 선생님에 대해 고민 중이라면, 꼭 시도해 보길 강추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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