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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Feb 16. 2022

하노이에서 믿고 거르는 인종차별! 동양인으로 살아남기!

인종차별을 향한 대처법         일러스트BY하노이민언냐

AAPI로서 우리는 지금까지 배제되고, 억류당하고, 비방당하고, 무력화되고, 성적 대상이 되고, 살해당했다.

이 인종차별 문제는 너무나 많은 이들이 평생을 겪어온 일이다. 그래서  너무 일상화되었고, 다양한 방식으로 숨어들게 것이다.

-타임지, 에릭 남의 기사 중-

*AAPI : Asian Americans and Pacific Islanders 아시아계 미국인 그리고 태평양 섬 거주민

지난해 3월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 인근의 마사지 업소 3곳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한국인 여성 4명을 포함한 8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당다. 경찰은 용의자가 인종 혐오가 아닌 성적 욕망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코비드의 시발점이 된 중국을 향한 증오가 아시아인들 전체를 향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폭발하던 시기였다. 이 사건인종차별에 기인한 증오범죄라는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한국인들은 물론 많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분노하게 했다. 하지만 올해 또다시 비극적인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2월 14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맨해튼의 차이나타운 아파트에서 30대 한국계 여성이 노숙자에 의해 피살된 것이다. 비명소리를 들은 이웃 주민은 경찰에 신고했으나 유나 리(35)는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더욱더 충격적인 것은 피의자인 노숙자 아마사드내시(25)가 그녀의 뒤를 따라가다, 현관문이 닫히는 것을 손으로 막고 내부로 난입하는 영상이 cctv에 고스란히 찍힌 것이다. 이 사건을 듣고 나는 심장이 땅 속으로 쿵 박혀버리는 듯했다. 코비드로 더욱더 잦아지는 증오범죄에 공포심이 들었다. 그리고 작년 애틀랜타의 총기 난사 사건 발생 후 이뤄진 에릭 남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애틀랜타에서 나고 자란 한국계 미국인 가수 에릭 남이 타임지에 기사를 게재하고 CNN과 인터뷰를 한 것이다. 그의 발언은 많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대변했고 아시아인들을 향한 증오 범죄에 반대하는 목소리에 큰 힘이 되었다.

인터뷰 중 가장 와닿은 것은 아시아인을 향한 인종차별이 이미 너무 가벼워졌다는 부분이었다. "이게 인종차별일까" 싶은 굉장히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빈번히 그리고 여전히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문제화시키고 고쳐나가야 한다고 말이다. 본인은 차별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이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상황들이 그에게 수도 없이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하노이에서의 은 일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베트남의 최대 명절인 뗏(구정) 동안 놀고먹은 대가로 나는 잘 익은 딤섬처럼 통통해지고 있었다. 운동과 체중 관리가 시급해 바로 헬스장으로 직행했다. 연휴가 끝났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방학이었기에 아이들과 함께 헬스장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원래 아동 출입을 금지하지만 데스크 직원에게 30분만 하고 가겠다며 부탁했다. 표정에서 간절함을 읽은 건가. 오늘만이라고 말하며 문을 열어주었다. 드디어 헬스장 컴백 성공! 마침 일본인 친구 A가 땀을 흘리며 러닝머신을 달리고 있었다. 그녀의 막내아들은 쭌이와 동갑으로 매일 함께 노는 베스트 프렌드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온라인 수업과 코비드를 저주하며 파워워킹을 시작했다. 쩡이와 쭌이는 3.0의 느린 속도로 러닝머신 위를 걷다가 이내 지겨워졌는지 5분 만에 내려왔다. 그리고 아이들의 주특기인 숨쉬기 운동을 하며 헬스장을 부유하기 시작했다. A의 아이들은 뗏이 끝나고 바로 학교 온라인 수업으로 돌아가 혼자 복귀할 수 있었다며 웃었다. 서로의 운동을 응원하며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하던 중 한 백인 남자가 들어왔다. 나이가 많아야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는 우리들 중 그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오로지 바닥에 시선을 꽂은 채 내가 있던 러닝머신의 바로 옆으로 왔다. 나는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Hello."


"......"

'헬로'만큼 클리어 한 단어가 또 있을까. 하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산 정상에 올라 혼자 소리치는 이 쐬한 느낌, 낯설지 않다. 3초의 정적이 흘렀고 다시 한번 크게 그의 얼굴을 보며 인사했다. 너에게 내가 인사를 한다는 명확한 메시지 전달을 위해 누구나 들릴 만큼 큰 목소리로 시선을 고정시킨 채 말이다. 그제야 A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가 싶더니 힐끗 보고는 떨떠름하게 대답을 했다. 0.1초 만에 시선을 거둔 그에게 아이들을 데려와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했다.


"I am so sorry to bring kids here."

"It is okay."

"We'll be gone in 30 min. It is vacation for ki…."

"I said IT IS OKAY."


"애들 데려와서 죄송해요."

"(딱딱한 말투) 괜찮아요."

"우리 30분이면 갈 거예요. 애들이 방학…"             

"(말을 끊으며) 내가 괜. 찮. 다. 고 말했잖아요."

"..."


"오케이."가 아니라 "내가 오케이라고 했잖아."로 답하던 그의 낮고 또박또박한 음성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말에 무게가 있다면 분명 1톤짜리 코끼리와 비등비등했을 것이다. 물론 두 번 다시 그의 방향으로 눈길을 줄 일도 없었다. 반대쪽에 있는 A와 계속 수다를 떨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또 한 번 그를 헬스장에서 보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떠오르는 숱한 물음표들!


'다른 인종이었다면 어땠을까?' 또는 '만일 프렌치 친구 C나 B가 여기 있었다면 반갑게 인사하고 통성명하지 않았을까?' 하는 식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과대망상증이라고 하기에는 헬로와 헬로 사이의 마를 설명할 길이 없다. 헬스장에는 아이들, 나, A 그리고 그만 있었으니 여기서 인사는 그에게 했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오해하기도 어렵다. 유령에게 인사를 할리도 만무하고 우리가 이야기를 하며 운동하는 것을 분명히 보았을 것이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받은 잠깐의 불쾌함은 샤워하며 흘려버리자는 주의지만 역시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데일리 프랑스는 웹툰은 물론 책으로도 발간되었다.

사실 베트남에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 아니다. 얼마 전 읽은 웹툰 '데일리 프랑스'를 보며 무한 공감을 한 적이 있다. 데일리 프랑스는 파리에서 서툰 불어로 시작한 유학 생활을 그려냈다. 동양인이 거리를 걷다 보면 여기저기서 재미로 '칭총챙이'라고 외치며 놀리더라는 경험도 와닿았다. 아이들과 손을 잡고 가다가 중국어를 흉내 낸 말을 던지는 외국인들로 인해 뒤통수가 써늘해졌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마트 직원과 인사에 대한 에피소드였다. 다른 고객들에게는 'Bonjour.(안녕하세요.)', ‘Au revoir.(안녕히 가세요.)’라고 크게 인사하던 계산원이 자신에게만 인사를 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결국 작가는 직원에게 얼굴을 맞대고 몇 번의 인사를 하고서야 겨우 답을 받아냈고 말이다. 웹툰을 읽고 호떠이의 '안남 마트'가 떠올랐다. 하노이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유독 한 계산원이 인사나 아이 콘택트를 하지 않았다. 원래 웃지 않는 직원인가, 피곤한가 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그녀는 어떤 서비스도 제공할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며 무표정으로 서있었다. 정승의 인간화가 있다면 바로 그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이게 베트남 스타일인가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정승처럼 무표정하게 서있었다. 나는 계산을 하고 장바구니를 챙겨 나왔고 다음 손님은 백인의 금발 머리 여성이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그녀가 계산대로 오자, 정승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 본 적 없는 환한 미소와 생기를 보였다. 평생 웃을 줄 모르는 저주에라도 걸린 줄 알았는데 말이다. 계산할 때마다 나는 "Thank you."를 건네며 고개를 주억거리며 사라졌고 그때마다 대답은커녕 그 흔한 "Have a good day."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백인 유러피안을 향한 그녀의 태도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처음부터 "How are you?"라는 인사를 '솔' 톤으로 건네는 게 아닌가. 처음에 잘못 들은 줄 알고 뒤로 돌아봤다. 내게는 손가락 까딱하지 않으며 계산한 물건들을 장바구니에 서둘러 담는 나를 한숨만 쉬며 보던 그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손님의 장바구니를 직접 펼쳐 들고 친절히 물건을 하나하나 담고 있더라. 충격을 받은 나는 그 직원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서있었다. 알아챌 때까지 분노와 경악의 레이저 광선을 쏘고 있었다. 따가운 시선을 느꼈는지 잠시 얼굴을 들어 나를 보더니 이내 하던 일을 했다. 이날 이후 더 이상 고분고분한 손님이 되기를 포기했다. 당당히 버티고 서서 물건을 장바구니에 넣어주길 요구했다. 그리고 강렬하고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더니 대답을 들을 수도 있었다. 비록 시큰둥해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말이다.

하루는 프렌치 친구의 저녁 식사에 초대가 되었다. 부부동반 모임이었지만 바쁜 남편은 참석하지 못했다. 미국인 커플, 프렌치 커플, 호주 커플 그리고 호스트인 S와 나를 포함해 8명이었다. 남편의 빈자리가 느껴졌지만 S도 혼자였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게다가 호주 커플을 제외하고는 이미 사이였고 말이다. 간단히 샴페인을 마신 우리들은 새로운 멤버인 호주 커플을 위해 통성명을 했다. 그리고 호스트 S가 정한 자리에 앉아 본격적인 디너 타임을 가졌다. 그런데 불편한 시작은 이때부터였다. 서로의 영어 억양을 놀리고 각국의 요리 부심을 과시하며 이어나간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내가 옆자리의 T(호주인)에게 말을 걸면서 영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호주 악센트가 강한 그에게 말을 걸어도 단답형으로 끝이 났다. 연신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며 시선을 허공에 돌리고 대화의 벽을 치기 시작했다. 두세 번의 시도에도 공통 주제를 찾지 못한 나는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아.. 음.. 아.. 음..'을 반복했다. 태평양 같은 등판과 어깨의 T가 블로킹하고 있어 나는 대화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에게 가려져 억지로  얼굴을 내밀거나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시야조차 확보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메인 디시가 나오기까지 나이프와 포크만 만지작거렸다. 어찌나 반짝거리던지 흙빛이 되어가는 얼굴이 비칠 정도였다. 수프를 먹던 10분이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졌고 얼음이 되어가던 나를 향해 말을 걸어 준 것은 미국인 젠틀맨 A다. 평소 그의 와이프와 친하던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말을 길게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묵묵히 소스 접시만 돌려받던 내가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었다. 대각선 맞은편에 앉은 그가 말을 걸어주어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요거트 소스를 곁들인 시금치 연어 요리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헷갈리던 나도 점점 T에게 벗어나 내 페이스를 회복하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선 나는 빈 접시를 부엌에 옮기는 타이밍에 테이블 반대편의 친한 친구들의 곁에 가서 앉았다. 그날은 와인이 쓴 건지 기분이 쓴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지만 좋은 친구들도 있었기에 그들에게만 집중하려 노력했다. 나 또한 그를 투명인간 취급을 했다. 그가 내게 한 것처럼 말이다. 처음에는 나의 영어를 의심하기도 했지만 그의 와이프와는 어떤 문제도 없이 대화를 했기에 언어의 문제는 아니었다. 다행히(?) 예정보다 일찍 귀국하며 두 번 다시 볼 일이 없어졌지만 말이다.


한때는 이런 일련의 일들이 우연인지 그저 예민 보스인 성격 탓은 아닌지 의심한 적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당시 느낀 낯 뜨거운 감정, 시공간을 쥐어짜는 듯한 숨 막히는 공기가 계속 떠오른다? 그리고 이유 없이 나를 향한 태도가 아주 미묘하게 어긋나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그렇다면 한 단어로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바로 인종차별이다. 처음부터 은근슬쩍 내리까는 시선 , 대화에서 눈을 마주치지 않고 인사를 무시하는 등 그룹에서 은근히 배제되는 느낌받는다면... 당신은 제대로 만난 거다. '레이시스트' 놈들을 말이다.


이제 나는 ‘헬로’ 한마디에서도 인종차별의 악취를 맡을 수 있다. 그저 인간 대 인간으로 예의를 표하는 세상에 가장 원초적인 제스처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든지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 세상에는 여전히 껍데기로 사람을 판단하고 태도를 달리하는 이들이 많다. 그래도 아주 가끔 ‘이게 뭐지?’할 때가 있다. 마치 수돗물을 틀어놓고 집을 나온 것만 같은 뒤가 찝찝한 때가 분명히 있다. 그럴 때는 상황을 곡해하고 넘겨짚었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보통 직감에 따른다. 그 순간 맞닥뜨린 감정만큼은 너무나도 옳기 때문이다. 의도된 불쾌함은 언제나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은 초코파이뿐이라고 하지만 인종차별도 그렇다. 물론 좋은 사람들도 많지만 하노이에서 연차가 쌓일수록 인종차별을 가려내는 레이더 또한 단련이 되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실 인종차별은 유럽이나 북미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일인 줄만 알았다. 수위의 차이는 있지만 인종이 다양한 지역이라면 어디서나 가능하다는 것을 하노이에 와서 절절히 깨닫고 있는 중이다. 특히 호떠이 같은 백인들이 많은 지역에서 그 경험치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엄연히 존재하는 잘못된 시선을 피하지 말자는 것이다. 당하는 쪽이 어물쩡 거리고 넘어가면 그들은 흙발로 들어와 우리들을 마구 헤쳐놓고 쥐고 흔들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끊임없이 발끈하고 낯빛을 바꾸고 함께 노려보고 정정하는 용기를 내야 한다. 예의는 바르지만 더 쫀쫀하고 하게 정신줄을 잡아야 한다. 그들이 조심하고 주춤할 수 있게 말이다. 그래야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조금 더 제대로 된 세상이 온다.

P.S. 헬스장의 그와는 결국 다시 마주쳤다. 물론 인사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창 운동을 하는데 친구 P가 내게 할 이야기가 있다며 헬스장으로 찾아왔다. 백인 친구와 내가 한참을 이야기하는데, 뒤통수가 따가웠다. 그가 우리를 거울을 통해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슬금슬금 시선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는 우리에게 투명 인간이자 정체불명의 행인 118번 같은 존재일 뿐이었고 말이다. 예의는 예의를 아는 이들에게만 지키자는 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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