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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Jun 20. 2022

베트남의 사자, 그대 이름은 여자 여자 여자!

강인한 베트남 여성들.             일러스트by하노이민언냐

“민뽕.”

“맘스터치.”

“부산 호랭이.”

“스뜨 하동.”


남편이 목놓아 부르는 이름들! 하지만 그가 부르는 건 단 한 명이다.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 민언냐! 그리고 호칭에 따라 우리 사이를 직감할 수 있단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남녀 사이가 다 그렇듯, 사랑스러울 때는 꿀 뚝뚝 당도 초과 ‘민뽀옹~’으로 부르다가도 미울 때는 나라의 원수처럼 으르렁댄다. 여러 호칭 중에서도 악당력 최고조는 바로 스뜨 하동이고 말이다. 그럼 대체 이 ‘스뜨 하동’은 대체 무얼 뜻하는 걸까.


Sư tử Hà Đông  /스뜨 하동/ ; 하동의 사자



스뜨 하동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매사 똑 부러지게 해내는 진취적인 여성! 그리고 다른 하나는 테러블 호러블! 공격성이 핵 미사일급 거기에 깻잎 논란? 가뿐히 넘기시고 공기만 공유해도 질투에 끓는 여성을 일컫는다. 물론 나를 향한 남편의 부름은 2번, 질투 끓는 여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공격성 만랩의 와일드한 와이프를 일컫는 거라면 빙고! 또르르. 여성스러운 토끼형 와이프는 다음 생에 니가 되려무나~ 그럼 마초 호랭이 남편인 나를 만나 다시 전쟁 같은 맘고생을 하며 살 테지! 훗! 훗! 나란 인간! 한 번 물면 놓치지 않을 거예요~ (스티븐 킹 소설 원작의 공포 영화 ‘미저리’ 모드 온!)


원래 ‘스뜨 하동’은 ‘하동’이라는 지역에서 유래되었다. 하노이 도심에서 30킬로 정도 떨어진 곳으로 차로 약 1시간 정도를 가면 도착한다. 하동은 먼 옛날 사자가 많이 출몰하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도심 진입이 필수였고 사자의 출몰은 그야말로 생존을 걸고 맞서야 할 적이 되었다. 결국 많은 사자를 물리치며 생겨난 말이 바로 이 ‘스뜨 하동’이고 말이다. 오늘날, 부정적인 의미로 더 많이 쓰이곤 하지만 사실 강인한 베트남 여성을 향한 말인 것은 확실하다. 특히 베트남 여성들은 전 세계에서 생활력, 희생정신, 책임감으로 어나더 레벨이다.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쟁 참전, 정치 활동 그리고 오늘날 포스트 차이나로서 눈부신 경제 성장을 가속화시킨 것도 여성들의 역할이 크다.



한국에는 없는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그들이 베트남에는 있다.


‘어맛! 이 많은 화환은 무엇? 우리의 하노이 입성을 축하하는 건가? 우리 빙구 남편은 알고 보면 회사에서 억수로 중한 인재였던가?’


2019년 10월 20일, 하노이의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떨어졌다. 그때 처음 경험했다. ‘Ngày Phụ Nữ Việt Nam’(응아이 푸느 비엣 남, 베트남 여성의 날)을 말이다. 베트남에는 ‘국제 여성의 날(3월 8일)’ 이외에도 ‘응아이 푸느 비엣 남, 베트남 여성의 날’이 따로 있다. 한국에서는 ‘국제 여성의 날’이 며칠인지 조차 몰랐다. 이걸 알리가 없는 나는 하노이에 온 첫날, 화려하게 장식된 호텔의 로비를 보고 우리 가족의 하노이 입성을 축하하는 건 줄 착각할 뻔했다. 게다가 직원들이 곱게 리본으로 장식된 장미꽃도 하나씩 안겨 주었다. 그간 내가 알던 빙구 ‘남편’은 사실 엄청난 파워를 지닌 중요한 인물이었던가. 하마터면 무릎 꿇고 찬양할 뻔했다.(권력에 굴복이 빠른 1인은 무릎도 빨리 꿇는답니다.) 크리스마스도 추석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10월 20일을 특별히 꾸미고 꽃을 나눠준 건 알고 보니 ‘베트남 여성의 날’을 위한 이벤트였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이날 가족이나 주위의 여성들에게 꽃이나 선물, 카드를 선물하고 감사의 메시지를 전한다. 여성 브랜드들은 파격적인 세일을 줄줄이 기획하고 행사나 콘서트도 열린다. 거리는 크리스마스 버금가는 축제 분위기다. 모든 쇼핑몰과 시내 거리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건물과 거리가 화사하게 장식된다. 분위기 좋기로 유명한 레스토랑들은 모두 예약으로 만석을 이루고 꽃 값도 덩달아 치솟는다. 남성들은 이날만큼은 여성들을 따라다니며 열심히 쇼핑 메이트로 최선을 다한다. 물론 열에 열은 흙빛 얼굴로 구석에 앉거나 벽에 기대 스마트폰 좀비가 되어있다. 죽은 듯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사실 우리가 필요한 건 여러분의 의견 따위가 아니다. 뭘 살지는 이미 우리들 마음속에 확고하게 저장이 되어있다. 카드, 작지만 위대한 지상 최대의 자본주의 산물인 네모지고 딴딴하고 쪼매난 물건이란 말입니다. 그냥 예스만 하고 지갑만 열기로 약속~ 사실 이런 광경, 한국인으로서 굉장히 부러운 일이다. 엄마도 아이도 아닌 여성임을 매년 축하받는다니, 왠지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한국에는 없고 베트남에는 있는 또 다른 것! 바로 ‘베트남 여성 박물관’이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오면 반드시 가야 할 탑 5로 꼽는 곳이기도 하다. 여성 박물관은 올 때마다 가슴에 불덩이가 던져지고 피가 100도까지 끓어오름을 느낀다. 건물의 1층, 2층에는 소수 민족의 의상, 전통 혼례 등의 풍습을 포함해 여성들의 일상적인 삶을 전시하고 있다. 하지만 저, 민언냐의 관심은 다르지 말입니다. 3층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다. 바로 여성 독립투사들을 위한 섹션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4만 동(2천 원)의 입장료가 아깝지 않다. 여성들을 향해 농기를 쥐고 적군에 대항하길 촉구하는 포스터들! 어~서 마~이 본 것 같지 않나요? 하노이의 기찻길이나 관광지 등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엽서나 마그넷의 표지다. 박물관을 한 번 보고 나면 이런 그림들 앞을 쉽게 지나치지 못해 한 번쯤은 주춤하게 되고 말이다. 여전사들은 최연소 14세의 어린 소녀부터 10인의 10대 소녀로 구성된 폭탄 투하 작전(미군 기지에 자원해서 투입되었으나 전원 현장에서 사망했다.)은 물론 누군가의 며느리이자 엄마, 부녀자들도 활약도 있었다. 분신을 하고 철 쇠사슬로 서로의 몸을 묶어 철통 보완을 하며 미군에 대항한 종교인들은 국제사회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미친 척 동네를 돌던 노인은 사실 기밀문서를 전달하던 독립투사이기도 했다. 베트남에서 유명한 한 포스터에는 갓난아기를 엎고 한쪽에는 총을 두고 밭을 가는 여성이 있다. 이 포스터 한 장은 그 시절, 베트남 여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당시 강국들과의 연이은 전쟁은 많은 아빠, 남편 그리고 아들들을 빼앗아 갔다. 하지만 남은 여성들은 슬퍼할 틈 없었다. 폐허가 된 베트남을 일으켜야 했다. 여성들이 종전 뒤 재건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역사의 흐름인지도 모른다. 부모와 아이들을 보살피는 것은 물론 모든 경제활동과 대소사 담당은 오롯이 그녀들의 몫이 된 것이다.


좌, 14세 최연소 독립투사인 보티사우. 우, 10인의 소녀 폭탄 투하반

실제로 많은 외국인들이 하노이에 와서 가장 의아하게 생각하는 게 바로 평일 대낮의 거리 풍경이다. 한창 피 터지게 일할 시간에 동네 한 바퀴 휘이 둘러보자. 뭔가 다르다는 걸 눈치챌 수 있다. 푸른 녹음 사이들로 빛나는 눈부신 햇살 그리고 작은 테이블을 삼삼오오 둘러싸고 앉아 나누는 커피 타임! 동남아 특유의 여유로운 시간을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모락모락, 너구리 소굴을 연상시키는 연기는 무엇? 그렇다. 주인공들은 성인 남성들이다. 반면 바쁜 하루를 시작하며 세모난 모자 ‘논’을 쓰고 거리를 달리는 자전거 상인들이나 청소부, 노동자들은 여성들이다. 이건 출근길 도로나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로를 가득 채운 오토바이 운전자들의 반 혹은 여성들이다. 시장은 또 어떨까? 상인들 중 열에 아홉은 젊은 혹은 나이 지긋한 어머님들이란 걸  바로 알 수 있다. 물론 유교 사상이 강하게 뿌리 박혀 있어 부모님 봉양과 육아까지 당연시된다. 시부모님 아니 ‘조’ 시부모님까지 4대를 한집에 모시고 살며 일과 육아, 집안일까지 모두 해내는 살아있는 원더 우먼들인 것이다.


나의 베트남 생활에서 빠질 수없는 단골 스파가 집 근처에 있다. 30초면 도착하는 순간이동 수준의 입지적 요건과 가성비가 주된 이유지만 정작 자주 가게 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외국인 ‘천지 빼까리’인 동네에서 영어가 아닌 베트남어로 수다가 허락되는 유일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스파의 직원들은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이다. 25살에도 6살의 딸이 있는가 하면 30대 초반에는 나처럼 12세의 아들을 두고 있기도 하다. 그녀들은 아이의 영어 학원비나 방과 후 수업료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한다. 결혼이 아니면 독립이 불가능했다는 나의 절친한 친구이자 헬퍼인 H 또한 빠질 수 없는 전형적인 베트남 여성이다. 육아는 물론 가사, 경제 활동에도 적극적인 그녀! 오전에는 공장 식당, 일주일에 3회를 우리 집 그리고 오후에는 윗집에서 내니로 일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 30대 중반의 그녀는 대부분의 베트남 여성들이 이렇게 열심히 살아간다며 특별히 불만을 갖지 않는다. 스물이 되던 해에 결혼을 했고 곧바로 일본인 가정에서 서툰 영어로 내니 일을 시작했다. 사실 그녀를 존경해 마지않는 이유는 노동의 가치를 안다는 점이다. 지난 3년간 코로나로 남편의 가게를 닫기도 하고 휴업을 한 기간도 꾀 길었다. 폐업 직전까지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그녀는 가장을 자처했다. 아무래도 무리를 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되었는데, 2년 넘게 투 잡도 아닌 쓰리 잡을 뛰던 그녀는 결국 탈이 난 모양이다. 5월부터 허리 통증이 심해져, 주 3 회오다가 주 1회로 우리 집에 오는 횟수를 줄였다. 하지만 그녀가 힘을 내는 데는 항상 자녀가 있다. 열한 살 된 딸이 조금 더 넓은 세상, 더 나은 세상에서 자신과 조금 다르게 살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환하게 웃는 것이다. 또한 베트남 여성들이 생활력과 강한 책임감으로 똘똘 뭉쳐있음을 자랑스러워하고 말이다.


돌이켜보면 그녀들은 원조 걸크러쉬이자 사자의 인간화인 ‘스뜨 하동’이 맞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투쟁 끝에 베트남의 독립과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다. 그리고 오늘도 사자들이 있어 더욱 눈부시고 말이다. 나 또한 생활력과 가족을 향한 책임감이라면 지지 않는다고 자부해왔지만 그녀들에게 비할 바는 아니다. 혹여라도 남편이 나를 ‘스뜨하동’으로 부른다면, 옳다! 이제는 피하지 않겠다. 기꺼이 그 이름으로 불리며 야생 본능뿐 아니라 제대로 된 스뜨 하동이 되도록 노력해주지! 지금은 돈 먹는 하마지만 너의 노후는 내가 반! 드! 시! 책임을 지겠다.

베트남의 소수민족, 10대 후반이면 아이를 낳고 결혼을 하기도 한다.



피. 에스. 최근 ‘젠 지(Gen Z, Z세대)’로 불리는 2000년대 출생들(20대 초반)은 이전 세대들과는 달라지고 있다. 자신의 어머니들과는 달리 희생과 순종만 하는 삶을 택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최근 결혼도 늦어지고 이혼율도 높아지는 추세다. 지역과 경제 능력에 따라 굉장히 다르지만 평균적인 결혼 연령은 여전히 25세로 비교적 젊은 편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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