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노이 민언냐 Jun 14. 2022

나의 영원한 페르소나, 남편에게 받친다!

주인공 부심 뿜뿜인 남편          일러스트by하노이민언냐

까똑 까똑!


그다! 끊임없이 감시하던 녀석은 이제 메시지까지 보내온다. 숨통을 쥐고 놓아주지 않을 셈인가. 악, 꿈이라면 제발 깨고 싶다. 아니, 차라리 이대로 잠들고 싶다. 누가 그를 멈춰줘! 제발!

지금 곁에 시름시름 병마와 싸우는 중증환자가 있다. 병마는 지켜보는 이까지 병들게 한다더니.. 백신은커녕 언제 완치될지 아무도 모른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 속 터널을 하염없이 걷는 것과 같다. 예방 불가, 대처 불가인 불치병은 언젠가부터 일상을 야금야금 침범하고 있다. 코로나보다 더 무섭다는 병, 지금부터 진짜 지옥문이 열다.


호환마마도 비켜간다는 세기의 병!

현대의학도 고치지 못하는 현대인의 질환!

환자는 물론 가족까지 병들게 하는 악마!

 

병의 정체는 바로 ‘페르소나 ’, 일명 주인공 병이다.


기세 등등 남편; “ 덕분인  알아라. 민뽕, 니는 내한테 절해야 된다. 내랑 결혼  했으면 우짤 뻔했노? 항상 감사하며 살도록..”

생색이 버거 와이프; “쪼옴! 칵~ 마!


얼마 전 브런치 글이 ( ‘선물계의 이단아, 남편이 돌아왔다.’ 편 ) D 포털 사이트의 '탑 7'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평소보다 ‘공감’ ( ‘하트’는 사랑입니다. )을 쬐끔 더 받은 정도로 알고 있던 나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공감이 올라갈수록 기분 좋은 콧노래가 나온 건도 사실이다. 하지만 D 포털 사이트를 보지 않아 순위의 존재조차 모르는 무지렁이다. 친한 언니ㅇ이 연락을 해왔다. DNA를 나눠가진 생물학적 가족을 빼면 ‘이모’ ,’ 언니’ 범가족화를 꺼리는 편이다. 지구촌 한 민족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판타지라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ㅇ은 ‘언니’라는 호칭으로 부른 지 20년이 다 되어간다. 몇 남지 않은 실낱같은 ‘찐’ 인맥 중 하나인 셈이다. D 사이트에 내 글이 뜬다고 멋지다며 톡을 보내온 그녀! 그리고 진심으로 축하하는 게 느껴졌다. 그때까지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왜 축하를 받는지 전혀 몰랐다. 단순히 그녀가 나를 아끼는 마음으로 수고하여 검색을 해줬구나~ 여겼을 뿐이다. 그런데 그게 순위에 올랐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탑 7안에 그것도 3위에 글이 올랐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준 건 바로 남편이었다. 사실 40 평생 읽을 줄만 했지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 블로거나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은 여전히 어색하다. 누구를 만나도 블로그의 정체나 브런치를 오픈하지 않는다. 소싯적에 문예상을 휩쓸었다던가 문창과를 꿈꾸는 문학 소녀였다던가 하는 참한 과거 또한 제로다. 오히려 섹스피스톨즈의 테잎을 숨겨서 듣다가 선생님께 압수당하는 시끌벅적한 에피소드만 그득그득하다. 그 흔한 글짓기에서 상을 탄 적도 학교 문예지에 글이 실린 적도 전무하다. 독서를 즐기는 엄마와 언니의 영향으로 그냥저냥 책을 멀리하지 않고 산 정도다. 초등학교때 다독상을 딱 한 번 탔고 고등학교에 들어가 도서부의 차장을 달았던 게 그나마 글과 가장 가까웠다고 할 수 있겠지. 물론 먼지 나는 도서관 책장을 싹 갈아엎어 정리하는 식의 힘쓰는 일이 주된 임무였지만 말이다. 더욱이 글 쓴 지 딸랑 9개월 된 와이프가 포털 사이트에 이름을 올리니 남편은 신기했나 보다. 주위에서 먼저 알아봐 주고 대단하다고 해주니 입꼬리가 내려오지 않았겠지. 마스크를 뚫고 터져 나오는 환한 미소가 보지 않아도 선하다. 어쩌면 그때 알아채고 진압했어야 했는데.. 그를 너무 쉽게 다. 폭주 기관차는 광야를 내달렸다. 가족 단톡은 물론 여기저기에 순위를 캡처한 사진을 뿌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그만.. 머.. 멈춰다오, 남편 녀석아! 이쯤 되면 깐느나 부커 프라이즈를 수상한 줄 착각할 정도다. 하지만 진정한 셀러브리티의 자질이 있는 사나이더라. 유명세를 즐길 줄 아는 그는 자신이 주인공이니 글에 지분이 있다며 찬란한 생색으로 대화의 클로징을 장식했으니 말이다. 무심코 쏘아 올린 글 하나가 남편의 자존감을 과잉 부스팅 하게 될 줄이야…하지만 분명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덩실덩실 신난 게 느껴져 타박하면서도 강하게 막진 못했다. 그리고 나의 글은 ‘이일 천하’(아마도)를 누리고 장렬하게 사라졌지만 말이다. 일장춘몽, 브런치여~ 제자리로 돌아가렴. 레스트 인 피스, R.I.P.



“(갑분 엄근진 모드) 거만하다, 민뽕! 항상 겸손해라!”

“(당황하며 ) 뭐라하노?”

이번 글은 너무 평이하던데.. 1 찍어야지. 분발해라! 이래서 되겠나?

......

무.. 무거워. 살려줘. 이런 과잉 관심 숨이 막힌다. 압사당할 판이다. 묵묵히 지지해주는 남자는 얼마나 멋진가. 무심하게 '하트' 눌러주고 "재밌더라." 툭 한마디 던질 때가 좋았다. 허를 찌르는 피드백 공격은 휴일에도 쉬지 않는다. 이제는 블로그의 소소한 기록들까지 검열하시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진 더 추가해라."

"확 마 시원하게 더 써라.(글 말고 딴 거 그 네모 반듯한 플라스틱을 더 쓰고 싶은 1인)"


시도 때도 없이 몰아치는 맹렬한 평가! 특히 주말은 논스톱이다. 우물우물 왕오징어를 입에 물고 맥주를 마시다가, 넷플릭스에서 개그 프로를 보며 함박웃음을 짓다가, 음쓰 봉지를 질끈 묶다가도 예고 없이 시작된다. 날카로운 눈빛의 뜬금없는 훈계는 항상 ‘겸손하라’, '긴장을 늦추지 마라'가 주제다. 누가 여기 해병대 장군님을 데려다 놓은 걸까.  남편을 돌리도오! 시도 때도 없이 엄근진 팔짱을 끼고 낮은 목소리로 호통친다. 그리고 글에 대한 피도 눈물도 없는 평가로 사람의 가슴을 후벼 다. ‘위플래쉬(Whiplash)’의 플레쳐 교수에 빙의된 겁니꺄. 이런 호들갑에 내 멘틀은 이미 너덜너덜해졌다.


사실 순위에 별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쿵쾅쿵쾅 심장이 뛰고 손끝까지 찌릿해지는 전율을 느끼지 않았다면 비겁한 그으짓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클릭했다고 생각하니 흥분되고 설레었다. 하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모든 흥분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다 먹고 난 쌍쌍바에서 ’ 하나 더’라는 글자를 발견한 정도랄까. 반짝 행복해하되 그리 박수받고 자랑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달콤한 영광은 사람을 취하게 한다. 쩡이와 쭌이가 큰 상을 탄 듯 아니 그 이상으로 흥분했다. 엄청난 일로 여기며 축하해주는 그를 보고 있자니 뿌듯함도 느꼈다. 하지만 그건 축하가 아니라 자축, 그의 감탄 포인트는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것이 더 컸으니 말이다. 이런 자기중심적인 남자 같으니라고.. 심지어 검색 수가 올라갈 때마다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10만을 훌쩍 넘겼다며 눈을 반짝이기도 했다. 발그랗게 상기된 양 볼따구에서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까지 느껴졌다. 담담하게 반응했지만 속으로 억수로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팅통팅통 키보드를 쳐서 풀어낸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이렇게 빠르게 퍼질 수 있구나. 내 책상 언저리만 뱅뱅 돌던 글들이 사실은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발사되고 있었던 것이다. 미디어의 힘이란 실로 위대하구나 하는 실감을 했다. 동시에 평범한 40대 가장에게 주인공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역효과에도 화들짝 놀라고 있었고 말이다.


보통 톱을 찍은 스타들만 걸린다는 ‘주인공 병’을 눈앞에서 보게 된 것도! 순위에 오르는 기분 좋은 해프닝도! 여태껏 경험한 적이 없는 일들이다. 말기를 걷고 있는 사나이는 2주가 지나니 천천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까똑 머스트 고 온, 집요한 소재몰이는 여전하다. 처음에는 놀리는 건가 했는데 웬걸~ 진심이었다. ‘이건 어때? 이런 건?’ 하며 글감을 물어오는 것이다. 잊을 만하면 까똑이 똿! 꼬박꼬박 적금을 붓듯 하는 성실에 감탄하기도 하고 떠오르는 영감을 나눠주는 따뜻한 마음에 감사를 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관심, 사양할게. 꼭 써야 할 것만 같은 무언의 압박과 죄책감이 든단 말이. 창작의 즐거움을 이렇게 앗아가진 말아다오.


하지만 남편에게서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자문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스포트라이트를 좋아하는 인간이었. 요즘 관심을 덜 줘서 관심이 고픈 걸까. 어디를 가도 나와 아이들 뒤를 밟으며 파파라치 컷수천 장씩 던 그였건만, 그동안 ‘페르소나’가 되고 싶어 어떻게 참았을까.


하지만 늘 결론은 '역시 남편은 알다가도 모를 존'라는 것이다. 24년을 함께 해도 깜짝깜짝 놀라게 그대를 살아있는 양파, '리빙 어니언'으로 명한다. 까도 까도 새로운 당신, 나의 영원한 페르소나! 남편! 스릉흔드~


피. 에스. 누군가는 자기를 에피소드 자판기라고 부르더라. 이번 생에 뮤즈가 되긴 글렀다. 당신이 나의 페르소나가 되구려. 너는 있는 그대로가 소재란다. 앞으로도 기똥찬 에피소드 잘 부탁드립니다요. 꾸벅! 




작가의 이전글 대환장 ‘외국 개소리’에서 딸을 사수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