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노이 민언냐 Jun 08. 2022

대환장 ‘외국 개소리’에서 딸을 사수하라!

어느 베트남 남편의 지혜             일러스트by하노이민언냐

쪄이 어이! 이 머선 외국 개소리고!


평온한 호떠이의 점심시간, 하노이 아지매와 부산 아지매는 분노로 대동 단결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쪄이 어이 (Trời ơi! 오, 마이 갓!)’를 연발하며 열과 성의를 다해 찰진 욕을 선사한다. 단전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로 양국 아지매는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H는 2살 아래로 베트남 친구다. 쩡이와 동갑인 딸을 둔 그녀는 늘 밝은 얼굴로 ‘ Xin chào, chị Min! 신 차오 찌 민’을 외친다.(찌는 베트남어로 연상의 여상을 부르는 존칭) 늘 그렇듯 한 번 만나면 한두 시간은 수다 떠느라 정신이 없다. 그녀는 모든 면에서 ‘보통’을 뛰어넘는다. 긴 연애를 거쳐 결혼이 늦어진 것도 그렇지만 딸 하나만 낳고 사는 것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인 동시에 중국과 인접해, 유교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 = 자녀 = 아들’이라는 공식이 존재한다. 게다가 결혼 적령기도 20대 초 중반이다. 물론 젊은 친구들은 결혼이 조금씩 늦어지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빠른 편이며 20대 후반에 접어들면 벌써 “에 죠이~.”( “ế rồi.”의 ‘에’는 ‘잘 팔리지 않는’이라는 의미다.)로 불리는 분위기! 그에 비하면 H 부부가 사는 방식은 전통과는 거리가 멀다. 프랑스에서 긴 유학 생활을 한 남편은 가사를 함께 하는 것은 물론 아들을 굳이 고집하지 않는다. 결혼 또한 긴 연애 끝에 20대 후반에 했고 말이다. 사실 베트남에서는 지금도 시부모님 그리고 시조부님까지 3대 4대가 한 집에 사는 게 흔하다. 물론 고부간의 갈등을 견디지 못해 이혼을 요구하는 여성들 또한 늘고 있지만 말이다.


하루는 활력 넘치는 그녀가 연신 하품을 했다. 피곤한지 걱정이 되어 물어보니 붉으락푸르락 화가 난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던 그녀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흥분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요즘 새롭게 이사 온 옆집 이웃과 살벌한 대치상태로 주말 내내 잠을 설친 모양이었다.


평온하던 H의 일상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옆집에 20대 부부가 이사 오고부터다. 두 달 된 갓난아기를 둔 외국인 부부가 온 뒤로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주 새벽 3, 4시까지 음악을 크게 틀어 대 환장 파티를 하는 건 기본이다. 파티에 온 이들은 줄담배를 피우는데, 그 연기와 냄새가 집을 가득 채워 너구리 소굴이 될 정도라고 한다. 평소에도 창문이란 창문은 다 열고 살벌한 부부 싸움까지 한다고 하니, 듣는 나까지도 거친 분노가 단전에서 치미는 것을 느꼈다. 상대를 제대로 찾았군요, 친구여! 이런 컴플레인은 내가 전문이다. 함께 욕해주는 것만으로도 분노가 반으로 줄지 않나. 욕이라면 코리아, 그중에서도 경상도다! ‘코리안 부산 아지매의 리얼 살벌한 욕’으로 쌍 싸다구를 아주 찰지게 날려준다.


사실 처음에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 놀랐다. 따지고 보면 그녀의 집은 부촌이다. 호떠이의 5성급 호텔 근처로 집세도 땅값도 비싸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인 친구들이 H가 사는 동네로 이사를 가는 걸 종종 봐왔다. 대부분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많아 조용한 주거 지역이다. 하지만 이건 옛날 말이라며 흥분하는 그녀! 요즘 많은 변화가 있다고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예의가 바르고 점잖은 이웃들이 살았다. 하지만 요즘 국제화 시대에 맞춰 외국인들을 향한 문이 넓어지고 규제가 점점 완화된 탓일까. 임시로 몇 개월만 집을 빌려 잠시 머물다 가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소위 말하는 ‘Tây Ba lô! 떠이 바로! 베트남어로 ‘백패커’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떠이 = 서쪽, 서양의 + 바로 = 프렌치 valies /발리즈/에서 유래된 ba lô 는 가방이란 뜻)


그들의 소음에 참다못해 항의도 해보지만 통하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리던 H! 대화를 시도하려고 초인종을 울려도 답이 없었다고 한다. 사실 남일 같지가 않다. 5월 내내 새벽 3시까지 울리는 음악소리에 고통받는 이웃들이 내 주위에도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머리 대면 콕 잠드는 우리 가족이 운이 좋은 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남편이 장기 출장에서 돌아오던 날! 나도 들어버렸다. 온 동네를 울리는 클럽의 음악소리를 말이다. 장기 출장을 마치고 밤 비행기로 돌올 남편을 놀라게 해 줄 심산으로 내려간 로비, 하지만 쿵쿵 쿵쿵 울리는 뜻밖의 굉음에 더 놀랐다. 로비까지 빵빵하게 들리는 거 실화? 슬금슬금 게이트를 나와 보니 레지던스의 바로 앞에 작은 나이트클럽이 범인이다. 낮에는 몰랐는데 전봇대 위로 올려다보니 대형 스피커가 떡하니 앉아있다. 큰 스피커가 하나도 아닌 둘이나 장착되어 있었다. 주거 지역에 나이트클럽이라니.. 빙글빙글 도는 스테이지, 쾅쾅 고막 터뜨리는 음악이 있는 광란의 ‘나이트’가 집 앞에 있다니, 실화입니꺄? 머리를 망치로 내리치는 듯한 소리를 사방에 퍼뜨리는 음악소리에 한동안 넋을 잃었다. 그리고 입구라고 보기 힘든 수상한 철문에 한 번 더 놀랐다. 누군가 문을 똑똑하고 두드리면 철문이 끼이익~ 열린다. 그리곤 짧은 대화 후에 뭔가 확인하더니 입장하더라. 이렇게 치밀한 나이트클럽, 있기? 없기?


Hey! Stop it!



급기야 H 부부의 분통 터지는 항쟁이 시작되었다. 이제는 생존의 문제다. 문을 두드리고 함께 소음으로 맞서 보기도 한다. 그리고 작은 나뭇가지를 쏘아 올려 창문에 시위의 뜻을 표현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던 중 일어나서는 안될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누구도 보지 말아야 할 그리고 보이지 말아야 할 장면을 마주한 것이다.


정체불명의 고함 소리에 귀를 의심한 H 부부! 하지만 어떤 메시지도 담지 않은.. 말소리가 아닌 조금 더 본능에 가까운 소리랄까. 이건 분명 부부 싸움과는 거리가 멀다. 그건 바로 열렬한 부부애를 다지는 소리였다. 2개월 된 갓난아기도 있는 그들은 육아에도 지치지 않는 팔팔한 열정의 화신이었다. 오순도순 저녁 식사를 할 시간에 커튼은커녕 창문을 활짝 열고 프라이빗 한 장면을 연출하다니.. 그녀의 남편은 격분한 나머지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불이 붙은 그들은 쉽게 멈출 줄을 몰랐다. 결국 경찰에 신고하기에 이르렀다. 외국인을 규제하기는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한 걸까. 속 시원한 해결은 되지 않은 채 흐지부지 끝이 나고 말았다.


“정해진 시간이나 신호라도 주면 미리 대비를 할 텐데…”


하지만 이런 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때마다 허둥지둥 당황하며 딸의 귀야 눈을 온몸을 던져 막는 건 부부의 몫이었다. 시간을 정해놓고 미리 사인이라도 주면 좋겠다는 그녀의 말에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미리 빨간 깃발이라도 흔들어 사인을 주고받을 것을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진지했다는 게 함정이다. 본능에 충실한 부부는 대낮에도 저녁 식사 시간에도 왕성했다. 편안해야 할 집이 하루아침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떠안은 격이다.


 결국 딸까지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한다. H의 말에 따르면 하늘을 찢는 엄청난 괴성이 들려왔고 이는 학교 숙제를 하던 10살 아이의 귀에도 들릴 수밖에 없었다. 10년 인생에 듣도 보도 못한 광란을 목격하려는 순간, H의 남편은 창밖을 내다보려던 아이의 팔을 간신히 잡았다. 손에 땀을 쥐는 순간, 아이는 영문을 몰라했다. 눈이 동그래져서 무슨 일이냐고 아빠에게 묻기 시작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딸은 아직 19금 장면에 노출이 되지 않은 상태다. 아직 반전의 기회는 살아있다. 하지만 거실에 울려 퍼지는 정의할 수 없는 음향은 어쩌란 말인가.



딸; (깜짝 놀라 아빠를 쳐다본다.) “이게 무슨 소리야?”

아빠; (당황해서 말을 더듬는다.) “어… 그.. 개.. 개.. 개소리야. 개가 짖는 거야.”

딸;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응???.. 근데 개는 이렇게 짖지 않아, 아빠.”

아빠; “그.... 개소리가 맞아.. 근데.. 외국 개소리야! 어, 외국 개라서 다른 거야. 스.. 스톱, 외국 개! ”

딸; “아.. 외국 개...”


딸은 감사하게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생각보다 쉽게 설득된 딸의 천진함에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는 그녀의 남편! 아빠의 순발력 7할 그리고 아빠를 믿는 딸의 순수함 3할의 콤비네이션이 빛을 본 셈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재치에 깊은 감명을 받아 ‘브라보’를 외쳤다. 현장에 있었다면 휘이익~ 휘파람을 부르며 기립박수를 쳤을지도 모른다. 궁극의 순발력과 현대판 탈무드란 바로 이런 것이다. H의 남편은 살아있는 현자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게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사람 말이 통하지 않으니 ‘개’ 소리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자고로 두 발로 걷는다고 다 사람은 아니다. 형상만 사람인 경계 위의 존재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심지어 이들은 외국에서 건너왔으니 ‘외국 개소리’를 한 거다. 이리저리 뜯어봐도 다른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다. 그저 ‘외국 개소리’다.


사실 그녀는 귀한 선물을 주고 갔다. 바로 ‘밧짱 빌리지(‘Bát Trang은 도자기로 유명한 지역) 특산품인 쭈옹 죠 'chuông gió' 풍경 (風磬)이다. 우리의 대화와는 너무나 결이 다른 맑은 울림을 품은 아이다. 그래, 세상에는 이런 소리도 있었다. 욕으로 다져진 마음이 깨끗하게 씻기는 기분이 든다. 뒤엉킨 작은 종과 실들을 풀어 밖으로 나와 높이 들어 본다. 바람이 부니 찰랑찰랑하는 소리가 은은하게 퍼진다. H의 집에도 외국 개소리가 아닌 풍경처럼 맑고 고운 소리만 울려 퍼지길 기도한다.


쩡이는 집에 오자마자 풍경을 알아보고 좋아한다. cảm ơn em, 깜언, 엠!

 

피. 에스. 지구 어디를 가나 괴상한 사람들은 있다. 특히 베트남은 장기 여행자로 임시로 몇 개월만 거주하고 가는 외국인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국제화와 경제 활성화를 향한 흐름이리라. 하지만 정작 베트남 사람들은 비매너 외국인들을 향한 불만이 높다. 남의 나라에서 떵떵거리고 대접만 받으려는 거만한 태도, 영어가 통하지 않으면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게 단적인 예다. 나 또한 외국인으로서 그런 적은 없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이미 누군가에게 괴상한 한국인이 되어 버린 건 아닌지 말이다.


피. 에스. 투. 개를 폄하하지 않습니다. 사람보다 나은 개가 있노라고 굳게 믿는 민언냐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하노이의 주말, 5분이 50년이 되는 탐험 미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