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노이 민언냐 Jun 06. 2022

하노이의 주말, 5분이 50년이 되는 탐험 미션

아이들은 자란다.                  일러스트 by하노이민언냐

아빠아아~~!”


아이들이 아빠의 품으로 달려와 세차게 안긴다. 와락 포옹하며 까칠까칠 수염 뽀뽀를 퍼붓는 남편! 50 만에 만나는 이산가족급 재회다. 그리고 무슨 인지 궁금해하며 돌아보고 지나가는 사람들! 나까지  끝이 찡해졌다.​



남편과 함께 하는 주말은 둘만의 동네 산책이 루틴이 되었다. 물론 산책 뒤에는 카페인 충전이라는 목적이 있지만 말이다. 모닝커피 없이 주말을 버틸 자, 누군가?​


아이들은 5월부터 중국어 수업을 시작했다. ‘어.. 엄.. 퍼얼스널리, 투웨니 센츄리 우리 아이들의 제너뤠이션에는 엄.. 차이니스가 엄.. 필수라고 섕각케요오~(왜 미쿡 교포 발음일까)’ 같은 원대한 비전이 있느냐? Không(콩, 아니)! 절대 아니다. 그저 하노이로 오기 전, 학교에서 중국어를 했다는 단순한 이유가 전부다. 새로운 걸 시작하는 데는 신중하지만 한 번 시작하면 웬만해서 중단하지 않는 지랄 맞은 성격도 있고 말이다. 칼을 뽑았으면 몽쉘통통이라도 썰어보자, 뭐 그런 식이다. 온라인으로 차이*을 하기도 했지만.. 온라인만 하다 보니 능률이 떨어져 내린 결단이다. 물론 차이*의 비싼 학비도 주된 요인이지 말입니다. 중국어 선생님은 미국인 친구(지금은 하노이를 떠났다.)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들하고 두어도 신뢰가 간다.. 고 하면 핑계일까. 바쁜 주재원의 와이프로 하노이에서 산다는 건 결코 녹녹지 않다. 그래서 둘만의 시간을 어떻게든 짜내 보려고 시작한 커피타임이다. 녜~녜~ 바쁘신 우리 남편님, 요새는 얼굴 보기도 힘들답니다. 옆집 아저씨랑 하는 ‘Hello’가 남편보다 더 쉽다지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조용한 카페, 맛있는 커피, 오랜만에 찾은 여유에 기분이 좋았다. 그동안 미뤄왔던 여름휴가 계획도(물론 남편의 합류는 미지수) 함께 세웠다. 물론 지난 3개월의 출장 동안 못한 구박과 늦은 귀가에 대한 불만이 8할이지만 말이다. (온순한 와이프는 다음 생에 만나시길!) 남편 또한 지지 않고 자신을 변호했다. 그러다 보니 훌쩍 아이들의 수업 시간이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얼른 남은 커피를 끝내고 자리를 뜨려는데, 남편은 쭌이에게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분 ‘길 찾기’ 미션이 시작된 것이다.


쿨한 남편; 쭌아!”

빙구 아들; “어, 아빠. 우리 수업 끝났다. 어디고?”

남편; “아빠랑 엄마랑  근처 카페에 있거든. 찾아올  있겠제?여기 테니스 코트 가기 전에 골목에서 왼쪽으로 꺾어서  내려오면 되거든.”

아들; “, 같다.”

남편; “아빠가 위치를 구글 맵으로 보낼게."​

아들; “, 알았다.”


당황한 와이프; “뭐… 뭐? 어, 어? 잠시만.. 나 좀 바꿔주라.”(전화기를 달라며 버둥댄다.)


뚜뚜뚜…(통화 종료)


푸악! 커피를 뿜을 뻔했다. 난데없는 아빠의 아이들 호출 그리고 ‘커피 분수쇼’를 할 뻔한 나! 그의 지령을 믿을 수가 없었다. 신은 나를 시험하기 위해 남편을 내린 걸까. 하노이에 와서 아이들은 365일 나와 함께 해왔다. ‘집 밖은 위험해!’를 외치는 엄마 덕분에 초딩 4학년과 6학년의 아이들은 아직 한 번도 스스로 레지던스 밖을 나선 적이 없었다. 베트남어를 모르는 아이들이 하노이 거리를 활보하기에 불안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동차와 오토바이들의 위험성을 가장 걱정했다. 하노이의 교통체계는 무와 유의 경계선에 있다 할 정도다. 운전자들에게는 ‘마이 웨이’만 있을 뿐, 교통 신호는 지키지 않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만 7세, 9세에 하노이로 온 아이들은 실제로 스스로 외출을 한 적이 전무하다. 하지만 이는 우리 집만 그런 건 아니다. 다른 외국인들 또한 내니(nanny)나 부모가 동행하지 않으면 외출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편은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는 나이라며 나를 설득했다. 게다가 쭌이는 나보다 길을 더 잘 찾는다는 치명적인 이유까지 댔다. 앗, 내 길치력을 들다니, 이건 반칙이다. 코앞에 목적지 놓고 반대로 가고야 마는 천상 길치는 할 말이 없어진다. 약점을 쥐고 흔드는 남편, 승! 하긴 길을 잃어봐야 우리 동네, 쭌이는 폰을 분신처럼 여기며 다니니.. 괘.. 괜찮겠지. 자기 최면을 걸며 아이들을 믿어보기로 했다.


의외로 쫄보 엄마; “제대로  알려준  맞제? 오긴 오나? 모퉁이 찻길도 있는데…”

의외로 쿨한 아빠; “, 쭌이한테 구글 맵도 보내줬다. 올끼라.”

엄마; “ 내가 데리러갈껄..”

아빠; “민뽕, 쭌이 6학년이디. 찾아올  있댔다.”

엄마; “…”


째깍째깍

그렇게 자주 카페에 왔는데, 이날 처음 알았다. 벽시계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시곗바늘 소리는 또 왜 이리도 큰지.. 초바늘이 움직일 때마다 초조함도 커져만 갔다. 사실 카페가 있는 골목길로 오려면 꺾어진 모퉁이를 돌아 들어와야 한다. 문제는 모퉁이에는 횡단보도도 신호등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베트남의 신호등은 믿을 게 못되긴 하지만 말이다. 안전한 통행을 위해 의지할 수 있는 건 단 두 가지! 길의 반대쪽을 흐릿하게 비추는 작고 볼록한 반사 거울! 그리고 타조처럼 쭈욱 늘어나는 우리들의 ‘목’이다. 어른인 나도 목을 길게 빼고 쌍방향을 잘 살펴야 하는 마의 구간인 것이다. 오토바이들이 예고 없이 불쑥불쑥 돌진해오는 길이라 아이들이 놀랄 수도 있는데.. 얼마 전에 자전거 타러 나간 S의 친구가 교통사고가 났다던데.. 등의 온갖 망상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괜히 오라고 했나.. 그냥 데리러 갈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고요하던 주말 모닝커피타임에 돌을 던지다니,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했고 말이다. 마시던 커피도 내려놓았다. 남편도 나도 말수가 줄어들며 문만 바라보기 시작했다. 결국 남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세상 쿠울~해 보이더니 그도 내심 걱정이 된 모양이다.


 앞에서  쪽을 하염없이 바라본  3분쯤 지났을까.  끝에 낯익은 까만 머리  개가 퐁퐁 흔들리는  보인다. 드디어 왔다!​

큰 머리를 흥겹게 위아래로 흔들며 터벅터벅 걸어오는 모습이 딱 쭌이와 쩡이다. 뻐끔뻐끔 눈을 크게 뜨고 다가오는 아이들! 집에서는 투닥거리기만 하더니, 밖으로 나오니 꼭 붙어있는 모습이 애틋하기까지 했다. 두 손 맞잡은 아이들은 아빠를 보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달려왔다. 그 모습이 슬로 모션처럼 보이며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엄마,  정도는 내가  찾아올  있다. 내가 누구고?

길치인 **(쭌이는  쩡이를 성까지 붙여 풀네임으로 부른다. 타인 냄새 팍팍!) 몰라도 쭌이다니가! ”


쩡이는 왜 자기들을 빼고 카페에 갔냐고 볼멘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반면 쭌이는 찾아오는 길이 너무 쉬웠다며 으스대는데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막상 잡은 아들의 손에 깜짝 놀라는 엄마다. 미끌미끌 땀이 흥건했기 때문이다. 휴지로 아들의 손을 닦아주며 웃음이 났다. 10분도 안되던 그 시간이 아이들에게도 엄마, 아빠에게도 길었음에 틀림없다. ​


이날 쭌이와 쩡이는 카페에서 주문에도 도전했다. 카운터에 가기조차 부끄러워하며 쩔쩔매더니 결국 용기 있게 브라우니와 레몬 케이크를 시켰다. 그리고 야금야금 한 톨도 놓치지 않고 먹던 쭌이와 쩡이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마치 세상에 첫걸음을 내딛는 아이를 본 것처럼 말이다. ​다 큰 아이들이 동네 커피숍에 온 게 무슨 대수냐 호들갑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아이들이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이 자랐다는 것이다. 남편의 말처럼 이제는 조금씩 탐험 미션을 던져줘도 좋을 듯하다.


피. 에스. 아이들도 스스로 길을 나선 게 꾀나 좋았던 모양이다. 두근두근 주말 탐험을 다시 하게 해달라고 했으니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선물계의 이단아, 남편이 돌아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