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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Jun 01. 2022

선물계의 이단아, 남편이 돌아왔다.

출장 선물은 누구를 위해 울리나           일러스트by하노이민언냐

시간여행 좋아하십니끄아? 사랑스러운 만 12세, 10세의 아이들마저 X세대의 주역으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자가 여기 있습니다.

남편; 이거 누가 먼저 쓸래? (큰 상을 하사하듯 장엄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이들 ; …… ( 아빠를 피하며 못 들은 척한다.)

남편; 나중에 서로 쓸라고 하지 말고~ 후회해도 몬쓴디~

아이들 ; …… (딴청을 피우며 자리를 피한다.)


집은 고요했다. 유권자를 향한 호소문처럼 남편의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진다. 계속되는 외침에도 누구 하나 답하지 않는다. ​


그가 돌아왔다.

쇼핑계의 이단아.

선물계의 혁명가.

남편이 돌아왔다.

‘지이잉 지이잉’

한국에서 3개월의 장기 출장을 마무리한 남편이 드디어 돌아왔다. 그리고 예상대로 하노이 복귀 일주일 전부터 나의 폰은 쉴 새 없이 울렸고 말이다. 남편의 귀환을 알리는 전조다. 드디어 시작되었다. 그렇지,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반복되는 패턴이다. 장기 출장의 끄트머리에 들어선 남편! 그리고 미리 짜 놓은 랩처럼 질문과 답이 왔다 갔다 한다.


소비욕 폭발 남편; “필요한 거 없나?”

남편을 불신하는 민; “없다. 걍 온나.”

남편; “미리 얘기해라. 온라인 면세점 아이디, 비번 알려주까? 장바구니에 넣어두면 결제할게.”

민; “괜츈. 자기가 오는 게 선물이지.”

남편; “옳다. 그래도 뭐 없나?”

민; “.. 돈이 쓰고 싶나?”

남편; “.. 어.. 완전..”

이놈의 티키타카! 끝이 보이지 않는 개미지옥이 열렸다. ​

누군가에게 남편 출장의 백미는 선물이라고 한다. 모든 독박 육아의 수고가 한방에 날아가는  존재! 선물! 하지만 내게는 다르다. 애써 챙겨 준다는데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훗, 그의 선물은 어나더 레벨, 상상 초월이다. 분명 반짝이는 작은 걸 사 오는 날도 있지만.... 그마저도 가격의 압박에 무조건 쌍수 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함께 갚아야 하는 카드 빚은 어쩌란 말인가. 물론 받을 때는 황홀하지만 받고 나면 뒷목이 뻐근한 것도 사실이다. 자고로 부부 사이에는 ‘니 돈도 내 거 내 돈도 내 거’라는 국룰이 존재한다. 그의 선물은 로코적으로 표현하면 ‘신선하다’고 다큐멘터리로 받자면 ‘선을 넘는다’고 할 수 있겠지. 미적 감각이 요구되는 사항은 절대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건만.. 나이 들면 느는 건 고집이라던가. 달콤한 회유도 강경한 거절도 먹히지 않더라. 그리고 스케일은 갈수록 대담해진다. 대학 입학한 다음날부터 서로를 곁에 두고 지냈다. 올해로 벌써 24년 차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남편’이라고 쓰고 ‘양파’로 읽어야 할 신비로운 존재다. 까도 까도 끝이 없는 베일에 싸인 인생 최고의 미스터리! 특히 이색적인 선물로 늘 사람을 화들짝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다.

한 번은 친언니와 단 둘이 발리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남편이 모든 경비와 육아를 도맡아 하며 보내준 포상휴가였다. 당시 서핑에 빠져있었기에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른다. 멋진 남자와 결혼한 민언냐에게 치어스! 사실 당시 남편은 회사 지원을 받아 지역 전문가로서 베트남에 1년 반을 체류하고 막 돌아온 시점이었다. 남편 없이 유치원 다니는 아이 둘의 육아와 일까지 수행한 아내를 위한 깜짝 이벤트인 셈이다. 이런 서윗한 남편 같으니라고.. 하지만 그의 배려는 거기가 끝이 아니다. 발리까지 장시간 비행으로 목 건강이 심히 염려된 것이다. 거북목인 와이프와 처형을 위해 기내용 목베개를 주문했다. 하지만.. 문제는 베개가 베개답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람을 공격하고도 남을 딱딱하고 무거운 돌덩이가 도착했다. 그것도 사이좋은 두 세트! 언니는 푸르뎅뎅 거대 쿠션의 정체에 말을 잃었다. 비주얼도 충격적이지만 목이 직각으로 꺾여 고문을 받는 불편함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결국 대망의 출국날,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큰 쿠션을 안고 발리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하지만 언니의 손에는 쿠션이 들려있지 않았다. 남편은 “누님, 쿠션 어딨어요?”라고 살갑게 챙겼다. 캐리어에 넣었다고 답하는 그녀! 하지만 난 보고야 말았다. 눈빛이 흔들리고 오른쪽 손톱을 뜯고 있었다. 백 프로 거짓말이다. 남편을 보내고 슬쩍 목베개의 행방을 물었다. 언니는 몰래 집에 두고 오는 노련함을 보였다. 어릴 적부터 상장을 휩쓸고 끊임없이 책을 읽는 지식인답소. 역시 사람은 똑똑하고 봐야 해!


이 녀석, 어쩌다 하노이까지 따라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남편은 한국에 있을 때도 자주 해외 출장을 갔다. 대부분이 베트남이었고 가끔 일본으로 가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 한 번은 미국 출장을 가게 된 것이다. 이름도 흥겨운 ‘샌프란시스코’! 입에도 착 들어맞는 ‘샌프란시스코’! 멋진 선물로 한가득 채워오겠다며 대형 캐리어를 들고 위풍당당하게 출국했다. 열흘이 지나 부산으로 돌아온 그의 가방은 과연 터질 듯이 무거웠다. 선물을 지고 온 그를 보자 나도 아이들도 산타를 만난 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똿! 캐리어를 열자 나온 건.. 가방? 목걸이? 미국 국기가 그려진 티셔츠? 노오오오~옵!

바로 ‘허쉬  초콜릿’! 흔들면 종소리가 날 것같은 만인의 초콜릿이다.

근처에 허쉬 초콜릿의 본사가 있었단다. 하지만 그의 논리에 따르면 ‘사과’ 본사에서 업무를 보고 왔으니, 사과가 중앙에 박힌 컴퓨터를 사 오는 게 더 말이 되지 않나. 부산 국제시장 아니 마트 만가도 미제, 블란서제, 벨기에제, 일제까지 갖가지 쪼꼬는 넘치는데 말 입죠. ‘아닐 거야, 장난일 거야, 이건 꿈이야’를 외치며 캐리어를 탈탈 털어봤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진지했다. 그 흔한 기념 볼펜 하다못해 열쇠고리조차 없다니.. 미국을 다녀온 게 맞는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가방만 보면 ‘남포동’ 가서 세차게 놀다 온 격이다. 쩡이와 쭌이는 한국 마트에서 볼 수 있는 바비 인형과 레고 세트를 손에 넣었다. 바비 인형은 선물을 받았을 뿐 직접 사준적이 없는 엄마다. 미국에는 플러스 사이즈나 다양한 국적의 바비 인형이 더 많다던데.. 하필이면 롯데마트에서도 재고가 싸 일대로 싸여 할인 프로모션 딱지가 붙은 아이를 사 왔다. 국제적인 유통망의 폐해를 탓할지, 그의 망손을 탓해야 할지..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서 건너온 허쉬 초콜릿의 전설은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주 다니던 하노이 출장 또한 별 반다를 건 없었다. 그때만 해도 베트남에 와본 적 없는 베알못이었다. 현지 경험 만랩에 베트남어까지 잘하는 남편을 맹신했다. 출장 뒤에 돌아오는 건, 여기도 치약! 저기도 치약! 치약이 풍년이다. 치약이나 말린 망고로 가득한 캐리어들을 보며 베트남이 커피 천국이 아니라 치약 천국인 줄 알았다. 특히 입안의 치아란 치아는 모두 다 드러내고 웃는 도시 괴담 비주얼의 아저씨를 아시는지요?  꿈에 나올까 두려운 이 무시무시한 비주얼의 아저씨가 바로 달리 치약! 정작 하노이에서는 이 치약을 산 게 손에 꼽을 정도다. 이제 나는 잘 안다. 하노이는 살 게 아주아주 많은 보물섬 같은 상점이 가득하다는 것을 말이다.

 친애하는 하노이의 선물가게들이여!

이번 부산 출장의 마무리가 다가오자 선물을 향한 카톡이 꾸준히 떠올랐다. 한 글자 한 글자에서 덩실덩실 흥분한 남편의 기분이 감지되었다. 가족 아니 선물을 위한 열정이 느껴졌다. 와이프는 강하게 브레이크를 건다. 필요한 게 없다고 말이다. 진심으로 기다리는 건 남편의 귀가지 말입니다. 하지만… 결국 사 왔더라. 이쯤 되면 그저 돈이 쓰고 싶은 걸까 하는 정당한 의심이 든다. 정 돈이 쓰고 싶으면 내 계좌에 꽂으라고 초강수를 둬보지만 남편의 지름신을 막기에는 이번에도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결과물은? 빠밤! 정체를 알 수 없는 룩의 선글라스가 방긋하고 앉아있었다. 막상 씌우고 보니 상상 속의 비주얼이 아닌가 보다. 남편은 허걱 숨을 멈춘다. 그리고 다른 가방을 열어보니! 악, 눈부셔!! 넛츠 러버 부인을 위해 견과류를 한가득... 이거 신종 맥임 수법입니꺄?!

자, 이제는 필요한 게 없는지 묻는 질문에 식은땀부터 흘리는 부인을 이해하겠지. 분명 남편의 애정 담뿍 담긴 선물이란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태생부터 가정적인 가슴 뜨신 남자, 그리고 그를 가진 운 좋은 여자(라고 믿는다)... 어쩌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할 빈틈 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 번 더 외쳐본다.​


아리가또, 남편아! 하지만 다음에는 현금으로 주십시오! 제에 바알!!


피. 에스. ( 선물에는 후기가 필수인 은근히 성실한 1인! ) 

견과류 홀릭의 와이프는 사실 많은  혼자서  먹고 이미 동을 냈다는 소문이 있지요. 투덜대면서 주면  먹는 편입니다. 우물우물  봉지를 까서 입에 털어 넣는 박력 있는 너츠 파이터! 그리고 옆에서 뿌듯해하며 지켜 남편이 말한다.


“이러니 안 사 오고 배기나?”

흐뭇한 미소를 띄우는 남편님! 감사합니다. 맛은 있더이다.

그리고 선글라스는 다행히 하나만 사 왔다. 처음에는 4만 원이라고 했지만, 5만 원에 가까운 4만 원 대란 걸 안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건 초코파이뿐만은 아니지. 예상대로 한창 패션에 민감한 4학년 딸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셔츠와 쟈켓 구분을 못하는 착한 아들 쭌이가 있었다. 남편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받은 클론 아들은 아부지의 마음을 알아준 것이다. 바닥에 나뒹굴던 선글라스를 자신의 책상 위에 전시해두었다. 역시 장남은 다르구나. 아부지는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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