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노이 민언냐 May 30. 2022

마이 볼, 마이 보이! 테니스에서 아들을 본다.

루께떠볼!               일러스트by하노이민언냐

허공을 가르고 날아드는 저 아름다운 포물선.

네트를 건너 코트 위로 가볍게 날아오른다.

덩달아 사뿐하게 왼손을 뻗으며 천천히 다가선다.

그때, 흑백 영화 속 찬란한 색을 입은 듯 빛나는 단 하나의 존재.

360도 회전하며 공이 지면을 치고 튀어 오른다.


공이 가장 높이 비상하는 그 순간!


사무라이의 검이 바람을 가르듯, 단호하고 빠르게!

롸잇나우! 라켓, 고!


팡!!!!


악 소리를 내며 삐끗하는 헛스윙! 하지만 마음만은 사라포바! 월요일은 T(eniss) - Day로 시작한다. 이번 한 주도 하노이를 테니스로 뜨겁게 불태우는 거다.

아이들이 테니스를 시작한 지 2년! 하지만 수업은 코로나로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었다. 이번에 다시 수업을 시작하며 기본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뒤늦게 수업에 합류한 나 또한 아이들과 같은 레벨이다. 테니스 경력? 쉬잇! 일급비밀이다. 그래도 정 물으셔야 한다면… 4개월 5개월? 정확히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우리는 코로나 범벅의 2년보다 지난 2개월 동안 훨씬 알차게 배우고 성장했다.

하노이는 5월이면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다. 10분만 쳐도 모공이란 모공은 땀이 흥건한 대환장 워터밤 페스티벌이다. 턱 밑까지 숨이 차올라 공 줍는 시간이 쉬는 시간처럼 달콤해질 정도다. 이렇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뛰어본지가 얼마만인가. 3주 연속, 땡볕에 쳤더니 피부가 새까맣게 그을려버렸다. 왼쪽 팔목에는 벌써 시계 모양의 자국이 야무지게 생겼다. 온몸이 땀범벅이지만 공을 쫓는 시선만큼은 진지하다. 요즘 테니스의 재미에 푹 빠져 5월부터 아예 1대 1 개인 수업까지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 토요일에 칠 수 있지만… 이걸론 성에 차지 않지 말입니다. 한 번 시작하면 하고야 마는 집요한 성격! 문제는 시작 전에 넓고 깊은 게으름의 강이 너무 자주 나타나지만 말이다. 하지만 테니스는 달랐다. 내 삶을 밝혀주는 한줄기 빛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 테니스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테니스 = 손목 힘’이라는 공식을 떠올렸다. 그래서 테니스 아니 공이 무서웠다. 하노이에서 코로나로 집을 나간 건 멘털만이 아니었다. 매일 온라인 수업을 하는 아이들을 위해 삼시세끼 프라이 팬을 흔들던 오른쪽 팔목도 함께였다. 통증이 두려워 늘 파스와 팔목 아대를 친구로 두고 있었다. 누가 그랬나, 동남아 주재원은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너덜너덜 쇠약해진 팔목에 공이 날아들 때마다 미리 겁을 먹게 되었다. 하지만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공이 아니다. 제대로 공과 마주하지 않은 채, 팔만 휘두르는 ‘자신’이다. 공을 향하는 용기와 집중력! 라켓 들고 공을 쳤다고 테니스가 아니다. 아이가 곁에 있다고 제대로 아이를 본다고 할 수 없듯 말이다.


“아이가 없나 봐요?”


테니스를 치면 칠수록 더 빠져드는 건 공을 치는 쾌감 그리고 인생을 돌이켜볼 수 있는 포인트가 있기 때문이다. 요즘 테니스에서 아이를 떠올릴 때가 많다. 하노이에서 놀란 건 3천 원이면 먹을 수 있는 퍼 한 그릇 그리고 장미 한 다발만은 아니다. 하노이는 영재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학원의 마케팅에 의한 허울뿐인 영재가 아니라 ‘찐’ 스마트한 아이들을 말하는 것이다. 언젠가 코로나 백신을 맞기 위해 대형 버스를 단체로 타고 간 적이 있다. 당시 코로나의 악화로 택시조차 잡기 힘든 때였다. 하여 회사로부터 제공된 배려의 일환이었다. 호떠이의 모 빌딩에 산다고 하니 누군가 동네를 쓱 돌아보며 말했다. 그리고 툭 던져진 질문 하나, 아이가 없냐는 것이다. 애 데리고는 못 산다는 말도 덧붙였다. 초등 6학년과 4학년의 학부모라고 하니 3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그 시공간이 쭈그러드는 듯한 멈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안다. 나무가 많아 경치가 좋다는 하나마나한 예의상 날리는 포장으로 대화는 끝났다. 그리고 귀도 시선도 그녀를 포함한 익명의 마담들로부터 닫아버렸다. 창밖의 ‘나무’가 사람보다 더 좋을 때가 바로 이런 날이다. 그리고 신나게 머리를 퉁탕퉁탕 창에 박으며 졸았던 기억만 난다. 사실 한국인이 적은 빌딩에 살기로 한 건 나무가 무성한 거리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흔들리고 싶지 않다는 염원 때문이다. 흔들림의 주체가 무엇이 되었든 말이다. 한국인 밀집 지역과는 30분 이상을 차로 가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기란 쉬운 결정이 아니다. 거기다 자녀 교육의  열쇠인 정보 교환, 사교육 인프라 그리고 한국 음식을 접할 기회가 현저히 적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덤으로 따라온다. 덕분에 남들은 쉽게 가는 한국식 중화 레스토랑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분기별로 한 번 갈까 말까 한 귀한 곳이 되어버렸다. 소똥 냄새는커녕 도시 한복판에 나고 자란 아이들을 졸지에 소똥만 한 개똥이 넘쳐나는 호떠이 촌놈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나는 학교에서 존재감이 없어.”(만 12세의 아들 왈)

코로나는 의외의 순기능도 있었다. 비교 대상 또는 정보 교류의 단절을 가져다주며 심적 평화를 선사한 것이다. 24시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삶이 힘들었지만, 수업을 이해하고 숙제 제출을 스스로 해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자랑스러웠다. 2019년 처음 하노이에 왔을 때,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명 그때에 비교하면 우리에게는 엄청난 진보였다. 하지만 대면 수업이 시작되며 여태껏 단 한 번도 관심을 가진 적이 없던 ‘포인트’ 리스트나 ‘세트’라는 현타가 왔다. 쭌이는 한국에서는 6학년이지만 영국 국제학교에서는 이미 7학년으로 세컨더리, 심지어 다음 달이면 학년이 마무리된다. 그리고 세컨더리는 ‘세트’라는 형식으로 수학, 영어 및 주요 과목이 수준별로 나눈다. 뿐만이 아니다. 학교에서는 발표, 점수 등 성과 별로 학생들에게 포인트를 준다. 그래, 학습을 증진시키려는 좋은 의도다. 하지만 문제는 매일 많이 받은 학생 10명씩들이 명단화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2주마다 포인트 별로 상위권 아이들의 이름이 쭉 나열된 리스트가 발표되는 것이다. 이것도 다른 엄마들과 모임을 하며 알게 된 부분이다. 애초에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친절하게 말하면 ‘믿어주는’ 조금 아프게 말하면 ‘방임적’인 엄마다. 매일 학교에서 누가 포인트를 가장 많이 받았는지를 챙겨보는 열정적인 엄마들도 있지만 내게는 화성만큼 먼 이야기다. 이보다 더 큰 이슈는 따로 있었다. 하루는 쭌이의 생일을 위해 큰 마음먹고 한국인 친구 두 명을 초대했다. 아이들은 한국인들이 밀집된 아파트에 살기에 꾀나 멀다. 초대를 했으니 픽업 또한 감수해야 할 부분이었다. 분명 큰 결심이 필요했다. 하지만 친구들과 신나게 웃고 떠드느라 한껏 올라간 쭌이의 입꼬리에 모든 피로가 풀렸다. 그런데 아이들의 대화에서 순간순간 마가 뜬다는 걸 감지했다. 유독 학교 이야기에서 쭌이가 조용해졌다. 그렇게 말이 많은 수다쟁이 쭌이가 말이다. 처음에는 그저 기분 탓인가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슬픈 예감은 기똥차게 맞아떨어진다. 특히 자녀에 대해서는 말이다. 아이들이 너도 나도 포인트와 세트에 대해 말을 할 때, 딴 청을 부리는 것이다. 알고 보니 쭌이만 다른 레벨로 배정을 받았다. 그리고 내 귀를 의심하게 한 그 한 마디! 자신은 학교에서 존재감이 없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어떤 선생님은 자신의 이름조차 모를 거라니. 이런 말이 반복되었다. 아차,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놓친 걸까. 학원은커녕 과외가 뭔가요? 먹는 건가요? 바이올린이, 피아노, 테니스를 빼고 과외 경험이 전무했다. 영어를 너무 못해 수업을 힘들어하자 영어 학원을 다닐 때가 잠시 있었다. 이마저도 코로나로 종료되었고 벌써 어언 2년 전의 일이다. 엉덩이를 붙이고 하는 진지한 수업다운 수업은 해본 적이 없는 그대 이름은 빙구여! 21세기에 이런 맑은 아이들도 찾기는 힘들테지. 한국에서 공수한 국민 문제집, 팽수 표지의 ‘ebs 백점 킹’을 몇 페이지 끄적대는 게 다인 녀석이다. 아들이 중고등부 선행에 적화된 국영수 학원의 아이들과 같길 바라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중간은 되겠지 하는 안일한 착각일까. 결국 가장 좋아하는 과학을 제외한 나머지 과목들은 다른 한국 아이들보다 낮은 반이었다. 심지어 수학은 한국 아이들과는 아예 동떨어진 반으로 배정받았다. 같은 반에는 한국인 학생들이 거의 없다. 한국 학생들은 수학에 강세라는 진리를 가볍게 부순 첫 케이스가 쭌이가 된 것이다. 문제집을 풀 때, 이해력이 빠르다며 물개 박수로 칭찬하던 엄마는 숨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내 자기정당화의 변명들이 몰아쳤다. 3개월마다 담임 선생님들과 한 (온라인) 면담은 뭐였지? 쭌이가 잘한다는 칭찬들만 쏟아졌지 않나? 이 모든 긍정의 평가는 허상이었단 말인가. 매번 수학, 영어 세트에 뒤지지 않을까 콕 집어서 질문하자 하나 같이 입을 모아 ‘노 프로블름’을 외치던 교사들은 그저 인사치레였던 건가? 영국은 신사의 나라라더니, 그릇되게 친절한 교사들 같으니라고.. 하지만 뒤통수 댕하게 후려치는 이런 식의 배려는 거절하고 싶다. 매번 솔직한 의견을 갈구하던 나는 좌절감이 들었다. 그리고 생일파티가 끝나고 쭌이에게 슬쩍 학교에 대해 물었다. 쭌이는 실제로 유령 학생이 되어 둥둥 떠다니는 기분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나이브한 엄마의 교육관에 쭌이의 자존감이 떨어진 것만 같아 미안한 마음 반 그리고 학교를 향한 원망스러운 마음이 반이었다. 혼란스러웠다.


“Do you really look at the ball?”


“언니, 수학 시험 결과 나왔대요. 백점 맞은 한국 아이들의 명단 떴다네.” 학교 소식에 가장 느린 나는 이번에도 다른 엄마로부터 듣고 알게 된다. 물론 전날 밤, 쭌이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쉬운 문제를 서너 개나 틀렸다고 이미 알려주었다. 점수를 환산해보니 70점을 조금 넘었다. 헛헛한 마음이 들었다. 점수에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그렇게 마음을 다잡건만 테니스에 집중할 수 없었다. 엄마들 모임에 더 적극적으로 나갔어야 할까. 수학을 잘하는 아이들과 함께 학원을 보내볼까. 역시 학원이 많은 K아파트로 이사를 가야 하나. 여러 생각들이 뒤엉켜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평소답지 않은 헛스윙의 연속! 결국 코치로부터 가볍지만 무거운 한 마디가 툭 떨어진다. 그리고 그 말은 가속도가 붙어 머리를 향해 강속구가 되어 꽂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공을 보고 있나요?”라는 단순한 말이 스쳐 지나갔다. 다른 상념을 온통이고 지고 있는데 눈앞의 공을 볼 여유 따위 있을 리가 없지. 눈앞의 공은 이미 손을 떠났다. 그리고 지금 내가 보아야 할 것은 단 하나! 이미 지나간 공이나 지난 헛스윙에 연연할수록 다음은 없다. 지금 당장 눈앞에 놓인 현재도 미래를 향한 기회의 문도 함께 닫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봐야 할 공에 집중하지 못한 채, 다른 아이들 누구는 이렇다고 하더라. 누구 레벨은 이렇더라 등의 말에 휘둘릴 것인가.


공에 집중하니 거짓말처럼 공 이외의 모든 게 아웃 포커싱 되고 희미해졌다. 주위가 초점이 나간 사진처럼 단면화되고 공만 입체적으로 스피닝 하며 시야에 떨어진다. 지금 필요한 게 바로 여기 있다. ‘마이 볼’을 외치듯 ‘마이 보이’를 외쳐야 한다. 공을 본다면 무조건 칠 수 있다는 코치의 말처럼 내 아이를 보아야 한다. 물론 아이 하나만 보고 간다는 건 쉽지 않다. 그럴 때, 하나 더! 심리학 유튜브 채널을 보다 알고리즘으로 뜬 동영상을 떠올린다. 30점짜리 수학 점수를 들고 온 아들을 안아준 엄마의 이야기! 놓친 70점보다 얻은 30점을 위해 격려와 칭찬의 포옹을 선사했다는 한 엄마의 동영상을 말이다. 70점에 실망한 나를 무릎 꿇게 만드는 엄마가 아닌가. 물론 여전히 세상 모든 똘똘이들은 쭌이 주변에 다 모아둔 게 아닌지, 음모론에 휘청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마이 , 마이 보이. 주변의 모든 부수적인 것들은 처내고 공에 집중하는 힘, 이게 바로 우리가 아이를 키우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공을 쫓아라! 그리고 튀어 오르기를 준비하고 기다리자. 그러면 온다. 좋은 공을 쳐낼 기회가 반드시 온다.


테니스를 치며 들을 본다. 그리고 묻는다. 지금 나는 아이를 제대로  있는가.


작가의 이전글 크롭티가 흉부티가 되는 베트남 패션! 전격 해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