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노이 민언냐 Jun 29. 2022

만남과 이별의 도시 하노이, 디어 마이 프렌드

그녀는 남는다                     일러스트by하노이민언냐

“Hi, my name is Blandine. Blond (hair), Blandine!”

"안녕, 난 블랜딘이야. 블론드, 블랜딘!"

2020년 6월 생일파티

금발 머리를 뒤로 쓰러 넘기며, 장난스럽게 웃던 그녀.. 하지만 더 이상 그녀를 볼 수 없다. 그녀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하노이는 만남과 이별의 도시.

그리고 시작과 끝이 공존한다.


지금 하노이는 요란하다. 코로나가 잠잠해지자 각 기업에서는 미뤄두었던 인사발령을 다시 착수 중이다. 많은 이들이 귀국하거나 다른 나라로 발령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요즘 거의 매주 송별회가 열다. 하지만 이별에는 면역성이 생기지 않더라. 여전히 억수로 힘.

2022년 6월 생일파티는 송별회가 되어버렸다.

2019년의 10월 말, 베트남 생활을 시작했다. 누가 말했나? 동남아시아 주재원은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 오는 일생일대의 호강이라고 말이다. 럭셔리한 조식 뷔페와 호텔의 클리닝 서비스에 혹한 나는 몽글몽글 분홍빛 꿈을 안고 하노이로 왔다. 하지만 코로나와 함께 와버린 덕분에 기대는 바사삭 뽀사졌다. 레지던스는 조식 뷔페와 클리닝 서비스를 잠정 중단했다. 폼나게 살 줄 알았지만 오히려 삼시세끼 팬을 흔들고 칼질을 한 덕분에 손목이 후덜덜해졌다. 향긋한 향수 냄새 풍기 우아하게 사나 했건만 코를 찌르는 시큰한 파스 냄새가 손목에서 폴폴 나기 시작했다. 잠시지만 ‘국제학교'라는 매직 워드에 기대를 걸기도 했다. 자녀 교육에서 빛을 본다면 위안이 될 것도 같았다. 하지만 타인에게 거는 기대 얼마나 덧없는 짓인가. 웬걸, 파닉스만 간당간당하게 하다 온 초딩 1학년 쩡이와 ‘하우아유? 아임 파인, 땡큐.’ 수준의 초딩 3학년 쭌이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에서 영어 좀 하는 아이들에게도 뒤쳐질 판이었다. 사실 부산에서 하노이로 올 때만 해도 한글 망각에 대한 우려를 했다. 어린 나이에 하노이로 가니 빠다 냄새 물씬 나는 ‘박찬호 선수화’를 우려했고 혹여나 교포들처럼 한글을 잊지 않을까 마음 졸였다.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잊지 않겠노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그때의 나, 등짝을 세게 후려쳐주고 싶다. 이런 걸 걱정을 사서 한다고들 하지. 삼 개월이면 “ 암.. 엄.. 마미? 하우 두유 세이 ‘***’인 코리안? ”이라고 묻는 아이들을 상상한 엄마는 웁니다. 영어 빙구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딘 성장을 보였다. 오히려 베트남 정부의 강력한 도시 전체 봉쇄령으로 아이들은 학교 간지 3 개월도 안되어  바로 온라인 레슨을 강행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쭌이와 쩡이는 온라인이 계속되자 아는 친구 하나 없는 하노이에서 넷플릭스와 돈독한 우정을 쌓기 시작했다. 온갖 쇼 프로그램을 섭렵하며 줄임말과 유행어만 수려해질 뿐이었다. 코로나라는 사상 최악의 전염병은 하노이 라이프는 장밋빛이 아니라 우중충한 멍이 들기 시작했다

당시 모든 식당, 카페 그리고 관광지가 문을 닫고 도시 전체는 한산하다 못해 유령도시가 되어갔다. 행동반경이 거실과 베란다로 제한되며 늘어난 체중 그리고 비타민 디의 결핍으로 짙어진 다크서클과 멘털도 함께 지구 내핵까지 꺼질 참이었다.


그러던 중, 퐈이널리! 2020년 뗏 연휴(베트남의 최대 명절인 구정)를 지나 코로나가 잠잠해졌고 하노이 봉쇄도 해제되었다. 그렇게 잠시 숨통을 트이며 아이들도 학교로 복귀하고 일상도 천천히 정상화되기 시작했다. (물론 2021년 구정을 지나며 여름까지 더욱더 강력한 통제가 돌아왔지만 말이다.) 그때 만난 첫 친구가 바로 블랜딘이다. 사실 실명 거론은 피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만큼은 한 번 찌인~하게 불러보고 싶다. 아니, 부르고 싶은 이름이 되어버렸다. 오늘 새벽, 그녀와 아이들은 하노이를 떠났기 때문이다.

베트남에 오자마자 가장 열심히 한 게 뭐다? 베트남어? 아이들 학원 탐색? 하노이 맛집 탐방? 노옵! 바로 자기소개다. 이렇게 열심히 이름과 신상정보를 외친지도 대학 오티 이후로 오랜만이었다. 어필하지 않으면 한낱 미물에 다름없는 나는 하노이에서 열심히 새로운 이들을 만났다. 하지만 대부분 흐릿한 안개처럼 인상착의만 어렴풋이 떠오를 뿐 이름도 얼굴도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중 평생 기억에 남을 프렌치가 내 앞에 등장했다. 아직도 그녀와의 첫 만남이 눈에 선하다. 턱을 살짝 내리고 마음속까지 꿰뚫어 보는 듯 상대의 두 눈을 지그시 바라보던 그녀.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나던 금발 단발머리를 뒤로 넘기며 블론드라 블랜딘이라며 장난스럽게 자기소개를 했다. 덕분에 이름은 뇌리에 냅다 꽂혀버렸다. 사실 내게 '길치력'과 '이름 상실증'은 거의 불치병이나 다름없다.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름을 외우는데 어려움을 겪는 나지만 블랜딘의 재치 덕에 헤매지 않고 바로 이름 입력에 성공했고 말이다. 이거슨 미라클!

아이들의 즐거운 한 때

수영, 요가, 음악 그리고 미술이라는 연결고리는 물론 호기심 가득한 성격까지... 돌이켜보면 가까워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아이들도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특히 그녀의 둘째 아들 M은 한국 나이로 열다섯, 키 180센티의 미소년이다. 공부, 성격, 매너 거기에 얼굴 천재! 이런 걸 두고 사기캐라는 거지. 학교에서의 인기? 물어 뭐해. 그호를 묻는 소녀들은 이미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미소 한방에 여심을 녹여버리니, 너의 장래 밝다 못해, 악 소리 나게 눈이 부신다. 나이와 국적, 신장 차이를 극복하고 쭌이와 레고 부품이 합체되듯 딱 들어맞았다. 서로를 프렌치 쭌, 코리안 M이라고 부를 정도였으니 말이다. 주말이면 우리 집 거실에서 소파에 누워 게임을 하곤 했는데, 두 소년의 손에는 늘 최애 음료인 뽀로로 주스가 있었다. 7년 뒤면 뽀로로 대신 맥주를 들고 있을 테지. 그 모습이 오버랩되어 웃음이 날 정도였다. M은 매일 키가 자란다고 할 정도로 폭풍성장을 보였다. 작아진 교복과 옷가지가 생길 때마다 모두 쭌이에게 토스! 이건 흡사 형제 모드다.


그렇게 조금씩 우리들의 하노이 라이프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함께 한 다낭, 호이안 여행

생각만 할 뿐 실천에 옮기지 못했던 TTC(Teacher’s Training Course), 요가 전문가 양성 과정도 그녀의 도움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하노이 생활 전에는 이름만 대면 모두 알만한 LVMH(억세게 비싼 똥이 있는 그거 맞다.) 그룹의 럭셔리 브랜드에서 잔뼈가 굵은 그녀다. 그런 그녀는 모든 캐리어를 뒤로 한 채 하노이에서 요가 코스를 밟고 강사로 활동했다. 그녀의 행보는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부산에서 요가를 즐겨했지만 전문가 양성 과정은 꿈만 꿀 뿐이었다. 주저하던 나를 응원해준 게 바로 블랜딘이다. 친분 있는 요가 강사와 요가원의 그루들을 하나둘씩 소개해주었다. TTC과정은 격주간이었지만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금요일에는 4시간 그리고 주말에는 6시간 이상이 걸려 금요일과 주말 통째로 반납해야 했다. 한 달도 두 달도 아 장작 200시간, 6개월의 과정이었다. 게다가 3회 이상 결석은 바로 아웃! 2400 USD라는 비용도 부담스러웠지만 아이들이 가장 걱정되었다. 당시 남편은 업무 양이 맥스로 치닫고 있었다.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은 반전 없는 출근! 그래서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 혼자 집에 있어야 했다. 결국 TTC 과정을 포기하려는 순간, 그녀의 둘째 아들 M이 아이들의 내니로 자처했다. 물론 약간의 용돈을 주긴 했지만 무엇보다 아이들도 M을 좋아하고 잘 따랐다. 오히려 내니를 절절히 기다리며 엄마가 요가를 가기를 손꼽아 기다렸으니 말이다. 자식 키워 봐야 소용없다는 건 진리다. 남편의 주말 출근이 잦아지자 직접 쭌이와 쩡이를 픽업하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는 날도 많았다.

그녀를 닮은 그림


"Min, let yourself dare to ruin the canvas."


그녀와 나를 끈끈하게 해 준 또 다른 연결고리는 바그림이다. 하얀 캔버스에 '감히' 선을 긋고 붓질을 하는 쾌감을 느끼도록 조언한 첫 번째 사람도 바로 블랜딘이다. 끄적끄적 패드와 노트로 소심한 낙서 하던 내가 그녀를 만나, 자신이 생겼다. 처음으로 커다란 캔버스를 마주할 '자신'말이다. 본인도 그림을 그리기에 가능했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심을 다해 내 그림을 인정해준 건 혈연관계를 빼고(의외로 이쁨 받는 막내) 그녀가 처음이었다.


"Nothing lasts forever!"


하노이에서 많은 걸 배웠지만 가장 큰 교훈은 바로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격동의 도시인 하노이에서는 더욱 그렇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블랜딘의 하노이 라이프도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녀의 가족은 원래 내년 여름까지 남기로 했다. 하지만 1달 전 갑작스러운 회사의 통보로 6월 말 하노이를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멀게만 느껴졌던 그날은 오고야 말았다.


딩동


“Hello, Min.”


지난 일요일, 오후 4시쯤 초인종이 울렸다. 낮잠을 자던 나는 부스스한 잠옷바람으로 문을 향했다. 그리고 그녀가 서있었다. 변함없이 환한 미소를 띤 채 말이다. 한 손에는 지젤을 다른 한 손에는 푸른 포장지로 싸인 네모난 물건을 들고 말이다. 사선으로 턱을 떨구며 던지는 시선과 함께 얼굴을 살짝 붉히며 슬며시 선물을 내민다. 포장지를 풀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녀의 그림, 그것도 평소 가장 좋아하던 그림이다. 그녀는 늘 직접 그린 그림들로 집을 꾸미곤 했다. 그중에서도 첫눈에 반한 그림을 내게 선물한 것이다. 제아무리 쿨, 드라이, 시크를 인생 모토로 삼는 민언냐도 이건 못 참는다. 고개를 떨군 채 한참 동안 그림을 바라본다. “Are you sure?” 내가 가져도 괜찮겠냐고 계속 물었다. “Of course! 오브 코오스~!” 영국 발음과 프렌치 발음 그 어디쯤인 블랜딘이 답한다. 서로 뜨거운 포옹을 했다. 참았던 눈물이 사정없이 터지고 흐느낌에 진동하는 내 어깨와 등을 쓸어내리며 그녀는 말했다.

2020년 크리스마스



“Min! I really want you to keep drawing. Please do not stop drawing.”


팝한 색상과 감성이 좋다며 늘 칭찬을 아끼지 않던 그녀다. 그랬지, 그녀는 진심으로 칭찬하는 사람이다. 괜히 건네는 속 다르고 겉 다른 인사치레 따위 하지 않는다. 세상 시크한 바이브, 그러나 가슴은 한 없이 따뜻한 파리지엔! 그림을 계속 그리라는 말을 남기며 복도 끝을 향하는 그녀의 뒷모습에 가슴이 찡해졌다. 그녀는 새하얀 캠퍼스를 선물하기도 했다. 물론 코로나가 소강상태를 보이며 틈만 나면 외출하는 방랑자가 되어 붓을 들지 않은지 몇 개월이나 지났다. 당연히 그 캔버스는 새하얀 원물 상태고 말이다.


우리는 수많은 파티와 행사는 물론 크리스마스 그리고 생에 첫 다낭, 호이안 그리고 나짱 여행도 함께였다. 지난 2021년 여름은 또 어떻고.. 작년은 더 강도 높은 하노이 전체 격리가 내려졌다. 그때도 그녀는 기꺼이 아이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서로의 번갈아 육아 품앗이를 했지만, 사실 그녀의 집으로 가는 날이 더 많았다. 블랜딘이 아니었다면 아이들과 집콕하며 한 여름의 광인이 되었겠지.


와인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고민과 삶에 대한 열정을 뜨겁게 논하며 밤을 채웠다. 음악과 함께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르며 쿨하게 리듬을 타던 그녀.


하지만 그녀는 가고 없다. 함께 와인잔을 기울일 수도 시시껄렁한 농담에 눈물 나게 웃을 수도 없다. 셔틀버스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하며 아이들을 놀리는 철없는 장난도 더 이상 칠 수 없고 말이다.

셔틀 버스를 탄 아들. 쭌이가 찍은 철없는 두 엄마

벌써 그립다. 긴 팔을 흔들며 '헤이, 민!'을 외치던 그녀와 쾌활한 웃음소리가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하노이에 없다. 바르셀로나의 따뜻한 태양 아래 그을린 어깨를 드러내고 환한 웃음을 보이며 있을 테지.


하지만 정말 그녀는 없는 걸까.


아니, 그녀는 함께 있다.


여전히 내게 남아있다.  


디어, 마이 프렌드! 새롭게 펼쳐질 꽃길에 치스!

그녀의 생일 겸 송별회 파티



피. 에스. 블랜딘을 통해 나 또한 이 도시를 떠나게 될 날이 온다는 실감이 들었다. 영원히 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역시 그녀는 마지막까지도 생각할 여지를 던져준다. 그럼 이제 진짜 숙제를 할 차례인가. 새하얀 캔버스를 향해 슬금슬금 손을 뻗어보자.


작가의 이전글 베트남의 사자, 그대 이름은 여자 여자 여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