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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Jul 11. 2022

어린 선생님과의 아찔한 수업

아들과 딸의 역습               일러스트 by하노이민언냐

수학과 영어에서 받은 서러움을 그대로 돌려주려는 걸까. 최연소 선생님들의 역습은 오늘따라 강도가 높다. 반복되는 설명과 연습에 아까 공부를 너무 시킨 걸까 하는 후회까지 밀려온다. 이런 게 카르마라는 거지.



헬렌 켈러와 앤 설리반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박지성과 히딩크 감독


이들의 공통점은 뭐다? 엄청난 걸 해낸 제자와 그 엄청남의 완성을 도운 스승이다. 내게도 두 명의 선생님이 있다. 상냥한 듯 단호한 어조로 지도를 하며 격려와 주의를 번갈아 한다. 단언컨대 그들은 최연소 담금질의 고수들이다. 때로는 공포의 외인구단을 버금가는 스파르타! 때로는 끝없는 응원으로 힘을 북돋아 주는 스승 2인조!


쩡이와 쭌이! 나의 만 10세의 딸과 만 12세 아들 되시겠다.

시범 연주 중인 쭌이

미뉴에뜨를 진작에 다 떼신 초딩6학년 아들; “엄마! 잘 바바! 몸에 힘을 빼! 릴랙스 해야 소리가 제대로 난다.”


역시 바이올린 3년 경력의 쭌이는 다르다. ‘반짝반짝 작은 별’만 켜던 엄마는 이번 주부터 미뉴에뜨를 시작했다. 그런 엄마를 위해 직접 연주하며 선 보인 것이다. 그래, 바로 이거다! 이게 바이올린이지! 넷플릭스 보며 코파고 빼빼로 먹던 초딩6학년이 다가 아니다.


테니스에 타이밍을 아는 초딩4학년 딸; “엄마! 내가 백핸드 하는 법을 알려줄게. 잘 보라고!”


쩡이는 또 어떻고. 얄쌍한 팔 나비처럼 펄럭인다 싶더니 공이 이내 전방으로 곧게 뻗어나간다. 슬쩍 가볍게 치는 듯하더니 쓔웅 로켓 발사! 네트를 훌쩍 넘긴다. 고수는 힘들이지 않고 상대를 제압하는 법이지. 군더더기 없는 쩡이의 움직임에 물개 박수가 절로 나온다.


한껏 긴장된 입매무새에서 혼나는 중인 걸 알 수 있다.

하노이는 이미 기나긴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우리네 엄마들에게 방학이란? 무 임금 개고생! ‘아이 학교 방학 = 엄마 학기 시작’! 어째서 이 공식은 한국이나 베트남이나 바뀌지 않는 걸까. 특히 하노이의 국제 학교는 긴 방학으로 악명 높다. 등교 일수보다 방학이 이틀이나 더 많은 거 실화? 이건 음모다. 다음 생에는 국제 학교 선생으로 태어날껴!


호떠이는 중심지에서 살짝 아니 많이 벗어난 동네다. 차로 왕복 1시간은 기본, 출퇴근 시간에는 1시간 반은 족히 걸린다. 그래서 고층빌딩도 없는 편이다. (요즘은 한국인 포함 외국인들이 늘면서 아파트도 많이 생기는 중이다.) 유러피안, 일본인들이 많아 이국적인 정취를 만끽할 수 있지만 동시에 한큐에 배달되는 한국 음식, 세계 최강 K- 사교육과도 거리가 멀다. 그래서 결단을 내린다. 이래 봬도 한 때 날리던 민 티쳐지 말입니다. 하루에 106 명의 학생을 쳐내며 새로운 수강생들은 추첨을 통해 겨우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던 ‘민 티쳐 영어 교실’! 학원을 보내지 않지만 빙구도를 최소화하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이름도 찬란한 홈스쿨링! 1등은 몰라도 꼴등은 하지 말자는 염원이 담긴 용단이다. 하지만... 이 선택, 과연 옳은 결정일까. 이주일만에 녹초가 되었다. 낯빛 점점 흙빛이 되어 가지 말입니다. 106 명의 남의 새끼보다 내 새끼 둘이 더 으려울 줄이야~ 자기 자식은 1시간 아니 30분도 어렵다는 교훈을 체감한다.


늘도 엄마는 남몰래 분노조절과 무기력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지만 쩡이와 쩡이는 태평하기만 하다. 속마음은 아수라장이 되어간다. 이런 걸 알리가 없는 쩡이와 쭌이는 오늘도 씹은 밥알도 다시 씹고 콩자반을 한 알 한 알 세며 늦장을 부린다. 최대한 수업을 늦게 시작하려는 작전이다.


너는 빨간 맛! 나는 와사비 맛! 우리의 온도차는 밀물과 썰물만큼 커진다.

틈만 나면 실없는 농담으로 일관하는 쭌이는 왜 때문에 수학 문제를 풀 때 화분에 물을 주는 거지? 그리고 돌아보면 한껏 풀린 눈으로 백일몽 시전 하는 쩡이도 있다. 빅매치! 누구 하나 쉽지 않다. 쩡이도 쭌이도 수업을 향한 항쟁에서는 한 마음, 한 뜻이다. 어쩜.. 소시지 한쪽에도 무림의 젓가락 고수가 되어 대치하더니, 공부에 농땡이는 말하지 않아도 통하더라.

방학한 지 2주! 홈스쿨링 한 지도 2주! 지금 경계할 건 바로 ‘민언냐 분노 3종 세트’다. ‘번개 번쩍 등짝 스메싱, 짱구 엄마 저리 가라 초강력 꿀밤, 하노이를 뒤흔들 괴력의 발성’만 피하면 된다. 적어도 아이들을 강제 진압했다는 죄책감만 남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수학 숙제로 실랑이를 벌이던 쩡이와 쭌이는 오늘 자기 전 슬쩍 말했다.


“엄마.. 고마워.”

“어? 머가 고마운데?”

“엄마가 화도 안 내고 많이 참잖아."

“… 알고 있나? 그걸 아는 사람이 그라나?(나도 아이들도 웃는다.)"


수학 숙제만 시키면 배를 깔고 버둥버둥, 사백안이 되어 눈을 희번덕거리며 시위하던 딸도! 영어 단어를 외울 때마다 입을 삐죽 대며 온 몸을 꼬아 인간 꽈배기가 된 쭌이도! 숨을 참으며 아랫입술을 앙 다문 엄마를 이해하고 꼭 안아주는 게 아닌가. 코끝이 그리고 가슴이 간질간질 해졌다. 화를 참느라 안간힘을 쓴 나! 엄마와 하는 공부도 군말은 많지만 해내는 너희들도 칭찬해! 물론 날이 밝으면 쩡이와 쭌이는 이 감사의 인사가 무색할 정도로 원상 복귀할 것이다. 사백안과 꽈배기가 된 인간 형상의 작은 악마들이 책상에 진을 치고 있을 게 뻔하다. 사실 급발진의 위기는 하루에도 열 번 아니 수백 번은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그때마다 머릿속에 익숙한 이미지들이 둥실둥실 떠오른다. 단호한 어조로 지도에 임하는 바이올린 선생님, 쭌이 그리고 테니스 코치 쩡이다. 지금 강하게 몰아붙이면 그 화는 부메랑이 되어 그대로 날아올 것이다.  


“엄마, 팔을 그렇게 너무 올리면 안 되고 활을 잡고 자여언스럽게~.“


아이들과 바이올린, 테니스를 함께 한지 3개월, 5개월이다. 하지만 쩡이와 쭌이는 3년, 1년 반이 되었다. 이제 막 시작한 나는 당연히 가장 후발주자로 왕 초보다. 바이올린도 테니스도 말이다. 특히 요즘 바이올린은 '나비야' 등 동요는 졸업하고 곡다운 곡 '미뉴에뜨'를 시작했다. 하지만 으스대며 어깨춤을 신나게 추던 것도 잠시였다. 느므느므 으려버~ 억수로 힘드러~ 이건 음악이 아니라 노동이다. 끼익 끼익 잡음이 폭주한다. 고막 테러에 힘겨운 건 켜는 나도 듣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고작 스케일을 2번 연습했을 뿐인데, 벌써 땀이 송골송골 매친다. 허리부터 뒷목까지 뻣뻣한 근육통이 타고 올라 부들부들 떨게 된다. 현을 잡는 왼손도 활을 쥔 오른손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 지금 연주하는 곡이 뭔지 분간도 안 간다. 그럴 땐 바이올린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싶을 정도다. 벌게진 얼굴로 발을 동동 구르는 게 바이올린을 든 고릴라다. 급기야 ‘으아아아~’하는 괴성을 지른다. 이때 아이들은 슬며시 다가온다. 이미 이런 걸 경험해 봤다는 듯한 표정이 여유까지 느껴진다. 한껏 올라간 팔꿈치를 내리도록 잡아준다. 그리고 직접 시범연주를 보이는 아이들! 어라, 아이들이 일러준 대로 자세를 고치니 소리가 나아졌다. 분노가 한여름 소프트 콘처럼 녹아내린다. 개인 교습입니꺄. 나보다 잘하면 스승으로 모시는 단순한 1인은 넙죽 가르침을 받잡는다. 3년 된 아들은 3개월 된 초보 연주자와 비할 바가 아니다. 쭌이의 미뉴에뜨를 듣자니 존경심마저 든다. 분명히 같은 바이올린, 같은 곡을 연주했는데 이토록 다르다니.. 바이올린을 배우기 전에는 몰랐다. 아이들이 왜 매일 연습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지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만 프로 이해가 된다구요.


지금 엄마는 과거에 연습을 푸시하고 혼냈던 게 떠올라 죄책감마저 든다. 쭌이는 긴장을 풀고 힘을 빼야 소리가 깨끗하게 난다고 힘주어 반복한다. 하지만 힘도 살도 빼고 싶다고 빠지는 게 아니라고요~ 끝내 쭌이의 가르침을 백 프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였다. 결국 방금 선생이었던 늙은 제자는 우두커니 홀로 거실에 남았다. 끝내 발전이 없는 제자를 참기에 만 12세의 스승은 힘들었나 보다. 미간에 주름을 펴지 못한 채 등지고 돌아선 쭌이! 문득 이 씁쓸한 시추에이션, 익숙하다. 데자뷔인가. 아까 가정법 과거형을 가르치며 나온 장면이었다. 선생과 제자의 포지션만 바뀌었을 뿐이다. 연습 문제를 틀린 쭌이와 한숨 쉬는 그때의 나!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살살할걸.. 하지만 후회해도 소용없지 말입니다. 연습은 계속된다.

“엄마, 공이 땅으로 떨어지면 라켓을 약간 땅으로 이렇게! 그리고 브러시(채를 허공에 쓸며)!”


테니스에서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아이들과 테니스를 시작한 건 코치가 수업을 제안해서다. 사실 흐믈흐믈 약해빠진 손목에 자신이 없었다. 그저 아이들과 함께 무언가 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도전했다. 그리고 제대로 홀딱 테니스의 매력에 빠졌고 말이다. 진도가 더 빠른 쩡이는 제대로 선생님 모드다. 딸은 여유 있는 성격으로 수학이나 영어를 학습할 때, 이해와 실행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래서 급한 성격의 엄마는 답답함에 재촉할 때가 많다. 얼른 끝내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것이다. 하지만 라켓을 쥐고 알았다. 성급한 성격은 타이밍이 생명인 테니스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걸 말이다. 공을 기다리지 못하고 한 템포 빠르게 라켓을 휘두르는 통에 사방팔방 공이 허공으로 튄다. 특히 왼쪽으로 날아드는 공을 치기 위한 백핸드에는 아직 쥐약이다. 허공으로 라켓을 치는 것은 물론 네트 근처엔 가지 못하고 힘없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이다. 쩡이는 그럴 때마다 개인 코치가 되어 원 포인트 레슨을 진행한다. 그런데 왠지 신나 보인다, 딸! 7월의 하노이는 하늘을 찢고 나오는 햇살과 더위로 테니스에 이상적이지 않다. 그저 서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워터파크 개장이다. 차갑게 얼린 물도 10분이면 다 녹아버릴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콧 평수를 넓혀가며 엄마에게 충고를 하는 쩡이를 보는  나쁘지 않다. 그리고 나아지지 않는 백핸드에 어깨가 처진 엄마에게는 연습하면 잘될 거라며 격려 두 스푼을 더하는 딸도 있다. 웃음이 났다. 저건 내가 수학을 하다 시무룩해진 쩡이에게 한 말이었다.


그래, 칭찬은 엄마도 춤추게 한다. 가르침에 응원과 칭찬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brunch □□□님의 새 글 : …’

‘brunch ○○○님의 새 글: …’


그리고 문득  오늘은 잠시 미뤄둔 브런치를 슬쩍 열어본다.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뒤로 미루고 미루던… 나의 숙제, 브런치를 말이다. 끊임없이 날아드는 브런치 알림에 오늘은 또 어떤 글이 나를 기다릴까, 가슴이 설레면서도 나 빼고 꼬박꼬박 멋진 글을 쌓아가는 작가님들의 행보에 조바심도 난다. 뒤통수가 묵직해지는 기분이랄까. 오늘 수학 숙제가 많다고 입술을 삐죽거리던 쭌이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공부할 때 화장실을 들락날락 대고, 꽃에 물을 줬다 말았다 하는 걸 혼낼 수가 없다. 하기 싫은 마음, 잘 안 되는 답답함 나도 경험 중이기 때문이다.


어제의 선생이 오늘의 학생이 되는 반강제 역할 전환 타이거 맘을 주춤하게도 한다. 그렇다고 단전에서 끓어오르는 천불이 없어진 건 아니다. 확실한 건 오후에 이어질 테니스와 바이올린 연습을 생각하면 진화에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으르렁 타이거 맘으로부터 아이들 아니 우리 구원하는 건 누구? 바로 선생님이자 학생인 아이들이다. 그리고 아이들과의 하루1시간처럼 순삭 된다는 사실... 을 글쓰는데 늑장부리는 이유 아니 변명으로 들 수 있을까. (하지만 집중이 안 되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잠시 미뤄둔 브런치를 올린 내게 치어스~ 이번 여름 방학만은 타이거 맘 변신만은 하지 않기로 굳게 다짐한 내게도 토닥토닥 브라보~


피. 에스. 선생과 제자, 엄마와 아이로 보낸지도 2주가 지났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방학 5주... 그런데 왜 눈에서 땀이 흐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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