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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Sep 23. 2021

메일은 매일 확인하기로!

겨울 콘서트 수난기     일러스트 by 하노이민언냐

2019.12.4. 수요일. 저녁 6시

 "어머님~ 엊그저께 학교에서 콘서트에 참여하는지 묻는 메일을 보내드렸는데, 쭌이만 참여한다고 답을 주셨어요. 그리고 쩡이는 답을 안 주셔서 참가 안 하는 걸로 알고 있었거든요."

"네? 그게 무슨…"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쩡이의 귀를 먼저 막았어야 했다. 쩡이는 자신이 무대에 서기 위해 얼마나 많은 리허설을 학교에서 했는지 거의 매일 내게 설명했다. 그리고 얇은 팔을 펄럭거리며 동작을 보여주곤 했다. 쩡이의 눈이 눈물로 일렁대기 직전이었다. 나는 재빨리 해명을 해야 했다.

  "선생님, 제가 메일이 똑같은 게 두 개인 줄 알고 하나만 확인하고  YES로 답했어요. 전 둘 다 YES 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죄송한데 이번만 좀 부탁드릴게요. 쩡이가 많이 무대에 서려고 연습도 집에서 연습도 많이 했거든요. 어떻게 안될까요?"

 

 그날은 1년에 딱 한 번 있다는, 겨울 콘서트가 열리는 날이었다. 늦어서는 안 되는 날이었다. 그날따라 기사는 늦게 도착을 했다. 멀쩡하던 차가 갑자기 길 한가운데서 고장이 났다는 것이다. 왠지 고난이 도사리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는 그 날이후 반드시 이메일을 체크한다.

 처음에 학교에서 윈터 콘서트의 이메일을 맡고 나는 속으로 ‘럭키~’라고 생각했다. 온전한 한 텀도 아닌 달랑 6주의 반 텀을 다니고도 이렇게 공연을 볼 수 있다니, 안 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집을 나선 그 시각, 도로는 엄청난 교통체증의 현장이었다. 하노이에 온 지 두 달도 지나지 않은 내가 퇴근시간에 집에서 고등어나 구웠지, 외출을 어디 해봤어야 알지. 특히 퇴근 시간이었던 그때, 도로는 엄청난 대열의 오토바이로 꽉 차있었다. 하노이 전체의 오토바이가 우리가 있는 도로 위로 모두 몰려든 것 같았다. 오토바이들은 앞차와 뒤차가 조금만 틈이 벌어져도 한 대, 두 대 줄줄이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평소 35분이면 갈 거리를 이대로 가다가는 1시간은 더 걸릴 것 같았다. 게다가 우리는 차가 20분이나 늦게 오지 않았던가.

 

 그렇게 우리는 정말 무대의 막이 오르기 7분 전에서야 겨우 도착을 했다. 나는 쩡이와 쭌이의 손을 잡고 학교로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쭌이는 오늘 첫 무대를 장식할 합창단의 단원이고 쩡이는 네 번째로 발레 무대에 오른다. 조금 더 일찍 도착해서, 쭌이는 첫 무대의 리허설을 해야 했고 쩡이는 발레 코스튬으로 갈아입혔어야 했다. 우리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엄마, 벌써 시작한 거 아냐?"

"아직 괘안타. 쩡이 발레실 어디고? 쭌아, 강당은?"

"발레실? 몰라, 기억 안 난다."

"강당은 한 층 더! 엄마, 내만 따라 온나!"


 쭌이는 학교가 제법 익숙해졌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쩡이는 타들어가는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발레실이 어딘지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입학시험을 치러 처음 BIS에 왔을 때는 학교가 커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쭌이는 강당 쪽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자, 스스로 자기 갈 길을 가겠노라고 내 손을 놓고 계단을 올랐다. 그래, 쭌이라도 먼저 올려 보내자. 멀어져 가는 쭌이의 뒷모습을 마치 아들을 전쟁터에 보내는 엄마가 된 양 비장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정작 더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건 쭌이였다

"엄마, 강당 찾아올 수는 있겠나? 2층 아니고 3층이다! 3층!" 몇 번이나 물어보고 내 다짐을 받아내며 쭌이는 돌아섰다. 쭌이는 끝까지 못 미덥다는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며 손가락으로 숫자 3을 허공에 그려 보였다. 그리곤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그러고 보니 '언제 저렇게 키가 컸지?' 쭌이의 키가 더 큰 것 같았다.

무대에서 발레하는 쩡이와 합창단의 쭌이

 쩡이와 나는 다시 발레 실로 가기 위해 길을 떠났다. 하지만 쩡이는 지독한 길치인 나를 닮았다. 방향 감각이 제로인 둘이 뭉쳤으니, 우리는 마치 발레 실과 ‘꼭 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하고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길을 끝끝내 찾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때, 먼저 우리를 알아보고 발견해 준 건 바로 J 선생님이셨다. (J 선생님은 BIS에서 유일한 한국인 선생님으로 입학시험 때도 우리를 도와주셨던 선생님이시다.) J 선생님을 만나자마자 내 가슴속에서 남북 이산가족의 재회 같은 애틋함이 솟아올랐다. 아~살았다, 늦게 와서 무대에 못 올랐다는 쩡이의 원망을 듣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마음에 안심이 되기 시작했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생겼다면, 나는 정말 하노이에서 두고두고 쩡이에게 약점을 잡혀 매일 잔소리를 들을 판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선생님께 쩡이가 갈 교실을 못 찾고 있다고 도움을 요청했더니 이메일에 대해 얘기를 하신 거다. 이러다 정말 쩡이에게 평생 원망을 들을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J 선생님께선 나의 절박함을 읽으셨을까. "그럼 해야죠, 어떻게든 하면 되죠. 어머님,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아, 역시 하늘은 날 버리지 않았다. 쩡이도 나도 축지법을 쓰듯 빠른 걸음으로 J 선생님의 뒤를 바짝 따라붙기 시작했다. 작은 체구의 J 선생님은 복도를 힘차게 걷기 시작했고 많은 아이들이 선생님을 보자 인사를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떠들던 아이들이 홍해 갈라지듯 양쪽으로 갈라서며 우리가 지나갈 길을 내주었다.

 그리고 모퉁이를 돌아간 복도 끝에  화이트와 핑크의 발레복을 입은 아이들이 보였다. 아이들은 저마다 상기된 얼굴로 대열을 맞춘 채 대기를 하고 있었다. 발레 선생님은 간절함 가득한 나의 얼굴과 J 선생님의 얼굴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싶었다. 학교에서 온 이메일들의 제목만 보고 ‘학교가 같은 이메일을 두 통을 보냈구나.’ 하고 생각했던 나의 뒤통수를 한 대 세게 후려치고 싶었다. J 선생님은 멀찍이 떨어진 거리에서 어정쩡하게 선 우리들을 향해 오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우리의 사정을 다 전달한 것으로 보였다.

 재판장에서 판결을 기다리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주춤주춤 선생님들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발레 선생님은 "Sure, why not? JJung, come here. No problem at all!" 하고 말하며 시원시원하고 소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무대 시작 전까지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탈의실 대신 교실 앞의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혀 달라고 했다. 쩡이와 나는 발레 선생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Thank you."라는 말을 반복하며 화장실로 달렸다. 그제야 말이 없던 쩡이는 안심이 되었는지, 옷을 갈아입는 내내 재잘재잘 멈추지 않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쩡이와 헤어지고 마침내 나는 쭌이가 신신당부해서 알려준 3층의 강당으로 향할 수 있었다. 자리를 미리 와서 잡고 앉은 학부모들 사이를 비집고 겨우 한자리를 발견했다. 바쁘게 뛰어온 탓에 아직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호흡이 안정될 즈음, 내 눈에 들어온 건, 학부모들의 무릎에 놓여있는 파랗거나 분홍인 꽃다발들!

 내가 잊고 온건 방향 감각만이 아니었나 보다. 꽃이라도 한 다발 사 왔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이날을 계기로 단 한 번도 메일 확인을 그냥 거른 적이 없다. 아무리 똑같이 생긴 메일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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