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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Sep 26. 2021

네 머릿속의 한국

코리아? 중국어 쓰는 나라?  일러스트 by 하노이민언냐

“안녕. 감사합니다. 오빠! 괜찮아? 사랑해요!”


 한국인을 만났다 하면 베트남 사람들 중 십 중 팔구가 하는 말이다. 나는 심지어 오빠가 아니고 언닌데 말이다. 작년에 Zenith라는 요가원에서 강사 양성 프로그램을 수료할 때였다. 당시 요가반에는 20대의 베트남 동생들이 가장 많았다. 단 한 사람의 프랑스인 친구 비비안 다음으로는 내가 최고령자였지. 20대 초 중반의 베트남 친구들 아니 동생들은(빨리 결혼했다면 내 딸뻘이기도.. 쿨럭…) 케이팝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많이 듣고 본 대사는 물론 한국 음식 요리법을 묻는 등 굉장히 친절하고 우호적이었다. 나이가 있는 중년 베트남 사람들도 ‘박항서’를 좋아한다고 내게 말한다. 나는 그런 베트남 사람들을 만나면 기분이 그냥 좋은 게 아니라… 정말 아주 매우 상당히 완전 환장하게 좋다.

 

Zenith요가원, 강사양성 과정
격주 금,토,일 6시간 수업에서 나이의 벽을 느꼈다.

동남아시아 특히 내가 있는 베트남에서는 한국의 인지도는 높은 편이다. 삼성, 엘지 등 한국 기업들의 대대적인 투자와 사업장 유치도 한몫하는 것 같다. 실제로 많은 베트남인 친구들 특히 젊은 층은 베트남의 문화보다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 등의 한국 문화를 선호한다고 한다. 그들은 블랙핑크나 BTS의 신곡이 나오면 나보다 먼저 듣고 따라 부른다. 하루는 리셉션 직원인 데이비드가 나를 급하게 불러 세웠다. 블랙핑크의 신곡이 나왔다며 뮤직비디오를 보여주는 게 아닌가. 블랙핑크 이번 신곡 대박이라고 감탄하면서 말이다. 그는 한 곡을 그 자리에서 다 따라 불렀고 나는 그런 그를 보며 감탄했다. 그는 “민, 너 어떻게 이걸 모르냐?"라고 했고 나는 “데이비드야, 어떻게 일주일도 안된 신곡을 벌써 다 외웠냐?"라고 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신기해했다.


 그럼 유러피안들에게 한국은 어떨까?

 

 “너희 중국어 쓰니? 북한은 어때? 전쟁 날 것 같아?”

 

 한국은 여전히 돌려서 말을 하면 신선한 나라, 직설적으로 말하면 무명의 나라이다. 내가 아무리 영어, 일어 혹은 불어, 베트남어를 한다고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뼛속까지 토종 한국인이다. 한국이 중국어를 쓰는 줄 아는 외국인들도 굉장히 많고 ‘한국 하면 북한’이라는 공식이 머리에 박혀 있는 이들 또한 많다. 그런 이들을 만나면 억울한 마음이 들고 그 억울함을 넘어서 때로는 위축이 되기도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코로나 시국의 초반에 취한 재빠른 대처와 사회적 거리 두기 등으로 긍정적인 수식어가 많이 붙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본과 중국은 아는데 한국에 대한 경험치나 정보가 아예 없다. 관심과 흥미도 없어 보여 슬플 때도 있다. 그렇다고 그들을 덮어 놓고 비판할 수 있을까?

 

 나 또한 상대방의 나라에 대해 무지해 “아, 음.. 아, 음..” 하다가 대화를 끝낸 적이 있다. 지금은 나이지리아에 있는 나의 네팔인 친구, 아챠나를 처음 만났을 때가 그랬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재작년이다. 우리는 레스토랑에서 조식을 먹으며 서로 알게 되었다. 네팔 출신이지만 워싱턴에서 15년이 훨씬 넘는 시간을 보냈고 결혼생활도 미국에서 시작해 아들도 미국에서 낳았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네팔에 대한 이미지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사실 ‘제로’였다. 아마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외국인들이 나를 만나면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지금은 나이지리아에 있는 아챠나

 그녀는 남편이 한국으로 출장을 다녀온 적이 수차례 있었기에 한국에 대해 들은 것도 많고 관심도 많았다. 나는 부끄러웠다. 그 뒤로 아챠나를 통해 조금씩 알아갔다. 네팔의 아름다운 도시 ‘포카라’와 세계적으로 유명한 네팔의 용병 그리고 결혼식을 할 때 입는 전통 의상 등 모든 게 새롭고 흥미로웠다. 지금 돌아보면, 그녀와 나는 일종의 유대감이 있었다. 알려지지 않은 문화권에서 온 비주류의 느낌이랄까. 지금은 네팔에 대한 기사가 뜨면 나도 모르게 그녀를 떠올리며 클릭하고, 서로 SNS로 연락을 하며 그리움을 달랜다.

아챠나의 아들 아디의 생일

 아챠나처럼 근처에 한국을 경험한 이들이 있다거나 스스로 한국을 가본 이들이 있다면 운이 좋은 거다. 흥미도 관심도 없어, 아예 무의 레벨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그걸 가감 없이 드러낸다.


하루는 내가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였다. 우리는 레지던스의 정원의 난간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가벼운 운동을 했다. 코로나로 록다운이 2달 넘게 계속되다 보니 너도 나도 살이 쪄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일본인 셋이서 하던 것이, 나의 합류로 넷이 되었다. 사실 운동 메이트가 된 일본인 세 명과는 원래 알던 사이였다. 함께 쇼핑을 가기도 하고 밥이나 차를 같이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외출을 하지 못하니 레지던스 안에서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네 아줌마가 줄을 지어 운동을 하는 게 신기했는지, 한 외국인이 유모차를 끌고 지나가던 길을 멈추고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그 뒤에 아기를 품에 안은 와이프도 함께 있었다. 남편은 단번에 일본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일본어로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모두들 "오~!" 하는 일본인 특유의 호응과 박수를 보냈다. 그는 자기소개를 하며 하노이에 온 지 3주(2주의 격리를 포함해서) 되었다고 했다. 우리도 “한국에서 온 민.”, “일본에서 온 아키에, 마미, 유카”라고 소개를 이어갔다. 소개가 끝나자마자 그 영국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일본 여행기의 썰을 풀기 시작했다. 자신은 혼자서 신칸센을 타고 일본 전역을 여행한 적이 있노라고 말이다. 그리고 일본 문화와 일본의 도시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일본인 친구들의 출신 도시를 일일이 물어보고 그녀들의 도시에 얽힌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화기애애한 자리를 이어갔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화기애애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점점 투명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한 한국인 아줌마가 있었다. 철저히 대화에 배제된 채 그 어떤 접점도 찾지 못한 나는 그룹의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표정은 담대한 척 내색하지 않았지만 머릿속은 아수라장이었다. '혼자 운동이라도 해야 하나?' 아니면 '잠깐 화장실 간다고 할까?'등의 내적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15년 같은 15분의 대화가 계속되었다. 일본인 친구들이 나와 아이 콘택트를 잠시 잠시 하며 고개를 끄덕일 뿐 그 누구도 내게 질문도 말도 걸지 않았다. 그리고 이야기가 마무리될 때쯤에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이제 내 차례야. 한국 얘기는 뭐 없나?" 하고 "나 기다리고 있었거든. 컴 온."이라는 운을 떼며 내게 들어오라는 듯 양손으로 제스처를 취했다. 그는 잠시 얼굴을 붉히며 말문이 막힌 듯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에게 계속에서 "컴온~마이 프렌드." 하고 외쳤고 모두들 웃었다. 옆에서 아기를 안고 잠자코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그의 부인은 김치 이야기를 꺼내며 내일 케이 마트에 갈 거라고 했다. 그때 알았다. 그녀의 억양은 영국식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이 우크라이나에서 왔다고 했다. 나는 "우크라이나에 미녀가 많다더니, 진짜였네. 너는 이런 미인을 와이프로 두다니 정말 운이 좋구나. 와이프를 봐~ 너는 아직도 뭐 할 말이 없나?"라고 크게 웃으며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와이프는 어깨를 으쓱해하며 의기양양해하는 포즈를 취했다. 모두 함께 크게 웃었다. 영국인 남편은 여전히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웃음꽃을 피우며 우리는 다음을 기약했다.


 나는 집에 와서 바로 우크라이나에 대해 검색을 했다. 그날 이후, 그들을 마주친 적은 아직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영국인 남편이든 우크라이나 와이프든 만날 테지.(나는 그들의 이름도 잊어버렸다.) 그럼 나는 와이프에게는 우크라이나의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즐라타'에 대해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즐라타는 미인 여가수이자 정치가라는 독특한 이력이 있는 소유자다. 그리고 남편에게는 나의 프랑스 여행기와 문화 체험기를 들려줘야지. 그리고 영국 유일의 대표 음식인 피시 앤 칩스도 살짝 언급해줄까 말까.. 그렇게 그는 투명 인간이었던 한국인이 얼마나 '뒤끝'이 긴지 알게 될 것이다. 한국 아줌마의 매운맛에 뇌까지 얼얼해할 나의 영국인 친구여, 웰 컴 투 하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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