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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Oct 10. 2022

초등 아들의 슬기로운 와치 생활

스마트 와치의 순기능              일러스트by하노이민언냐

아들 쭌; “엄마, 오늘 며칠이지?”

엄마 민; “10월 9일, 왜?”

신난 쭌; “딱 3주다. 와치 산지 일주일 뒤면 한 달 되겠다.”

쐬한 민; “…쭌아.. 엄마 생일은 아나?”

궁지에 몰린 쭌; “…… 헤헤.. 헤.. 아알지.. 3월..”

눈이 세모가 된 민; “지기뿐다, 아들.”


곧 와치 산지 딱 한 달이 된다며 연인과의 기념일을 챙기듯 설레 하는 초딩 6학년 아들! 영화 ‘Her’ 실사판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건가. 주인공 호아킨 피닉스(테오도르 역)가 삶의 공허함을 느꼈듯 아들도 인생의 헛헛함을 느낀 거냐. 그렇다고 하기에 너는 지금 홈런볼을 너무 야무지게 입에 털어 넣고 있지 않은가. 와치에게 ‘사만다’(스칼렛 조한슨 목소리)의 냄새가 난다. 이게 머선일이고?



“헤이~ 빅스비! 공기 청정기 꺼줘!”


한마디면 ‘띠리링’하고 기계의 전원이 온오프! 이건 '토털 리콜'(이 영화 아는 사람! 마흔 넘은 사람! 푸쳐 핸접!) 같은 공상영화에서 봐온 광경이 아닌가!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전자 기기 컨트롤이 가능한 시대가 지금 우리 집에서도 시작되었다. 그리고 최첨단 기술력의 최대 수혜자는 누규? 낭랑하고 설레는 목소리는 바로 쭌이! 만 12세의 초딩 아드님 되시겠다.

 출처 핀터레스트

최근 쭌이는 최신형 스마트 와치를 선물 받았다. 엄마로부터 구형을 물려받은 적은 있지만 이마저도 금방 고장이 나서 오래 쓰지 못했다. 학교에서 살짝 부딪힌 충격이 고스란히 시계에 전달되어 고장 난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소문난 ‘소비 요정’ 남편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소비 요정 남편; “뭐어? 우리 아들이 수학 숙제를 다했다고? 민뽕~ 뭐하나 사줘야 되는 거 아니가?”

수비수 와이프; “와치 안된다.”


남편; “뭐라? 우리 아들이 교정기 치료를 잘 견뎠다고? 민뽕~”

와이프; “안된다고..”


남편; “뭐시라? 우리 아들…”

와이프; “고마해라… 칵~ 마!”


그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와치를 사주려 했다. 물론 당하고만 있을 와이프가 아니다. 겨울 방학 동안 휴가라도 가려면 긴축정책이 필요지 말입니다. 완강한 수비력으로 와치 구매를 막았다. 그러던 중 남편에게 지인 찬스라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지인이 ‘신형 휴대폰’을 예약 구매하며 ‘와치 할인쿠폰’을 덤으로 받은 것이다. 그리고 와치를 살 마음이 없었기에 쿠폰을 남편에게 패스.. 아니 남편이 겟한다. 이런 초딩6학년에게 고가의 스마트 와치라니 처음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차라리 남편을 위한 시계라면 이해하겠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반값 할인이라고? 20프로도 아니고 30프로 아닌 반값? 이건 반칙이다. 반값 세일에 약한 엄마는 흔들린다. 결국 ‘돈은 쓰지만 버는 거’나 다름없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에 홀랑 넘어간다. 남편은 오랜만의 소비에 신나 했고 쭌이도 기뻐했다.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아빠의 퇴근보다 더 기다려지는 와치 배송! 그렇게 사흘이 흘렀다. 점심시간에 남편으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주문한 와치를 찾으러 간다며 설렘이 너울대는 목소리였다. 복권 당첨이라도 된냥 행복 터지는 그는 들떠있었다. 아들을 위해 바쁜 일정을 쪼개 와치를 사는 남편은 살아있는 ‘희생의 아이콘’이군요. 퇴근길, 한 손에 와치 박스를 든 남편이 어깨가 덩실덩실해져서 왔다. 이를 본 쭌이는 콧 평수가 두 배로 커져 기쁨의 함성을 질렀고 말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드림 와치가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몰랐다.

할 일 없는 일요일 오후! 급한 연락도 외출도 하지 않았던 우리 가족은 아빠가 회사일로 자리를 비운 사이, 장난감 정리를 시작했다. 서랍을 털어보니 안 쓰는 카드, 젠가, 블록 그리고 쩡이의 DIY 팔찌 만들기 세트까지 우루르 쏟아졌다. 방치 수준에 이르러 먼지가 뽀얗게 싸여있다. 쏟아지는 박스와 함께 먼지도 함께 폴폴 날렸다. 쩡이는 놀란 듯 입과 코를 막았고 쿨럭 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했다. 야외의 미세먼지보다 집 안 먼지 습격이 더 위험한 순간이었다. 신속히 마스크 착용과 공기 청정기 가동을 지시했고 다용도실의 청소기를 가지로 자리를 떴다.


“쭌이, 쩡이 마스크 끼고! 누가 공기청정기 좀 켜라. 먼지 난다.”


쩡이는 망설임 없이 공기 청정기 쪽으로 몸을 틀었고 전원을 켰다. ‘띠로리’하는 전원이 켜지는 소리가 난다. 그때! 분노의 목소리가 거실에 울렸다.


“야! □□쩡! 오빠야가 와치로 켤 수 있는데 왜 니가 켜는데..”


쭌이가 울분 섞인 목소리로 성을 붙여 여동생의 이름을 외쳤다. 이건 분노가 맥스에 달했다는 증거다. 흠칫 놀란 나는 거실로 향했다. 너무도 진지한 쭌이! 물론 쩡이는 꿋꿋하게 장난감을 들었다 놨다 할 뿐,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요즘 스마트 와치의 ‘기능 탐구’가 취미가 된 아들에게는 와치를 증명할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격이니 억울했던 것이다. 한동안 마음이 풀리지 않았는지 혼잣말을 가장한 불평은 계속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데..’라며 작은 손으로 블록을 분리해 깔 별로 정리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집에서도 시계에 마음이 뺏겨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십 분마다 새로운 배경화면을 다운받고 바꾸며 자랑하는 것이다. 줄곧 와치에만 정신을 팔는 게 못마땅해진 나는 한마디 하려다 움찔! 했다. ‘잠깐, 웨이 러 미닛!’ 이거 낯설지 않다. 대학교 2학년, 엄마를 졸라 처음 산 SKY 휴대폰(울림도 그리운 스카이 폰)이 떠올랐다. 신형 핸드폰이 너무 좋았던 나는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 벨소리만 수십 번을 바꿨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폰만 보다 엄마에게 크게 혼이 나고야 말았다. 분명 쭌이는 그때의 나와 같을 것이다.


엄마 민; “쭌아, 공기 청정기 좀 켜줘.”

아들 쭌; “어! 헤이, 빅스비!”


그 뒤로 공기 청정기 담당은 쭌이가 되었다. 물론 한 번에 빅스비가 응답해주지 않는 야속한 날이 많아 탈이지만 말이다. “헤이, 빅스비!”를 대 여섯 번 외쳐, 작동하는 걸 본 남편은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남편; “우리 집에는 빅스비 필요 없다. ‘헤이, 쭈니’하면 된다니가! 헤이 쭈니! 물 갖다줘어~”


목놓아 외친 빅스비가 다섯 번만에 공기 청정기를 틀자, 왓치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쭌이! 아들이 물을 가져다주자 남편은 계속 ‘헤이, 쭈니! 휴지!’, '헤이, 쭈니! 리모컨!'을 외치며 놀렸지만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수면 상태도 측정 중이다. 9시 취침, 7시 기상의 우수한 수면 사이클은 와치가 아니라 엄마가 보증할 수 있다고! 하지만 순기능도 있다. 내추럴 본 운동 싫어 증인 쭌이는 일일 걸음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거실을 빙글빙글 돌며 부지런히 걷는다. 하지만 그 사랑이 넘칠 때도 있다. 고작 3분을 걸어도 빠른 손놀림으로 걷기 기능을 가동하니 말이다. 테니스를 칠 때면 운동량 기록을 위해 테니스 모드로 변환한다. 물론 벤치에서 쉬고 있으면서 테니스 모드를 켜고 있는 걸 보면 반칙이 아닌지 의문도 든다.

아들의 카톡 프로필 사진과 새로 찾은 충전 기능!

반 친구들이 와치를 신기해하고 부러워한 모양이다. 친구들 앞에서 체지방 측정과 스트레스 지수 측정을 했더니 쉬는 시간에 대여섯 명이 우르르 달려와 줄을 서서 측정을 했다고 했다. 어깨가 으쓱해져서 시계를 자랑하고 우쭐해했을 아들이 눈에 선하다. 그 친구들이 뉘신지 고맙다고 떡이라도 돌리고 싶다. 덕분에 쭌이는 학교에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책임감도 느낀단다. 이렇게 비싼 신형 와치는 자신이 유일하다나. 그 마음 부디 오래가길 바란다고 하자, 자신 있다고 답하는 아들이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와치를 받은 일주일 뒤, 쭌이는 두 번째 코비드에 걸렸다. 춥다는 한마디에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렀고 결국 퀵 테스트에서 야속한 두 줄이 똿!

코로나도 와치 하나면 즐겁다.

이로써 그간 잊고 있던 코로나에 발목이 잡히고야 말았다. 하지만 허둥댈 여유 따위 없었다. 곧바로 격리 돌입! 증상은 경미했으나 코로나 확진이 전무한 여동생을 위해 엄격한 분리가 불가피했다. 삼시끼 방에서 먹고 필요한 생수도 방문 앞까지 가져다 놨다. 가족이 모두 방으로 들어가거나 집을 비워야 쭌이는 거실로 나와 겨우 숨통을 틀 수 있었다. 아들의 눈물겨운 방구석 생활과 함께 집안을 쩌렁쩌렁 울리던 '헤이, 빅스비'도 잊혀져 갔다. 영원할 것만 같던 일주일의 격리 마지막 날, 두근두근 코를 찌르는 최종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야호! 완전한 한 줄!’ 쭌이는 그제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방에서 나와 ‘엄마’하며 꼭 안기는 아들! 이산 가족 재회 저리가라의 감동 모먼트에 눈물이 핑 코끝이 찌릿했다.

충전 기능을 찾고 초 흥분상태의 아들

"엄마, 이번에 '갤럭시 워치 5 44mm 사파이어'는 최대 40시간 사용 가능하고 30분 만에 최대 45% 충전되게 업그레이드된 거 알고 있었나? 또 사파이어 크리스털 디스플레이로 바뀌었는데, 이게 대단한 게, 갤럭시 워치 시리즈 중에 최초란다. 왜 대단하냐면 액정이 긁힐 수 있잖아. 근데 크리스털 디스플레이는 긁힘에 강해서 내구성이 좋아졌다, 이거지."


격리를 마친 쭌이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집 근처 단골 카페! 최애 메뉴인 '브라우니와 아이스 쵸코'를 주문했다. 아이스 쵸코가 나오자 망설임 없이 원샷! '캬아~'하며 잔을 탁 내려놓는 게 중년 아저씨의 소주 원샷에 버금간다. 그리곤 끊임없는 수다 스타트! 고막 터지는 수다의 지옥이여, 오라! 이미 각오한 일이다. 말하길 좋아하는 토킹 머신 쭌이가 얼마나 말이 고팠을까. 그런데 듣다 보니 이야기가 기대와 다르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나 혼자 힘들었다는 내용이 아닌걸.. 결국 기승전 스마트 와치 예찬가였다. '갤럭시 워치 5 44mm 사파이어'라는 풀네임까지 읊으며 말이다. 처음 제품명을 듣는 엄마는 눈만 끔뻑 끔뻑거렸다. 세상에 이름이 ‘김 수안무 거북이와 두르미’급이다. 10번을 들어도 절대 외우지 못할 제품명을 쭌이는 단번에 술술 외우며 기능부터 제품 정보까지 쏟아낸다. 알고 보니 종일 와치로 외로운 격리 생활을 견딜 수 있었단다. 그때 알았다. 쭌이에게 와치는 '저스트 시계' 아니었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   행크스와 월슨(배구공)란 걸 말이. 

출처 구글

아들의 만 12년 5개월 인생은 와치가 있을 때와 없을 때로 나눠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 산 스마트 와치 하나, 열 인간 부럽지 않다는 건 이런 걸까. 돈은 썼지만 벌었다는 남편의 말은 어쩌면 아예 틀린 말이 아니다. 남편도 남편의 지인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지. 꾸벅!


잠자기 전까지 와치 강연은 계속 된다.


피. 에스. 아들은 와치의 새로운 기능을 매일 업데이트해준다. 그리고 얼마 전 구글 계정과 연동해 카톡을 온전히 들여오는 기능까지 섭렵했다. 기존에는 가장 최근 메시지만 확인할 수 있었다면 이제 전에 온 전체 대화와 사진까지 와치로 확인이 가능하게 되었다. 쭌이의 와치 사랑은 아예 쓸모없는 게 아니었다. 모르던 와치 기능을 파헤쳐 온전히 기능을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부작용이라면 끊임 없는 와치 얘기에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란 것이지만 말이다. 와치의 개미지옥에서 누가 날 좀 구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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