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노이 민언냐 Oct 01. 2022

사회주의 베트남의 사적인 자산 관리법

금고와 껌도               일러스트 by하노이민언냐

길을 가다 깜짝! 범죄 영화나 첩보물 007 시리즈에나 나올 법한 대형 금고가 똿! 하나 둘 아니 수십 개다. 리고 고개를 돌려보면 우왓! ** 은행 적금이자율이 무려 10프로!


궁금한 건 못 참지! 플립 폰을 촥! '내 친구 구글맵'을 오픈! 재빠르게 'két sắt' 껫 삿(금고)을 검색한다. 그러자 기나긴 검색 결과가 쏟아진다.

구글 맵, két sắt 검색 결과


은행의 적금이자율 10프로 옆에 거대 금고 판매점이라는 부조화! 총알탄 이자율과 대형 금고는 남편과 칼퇴만큼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대체 무슨 시추에이션?

베트남은 늘 새롭다. 논(베트남 모자)을 쓴 거리의 상인들, 쏟아질 듯 꽃을 가득 실은 자전거, 목욕탕 의자에 앉아 해바라기 씨앗과 커피를 즐기는 모습과 발 디딜 틈 없이 쏟아지는 오토바이 군단들 또한 볼 때마다 이색적이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건 사람도 오토바이도 아닌 바로 ‘간판’이다. 간판이라면 상호명과 전화번호가 쓰인 네모 반듯한 물체가 맞다. 한국에서의 간판은 네모네모 고만고만한 명암과도 같다. 하지만 베트남은 색상도 모양도 배치도 180도 다르다. 던지고 싶은 메시지란 메시지는 모두 쏟아내는 간판의 향연이다. 차창 밖을 잠자코 보고 있자면, 거리의 주인은 행인도 오토바이도 아닌 바로 알록달록 간판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마이크와 제인의 '하우아유? 파인, 땡큐! 앤 유?'는 잊어라. 무늬만 알파벳일 뿐 성조를 품은 베트남어는 발음도 체계도 영어와 완전 다르다. 안구를 교란시키는 보색 대비의 색상 배치, 큼직큼직 사이즈도 모양도 제각각인 간판의 향연! 그중 압도적인 횟수로 등장하는 글자가 있으니, 바로 ‘Cầm Đồ’다. ‘캄 도’ 아니면 혀 좀 더 굴려서 ‘캠 도’라고 읽어야 하나? 노옵! ‘껌 도’(성조에 맞게 끝을 내리는 디테일도 잊지 말자.)다. ‘껌 도’는 한국어로 ‘저당 잡히다’, 다시 말해 ‘전당포’를 뜻한다. 코로나로 전 세계 경제가 꽁꽁 얼어버렸지만, 유일하게 초고속 경제 성장률을 보이는 나라가 있다. 바로 베트남이다. 유일하게 7프로대의 성장률을 보이며 탈세계화의 승자로 평가되고 있다. 스마트 폰 보급률은 물론 zalo라는 자국 SNS까지 활성화된 베트남에서 껌 도 아니 전당포라굽쇼? 도통 매치가 안된다.

출처 좌.VN Express VietBank                우.KOTRA

전 세계가 주목하는 포스트 차이나, 베트남에 은행이 없냐고? 그럴 리가요. 보이는 게 은행, 차이는 게 ATM이다. 실제로 은행의 적금 이자율은 상상초월 지붕 뚫고 하이킥 수준이다. 평균 6프로에서 연 10프로까지 제시하는 은행도 있다.  하지만 적금 이자만큼이나 대출 이자도 쑥쑥 오른다는 걸 잊어선 안된다. 연이자가 10 프로에 달한다. 게다가 그동안 코로나로 떨어진 소득을 감안해 인하했던 대출 이자도 이미 상승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게 서민들이 여전히 전당포를 찾는 이유다.  

그렇다면 범죄 영화를 방불케 하는 실제로 본 적 없도 없는 금고들이 넘치는 건 왜일까. 전당포도 낯선데, 거기에 대형 금고까지! 어마어마한 크기와 무게의 금고는 대체 누가 사고 어디서 쓰는지 궁금해졌다.


여기서 지인 찬스! 알고 지낸 지 2년이 넘은 T에게 물어봤다. 하노이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T는 웃으며 답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제아무리 높은 적금 이자라도 은행 계좌에 재산을 맡기지 않는다고 말이다. 금고에 현금을 보관하는 걸 더 선호한다나. 뭐시라? 페북, 인스타 없이는 레스토랑 예약, 꽃다발 주문도 힘든 하노이가 아닌가. 은행이 아니라 금고에 현금을 쟁여 놓는 건 너무 아날로그적이. 사실 대형 금고는 만수르급 부호들의 순도 백 프로 금괴만 들이는 줄 알았는데 말이지요.


그러고 보니 인터넷 뉴스 '베트남 익스프레스'에서 이웃집 금고를 털다 검거당한 기사가 있었다. 당시 금고에 보관된 현금만 해도 무려 2억 동! 왓? 한화로는 천만 원이다. 이밖에 금품도 상당수 있었고 말이다. 대체 어느 가정에서 현찰 천만 원을 보관한단 말인가. 심지어 베트남 동은 2억이다.

출처 Vietnamese Express

사실 베트남의 남다른 금고 사랑에는 따로 이유가 있다. 1980년대 베트남에서는 Đổi mới(도이 머이) 혁명이 일었다. 말 그대로 'Đổi는 바꾸다, mới는 새롭게' 한마디로 '새롭게 바꾸자'는 경제 개혁운동이다. 개혁에는 화폐개혁 또한 포함되었다. 사실 훨씬 이전부터 여러 차례 있어 온 화폐개혁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đồng (베트남동 VNÐ)’으로 바뀐 것은 1985년 이후다. 이 화폐개혁은 단순한 도구의 교체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사회적 개혁, 혁명의 의미로 시행된 것이다. 당시 20여 년의 남북전쟁을 마친 베트남은 공산주의 정권이 승리하며 강국들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에게는 경제발전이라는 과제가 남아있었다. 뜻은 창대했으나 문제는 따로 있었다. 화폐개혁의 과정에서 정부가 개인 재산을 싹 쓸어 국유화시킨 것이다. 결국 물가 폭등을 야기하는 등 개혁은 실패로 돌아갔고 혼란과 역효과는 오롯이 민중의 몫이었다. 하루아침에 계좌에 둔 ‘마이 머니’가 국유화된다는 건 마른하늘에 날벼락 아니 핵폭탄 투하나 다름없다. 그때부터 베트남 사람들은 ‘재산은 스스로 지키는 것’이라는 강한 인식을 갖기 시작한다. 달러(USD)의 개인 소유 또한 정부가 엄격히 제한하기에 환전도 은행이 아닌 '금은방'으로 달려가기 마련이다. 현찰을 선호하며 정부에 신고하거나 기록을 남기기도 꺼려한다.


자, 이제 현금이나 현물을 은행계좌가 아닌 안방 금고에 두는 게 이제 이해가 되지 않나.

유독 은행이 인기가 없는 나라로 손꼽히는 이유도 납득이 가고 말이다. 실제로 다른 개발 도상국들의 은행 계좌 보급률이 60프로인 것에 비해 베트남은 30 프로 대에 그친다고 하니 금고 보유자가 훨씬 많다는 반증이 아닐까.


길에서 보던 금고 가게를 늘 으스스하게 보던 나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회주의지만 대형 금고로 자산을 지키는 베트남! 이쯤 되니 대형 금고를 집에 둔다면 뭘 넣을지 생각하게 된다. 음... 아무리 생각해봐도 값비싼 건 없구려. 우리 가족의 최대 귀중품은 '응어이 người', '사람'이라는 데 백만 표를 던지는 나! 어쩌면 금고 자체가 최고의 귀중품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왠지 뒷맛이 쓰다.

작가의 이전글 하노이 중심에서 ‘쌍욕’을 외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