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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Sep 15. 2022

하노이 중심에서 ‘쌍욕’을 외치다.

하노이 생존 4 계명                 일러스트 by하노이민언

평화로운 하노이 오후! 짭조름한 갈색 우엉과 노오란 단무지만 사서 조용히 뜨려고 했건만! 세상은 한시도 가만 두지 않는구나. 가슴속 깊이 숨겨둔 정의감을 불타오르게 하는 이가 있다.


"헤이, 미스터 ‘자이언트 금수’! 이제 그만 짖고 자연으로 돌아갈 때다!"


첫 째, 입 조심

둘째, 개 조심

셋째, 욕 조심

넷째, 나 조심


무탈한 하노이 생활을 위한 나만의 사 계명이다.


동남아 주재원은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레스토랑의 조식을 끝내고 오면 단정하게 정리된 방과 침대 그리고 헬스장, 수영장이 딸린 레지던스를 떠올리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문을 열고 닫아주는 레지던스의 벨보이들도 마찬가지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워킹맘의 삶을 떠올리면 상상도 못 할 혜택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인생은 늘 ‘하이틴 로맨스’일리가 없다. 어디든 상응하는 수고는 있기 마련!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3년의 하노이 라이프는 나만의 ‘사 계명’으로 아직은 무탈하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입 조심’. 제아무리 내추럴 본 아웃사이더라고 하지만 하노이는 좁고도 좁다. 한 다리 건너면 아이의 동급생 학부모 또는 이웃의 친구나 지인일 정도다. 1일 1포 포스팅을 목표로 블로그도 쓰지만 늘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블로그는 ‘잘 보고 있다’는 응원과 도움을 받고 고마움을 표하는 댓글로 힘이 난다. 그렇다고 모두가 좋은 반응은 아니다. 색안경을 쓰고 부지런히 말을 만드는 분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건 하노이뿐만 아니라 세상 어디에도 있는 일이니 겸허히 받아들이는 중이다. (세상에 한 둘씩 던지는 내 블로그는 매우 미미한 정도로 파급력이 크지도 않다.) 게다가 한 번 퍼진 말들은 주워 담기가 쉽지 않다. 한국의 한 연예인 부부가 한인 사업가와 크게 싸우고 귀국한 이야기는 한인 사회에서는 이미 유명하다. 그보다 몇 년이 지나도 박제되어 전해 내려온다는 게 더 무서울 뿐이다.

두 번째, 개 조심! 하노이에는 진짜 개, dog, chó, chien, 犬 いぬ(독, 쬬, 시앙, 이누)가 많다. 특히 목줄 없이 달리는 망아지만 한 개를 마주하면 나도 모르게 간담이 서늘해진다. 더위에 혀를 축 늘어뜨린 녀석들이 길을 막고 서면 쩡이는 물론 나까지 얼음이 된다. 지난여름 한국에서도 대형견에게 초등학생이 무참하게 공격당한 일이 있지 않았나. 하노이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주인 없는 대형견의 공격을 받아 구급차가 출동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자칫 광견병의 우려도 있다. 상상만으로 오싹해진다. 하지만 ‘개’는 대부분 털 복슬복슬 귀여운 꼬리에 네 발로 걷는 우리들의 친구임에 틀림없다. 더 큰 문제는 동물 ‘개’가 아니다. 외형은 직립 보행을 하지만 금수보다 못한 내면을 가진 이들이다. 지뢰처럼 여기저기 산재하다 보니,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민언냐 럽 리얼 개.)

“I am asking WHERE! WHERE IT COMES FROM!?”


하루는 케이마트(한국 식료품 가게)에서 초 대형 금수를 만났다. 케이마트 직원들은 한국어를 조금 할 뿐 영어에 능통하지 않다. 애초에 능통할 이유도 없다. 하루는 김밥에 넣을 우엉, 단무지를 위해 가게를 찾았다. 그때 갑자기 큰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190 센티 거구로 럭비 선수 뺨치는 비주얼! 머리에 손바닥만 한 둥근 모자를 머리에 얹은 백인 남성은 작은 물건을 흔들며(큰 손에 가려져 그 물건의 정체는 확인할 수 없었다.) 서있었다. 제품의 출처를 물으며 말이다. 하지만 손님과 계산원이 아니라 마치 연쇄 살인범을 취조하는 형사로 보인 게 문제였다. 베트남 여자 직원은 물론 옆에 선 나이 지긋한 경비 아저씨 또한 영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멀뚱멀뚱 선 그들을 보고 포기할 법도 하건만 형사 놀이에 재미를 붙인 걸까. 그는 멈추지 않고 한층 더 높은 데시벨로 윽박을 지른다. 눈알을 부라리며 핸드폰 번역기를 직원의 코 앞까지 들이댔다. 자네, 이제 형사 놀이는 멈출 때가 됐네! 그때 재빠르게 계산대로 향하는 그림자! 민언냐다. 영어와 베트남어를 번갈아 설명하며 통역을 하자 상황 종료! 알고 보니 제품 측면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정성스럽게 생산지, 유통업체가 쓰여있다. 영어를 못 읽는 거냐고 물으려다 참았지 말입니다.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선 채 레이저 눈빛과 뒤틀린 입술을 선사했다. 또박또박 칼로 자른 듯 떨어지는 말투에 그도 흠칫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지나치는 그에게 “Oh, my god!! How rude! What’s wrong? You are so loud!” (아이고, 무례하네! 뭔 일이고? 너무 시끄럽다가!”)이라고 하자, 귀부터 목까지 벌겋게 달아올라 급히 퇴장했다. 부끄럽긴 했나 보다. 하지만 이건 아직 수치심이 있는 수준이지 말입니다.

“코쿤캅!”

“Oh, we say ‘Cảm ơn‘ in Vietnamese.”

“오.. 까..깜 언!”


방콕에서 베트남의 V 항공기를 타고 하노이로 올 때였다. 끊임없이 ‘코쿤캅’을 연발하는 소음 영국인이 있었다.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웬만한 소음에는 관대한 베트남 사람들도 모두 돌아보며 눈총을 쏠 정도였다. 누가 영국은 신사의 나라라고 했나. 음절마다 욕을 하던 그는 평생 들을 ‘F***, Sh**’을 1시간 반 동안 논스톱으로 선사한다. 영국 하이틴 드라마 ‘Skins’에나 있는 줄 알았던 젊은이일세. 엔진 소리보다 사람 짓는 소리가 더 클 수 있단 걸 처음 알았다. 결국 코쿤캅을 연발하는 그에게 승무원은 ‘깜 언’을 알려줬다. 잠시 깜언으로 스위치 하나 싶더니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까지 ‘코쿤캅’을 두 손 모아 하고야 만다. 이쯤 되면 뇌구조가 궁금해질 정도다. 이들은 모두가 날을 세울 공공의 적인 셈이다. 결국 비행 내내 최애 일본 밴드인 Official Hige Dandism의 ‘Cry Baby’(에니매이션 ‘도쿄 리벤저스’의 오프닝 테마)만 수십 번을 귀터 지게 들었다. 웅장한 오프닝에 공격적인 가사 내용이 이럴 때 딱이다. 마지막 가사인 ‘誓ったリベンジ' (치캇따리벤지, 맹세한 복수)를 들으며 불끈불끈 주먹을 쥐었다.

분노가 이는 당신에게 추천한다.

하지만 조금 다른 전략형도 있다. 은근한 악취를 풍기며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장기적으로 폐를 끼치는 스마트한 유형이다. 이들은 고기에 도장을 찍듯 사람들을 등급화하길 좋아한다. ‘국적, 문화, 인종, 재력, 위치, 언어 등’의 분명한 기준을 갖고 말이다. 그리고 태세 전환에 빠르다. 약자라고 판단되면 흙발로 밟아버리고 강자에게는 찍소리 못하고 젠틀하다. 사람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길 즐기는데 첫 만남에 상당한 친화력을 발휘하며 이야기하는 걸 매우 좋아한다. 교묘한 탐색전을 친절함으로 가장하는 것이다. 직업, 아이들 학교 디테일하게는 몇 층, 몇 칸짜리 방에 있는지 서슴없이 묻는다. 그렇다면 ‘개 조심’ 경보음을 켜자. 오랜 해외생활을 한 태국계 미국인 친구 Y는 진심을 꾹꾹 눌러 말하곤 했다. “Min! Be yourself!” 그녀가 하노이를 떠난 뒤로도 이 말을 늘 되새기며 산다.


세 번째, 욕 조심! 이건.. 말 안 해도 알겠지만.. 제아무리 4개 국어, 5개 국어를 한다고 한들 치밀어 오르는 화에는 한국 욕이 최고다. F 단어들로는 상쇄되지 않는다. 일어로 ㅊㅅ 따위를 욕으로 해도 10프로도 표현이 안된다. 로맨틱한 언어의 대명사인 불어는 어떨까. ‘p****, m****’를 연발한들 목젖만 간질거리지 말입니다. 아무리 저주의 말도 불어라면 달콤한 사랑 고백으로 들린다. 어찌해도 단전에서 끓어오르는 불같은 감정표현에는 한국 욕이 최고! 가능하다면 ‘한국 욕’의 특허를 내고 수출하고 싶다.


해외에 살며 좋은 점은 혼잣말을 한국말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한국인 적은 곳에 살아도 방심은 금물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욕은 혼자 또는 속으로만 할 것을 맹세한 바! 물론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을 때가 가끔.. 아니 조금 잦다는 게 함정이다. 사고체계를 넘어 한숨처럼 자연스럽게 욕이 새어 나오는 건 나뿐인가. 그날이 바로 그랬다. 극소수의 사람들만 만나고 사는 나로서는 참으로 개탄스럽다. 너무나 터무니없어, 가만히 있다가 뺨 맞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혼자만의 망상에 상대를 걸고넘어지고 무례한 말들로 무참히 짓밟으려 덤비는 것들은 국경을 넘어 미국이든 어디든 있다. 머리가 노랗든 검든 참 교육이 필요하다. 찰진 숫자 욕과 걸쭉한 쌍시옷 발음으로 쌍 따귀를 날려줘야 하는데.. 한국어가 세계 공용어가 아닌 게 아쉬울 뿐이다. 물론 분노 유발자에게는 개소리 집어치우라는 따끔한 경고와 연락 차단으로 끝냈지만 말이다. 한국어였다면 더 실감 나고 살벌하게 했겠지만 상대방은 미쿡인이었기에 영어로 미처 분출되지 못한 ‘화’만 남았다.

부정적인 감정을 가라앉히는 데 운동만 한 게 없다. 아침 8시,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테니스 코트로 직행한다. 라켓으로 공을 팡팡 쳐내며 부정적인 에너지도 함께 보낸다. 음.. 하지만 아직도 다 풀리지 않는다. 그럼 스테이지 2, 러닝머신으로 간다. 평소 7.5 으로 일관하는 나는 속도를 12.0까지 올린다. 그럼 지금 달리는 게 내 다리인지 니 다리인지 알 수 없다. 숨이 턱턱, 눈이 빙그르르! 땀 폭발! 분노도 함께 폭발! 그래도 2프로 부족하다면? 필요한 건 모다? 스웩~ 힙합 스웩이 필요하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혼자인 것을 확인한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했다면 질러라! 거친 표현으로 범벅된 '19금 힙합'을 크게 틀고 가사인 양 욕을 섞어 외쳐본다. 이게 바로 인적이 드문 아니 아예 없는 더위의 피크 타임, 오후 1시에 찾은 이유다. 하지만 혹시나 누가 올까 중간중간에 고개를 돌려 확인하는 치밀함은 필수다. 제이 팍(박재범)의 저세상 텐션에 힘입어 내달렸다.


‘따라라라~’


신나게 달리고 지르던 중 뒤통수에서 갑분 클래식이 들렸다. 뭐.. 뭐지?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의심했다. 날카로운 가사와 둔탁한 리듬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이 우아한 클래식이란! 비발디의 사계로군요.


‘학! 헙! 악!’

뒤를 돌아보니 쭌이, 쩡이와 비슷한 나이의 여자 아이 두 명과 한 명의 선생님이 반대쪽 거울 앞에 있었다. 양손을 모아 쭉뻗은 발레 동작이 마치 꽃 위에 날아든 나비와 같다. 이.. 이게 머선일이고? 그중 아이들이 낯이 익다. 혹시 코리안...이신지요.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는 게 이런 거구나. 19금 힙합은 물론 생생한 쌍시옷의 향연을 어찌 설명할까. 여태껏 PT를 제외하고 헬스장에서의 수업은 본 적도 들은 적이 없다. 그것도 점심시간에 말이다. 황급히 음악을 끄고 러닝 머신에서 내려왔다. 빛의 속도로 나와 데스크 직원에게 국적부터 물었다. 아이들은 한국인이고 선생님은 불행 중 다행으로 베트남 선생님이란다. 당시 여름 방학을 맞이해 수업을 진행한 모양이다. 그 뒤로 욕쟁이 부산 아줌마는 한동안 헬스장을 가지 못 했다는 슬픈 전설이...


역시 사 계명 중에 가장 중요한 건 마지막 조항이었다. 말조심, 개 조심도 다 좋지만, 탑 오브 탑, 끝판 왕은 바로 ‘나님’되시겠다. 나의 적은 나! 오로지 나와 싸울 뿐! (스포츠 웨어 광고 카피인가요?) 물론 ‘나’ 조심이 철저히 실패하는 순간도 있다. 그럼 안녕한 하노이 라이프는 이미 틀어진 게 아닐까 슬그머니 걱정이 되고 말이다. 그래도 누군가의 ‘금수’가 되는 건 피하고 싶다. 그것만으로도 하노이 라이프는 성공적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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