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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Sep 11. 2022

어학은 덕질을 타고! - 태국 배우로 배우는 베트남어

사심 폭발, 덕질의 세계               일러스트by하노이민언냐

두두둑

빗방울이 떨어진다.

찰랑찰랑

하노이가 비에 젖는다.

AM 08;00

오늘도 나타난 그녀! 오른쪽 어깨에 커다란 가방이 그리고 한 손에는 아이패드가 들려있다. 직원들에게 가벼운 인사를 하고 구석 자리로 돌진한다. 같은 시간, 같은 자리! 이제 창가 맨 끝자리는 그녀만의 지정석이 되어버렸다. 매일 마시는 라테와 크루아상 그리고 까망베르 치즈 한 조각이 테이블 위에 놓인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본다. 아이와 조식을 먹는 일본인 엄마, 여행자로 보이는 유러피안 가족과 히잡을 두른 두 명의 젊은 여성들. 사정거리 내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패드와 가죽 수첩을 꺼낸다. 신속한 손놀림으로 패드 비밀번호 해제! 패드 아니 판도라 상자가 열렸다.

하노이는 일주일 내내 비가 오고 있다. 반강제 실내생활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쨍한 햇살에는 불나방처럼 밖으로 돌던 민언냐도 이제 베트남어에 시동을 걸 타이밍이다. 교재, 수다가 섞인 기분 좋은 수업 그리고 단어 노트… 하지만 갑분 열공하기엔 뭔가 부족해! 옷장에 물먹는 하마처럼 축축 눅눅해진 의지를 산뜻하게 말려줄 게 필요하다.


지상 최대 학습 촉매제는 모다? 열정! 애정! 팬심! 덕질! 덕질 머스트 고온! 두둥!

tumcial인스타그램

2주에서 2 달이면 식어버리는 인스턴트 팬심으로 평생을 버텨왔다. 적절한 덕질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어디 나왔을 법도 한데 말이지. 팬심도 연심이라면 수천 명은 마음에 품었을 것이다. 세상에 덕질과 미세먼지 그리고 바이러스 빼고 공짜가 없다. 우리의 영원한 캔디, 최진실 언니(악! 세대 차이가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나이밍 아웃! 그 입 다물라!)를 제외하고 다년간 팬을 자처한 적이 없는 1인이다. 하지만! 태국 최애 배우로 부상한 Off Jumpol(오프)은 다르다. 벌써 2년 차 팬심을 유지하고 있으니 롱런인 셈이다.

알 럽 타이! 태국은 여행도 음식도 드라마도 모두 좋아하는 1인! 그중에서도 일명 코리안 ‘오빠’ 스타일(오프가 주연한 ‘Theory of Love’라는 드라마에서 노골적인 소개에 뒷목 똿!)로 통하는 오프! 확실히 다른 태국 배우들과는 마스크부터 다르다. 그렇다고 코리안 오빠는 좀 아.. 닌.. 그럼 까다롭고 마이너 취향인 나를 홀린 매력 포인트는 무엇?! 멋쁨이 느껴지는 패션 센스다. 빙고! 민언냐는 굉장히 피상적인 편! ​

안면 인식 수준으로 얼굴 기억력이 떨어지지만.. 자연스럽게 풍기는 아우라만큼은 확실히 기억하지 말입니다. 패션을 애정 하는 사람으로서 남자도 멋쁨이 가능하단 걸 알고 무릎을 탁 쳤다. 스토커 수준의 검색을 시전 하는 민언냐! 그리고 찾았다. 베트남어 자막 영상을 말이다. 플레이보이 이미지도 귀엽고요! 뭐야 뭐야! 지금 글 쓰면서 벌써 얼굴 벌게진 거야?!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베트남어는 이제 되지 않았나? 그만해도 될 것 같은데.. 민뽕!”​


다음 달이면 하노이 생활을 한 지 3년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영어를 더 많이 쓰는 건 왜 때문일까요. 무엇보다 한국인보다 일본인, 유러피안이 집중된 ‘호떠이’에 사는 게 크다. 어쩌다 보니 한국인보다 외국인들을 접할 기회가 많아져 버린 나! 가깝게 지내는 한국인 친구도 있다. 하지만 코리안 타운인 ‘미딩’은 너무 멀다. 연락은 자주 하지만 만나려면 용단이 필요하다. 미국인(지금은 하노이를 떠났지만, 여전히 자주 연락하는 친구 Y), 일본인 M이나 프렌치 B(그녀도 지금은 스페인에 정착했다.), P는 모두 한동네에 살며 쉽게 만날 수 있는 이웃이자 친구들이다. 베트남에 살지만 현지인과의 대화가 늘 고픈 아이러니한 상황! 그래서 수업을 통해 베트남어 대화가 용인되는 희한한 경험을 하는 중이다. 물론 쇼핑 몰, 마트, 시장 등에서 베트남어를 쓰지만 가격이나 비싸다며 흥정을 하는 부산 아지매 스멜 넘치는 대화일 뿐이다. 결국 정해진 표현만 쓰는 것이다. 이건 제대로 된 베트남어 회화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수업과 숙제는 가능한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하고 온 남편을 맞이하는 건 달콤한 ‘어서 와!’가 아니라 곰팡내 나는 ‘왔나?’로 점철된 초췌한 와이프다. 늦은 시각까지 머리를 쥐어뜯으며 베트남어와 씨름을 하는 와이프를 향해 측은한 눈빛을 보낸다. 절레절레 도리도리 고갯짓과 함께 베트남어는 그만하면 되지 않았냐는 말도 한다. 베트남어 자격증 보유자에게서 동정심 따위 받고 싶지 않아! 그런 ‘도리도리’도 옳지 않아! 실제로 영어 사용률이 80프로에 육박하는 일상을 잘 아는 남편이다. ‘Lạc Long Quân và Au Cơ’( 롱 꿘 바 어 꺼)를 읽느라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아내를 걱정한 것이리라. 베트남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락 롱 꿘 바 어 꺼’는 사실 한국의 단군신화로 볼 수 있다. (옛날 아주 머언 옛날, 요정의 딸인 ‘어 꺼’와 용의 아이들 ‘락 롱’이 만난다. 그리고 100개의 알을 낳는데 알 마다 아들이 한 명씩 태어나고… 이만 후략해도 될까. 척척박사 ‘네이버’는 가까이에 있답니다.) 오래된 이야기이니 당연히 단어나 표현도 생전 처음 듣는 게 많다. 그르나! 제아무리 생소한 문어체에 압사당한다 할지라도 눈앞에 펼쳐진 숙제를 모른 척하기엔.. 난 너무 고지식하다.

사실 베트남어 공부를 힘들게 하는 건 실제 회화 빈도와 함께 오래된 교재도 한 몫한다. 30년 전인 1990년 대의 ‘라테는 말이야’식 시대상황이나 이야기를 다루는 지문들은 흥미를 지구 내핵까지 떨어뜨린다. 그렇다고 프리 토킹만 하자니 왠지 모르게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 맥락 없는 수다에 수업료를 내는 게 싫은 1인! 말하는 대로~가 아닌 ‘커리큘럼 충’이라 해도 좋을 만큼 계획적인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 교재를 포기할 수 없다. 성조가 틀려도 ‘아’하면 ‘어’로 찰떡까지 알아듣는 외국인 발음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베테랑 선생님과도 한계가 있다. 그렇게 실생활 표현을 향한 갈증을 해소할 방법으로 내세운 게 바로 덕 투 더 질, ‘덕질’이다. 물론 사심 터지는 취미 생활이란 건 안 비밀! 베트남어에 회의가 들 때, 슈퍼 빠워얼~을 주는 건 흠모하는 배우, 가수들이다. 생생한 표현을 접하는데, 유튜브만 한 게 없고 말이다. (아직 제이 팍, 박재범의 미국 라디오쇼로 스웩 넘치는 영어를 익힌답니다.)

동영상에 베트남어 자막이 다 있는 건 아니다. 이럴 때는 넷플릭스 찬스! 바쁘다, 바빠! 리얼리티 쇼를 이용해 자막을 켜면 마무으리! 들어는 봤나! ‘테라스 하우스’! 성인 남녀 6인이 함께 지내면서 사랑과 꿈을 좇는 간단히 말해 리얼리티 연애 프로다. 이보다 일상 회화로 100프로 구성된 프로다. 평소 넷플릭스를 볼 때도 베트남어 자막을 늘 켜지만 영화나 드라마의 대사가 늘 실용적이지 않아 그냥 넘기는 경우가 더 많다. “다음 생에 태어나면 나무가 되고 싶어.” 따위의 대사! 평생 쓴 적도 쓸 일도 쓰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면 어째서 자막에 이렇게 집착하냐고? 베트남어를 들으면 된다고? 한국어, 일어 또는 영어는 발음을 듣고 스펠링을 비슷하게 써낼 수 있다. 하지만 베트남어는 다르지 말입니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성조와 삼키는 발음으로 받아쓰기가 어렵다. 하여 자막 활용이 지금 내게는 딱이다.

요즘 베트남어 학습은 온통 태국 배우인 ‘Off Jumpol 오프’로 향한다. 하지만 갑분 태국 배우라니, 당황하셨나요? 중국어와 베트남어도 아니고 태국어와는 언어적 유사성이나 접점이 전혀 없는데 말이다. 고백컨데, 영어와 일어는 아직 씹어먹는 수준…(악! 매 좀 부르는데! 오늘이 인생 마지막 날인 양 까불기 있기 없기?) 그래서 자막에 집중하지 않고도 노 프로블름! 자막이 BGM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태국어는 ‘싸와디캅(싸와디 카), 코쿤캅(코쿤 카)’, 숫자 1부터 5, 쓰레기(카야; 태국인 친구의 말을 주워 들었다.)가 내가 아는 전부다. 그래, 구질구질 주절주절 대지 말고 깨끗히 인정해라. 태국어는 1도 모른다. 윽, 밀려드는 수치심은 나의 몫! 하여 태국 영상을 보면 믿을 건 베트남어 자막뿐이다. 물론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하고 말이다. (학창 시절에 이 몰입도였다면 내 무대는 지금 NASA일 듯.) 물론 최애 배우의 얼굴만 봐도 힘이 불끈불끈 솟지만, 팬이라면 내용에 귀 기울이며 학구열에 불타는 건 당연하다. 특히 오늘 찾은 영상은 인터뷰다. 찬찬한 진행과 대문짝만 한 자막으로 화면이 가득, 읽기도 쉬워! 찬찬한 속도 나이스! 이건 베트남어 공부(덕질이라는 탁한 의도도 있지만..)를 위한 맞춤 영상이다.

오프는 이날 자신의 장점, 결점 세 가지 그리고 쌍둥이로 불리는 Toni Rakkaen에 대해 말한다. ​


bị+동사 ; 수동태, 부정적인 의미, ~당하다. (감기, 질병 등도 bị 를 쓴다.)

so sánh với ~와 비교하다

người 사람 như mình 나 같은

ưu và khuết điểm 좋은 (점) 그리고 결점​

song sinh 쌍둥이


오프하면 포토제닉 하기로 유명하다는 사실! 사진을 찍을 때, 취하는 포즈에 대해서도 묻는다. 입을 삐쭉 내미는 것을 좋아하는 그의 답은 “Mình thích chu miệng.” (입을 츄하며 내미는 걸 좋아해요.) 입을 삐쭉 내미는 트레이드마크 포즈를 시전.. 으윽! 더 이상은 무리야! 심장아, 나대지 마! 아침부터 심장이 남아나질 않아!


Thương 평소, 보통 tạo dáng 포즈 취하다

khi 때

chụp hình 사진 찍다

7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활동을 함께 건! 오프 하면 건! 건하면 오프!(일명 ‘옾깐’이라 불리지요. 말하면서 헤벌쭉~해지는 건 뭐냐? 흐른다, 흘러! 입 닫아!) '지금까지 건과 함께한 최고의 행복한 순간은?'이라는 질문으로 이 누나 또다시 변태 모드 온! 온갖 망상이 날아든다. 꺄악!


khoảnh khắc 순간, 찰나 vui 기쁜

nhất 가장, 최초의, 하나

tới까지

thời điểm 시점 hiện tại 현재


오늘도 발갛게 귀까지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며 멋대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간신히 끌어내리느라 힘들었다. 변태성이 탄로 날 아슬아슬한 고비가 여러 번 있었지만 포커페이스로 일관한 나, 브라보! 어깨를 떨며 행복한 웃음을 참던 내게도 치어스! 패드를 접고 단어장을 챙긴다. 그리고 카페를 나선다. 어학을 빙자한 덕질 끝에는 분명 더 나은 베트남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노이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사랑은 비를 타고 아니 어학은 덕질을 타고!

피. 에스. 덕질의 유일한 부작용이라면 현실감이 점점 떨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들 쭌이에게 오프를 씌우기 시작했다. 쭌이가 크면 오프처럼 입히고 싶어 안달 난 엄마! 오늘도 인스타를 감상하며 망상에 빠진다. 이 정도면 스토커인가. 어학 공부의 탈을 쓴 열망의 노예가 되어버린 나! ​우리 쭌이 무럭무럭 자라다오. 일단 캐빈 클라인 티셔츠부터 사고 얘기 시작하자. 그리고 다리도 좀 길고 봐야겠지. 에또... 피부가 하얗... 삐!! 탈락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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