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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Jan 12. 2023

베트남, 노동과 자본의 지독한 먹이사슬

베트남 노동력의 흐름             일러스트by하노이민언냐

웰컴 투 더 퀴즈쇼! 민언냐의 국적을 맞춰라!


“Người Lao?”(라오스 사람?)

“Không mà.”(아니에요.)

“Người Thái Lan?”(태국 사람?)

“Ngươi Hàn mà.”(한국인이에요.)

“…”

베트남 친구와 함께 하는 로컬 식당 탐사! 평소 알던 모습과는 다른 찐 하노이를 만날 수 있어 즐겁다. 골목길 구석구석 가정집을 개조한 작은 분짜 식당을 찾아갔다. 점심시간이 12시지만 우리가 간 시각은 1시 반! 왜 이리 늦게 왔냐고 타박하는 주인아주머니! 하지만 말과는 달리 아주 빠르게 식초, 맘 느억, 다진 마늘과 고추 등을 테이블에 내놓는다.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짝거리는 테이블, 깔끔하게 정돈된 의자와 젓가락에 감동하며 사진을 찍는 민언냐! T와 베트남어로 대화를 하지만 억양이 어설픈 게 어느 나라 사람인지 궁금했나 보다. 아주머니는 슬쩍 채소를 올리며 주위를 맴돈다. 그리곤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온다. 이때 T는 한번 맞춰보라고 장난스럽게 받아쳤다. 3초간 나를 곰곰이 쳐다본다. 그 시선이 너무 진지해 덩달아 긴장이 되었다. “라오스 사람.”이라고 했다. 음.. 이건 생애 처음 듣는 말이다. 한국인이라고 한 번에 맞추는 경우가 거의 없는 1인은 웁니다. 그 반응이 재밌어 ‘꺼이꺼이’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T의 반응이 싸늘하다. 강하고 단호한 어조로 ‘Không’(No)을 말하며 고개까지 절레절레 흔드는 게 아닌가. 빛의 속도로 부정하는 그녀의 반응이 더 당황스러웠다. 갈 곳 잃은 시선은 잘 닦인 식탁을 향했고 아주머니와 친구사이의 정적에 애꿎은 젓가락만 만지작거렸다. 그렇게 국적 맞추기는 다시 시작되었다.


 쇼 머스트 고 온! 이번에는 태국 사람이란다. 결국 정답 근처도 가지 못하고 더 멀리 겉돌게 생겼다. 이쯤 되면 스스로 정답을 오픈해야 한다. 두근두근 정답 오픈! 한국인이라는 답을 공개하자 아주머니는 몇 번을 ‘người Hàn?!’(한국인, 응어이 한)을 반복한다. 그렇게 쇼킹했단 말인가. 아주머니는 허를 찔린 듯 멍한 표정을 짓더니 빠르게 퇴장했다. T는 “찌(CHỊ 베트남어로 언니, 누나), 오프 좋아하니 잘됐네~ 태국인이라니..ㅋㅋ” 내가 태국 배우 ‘OFF JUMPOL’의 팬이란 걸 아는 그녀는 장난스럽게 놀렸다. 우리는 한바탕 크게 웃었고 마침 나온 분짜를 받아 식초를 넣고 후루룩 면치기를 시전했다.

OFF 공식 인스타그램 tumcial

집에 와서 남편에게 식당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라오스 사람이라고 하자 T가 정색을 하더라고 덧붙였다. 정색의 스피드가 빛과 같아 당황했다는 이야기를 하니 남편은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다. 오히려 이해된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닌가. 이 온도차는 무엇? 알고 보니 베트남에도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태국을 제외하고 베트남이 눈부신 경제 성장을 하며 새로운 ‘드림 랜드’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주로 배치되는 현장은 베트남 사람들도 꺼리는 위험한 직업군이다. 건설 현장이나 고층 빌딩 관리나 청소 등 주로 일용직이 대표적이다. 이는 어떤 사고나 위험에도 보험이 미흡해 베트남에서는 기피하는 편이다. 노동 강도에 비해 수입이 높지 않다는 것도 주요인이고 말이다. 특히 라오스와 인도네시아, 캄보디아는 지리적으로도 근접해 왕래도 쉽다.


이거다! T의 갑분싸 표정의 신비가 풀렸다.

인도차이나반도의 5개 나라는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그리고 미얀마다. 이들 중 종주국은 태국, 미얀마 그리고 포스트 차이나로 신흥 세력이 바로 베트남이다. 특히 태국은 경제적 성장과 교통 체계 등의 사회적 인프라를 빠르게 발달시키며 위상도 높아 인도차이나반도에서 왕으로 군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베트남이 태국을 향해 촉각을 세우며 축구는 물론 경제, 코로나 이후에 국경을 여는 시기까지 라이벌로 삼는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다. 반면 라오스, 캄보디아를 향한 베트남의 태도는 온도차가 크다. 베트남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남부(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남부를 장악하던 천년 왕국 참파) 지방은 서로 밀접한 부분이 많다. 여전히 소수민족으로 라오스 족, 캄보디아 족이 존재할 정도다. 하지만 라오스나 캄보디아 노동자들을 향한 시선은 싸늘하다. 성조가 있는 베트남어를 가장 잘 구사하며 외모도 흡사하지만 기피 직업군에 고용되며 차별을 받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주 낯선 이야기도 아니다. 한국 또한 비슷한 역사적 배경이 있지 않나. 1960년 대, 한국 또한 전쟁으로 제로에서 스타트해야 했다. 경제 성장을 위해 당시 일본, 북미, 유럽 등 외국으로 노동력을 수출했다. 동남아시아도 마찬가지다. 라오스나 캄보디아 등에서 베트남으로 돈을 벌기 위해 온다. 평균 임금의 50 - 60프로를 수급하며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을 하지만 자국에 있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수입의 반 이상을 보낸다. 역설적이게도 베트남의 노동력 수출 또한 여전하다. 원래 일본을 향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요즘 엔화가 떨어지면서 한국으로도 가는 이들이 늘고 있다. 특히 2019년 영국으로 가는 냉동 컨테이너를 타고 불법 입국하려다 전원 사망한 사건도 있지 않았나. 당시 불법 입국자들은 중국인일 것이라는 추측과 달리 베트남 사람들로 판명 났다. 포스트 차이나라는 타이틀과 함께 눈부신 경제 성장을 발표했지만 베트남 전체가 수혜를 받는 건 아니다. 여전히 중부 지역은 소외되고 열악하다. 물론 냉동 컨테이너의 희생자들은 중부 지역 출신들이었고 말이다. 10대부터 45세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브로커에게 30년 월급에 달하는 4500 만원을 지불하고 해외로 향했지만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안타까운 뉴스는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곤니찌와!”


자주 가는 동네 시장에는 일본인 친구 ㅁ과 나를 향해 ‘곤니찌와’를 외치는 청년이 있다.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그 또한 나고야에서 견습생으로 지내며 가족을 부양했다. 지금은 시장에서 달달한 땅콩 유과를 판매 중이고 말이다. 신제품이 나왔다며 시식용 과자를 양손 가득 담아 주기도 하는 그 또한 일본어를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견습생과 학생의 신분으로 몇 년간 체류했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2년 넘게 함께 베트남어를 해온 과외 선생님 L 또한 나고야에서 3년간 일을 하고 베트남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여태껏 만난 베트남 사람들 중 가장 유창한 발음과 일본어를 자랑하고 말이다.

출처 afamily.vn

작년 베트남의 페이스북에서 공분을 산 비디오 클립이 있었다. 이는 일본 오사카에서 찍힌 것으로 일본 청년들이 한 베트남 청년을 폭행하고 심지어 강으로 빠뜨리는 장면이 그대로 담겨있다. 그는 연수와 일을 동시에 하기 위해 일본으로 갔지만 직장 일본인들로 부터 많은 차별과 폭행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 충격적인 건 당시 구해달라는 비명에도 돕는 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동영상은 인터넷에서 빠르게 퍼져 경찰과 대사관이 사건을 담당하며 마무리되었지만 1분여의 동영상이 준 충격은 여전히 남아있다.

사회주의 베트남! 하지만 자본의 흐름에 매우 충실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아이러니. 모두가 평등하리라는 유토피아적 발상은 이제 고이 접어야 하는 걸까. 사회주의와 어울리지 않는 차별이라는 그림자는 물론 지독한 자본주의도 공는 어이러니! 사회주의이지만 자본에 누구보다 빠르게 반응하며 노동력이 한데 맞물리는 모습이 마치 먹이사슬 같이 비춰진다.


어쩌면 사회주의를 평등과 같은 의미로 인식한 것부터가 너무 순진한 발상인지도 모른다. 21세기에 발맞춰 업데이트가 필요한 건 옛날 옛적 소련 시절의 사회주의에 갇힌 ‘나’란 생각도 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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