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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Jan 16. 2023

무비 없는 무비 나이트를 막아라!

2022, X-Mas 대환장 키즈 파티.      일러스트by하노이민언냐

아이들의 무비 없는 무비 나이트! 이 밤을 위기에서 구할 자는 누구인가?!

2022년이 익숙해지나 했더니 바로 2023년 그것도 1월 중순을 향해 달리고 있다. 이 스피드, 나만 힘겹나? 나만 숨차? 유튜브 광고 5초는 억겁의 세월 같더니 하루, 일주일은 순삭 되는 불합리함 속에 살고 있는 1인! 혼자만의 사투를 벌이며 점점 시간과의 싸움에서 부지런히 뒤처지고 있다.

‘연말’이 해시태그로 가득하던 게 엊그제 같건만 이제 ‘신년’이라는 단어가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연말’이라는 두 글자가 주는 익숙하고도 낯선 울림! 한 달도 지나지 않았지만 먼 과거로 느껴지고야 마는 2022년의 크리스마스로 시간을 되돌려본다.

연말이라면 가장 즐거운 건 누가 뭐라고 해도 아이들이다. 크리스마스 하면 선물 특히 파티. 2022년에도 쩡이와 쭌이는 찬란한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가득한 파티에 초대되는 행운을 얻었고 말이다.


가끔 엄마는 너희들의 인생을 훔치고 싶어 진다. 부러운 녀석들!


페루, 포르투갈, 미국 등에서 직접 공수한 대형 트리를 보라! 스케일이 남다른 E 부부는 올해도 누구보다 멋진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집을 가득 채웠다. 마치 박물관에 온 기분마저 든다. 세계 각국에서 생활을 한 내공이 엿보이는 순간이다. 하나하나 온 세계를 돌며 함께 여행해 온 장식품은 감동 그 잡채!


이중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움직이는 기차!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아슬아슬한 레일 위를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기차! 함성을 지르며 한참을 보고 선 우리들 뒤에는 흐뭇하게 바라보는 J 아저씨가 있다. 이날의 호스트인 그는 기차와 트리, 장식품을 설치하는 데 하루종일 걸렸다고 설명했다. 그의 열정을 응원합니다, 짝 짝 짝!

나 지금 떨고 있니?!​


피자는 만국 공통으로 통한다. 거기에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디저트로 준비되었으니 완벽하게 준비되었다. 하지만 단 한 명! 마음 놓고 즐길 수만은 없었던 이가 있었으니, 바로 쭌이다. 가장 연장자로 아이들을 책임지고 베이비 시팅 하기로 한 아들은 긴장하고 있었다. 물론 대가성 베이비 시팅이었기에 기쁜 긴장이었겠지만 말이다. 만 12세 인생에 첫 용돈벌이가 시작된 셈이다. 베이비 시팅은 기본이고 영화를 고르고 준비하는 임무도 추가로 주워졌다. 하지만 전날까지 자신만만하던 쭌이였지만 파티를 15분 남기고 사색이 되어 거실로 나왔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건 초코파이뿐만이 아니다. 문제가 생겼단 걸 쭌이의 표정을 보고 바로 알 수 있었다.

왜 때문에 나쁜 예감은 한 번도 틀리지 않는 걸까. ​


긴급상황이 발생했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노트북을 쥔 쭌이의 양손은 떨고 있었다. 알고 보니 노트북의 전원이 꺼지며 영화 파일의 다운로드가 중지된 것이다. 하필이면 인터넷 상태도 좋지 못해 당장 다운로드까지는 몇 시간이 걸릴 상황이다. 이런… 위기는 늘 마지막 순간에 임박해서 온다고 법으로 정해진 게 틀림없다. ​

사실 E 부부는 TV를 보지 않는다. 넷플릭스는커녕 기계 연결도 하지 않는 편이며 무비 나이트를 매주 금요일에 하는 것 외에는 켜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이 볼만한 크리스마스 코미디 영화를 준비하도록 신신당부했다. 파티 전날 쭌이는 E의 집을 들려, 영화 리스트까지 확인받았다. 3주 전부터 E 부부가 의뢰했건만, 쭌이는 눈앞에서 파티를 망칠 위기에 놓였다.


사실 이번 기회는 스스로를 증명해 낼 절호의 기회였다. 원래는 전년까지 두 살 위의 프랑스 형인 M이 전담해 왔다. 2년간 각종 파티를 M형이 주도했지만 유럽으로 돌아가면서 자리를 쭌이가 물려받은 것이다.

​‘아이 삘 유어 앵거~’


M이 어떻게 하는지 수차례 봐왔다며 문제없다고 호언장담하던 쭌이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미리 확인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티브이를 보며 껄껄대던 쭌이가 떠올라 남편과 나도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평생 ‘화’란 단어와 거리가 먼 남편도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쭌이는 매운맛, 꾸중을 사정없이 들어야 했다. 빙구 아들은 역시 다시 보고 또 봐야 하는 법인데.. 너무 믿은 것이다.

째깍째깍, 파티까지 남은 시간은 15분.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갔다. 결국 남편도 나도 쭌이에게 직접 가서 사과하고 스스로 책임을 지라고 했다. 말은 단호하게 했지만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츤데레 아부지! 결국 남편은 넷플릭스 계정을 추가하여 쭌이의 랩톱에 동기화시킨다. 무비 없는 무비 나이트가 될 뻔했지만 모든 아이들의 빛나는 파티 타임을 구해낸 건 남편이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자리에 앉기까지 아이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이들은 쭌이를 필두로 테이블에 둘러앉기 시작했고 말이다. 테이블의 정 중앙에 앉은 아들은 물론 내막을 곁에서 지켜봐 온 동생, 쩡이까지 모두가 기분 좋은 파티의 막이 올랐다. 사실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을 보기란 어른들에게도 쉽지 않다. 5시에서 9시까지 많은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아이들이 파티를 즐기는 동안 부부 동반으로 와인바를 향한 엄마는 몰랐지만 현장에 있던 쩡이는 알고 있었다. V자매의 파이팅 넘치는 기싸움과 N과 J사이의 장난감 칼을 둔 팽팽한 경쟁 등은 어른인 내가 들어도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무용담을 전하듯 신이 나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여동생과 그 뒤에 콧구멍이 한층 커져 어깨를 으쓱대던 오빠, 쭌이를 보고 있자니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비극적인 파티가 될 뻔했지만.. 너의 죄를 사하노라! 쭌이는 이날 완벽한 베이비 시터로 데뷔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쭌이가 조금 자랐나 싶은 생각도 드는 요즘! 하지만 꺼진 불도 다시 보듯 조용한 아들도 두 번 두드리고 보자는 게 우리 부부의 평가다.


쉬잇! 물론 이런 속내는 아들에게는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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