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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비아 Jul 23. 2023

01. 추억 보따리 하나를 싸매며

소중했던 인연의 시작


나에게는 소중한 추억 하나를 글로 남겨보려고 한다. 




그와 만난 것은 회사 여자 동기들과의 술자리였다. 1차가 끝나고 2차를 위해 이동하던 중, 친구는 나에게 자신의 대학교 동기가 근처에서 놀고 있다고 했다. 함께 놀던 4명 중에서 한 명은 먼저 집으로 가기로 했고, 여자 3명이 남은 김에 우리는 남자 3인방을 우리의 2차 술자리에 모시기로 했다. 


술집에 도착해 보니, 남자 3명은 이미 자리에 일렬로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운이 좋게도 룸이 남아있었던 것 같다. 남녀가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으니, 우습게도 대학교 시절의 미팅을 하는 것만 같았다. 실제로도 우리는 미팅마냥 서로를 탐색했다. 서로를 소개하고 친해지던 중, 대각선에 앉은 남자와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저 남자와 만나봐도 괜찮겠는데?'


이런 느낌은 태어나서 2번째였다. 누군가가 괜찮다는 생각은 많이 해보았고,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남자들은 간간이 보이곤 했었다. 하지만 이 남자와 만나봐도 좋겠다는 생각은 태어나서 2번째였다. 그리고 그 첫 번째는 이미 임자가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보아도 좋았다. 상대도 내가 맘에 들었던 걸까, 헤어지려고 인사를 하던 중 그는 나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보았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핸드폰에 번호를 찍어주었다. 


새로운 사람들이라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걸까.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갑자기 취기가 돌았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갈길은 멀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내 번호를 가져간 남자에게서 연락이 오겠지? 술이 썼던 만큼 수확이 달달할 것 같았다. 곧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카카오톡에 연락이 하나 도착해 있었다. 연락 내용을 여러 번 읽으며 나는 내일로 대답을 미뤘다. 내일 멀쩡한 정신으로 대답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나는 일어나자마자 카카오톡을 열었다. 어제 연락에 답을 해줘야지. 늦을 답장을 하면서, 프로필 사진도 찬찬히 살폈다. 어제는 몰랐지만 사진을 보니 키가 큰 것 같았다. 그는 예전에 올렸던 사진을 지우지 않는 편인 것 같았다. 사람들과의 사진을 보니 성격도 좋아 보였다.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만나서 다시 보면 될 일이었다. 그의 대학교 시절까지 확인한 후, 나는 서둘러 출근 준비를 했다. 


그의 답장은 오전 11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 늦게 출근했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상대는 몰랐겠지만 답장이 없던 동안 몇 번이나 카카오톡 창을 들여다보던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다 다음 약속을 잡았다. 약속 장소는 그와 나의 집 중간이었다. 분위기 좋은 음식점이 없는 곳이라 실망스러웠지만, 일단 만나기로 했다. 




그와의 제대로 된 만남은 나쁘지 않았다. 첫 애프터(?)의 모든 것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 거리에는 분위기 좋은 음식점이 없었고, 카페는 사람들로 포화 상태였다. 그는 이곳이 그의 숨겨진 핫플레이스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모두에게 공개된 핫플레이스인 것 같았다. 카페는 줄을 서서 겨우 자리를 잡았고, 사람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들어간 나베집은 비싸지만 하고 맛이 없었다. 하지만 첫 번째 소개팅의 후기를 말하자면, 좋았다. 괜찮은 것인지,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다음에도 한번 더 만나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만남은 그의 여행일정으로 인해 2주 뒤에 이루어졌다. 여행을 간다는 게 사실인가 싶기는 했지만, 뭐 이전부터 잡혀있었다고 하니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이때도 우리는 제대로 된 음식점을 예약하지 못했다. 좋은 음식점은 이미 예약이 차 있었고, 빈자리가 있는 음식점이 있는지 직접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40분간 빈자리가 있는 음식점을 찾아보다 우리는 시끌벅적한 포차 하나에 들어갔다. 이때도 음식점의 분위기가 좋은 것은 아니었다. 음식점은 시끌시끌했고, 음식은 직접 받아와야 했다. 환풍기가 없는지 요리로 인한 연기는 자욱했다. 나도 예약을 하지 않았으니까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상대방의 준비성에 -1점을 주고만 싶었다. 하지만 이번 만남의 후기도, 괜찮았다. 그는 생각보다 더 활발한 사람인 것 같았다. 사람들을 직접 모아 모임을 주최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때의 나는 몰랐지만, 나는 그와 알아가는 내내 그가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추웠던 날씨에도 불구하고 헤어지기 전 우리는 산책을 하기로 했다. 분명히 추웠을 텐데 그때는 별로 춥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세 번째 만남은 회사 근처에서였다. 3번째 만남이었고, 나는 상대방이 내가 기대하는 말을 해주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만남을 준비했다. 그는 내 기대를 만족시켜 주었다. 그의 차 안에서 나는 진지한 관계를 시작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가 3번째 만남에서 사귀자고 하지 않았어도 나는 그를 한번 더 만나보았을 것 같다. 5번째는 없었을 것이지만 말이다. 이만큼 마음에 드는 사람은 흔하지 않았고, 나는 그와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 참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항상 집에 제일 먼저 가는 내가 1차를 끝나고 집을 갔다면, 그리고 그날 그 순간에 그가 주변에 있지 않았다면 우리는 만나지 못했지 않았을까?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모두 인연인 것 같다. 그 순간에는 이 인연이 더 운명적으로 느껴졌지만 말이다. 우리의 시작은 순조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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