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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 유현 Jul 11. 2023

백두 3회 지리산 종주_3

05년 10월 8-9일

10월 9일             03:50 성삼재출발                                                                         0km

                         04:30 작은고리봉

                         05:00 묘봉치,헬기장

                         06:00 만복대-(15분휴식) - 06:15만복대출발                                    6km

                         06:30 다름재 안부(일출)

                         07:10 정령치휴게소(737지방도;달궁-고기리)-(30분 아침식사)-07:40출발 2km

                         08:10 고리봉도착(10분휴식)-08:20고리봉 출발                                0.8km

                         09:30 고기마을 도착-60번지방도                                                  3.4km

                         10:00 가재마을-(당나무아래서 20분 휴식)-10:20 당나무출발             2km      

                         11:00 수정봉

                         11:30 입망치

                         12:10 여원재 암봉 안부-(10분간 휴식)-12:20 안부출발

                         12:50 여원재 도착                                                                    6.7km

                                                                                         총     9시간        20.9km 

10월 8일_토_22:00 

 전날 내일 가을비가 제법 쌀쌀한 느낌을 주며 맑은 바람을 실어다 준다. 전형적인 가을 저녁이 깊어가는 시간에 이 주 동안 기다리던 지리산행을 위한 배낭 꾸리기를 일찌감치 끝내고 저녁뉴스를 보며 출발시간을 기다리던 중 김대장의 안부전화가 정겹다. 

 "날씨 추울 텐데, 이젠 파카라도 준비해야겠다."

 물푸레는 칠순을 넘기신 노모를 모시고 가을 단풍구경을 다녀올 계획을 세우지만 내가 대간 밟기에 나선 탓으로 쉽게 스케쥴이 잡히질 않아 안타까운 모양이다. 어디 쉬운 장소를 물색하여 하루쯤 시간을 내야겠다. 세상 구경 중에 그래도 이 땅에 살면서 아름다운 산들을 실컷 구경할 수 있는 즐거움은 복된 일이다.

 신도림역을 출발한 산행 버스는 자주 들리는 덕유산 휴게소(01:30)를 지나 어둠에 묻힌 지리산 인월 마을을 거치고, 밤 풍경마저도 화려한 달궁 야영장을 지나 별빛 쏟아지는 성삼재 마루금에 조용히 산꾼들을 부려 놓는다(03:30). 구 월 초 대간 시작 후에 세 번째 밤 풍경을 맞이하는 지리산 하늘 아래 첫 동네들이 그리워지는 날이다. 대간을 무사히 끝낸 내년 겨울에는 눈 덮인 지리산 어느 산장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별빛 쏟아지는 밤을 지새울 수 있을까.

만복대에서-동트는 반야봉

10월 9일_일_03:50

 제법 싸늘한 새벽 공기에 손끝이 차갑게 느껴지긴 하나, 들머리 오름새로 보아 곧 땀이 날 것 같아 외투자켓을 벗어 배낭에 도로 넣고 등산화를 고쳐 맨다. 지난번 노고단 입구와는 반대편 길 울타리에 작은 철망 문을 비집어 열고 오름 행렬의 헤드랜턴 불빛을 이어 간다. 이 쪽 서북능선은 국립공원 관리지역이 아닌가, 아무튼 입장료를 받지 않으니 좋은 기분이다. 

 전날 내린 빗물인지 새벽이슬인지 이어지는 산죽 대밭길에 축축함이 묻어난다. 꽤 가파른 삼각 능선을 이루는 오름길의 오른쪽 달궁계곡은 크고 깊은 어둠의 바닷속에 잠들어 있고, 왼편 당동 마을 쪽 내산리 불빛들이 가지 사이로 간간히 함께 걷는다. 편치 않은 첫 오름을 삼십 여분 잇고난 후, 작은 고리봉으로 여겨지는 안부에 이르러, 습한 기운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고, 무릎 보호대를 착용하며 약간 뒤로 처져 호흡을 가다듬는 가운데 어디 먼 데서 짐승 울음소리가 흉흉스레 들려온다.

 육십 년대 초등학교 시절 창녕 군청에서 주최하는 경시대회를 마치고, 시골로 가는 막차 떠난 밤에 오랜만에 만난 동료 교장 선생들과 막걸리 한 잔 마신 후, 자랑스러운 막내아들의 손을 잡고 시골 산모퉁이 밤길을 걸어오던 아버지의 노래가 들려온다. "황성 옛터에... 밤은 깊어... 월색만 고요하고..."

 낙동강 상류 반포 마을 둑방길이 끝나는 강어귀 외진자리에 자릴 잡은 방앗간 뒷 모퉁이에는 항상 싸리 빗자루 도깨비들과 돌절구 귀신들이 춤을 추며 놀고 있음을 아버지께서는 잘 모르는 일이다. 아버지와 맞잡은 손에 유난히 힘을 주어 땀이 나던 그날 밤도 오늘처럼 차가워지는 초겨울인 듯싶다.

 본래 계획은 서남아 카타르에 업무상 볼 일이 있었으나, 우즈벡에서 골프장을 맡아 경영하는 친구도 볼 겸해서 삼일 정도 여유를 갖고 쉬었다 간다는 것이, 이곳에서 골프는커녕 졸지에 농장 건설을 위한 비닐하우스 건축현장에서 삼일을 보내게 된 연유는 앞서 말한 K노인과의 만남 첫날 저녁 타쉬겐트의 어느 허름한 술집에서 시작된다.
 백발 수염에 타국에서 장사를 벌려 보겠다는 농담 같은 발언에 궁금증이 더해가서, 
 "죄송하지만 어르신 연세는..."
 "허허, 1920년생이니 팔십은 훨씬 넘었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나이다. 일흔은 넘었으리라 짐작이 갔지만 그 나이에 장거리 비행과 많은 양은 아니지만 저녁 반주를 즐긴다니.
 "건강이란 것도 멋대로 살다 보면 그냥 생기는 법이지. 이것저것 따져봐야 별 거 없거든. 단지 꼭 이유를 찾자면 속을 비우는 거지. 자주..."
 눈이 동그란 상태로 빈 술잔을 채우지 못하는 내게, 별거 아니란 듯이 건네는 건강비법이 속 비우는 일이라니. 대체 소식을 하라는 외과적 얘기인지, 화를 내지 말라는 정신과적 얘기인지 궁금할 뿐이다.
 50년대 전쟁 후 한때 먹을거리가 부족하던 시절, 초등학교 교장댁 사모님인 내 어머님은 알량미(안남미) 배급 쌀에 위장병이 재발하면 늘 그렇게 내뱉었다.
 "위장병은 몇 끼 굶으면 나아"
 "함께 온 교회 친구들 말이야, 여기서 큰 농장을 해 보겠다는데, 저거들이 무슨 농사를 알아? 웃기는 일이지만 대단해. 한국에서도 그랬지, 무슨 공동체다 해놓고선 농사는 여기저기서 찾아 모은 식구들 몫이고, 사실 지휘자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말로서 농사짓고 동네 꾸려가는 게 보통 기업가들보다 낫지."
 "헌데 중요한 것은 그들이 설교하는 말들이 논리가 정연하여 사람들을 만족시켜 가족을 이룰 만큼 뭔가 있긴 있는데, 내가 보기엔 결코 하나님 찾는 종교적 이유 하나만은 아니라는 것이지. 허허, 사람은 제멋대로 놔두면 죄다 서로 싸움질하다가 멸망한 데나. 암튼 나는 교회고 뭐고, 몰려다니는 게 싫어. 혼자가 좋아."
 이런 상황에서 일반적인 궁금한 질문, 예를 들어 가족은, 고향은, 학교는, 등등의 진부한 물음들은 자칫 긴 얘기를 끊을까 봐 접어두는 게 상책 이리라. 그래서 이곳에서의 이번 일은, 수만 평을 허가받아 우선 한민족 교포들을 위한 집단농장을 만들고 이슬람교가 대부분인 이곳에서 포교를 위한 공동체 건설 작업을 계획하고 있다는 노인의 설명은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단지 노인이 특허 발명한 비닐하우스 골재 설치를 위해 지도 감독차 이곳 멀리까지 오게 되었음은 한참 다른 얘기가 오간 후에야 알게 되었다.


10월 9일_일_05:00

 길게 이어진 조릿대 숲길을 지나 묘봉치 달궁 쪽 허리를 돌아 힘든 경사길을 내려선 후 넓은 헬기장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이마 쪽 렌턴을 소등한다. 조용하고 높은 산 능성에서 머리 바로 가까이에 펼쳐진 별자리를 헤아린다.

 "카시오피아, 안드로메타, 페가수스..."

 회색 도회에서 젊음을 다 보낸 지금, 가을 하늘의 별을 헤어 본지도 참 오랜만의 일이다. 다행스레 두 번의 지리 탐방에서 맑은 날씨를 접하고, 이리 아름다운 별 밭을 누리니 새벽의 일출을 보는 만큼이나 복되고 장관이다. 시골 사택 마루턱에서 어머니 무릎 베고 누워서 읍내 출장 갔다가 막차로 돌아오는 아버지의 먹을거리를 기다리는 그날 밤에는 북두칠성 하나 외에는 전부 작은 별이었다.

 헬기장을 지나 비교적 순한 오름길 양켠에서 시작되는 키 작은 억새풀 머릿결이 어둠 속의 랜턴 불빛에 처녀마냥 수줍은 모습으로 내 가슴에 안겨온다. 대낮의 사진으로 본 것처럼 홀라당 벗은 화려함은 볼 수 없으나, 뒷켠 어둠 속에 감춘 억새 장관을 상상하며 미명의 새벽을 준비하는 지리 서북능선 주봉인 만복대를 향한 발걸음을 재촉해 나아간다.

 어차피 대간 마루금 밟아 나가기가 무슨 화려한 놀음도 아니요, 무수한 비경을 감춘 계곡 탐사가 아닌 바에야, 이렇게 지리적으로 먼 곳을 출장 산행으로 이어가야 하는 처지에서 무얼 바래며 낙을 삼을 것인가. 계속되는 심야 오름의 보람을 동트는 정상에서 맑은 날 다행스레 맛보는 일출 장관 정도면 만족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산꾼들은 앞으로 걸어 나가면서 서로 대화를 나누기가 쉽질 않다. 밝은 낮이라도 한 발자욱 앞의 위험을 살피며 긴장된 걸음이 지속된다. 이러한 긴 시간의 침묵과 인내 속에서 우린 수많은 상상과 추억들을 벗 삼아 아름다운 삶을 그려 낼 일이다.

다름재안부에서-천왕일출과함께 지나온 만복대를배경으로

10월 9일_일_06:00

 맑은 날씨에 지리 전체 능선을 배경으로 천왕일출을 지켜보겠다는 발걸음이 너무 빠른 탓인지, 만복대 정상에 올라서서 십여분을 기다려도 희미하게 동트는 동녘의 지리 마루금이 선명하게도 검은 모습으로만 들어온다. 반야 뒷켠의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노고단 송신탑이 생뚱스럽다.

 정상 오른 켠에 두 동의 비박 텐트 속에서 지친 몸을 재우던 산행객 한 명이, 밝아지지도 않은 정상에서 소란스레 새벽 단잠을 깨우는 일행들을 원망하듯 머릴 내밀고 밖으로 나와 서성인다. 반대편 정령치 쪽에서 일출 관광을 위해 새벽을 뚫고 올라선 60대 젊은(?) 노인들의 환희가 싱싱하게 느껴진다.

 일출을 기다리며 십여 분간 지체하는 동안, 서쪽 투구봉 아래 내산 마을 위로 새벽 운무가 점점 짙어지면서 반짝이던 불빛들이 뒤섞이며 분홍빛 파스텔색으로 옅어지며 흰색 구름 속으로 사라져 간다. 체온이 내려감을 느끼며 정상 아래 다름재 안부에서 일출을 보기로 하고 북쪽 정령치를 향해 능선으로 내려선다.

 십여분의 작은 내림 길에서 조금씩 밝아오는 새벽의 빛을 받아 짙어지는 가을을 뽐내는 잡목 숲에서 화려한 원색의 단풍보다 그윽함을 느낀다. 비록 색깔은 다소 누렇기는 하지만 붉은빛을 뛰우려 하며, 초록의 뒤안 길에서 정상을 지키며 온갖 풍상을 견뎌 낸 지난여름의 꿋꿋함을 남기고 싶어 한다. 

만복대에서-나아갈 정령치,고리봉능선을 보며

10월 9일_일_07:00

 정령치로 향하는 내리막은 끝 지점을 제외하곤 비교적 완만하다. 다름재로 갈라지는 능선 안부에서 정상 마냥 쌓아 올린 돌무더미에 기대선 채로, 천왕봉 쪽 검은 마루금을 올라서는 화려한 일출을 감탄하며 카메라에 담아 본다. 늘 이렇게 고된 새벽 오름 끝에 찾아오는 일출 장관은 피로를 씻어준다.

 내가 왜 힘든 이 여행을 택했을까. 별 큰 의미는 없다. 단지 늘 걸어보고 싶었고, 이 작은 내 땅에 살아오면서 유난히도 많은 지맥들이 갈라놓은 우리네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보지 못할 바에는, 하늘 능선을 훑어 걸으며 좌우 골짝마다 있을 법한 삶의 희비들이 죄다 내 삶과 다를 바 없음을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다. 어떤 규율, 작은 속박 같은 규범에서도 늘 벗어나고 싶었고, 내 마음대로 실컷 즐기고 사랑하고 싶은 내 짧은 생애를 알찬 것으로 꾸미고 싶은 것이다.

 삼십여분의 편한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간간히 반대 방향에서 올라오는 아침 산행객들의 얼굴에서 환한 아침 햇살을 느낀다. 오른쪽 달궁계곡과 왼쪽 고기리를 연결하기 위해 굽이 굽이 산길을 돌아 넘는 고갯길 마루금에 설치된 현대식 휴게소는 일반 여행객들도 가끔 찾아 전망대 구실을 하는 전망 좋은 곳이다. 대간꾼들에게도 충분한 휴식처가 될 수 있겠으나, 항상 느끼듯이 너무 과한 개발이 산림을 해치지나 않을까 걱정되고, 관광 목적 외에는 그리 교통편의를 위할 만큼 차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지점이다. 그냥 작은 산장 하나 있었다면.

가재마을-노치당산 소나무5그루

10월 9일_일_08:00

 정령치에서 삼십여 분간 아침식사와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발을 움직인다. 지리산 종주의 마지막 봉우리인 고리봉까지의 오름길은 이십여분이 걸렸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다. 단지 생태 보호를 위한 경계 줄을 설치해야 할 만큼 많이 훼손되어 있는 좌우의 오름길이 휴게소에 가까운 지역의 몸살을 실감하게 한다. 고리봉 정상에서 멀리 동북쪽으로 세걸산, 팔랑재, 바래봉이 손짓하듯 철쭉 능선길을 이루고 유혹하지만, 언젠가 태극종주(바래봉-만복대-노고단-반야봉-천왕봉-웅석봉 80km)라 불리는 지리 완전 종주를 기약하며, 대간의 큰 뜻을 위해 왼쪽으로 난 급경사 내리막길을 타고 지리산을 벗어난다.

 이후 한 시간이 훨씬 넘도록 이어진 긴 급경사 내리막길은 금일 산행의 마지막 피치를 쏟을 만큼 지루한 하산길이다. 첫날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향해 힘들게 올랐던 지리 주능선의 힘든 탈출을 떠올리며 점점 발걸음이

느려질 즈음에야 환한 포장도로가 보이고, 하루 등산이 끝난듯한 고기리 마을에 내려서서 60번 지방도로를 투벅거린다(09:30).  


10월 9일_일_10:00

 고기리에서 2km 정도 지방도로를 따라 걸으면서 만나게 되는 마을들은 낡은 교회 스피커에서 거칠게 나오는 성가 소리가 정겨울 만큼 조용한 시골이다. 해발 500m가 넘는 고지에서 조용한 마을을 가꾸며 지리산 자락을

지켜온 이 아름다운 시골이 부디 개발이라는 악령들과 하나둘씩 늘어나는 모텔, 펜션 주인들이 묻혀오는 도회의 때들에 오염되지 않길 바라본다.

 길가의 코스모스엔 시골 자갈길의 먼지도 없고, 넓은 천수답 한가운데를 장식하는 감나무엔 붉은 감이 주렁주렁 탐스럽게 매달린 채다. 파헤쳐진 무 밭에는 뽑고 남아 버려둔 시래기들이 서리를 기다리며 자유로이 흩어져 뒹군다. 아직도 순박한 산마을 인심이 여유를 보이는 광경이다. 어데 배고픈 산짐승들의 까치밥이라도 남겨 두고 싶었을까.

 길 한가운데에 물을 부으면 좌우로 섬진강과 낙동강으로 이별한다는 대간 마루금 국도를 걸어서 이십여 분 만에 가재 마을에 도착하여, 잘 정비된 노치샘에서 한 바가지 찬물을 들이켜니 가슴까지 시원하다. 한가로이 담장 안에서 농기구를 보살피는 여든은 훨씬 넘어 보이는 촌로의 얼굴 주름이 평온을 느끼게 한다. 주름 주름마다 새겨진 깊은 삶의 흔적들은 계곡 계곡마다의 이 땅의 사연들 만큼 잘 덮혀져 잊힐까.

 수정봉 들머리에 위치한 노치마을(가재 마을) 뒷산에는 다섯 그루의 아름드리 낙락장송이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우아한 자태를 조화롭게 이루며 동네를 감싸 안듯이 멋을 부린다. 그 아래에는 차라리 없는 것이 더 좋을 듯한 두 개의 당산 표지 비석이 어울리지 않게 자릴잡고 있다. 이 동네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다는 이 멋진 소나무들이 얼마나 오랜 것인지는 짐작도 할 수 없으나, 어쩌면 착하고 복 받은 이 동네 선조를 기다리며 그렇게 유혹의 자태를 가꾸고 있었나 보다.

정령치에서-가재마을, 수정봉 종주구간을 보며

10월 9일_일_11:00

 노치마을 당산 아래서 이십여분 휴식을 취한 후 지리산과 덕유산을 이어주는 지덕 구간 종주의 맛보기를 기대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수정봉을 향해 오름길을 서두른다. 보통 가파른 산 들머리는 첫 오름의 워밍업으로

여겨지지만, 이미 6시간 이상 걸은 뒤라 새로 시작함이 힘들게 여겨진다. 특히 대간 마루금을 오르기 위한 예비 오름도 아니고 대간길 자체를 이루는 능선이 제법 길게 느껴지니 여원재까지의 남은 구간이 만만치 않다.

 사십여분 만에 수정봉 정상에 올라섰으나 아무런 표지석이 없고, 단지 어느 백두대간 팀이 남겨 놓은 메모지를 보고 짐작할 수밖에 없다. 북쪽으로 계속 이어지는 능선길에는 아직도 끊임없이 봉우리가 솟아 있기에 자칫 지나칠 수 있다. 몇 개의 작은 봉우리들을 넘고 나서야 삼십여분 하산길을 만날 수 있었다. 긴 하산길 끝에서 피로를 느낄 때쯤 입망치 고갯길에 다다라 오름길을 쳐다보니 수정봉 넘은 만큼 또 한 번 넘어야 할 여원재까지 남은 봉우리들이 만만치 않다. 예상보다 거리가 멀어 3시간을 충분히 채워야 할 것 같다.

 오름길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나의 약점인 내리막에서의 무릎 보호를 위해 속도를 늦추면서, 긴 여행의 다음 구간을 준비한다.

 

아무튼 세상 멋대로 즐기며 살아온 듯한 K노인이 첫날 저녁 내내 종교적 공동체에 대한 비판적 이론을 다소 지겨우리 만큼 들은 후에야 궁금하고도 흥미로와 보이는 과거사로 화두를 돌릴 수 있었다.
“내가 어릴 때 자란 곳은 군산이지. 거기서 배 타고 부산 가고. 또 배 타고 일본 가고, 한국 오고. 그렇게 살다가 팔십 평생 처음으로 비행기 타고 외국이란 델 왔으니 그냥 잠이 올리 없지... “
“헌데 비닐하우스용 골재 사업은 언제부터...?”
“글쎄, 사업이라 하면 우습고 연구한지는 60년대부터 한 40년 됐나. 그전에? 선생 시절이 좋았던가.... “
장사꾼답게 무슨 거창한 사업의 성공담이라도 기대하고 접근했던 건 아니지만 참 황당한 장사 이야기에 점점 머리가 복잡해지고 이제 내 상상으로 짐작해서 얘기를 꺼내 듣기엔 역부족임을 차차 깨달았다.
“한 잔 드시죠...” 그냥 그렇게 약간의 추임새 같은 술잔 채우기로 K노인의 발길 가는 데로의 줄거리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여원재도착점에서-남원-함양 24번국도에서

10월 9일_일_13:00

 고남산이 바라다 보이는 여원재 남쪽 암릉 안부에서 잠시 동안 휴식과 간식을 챙긴 후 느린 걸음으로 다시 마지막 하산길을 더듬는다. 간간이 보이는 미끈한 적송과 비뚤어지고 많이 꼬여 자란 흑송들이 가지치기를 기다리며 그야말로 우후죽순처럼 빽빽이 들어 찬 주지사 능선길을 사십여분 내려간다.


동네 어귀에 들어서서 대간금을 고집하며 다시금 마지막 5분간의 동네 뒷산 등정(?)을 끝내고서야 24번 국도에 내려서니 돌장승 하나 외로이 대간길을 지켜주고 서 있었다.

 

(여원 마을 입구 국도변 ***님, 대간길 나그네들에게 땀을 씻도록 물 보시하심에 감사드립니다.) 


10/10 배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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