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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 유현 Jul 11. 2023

백두 4회 덕유 종주_1

05년 10월 22-23일

           10/23  02:30 육십령 휴게소 도착                                                도상거리

                      03:20  육십령 들머리 출발-04:00 헬기장-

                      04:25  할미봉 도착

                      04:50  할미봉 탈출 완료

                      05:30  덕유교육원 삼거리

                      07:10  장수덕유 정상-아침식사,휴식(50분)-08:00출발         8.0km

                      08:40  남덕유 정상

                      09:10  월성치                                                                                 

                      10:10  삿갓봉

                      10:40  삿갓골 대피소(10분 휴식)                                       6.9km

                      11:35  무룡산-(25분 휴식)-12:00출발

                      12:50  돌탑 정상    

                      13:20  동엽령 도착-(20분 휴식)-13:40 하산 시작                6.3km

                      16:00  안성 매표소 도착-(칠연폭포 부근에서 20분간 거풍)   5.8km

                                                                                 총 27.0km(12시간40분) 


10월 22일_토_22:00 

 토요 주말의 제법 쌀쌀한 한 낮을 가벼운 목욕으로 보낸 후, 산행 준비를 마치고 잠시 눈을 붙인다. 격주라지만 지난 주 점봉산 산행이 만만치 않아 오늘 덕유종주 첫구간이 은근히 부대끼는 기분이다. 이제 2개월이 지났으니 부디 이번 겨울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내년 이맘때 진부령에서 기쁜 추억을 간직한 채 또 다른 나를 찾고 훌훌 벗어던질 그날을 그리며 무릎을 매만져 본다.

 어제 저녁 모처럼 식탁에 함께 앉은 작은 놈이 내년 봄 입대전에 대간 길에 한번쯤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을 밝힌다. "왠지 아버지는 개근할 것 같다." 그런대로 아이들에게 인정받는 기분이 나쁘진 않다. 큰놈은 처음으로 친구 결혼식에서 술 한잔 마셨다고. 벌써  세월이...이젠 내가 할아버지 될날이 가깝게 다가오는구나. 찌들은 일상에서 겨우 탈출을 시도하는 내게, 또다시 다가올 내 가정의 변화들이 부디 오늘처럼 복되고 웃음 가득한 앞날이 되기를 바란다.

 핸드폰에 김대장의 문자가 들어온다.

 "추운 날씨에 잘 챙겨입고 잘 댕겨오소." 

 내게 산행의 즐거움을 가르치고 초보 산행길에 늘 동참해 주었던 김대장이 항상 고맙다.  

 신도림역에서 2주만에 만난 산우들과 반갑게 인사한다. 점점 익숙해져 가는 얼굴들에 긴 여행길의 부담은 전혀 없고, 1년 후 나름대로의 알찬 수확을 위해 신발끈을 동여매는 의지가 느껴진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요 오직 자신의 결단으로 행하고 스스로를 찾아나가는 自由人(자유인)들. 잠시 동안이라도 잠을 청하는 산꾼들을 실은 버스는 대진고속도로를 달리고 장수를 거쳐(01:50) 산길을 굽이 돌아 인적도 없는 칠흑의 육십령에 조용히 닻을 내린다.(02:20)

동트는 남덕유

10월 23일_일_03:20 

 장수덕유의 일출 시간에 1차 목표를 맞추기 위해 입산시간을 조정하여 1시간 남짓 버스에서 대기하며 머무르기로 한다. 쌀쌀한 바깥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간 마루금 정상의 깨끗한 호흡을 즐기며 인적없는 휴게소 마당에서 산 아랫 마을들을 훔친다. 성삼재와는 달리 약간 높아 보이는 저 작은 별들처럼, 덕유산 자락에 골골이 잠든 사연들의 잠자리를 지켜주는 불빛들이 부시지 않게 눈에 들어온다. 출발을 앞두고 흔들어 보는 팔에서 금년 겨울의 첫 냉기를 떨치며 氣(기)를 모은다.

 장수-함양을 잇는 26번 국도의 시멘트 턱을 힘겹게 올라서는 덕유의 들머리가 오늘 산행의 힘겨움을 예고하는 것 같다. 백두대간의 마루금 밟기가 이젠 일반 아마추어 등산인들에게도 좋은 산행코스로 널리 알려진지가 오래인데, 이왕이면 진출입로와 등정로를 잘 관리하며 전체 대간길에 훼손을 막을 연구가 필요하다. 들머리 길의 십여분 짧은 능선을 비교적 편하게 오르는 동안 마주치는, 갑작스런 추위에 다 키워 놓은 고산지 농작물들이 냉해를 입을까봐 군장동 마을 비닐하우스에서 돌리는 온풍기 소리가 고요한 산중 마을의 새벽을 을씨년스럽게 일렁인다.

 곧이어 마주치는 된오름에서 삼십여분간의 첫 워밍업이 손 시리던 한 밤중의 추위를 잊게하고, 따라 걷던 장계마을 불빛들이 숲속으로 사라지는가 싶더니만, 그믐에 가까와지는 칠흑의 어둠 속으로 오직 한 발자욱 앞을 밝히는 헤드랜턴 불빛을 밟아 오르며 무념의 세계로 빠져 든다. 첫번째 헬기장에 올라서니(04:00) 갈증을 느낄만큼 땀이 배이고, 입었던 외투를 벗어 넣는다. 앞으로 검게 다가서는 할미봉의 정상이 이지러지는 달빛아래 뾰족이 선을 세운다. 부드럽다던 덕유산의 이미지가 이 곳 남덕유 쪽에서는 통하질 않는다. 잘 마무리된 배낭을 짊어지며 첫 고비인 할미봉을 향해 조심스런 오름을 시작한다.


10월 23일_일_04:25 

 랜턴에 비치는 암릉길에서 유난히 반짝거리는 금속성 바위 표면을 느낀다. 본래 함미봉(含米峰)이라 이름지어져 할미봉으로 쉽게 불리어졌음은 그리 잘못된 것도 없지만, 왠지 부드럽게 느껴지기는 커녕 날씨만큼이나 차가운 느낌의 직벽 암릉길은 심술궂은 영감봉이라 느껴진다. 아마도 군량미를 간직했다던 이 봉우리가 반송마을에서 모리브덴 광산으로 개발되었으니 그 또한 이름 값은 해낸 것 같다. 단지 골골이 찾아드는 슬픈 패잔의 역사들을 보살펴 감싸던 덕유의 부드럽고 편안함도, 그 등허리를 밟아 춤추려는 산꾼들에겐 혹독한 시험을 치루고 나서야  문을 열어줄 모양이다.

 30여분 남짓 정신없이 무릎에 채이는 돌뿌리를 조심스레 밟아 오른 수직 암릉길 정상엔 작은 면적의 암반이 겨우 올라 설만큼의 자리를 내준 채 차가운 바람을 가르고 서 있다. 잠시 뒤돌아 본 육십령 고갯길이 손에 잡힐 듯 희미한 불빛으로 졸고 있다. 곧이어 멀리 장수덕유(서봉)로의 본격 등정을 위해 할미봉을 내려서는 발길은 매우 조심스럽다. 대간 2000리길 중에서 A급 난이도라는 남덕유의 초입을 칠흑의 한밤중에 넘어서자니 모두들 긴장되어 조용히 차례를 기다린다. 한명씩 절벽을 줄잡이하는 20여분 동안 정상에서 땀오른 체온이 벌써 다 식어간다.

 어렵게 밟아 내리는 암벽의 발자리를 확인하기 위해 줄을 잡은채 헤드랜턴을 비추자니 자세가 영 고약하다. 너댓 차례의 줄바꿈을 겪으며 마지막 3-4미터 암반에 다다르니 잡을 줄도 없이 크랙 벽에 나타난 발자국이 유난히 미끄럽게 느껴지고 아찔하여 엉덩이를 바위에 붙인 채 살금거린다. 

장수덕유의 아침


10월 23일_일_06:00 

 이미 선두조의 불빛이 사라진 절벽을 탈출하니 앞뒤 걸음이 떨어져 무서우리 만큼 깊은 어둠 속을 홀로 걷는다. 장수덕유의 높은 된오름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비교적 평탄하고 1시간여 정도 울창한 숲속 길을 꾸불거린다. 부디 갈림길이 없길 바랜다. 어둠속에서 만나는 갈림길은 초보자인 내게 참 당황스러운 법이다. 30여분을 걸어 나가니 교육원 갈림길이 나타나고 어둠속에서 자연스런 나무판자에 새겨 놓은 안내판이 가까운 곳에 인간집단을 느끼게하여 정겹다.

 인간으로서의 삶이란 ,어떤 척도가 있어 만족할 만큼 행복한 것이었다고 자부하며 완성할 수 있을까. 사람이 자신의 의지대로만 살아갈 수 있다면, 훗날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행복할 수 있을까. 이 거대한 산을 넘는다고 해 본들, 그보다 험한 사회조직 속에서 발버둥쳐야 하는우리들이 아닌가.

 허구와 일상에 젖어 아무런 절제도 없이 살아온 지난 날의 삶을 뒤돌아 볼때, 잃어버린 나를 이 한 밤 깊은 산 중 어드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50년대 피난시절 어이없는 상황에 휘말려 곱피난을 시작했던 K노인을 만난 첫날 저녁이 길어지면서 장거리 비행에 다소 몸이 피곤함을 느낄 수도 있겠으나, 시차 관계로 오후에 일찍 도착하여 서넛 시간 호텔 방에서 눈을 붙이고 난 후라 버틸만 하고 옆에서 시중드는 러시아계 젊은 처녀가 예쁘게 느껴지니 그런대로 술자리가 지루하질 않았다.
궁금했던 비닐하우스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곳에서의 농업용 비닐하우스 골재는 보온용이 아니라 대부분 차양막 시설로 이용되는 별다른 개념으로 이해를 했고, 약간 취기를 느끼는 가운데 해가 지고 난 후 자리를 바깥 테라스 쪽으로 옮겨 타쉬겐트의 시원한 공기를 느끼며 자연스레 K노인의 30대 어지럽던 동란시절로 얘기를 옮아 간다.
“박장군이란 놈...덩치 큰 씨름꾼 하나 있었지.....아니 젊을 때 씨름판에서 꽤나 이름 날렸다지만 해방후 술 주정뱅이 같은 망나니 하나 있었지....“
사범학교를 졸업한 덕택으로 동란중에 재수가 좋아 공석인 시골 초등학교 교사 자리를 얻어  경남 창녕 부근의 장마면 마을에서 해방둥이 딸 하나 키우며 피난살이는 무난히 하는가 했지만, 그시절 선생 조차도 타관 객설움을 겪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엄청난 회오리에 말려들게 되었다.
아무튼 노인의 설명으로는 평소 술에 취해 망나니 짓을 하며, 마을에서 외딴 학교 주변에 위치한 상점에서 매일 주정부리는 박장군이란 친구와 별로 좋지 않은 눈마추기가 이루어 지게 되었다. 가게주인 신영감은 충청도 어디 출신으로 젊은 시절 보부상으로 전국을 떠돌다 이웃 마을에 한 여자를 알게되어 해방될 즈음부터 이곳에 정착한 외지인으로, 자연히 젊은 선생 사택을 드나들며 잔일을 거들었고, 젊은 선생 부부는 객지생활의 외로움을 나누어가며 정붙이기에 그런데로 재미를 느껴가고 있었다.
전쟁이 길어져 밀고 밀리는 전황 속에서 국토방위군이란 이름하에 정식 편제의 군인이라 볼 수도 없는 지원병들이 부족한 보급식량을 메꾸기 위해 마을을 다니며 공출형식의 지원을 반 강요하던 시절이 계속되니 가을 저녁나절 상점에 모인 몇몇 유지들이 술기운에 불만을 터뜨리곤 했었다.
1951년 초겨울 일찍이 몇 안되는 학생들을 귀가시키고 사택에 돌아와 저녁밥을 짓는 아내곁에서 저녁노을을 차갑게 느끼며 여섯 살배기 외동딸과 땅따먹기 놀이를 하고 있을 때, 학교 운동장으로 경찰 트럭이 들어오며 카빈총을 어깨에 맨 경찰들이 들이닥치고 읍내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훗날 알게된 일이지만, 박장군이란 놈은 동란 초기 한달여 적치하에서 세상 바뀔 것 같은 기분에 완장차고 거들먹거린 적이 있어, 쉬쉬하는 주민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불안감을 술로 달래고 있었다. 그 차에 국방군에 대해 불만을 나누던 술자리에서 외지인 선생을 발견하고 애국 신고정신으로 잠깐의 잘못을 용서 받을 절호의 실적을 생각해낸 것이다.


새벽이 가까와 지며 랜턴의 불빛이 약해짐을 느낄 즈음에 오른쪽 계곡이 어슴푸레 밝아오며 마지막 된오름이 한시간 여 계속된다. 완전한 해오름은 서봉 정상 가까이 가서야 볼 수 있겠으나 암릉 섞인 직벽 오름에 이만큼의 밝음도 큰 도움이 된다.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니 오른쪽 남덕유 정상과 키재기하듯 솟아오른 장수덕유(서봉)가 희미하게 암벽을 드러낸다.  

장수덕유 정상의 첫추위를 느끼며


10월 23일_일_07:10

 1시간여의 힘든 걸음을 밟아 오른 장수 덕유의 위용은 놀랍다. 지척에 마주보이는 남덕유산이 부드러운 선을 이어가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완전히 떠오른 햇살에 얼굴을 드러내는 서봉 동쪽 사면에서 작은 바람막이 장소를 물색하여 아침 식사를 시작한다. 쌀쌀한 정상 바람이 겨울을 싣고 온듯하다. 회가 거듭하면서 장시간 레이스에 먹거리의 중요성을 깨달은 산우들 덕분에 갖가지 뷔페를 즐긴 후 마지막 따뜻한 커피 한 잔까지 마시고 나서야 정신차려 지나온 남녘을 살피니 지리산 마루금이 선명하게도 제일 마지막 줄을 긋고 있다.

 산불방지를 위한 경방기간도 고려해서 먼저 밟은 남덕유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앞자락은 황홀한 파노라마다. 년말까지 이어나갈 지덕구간(3차례)의 고남산, 봉화산, 백운산, 영취산, 깃대봉이 차례로 어서오라 손짓하며 아침을 맞는다. 북으로 고개를 돌리니 나아갈 북덕유의 넉넉함이 묻어난다. 좋은 날씨에 멀리 적상산 넓은 정상도 맑게 다가서고, 서로는 마이산 돌탑 정상이 하얗게 솟아 오르고, 동으로는 금오산, 가야산이 병풍처럼 둘러친다.

 김연순님의 춘향가중 사랑가 타령으로 아침 정상과의 이별을 고하고(08:00), 남덕유로 내려서는 직벽 철계단에서 힘들었던 4시간 오름에 지친 다리가 가벼운 떨림을 느끼게 한다. 대간길과 남덕유 정상의 갈림길에서 40여분의 추가 등정을 마다 않고 가벼이 남덕유 정상에 올라서니 어느 고마운 분이 차려 놓은 팥떡과 이슬이 한 팩이 표지석 앞에 제단을 꾸리고 있다. 방금 먹은 아침식사가 아니었으면 당연히 감사의 식사를 즐겼을텐데.누군지 복받으시길

 서봉에서 시야를 가렸던 남덕유 정상에 올라서니, 동쪽 사면의 수많은 협곡들 사이에서 올라오는 역사들의 외침들로 정상이 가득하다. 그래서 3m 낮은 동쪽봉우리가 남덕유의 정상 명칭을 뺏어낸 것일까..바라다 보이는 서봉의 장쾌하고 골산(骨山)다운 풍모가 아침 햇살에 화려함을 뽐낸다면, 이곳 남덕유 동봉은 부드러운 정상에 너덜로 이루어진 소박함으로 장자의 모습을 간직한다.

월성치에서 바라본 삿갓봉, 향적봉


10월 23일_일_09:10 

 남덕유를 오르면서 40여분 뒤떨어진 선두조와의 거리 좁히기를 위해 월성치까지의 내리막을 다소 무리한 걸음으로 속력을 내고나니 염려했던 왼쪽 무릎이 아닌 오른쪽 무릎 덮개에 이상이 생긴다. 한쪽 뿐인 무릎 보호대를 바꿔 착용하고 조심스레 삿갓봉을 올라보니 오름길에서는 별 통증이 없어 다행이다. 아, 삿갓재 대피소에서 탈출을 해야하나 생각하니 아득한 대간길이 무섭게 느껴진다.

 삿갓봉 오름길에서 드문 드문 만나는 삿갓재 대피소에서 아침식사 후 출발한 역산행객들이 반갑다. 서너개의 작은 봉우리들을 거쳐오르는 능선길은 좌우로 얕은 고개를 넘나들며 비교적 잦은 암릉 봉우리들을 피해 밟는다. 그때마다 오르내림의 대간길이 힘들게 느껴진다. 봉황산이라 불리우며 화려함을 뽐내는 덕유 남릉을 이렇게 힘겹게 밟아 나가며, 오른쪽 월성계곡에서 들려오는 영혼들의 소리에 귀기울여 본다.

 병자호란의 아픔을 간직한 정온선생이 은거한 원학동의 한이 밀려오고, 신라의 멸망을 듣고 버린 해인정(海印亭)의 신표인장(信標印章)의 슬픔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삿갓봉의 우아한 자태가 드러나는 능선길에는 백제왕자 서동요와 신라 선화 공주가 손잡고 춤을춘다.


10월 23일_일_10:10

 삿갓봉 정상에서 겨우 휴식을 취하는 선두조에 합류하여 숨을 고르며 사위를 살펴본다. 거의 산자락까지 내려간 붉은 기운들이 덕유의 힘차고 웅장한 계곡 줄기들을 화려하게 꾸민다. 그 계곡 끝자락에 드문드문 자릴 잡은 여남은 가구의 작은 마을들이 예전의 심심 산중 거창마을의 전형을 이룬다. 저 작고 소박한 삶터에 무슨 적과 아군이 있을까. 동막골 아니라도 처처 산골에, 인간이 인간으로 조화롭게 살아가던 인간다운 동아리가 

무수하겠지.

 삿갓재 대피소로 내려서는 길이 유난히도 오른쪽 무릎을 괴롭힌다. 대간 마루금에서 오늘의 탈출로는 유일하게 이곳 삿갓재 뿐인데 하필 그곳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이 심히 가파르게 느껴지니 갈등이 인다. 앞으로도 무룡산 높은 봉우리와 동엽령에서의 긴 하산길을 고려하면 5시간은 족히 남았는데, 다음을 위한 탈출인가, 오늘 과정의 완성인가.

 천천히 30여분을 디뎌내려 삿갓재 대피소에 다다르니 심각하리 만큼 통증을 느낀다. 의자에 걸터 앉아 잠시 휴식을 하며 가져온 물파스로 응급치료를 마치니 한결 시원하다. 올려다 보는 무룡산 오름길이 이제야 덕유(德裕)의 너그러움을 보이며 작은 관목과 드문드문 주목의 초록빛을  장식하며 천천히 걸어오면 괜찮다고 유혹한다. 10여분의 휴식후 일행들에 앞서서 비교적 덜 가파른 무룡산 정상을 향해 마지막 발걸음을 무겁게 출발시킨다.


10월 23일_일_12:00

 1시간 남짓의 무룡산 오름길은 사위가 확트여 동서로 고개를 번갈으며 덕유의 참맛을 느낀다. 다행히 오름길의 고통은 훨씬 덜하다. 비교적 잘 다듬어진 대간길을 매우 느린 걸음으로 밟아 나가니 앞으로의 여정에서 다가올 수많은 고비들에 이제야 익숙해져 가는 느낌이다.

 무난한 가정과 화려한 젊은 시절만 꿈꾸면서 내가 이룬 것과 주어지는 주변에 얽매이는 고지식이 가져올 결과는, 이것도 수구보수의 욕을 먹을 것인가, 직접적인 내 삶의 힘든 체험을 통하여 스스로를 극복하고 뜨거운 피를 간직하는 가슴을 가진 채, 내 잃어버린 모습들을 되찾을 날이 기다려진다. 멀리 대간길 끝에서.

 무룡정상을 향하는 남쪽 큰 사면은 평전을 이룰 만큼 넓게 펼쳐져 있고, 정상 부근의 능선을 서쪽으로 돌아 오르니 덕유 100리의 큰줄기에서 중간을 점하며 웅장하게 솟은 무룡산 봉우리가 크게 다가온다. 동으로 낙동강의 남강, 황강 지류를 발원하고 ,서로는 금강 수계를 발하는 이 곳은 뜨겁게 살아 나아 갈 대한민국의 심장이리라.

삿갓봉에서 바라본 무룡산,향적봉


10월 23일_일_13:20 

 무룡산 정상에서 손에 잡힐듯 한 돌탑 정상과 동엽령 목표지점 까지는 2시간 정도 여유를 갖고 홀로 후미를 점하며 천천히 하산한다. 다행히 경사가 급하지도 않고 시야가 넓게 펼쳐지고 30분 이상 앞서 가는 일행들의 줄지은 모습들을 간간이 보아가며 즐기는 산행이다. 무릎 통증도 그런대로 견딜만 하고 마지막 하산 길만 견뎌내면 오늘은 성공이다.

 길게 이어지는 키낮은 산죽 대밭을 끊임없이 걷다보니 어느새 따뜻한 햇살에 녹아 젖어드는 진흙 길이 신발을 더럽힌다. 간간이 보이는 산행객들의 점심 상차림에 시장기를 느끼지만, 동엽령까지는 배낭에 넣은 포도주를 아껴두어 하산길 통증 잊음에 유효하게 처방하리라 생각하며 큰 의지가 된다. 대간 걸음의 또 한 구간을 마감하는 시점엔 늘 그렇듯이, 잔잔한 피로감이 가져다 주는 묘한 평안함이 내 몸을 감싼다. 마치 실컷 놀고 난 뒤 칼칼한 이불속에서  잠들기 직전에 느끼는 노곤함처럼 아무런 고통도 없이 허공을 걸어간다.


3일간의 반복되는 조서꾸미기에 시달린 후, 군인들에 인계되어 군용 트럭에 실린채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수시간을 덜컹거리며 끌려가던 새벽에, 죽음이란 것을 감지한 젊은 선생은 잠시 세운 차에서 탈출을 감행하여 방향도 모른 채 산길을 헤메고 있었다. K노인 평생을 어지럽힐 새로운 출발이었다.
초겨울 날씨의 새벽 산길에서 땅에서 솟아나는 서릿발 같은 얇은 얼음을 보고서야 가벼운 옷차림의 몸이 추워짐을 느꼈다. 한나절을 산 위쪽으로만 향하여 줄달음질 치다가 지쳐 쓰러질 정도로 허기진 채 어느 산중 외딴 움막집을 발견하고 앞뒤 잴 것도 없이 살려 달라고 수없이 외치면서 기어들었다. 하지만 그 끊어질듯한 외침을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옷이라고 일컫기 보다는 몸을 감싼 천 누더기라고밖에 할 수 없는 차림의 여인이 건네준 물에 말은 보리 밥 하그릇을 마신 후에야 때묻은 얼굴이 아직은 젊다고 느낀 후 정신을 잃고 잠에 빠졌다.
아무리 살펴 보아도 전쟁통에 탈영한 것도 아닌 얼굴에, 간간이 탈출 못한 빨갱이라 일컫는 산손님 행색은 더더구나 아닌 젊은 양반에게 외딴 집에서 홀로 사는 젊은 과부가 소설같이 만남을 이루었으니 다행일지 불행일지 그들의 앞날은 내다보기가 힘든 세월이었다.  
며칠이 지난 후 살펴 더듬으니 거창 부근에서 탈출하여 넘고 넘은 곳이 빙기실이라 일컫는 덕유산 남쪽 자락이었다. 인편을 닿을 수도 없고 세상과 두절한 채로 살아가는 여인에게 부탁할 일도 아니어서 말없이 한 열흘을 지낸 후에야 여인이 가끔씩 책을 들여다 보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사실 해방 후 중매로 만난 아내가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에 다소 섭섭함도 있었지만 그 당시 왜정시대에 여자로 태어나 소학교라도 제대로 나오기가 쉽지는 않은 시절이니 그냥 넘어갈 수 밖에.
어찌됐든 숨어 살아야 하는 처지에 얻어먹고 지내며, 겨울 산중에서 도울 일도 없이 솔잎이나 긁어 모으며 지낸 한겨울에 모질고 모진 인생들이라지만 영락없이 귀한 아들하나 만들게 되었다 . 
작별도 없이 헤어진 첫 아내와 어린 딸이 그 후 어떻게 살아 갔는지는 2년이 지난 후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알길이 없었다.


 한시간정도 지나서야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돌 무더미로 쌓아 올라가는 모습에 이름지어진 돌탑 정상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다음 구간에 밟아 볼 향적봉이 멀리 안테나를 올린채 방외자처럼 대간길을 지켜보는 가운데 덕유평전에서 비켜가는 백암봉 갈림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동엽령 고갯길은 여타 고개처럼 확연히 낮은 곳이 아닌 것 같다. 이어지는 대간 능선의 비교적 낮은 곳도 그냥 자연스레 이어져 확실한 지점을 점쳐 보기가 힘들다.

 30여분을 서서히 내려가니 대간길 좌우에서 올라온 단풍놀이 등산객들의 화려한 먹을거리 잔치에 시장기를 느끼며 동엽령 고갯 마루에서 배낭을 내리고 담아 온 포도주 한 병을 꺼내어 비스켓 안주로 들이키니 짜릿한 행복이 스며든다.


무룡산 억새


10월 23일_일_16:00 

 20여분의 휴식으로 대간구간을 마무리하고 내려서는 칠연계곡으로의 하산길은 그리 험한 경사를 이루진 않으나, 이미 시작된 통증이 포도주 한잔에 잊혀 질리도 없는 가운데 시간을 넉넉히 잡아 계곡 단풍 놀이에 몰두한다. 설악의 화려한 정통 단풍은 흔치 않아도 벌레 먹은 고로쇠 단풍잎 하나 하나에도 마지막 정열을 느낀다.

노란 갈참나무 물들임에도 따스한 햇살은 스며들고, 한해를 살고 마감하는 잎새들의 마지막 치장에 제각각의 알뜰한 노력이 보인다. 내년 봄에 움틀 새로운 연두빛 삶을 기약하며.

 정상이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어 오는 느즈막한 산보객들에게 선뜻 시간을 대지 못한다. 그들의 정상은 어디쯤일까. 어쩌면 내가 바라는 커다란 봉우리와는 거리가 멀겠지. 그냥 시간내에 올라도 그만, 못 올라도 그만인 동엽령 고갯마루가 그들의 정상일진대, 뭐가 대수냐. 빠르면 한시간 늦으면 두세시간, 애당초 그들은 애써 지친 걸음을 걷는 대간꾼들을 속으로 혀차면서 위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그렇게 즐길줄 아는 지혜로운 삶이 있으면 만족할 수 있을텐데. 

 무엇이 이리 아픈 경험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는 나를 빼앗아 간 것일까.

 칠연 폭포 아래서 차가운 계곡물에 다리를 담그니 통증이 훨씬 나아지고  걸음을 재촉하여 대기하고 있는 버스 주차장에 퍼질고 앉아 먹는 김치찌게 한 그릇이 내 오늘 행복의 전부다.





10/24 배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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