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 유현 Jul 11. 2023

백두 33회  갈전곡봉 종주(구룡령-초침령)

06년 10월 28 - 29일

10/28    22:00     신도림 출발 

10/29    02:45     구룡령 출발

            03;14     옛길 안부(1089)-1121-1056 

            04;15     치밭골령

            04;30     갈전곡봉(1204)                   4.2km

            05:45      810 안부-(10분 휴식) 7 개봉

            06:15     왕승골 삼거리

            06:50     968.1봉(10분 휴식)

            07:20     1020봉 직전 안부 (아침식사)-08:00 출발

            08:35     연가리골 샘터 갈림길

            08:55     956봉

            09:30     1059봉(10분 휴식)

            10:05     1061봉-( 1114.6봉 갈림길)

            10:45     762봉 갈림길(그루터기 쉼터)   

            11:45     쇠나드리 갈림길                 12.4km

            12:05     796 안부

            12:30     조침령 임도

            12:35     조침령(770)                        4.65km

            13:05     조침령 삼거리(터널입구)      (1.5km)  

                  10시간 20분             21.25km(22.75km) 

방대천-가는골에서 시작하여 설피마을을 지나 진동리를 흐른다


10월 28일_토_22:00 

 10월의 마지막 가을이 탄다. 전날 운악산 아래에서 한북정맥 답사팀들과 내년도 계획을 나누며 늦게 귀가한 탓인지 컨디션이 별로 좋질 않다. 오랜만에 사무실 대청소를 한 모양, 세재 냄새가 조금 풍기는 사무실에서 대간 길 준비를 마무리하며 한가로움을 맛본다. 훈련기간이라 외출을 나올 수 없는 배소위가 산행길 인사차 전화를 준다. 11월 말 진부령 일정이 만만치 않아 고심하는 모양이다. 말이라도 고맙다. 지난 2월 궤방령 눈길에서 탈출을 고려할 때 입대를 앞둔 배소위의 한마디가 힘이 되었다. "왠지 아버지는 개근할 것 같아..." 어느새 자식들의 격려를 받을 나이가 되었구나... 항상 바삐 살아가는 모습에 건강도 염려되지만 한편으로 알차게 보내는 젊음이 부럽기도 하다. 

 작년 가을이 시작될 때부터 모든 주말 계획을 대간길 위주로 세우다 보니 올해 여러 친구들과의 만남들을 연말로 미루어 11/12월의  주말이 예년보다 무척 빽빽하게 짜여간다. 책상 위 카렌다에 빈 여백이 많질 않다. 마치 영업 매출기록처럼 즐겨하는 내 모습을 평일 날 직원들이 본다면 한심스러울 수도 있겠다. 아직 젊다면 젊은 50대 나이에 무슨 한량처럼 산길만 헤매고 다니는 내 머릿속에서 부디 깨끗이 비워진 맑음이 새로이 솟아나는 또 한주의 시작이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50을 채우지 못한 채 먼 길 떠난 부모님의 영혼을 위로하고 이 땅을 함께 걷고 구경하며 한을 풀고 싶은 마음에 결심했던 내 화려한? 50대의 시작은 이렇게 산행으로 이어져 내 발길이 가는 데로 끝 간 데 없는 여행을 이어가리라.. 

 구룡령 들머리까지 찾아 나서는 산행길이 영동고속도로를 달려 한밤의 운두령을 넘고 있다. 며칠 전 다시 시작한 치과공사로 출발 세리머니 막걸리 한잔을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지 오늘은 잠을 청하지도 못한 채 새벽을 걸어야 하나보다. 오대산 줄기 계방산 뒷자락을 돌아드는 홍천군 내면의 밤길에 갑오 동학혁명의 슬픈 외침이 맺혀 온다. 서석면 자작고개 위령탑에서 "百姓塗炭, 保國安民"의 녹두장군 격문을 외치며 잠 못 이루는 영혼들을 편히 재울 날은 아직도 먼 길인가.. 기억의 싯귀를 읊조리며 구룡령 남쪽을 구불거린다. 

     '나는 죽어서 쑥국새 되리라
      이 강산 모든 땅 위를 날며
햇살 빛덩이를 찍어 물어
집집마다 토담마다 가슴마다
묻고 심고 심고 묻는....'
     
968봉에서 뒤돌아본 갈전곡봉 지나온 길

  

10월 29일_일_02:30 

 한 밤을 꼬박 새우며 지쳐 오른 구룡령 1000 고지에 늦가을 바람이 스산하다. 아직은 동장군을 맞이하기엔 이른 계절이라 여기며, 가을 찬비에 대비하여 여벌로 준비한 바람막이 외투를 배낭에서 도로 꺼집어내며 무게를 줄인다. 구름 가려진 하늘에서 초생달이 잠시 내밀다 사라지고 이내 바람에 밀려온 안개가 사위를 숨긴다. 헤드랜턴을 밝혀 들머리를 향해 쳐다보지만 온통 검은 산은 적막할 뿐이다. 보름 전 개방하겠다고 홍천 군청에서 약속한 휴게소 마당은 바리케이트로 막아진 채로 야간 통행금지를 실시하고 있나 보다. 이 나라 곳곳에 산재한 공무집행의 어둡고 그늘진 현장을 한 밤에도 볼 수 있다.

 '파랑새야 날아라 녹두장군 일어나라...' 


10월 29일_일_02:45 

 미천골로 넘어가는 56번 도로 왼편 기슭 쪽에 새로 마련한 들머리로 산행 걸음을 시작한다. 동물 이동통로에서 연결된 마루금에 올라서서 20여분 된오름으로 100여 m 고도를 높여 1100.3 고지에 올라선다. 오른쪽 왕승골의 갈천마을 불빛이 유일한 생명처럼 동행하기 시작한다. 두텁게 쌓인 낙엽을 밟는 발자욱 소리가 사각거림으로 부드럽게 여겨지지만, 간간이 숨어 밟히는 돌들과 나무뿌리에 발목이 불안하여 밤길을 조심스레 밟아 나간다. 작은 오르 내림으로 구룡령 옛길 안부에 다다라 잠시 숨을 돌린다. 좌우로 뚜렷한 고갯길이 나 있지도 않으면서 마루금을 이용한 옛길이 이어지니, 고개와 고개를 이어주는 대간길이 인간의 통로로 이어져 왔음을 엿볼 수 있다.(03:14) 

 1121봉을 거쳐 내림이 깊어지나 싶더니만 다시금 1056 안부로 올라서며 1시간여의 지루한 오르내림을 거친 뒤에야 치밭골령 작고 노란 말뚝을 지나면서(04:15) 왼쪽으로 된오름을 밟아 오른다. 벌써 1시간 반을 걸었는데도 땀이 나질 않는 것은 좋은 현상이 아니다. 초반에 흠뻑 땀을 흘리며 워밍업이 잘 진행되어야 몸이 가볍고 후반까지 속도가 붙는 법인데.. 날씨 탓도 있겠으나 왠지 전체적인 진행 속도가 조금 느려지며 모처럼의 된오름이 힘겹다. 15분 정도 지쳐 葛田谷峰 정상에 올라 휴식을 취하며 후미조를 기다린다.


10월 29일_일_04:30 

 양양(돋달/돋다리/日出山) 고을의 변두리 오지 마을인 오른쪽 갈천 계곡엔 칡밭(치밭골/葛田)이 많았던가.. 대간 길엔 칡넝쿨 하나 보이질 않는데.. 방태천, 계방천을 양쪽으로 이루어 내린천으로 이어질 계곡이 가칠봉으로 이어지는 지능선을 사이에 두고 깊은 屯地를 이룬 채 긴 겨울잠을 준비하며 적막하다. 

안갯속 일출

 갈전곡봉에서 오른쪽으로 가파른 내림을 밟아 내린다. 크고 작은 7개의 봉을 내림길로 밟으며 날이 새어 오기를 기다리지만 동지가 가까워오는 계절에 아침해의 기상도 매우 늦어진다. 1시간여의 비슷한 봉우리 넘기를 거친 후, 잠시 보이던 별빛마저 사라진 다섯 번째 봉우리를 넘다가 졸림에 지친 대원들이 휴식자리에서 일어날 줄을 모른 채 10여분을 지체한다.(05:50) 긴 대간 길 여정에서 오늘 같이 이렇게 지루하고 특색 없는 오르내림엔 쉽게 지친다. 구간거리가 그다지 길지 않으니 다소 계획된 시간이 늘어나더라도 천천히 진행하는 것이 무리를 가져오지 않을 듯싶다. 오른쪽 갈천 마을의 불빛이 가깝게 보이면서 여명을 느끼고 헤드 랜턴을 끈 채 느린 걸음으로 아침가리골 샘터 갈림길을 지나 왕승골 갈림길에 내려선다.(06:15) 

 왕승골의 뜻은 잘 모르겠으나, 이곳 마을 사람들은 '왕새이'로 부르는 걸로 미루어 큰 령(큰 고개/사이골)의 뜻으로 짐작이 간다. 다시 서둘러 마주 보는 오름 길을 잠시 깔딱이니 봉분이 거의 사라질 정도로 낮아진 묘지 안부에 올라선다. 주로 대간길 마루금 방향으로 묘두가 자리하면 좋질 않은 느낌을 받아 왔다. 다행히 어느 후손의 관리로 儒人平海孫氏之墓임을 알리니 새로 만든 모양이다. 숱한 사연을 안고 자리한 지 얼마 만에 달은 묘패일까.. 부디 후손과 더불어 안식의 자리로 남으소서.. 다시 이어지는 관목 숲을 헤치고 968봉으로 올라서니 대간 길 정비 사업용 목재와 자재들이 헬기로 날라져 쌓여 있다.(06:50) 10여분 후미조를 기다리며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보고, 주위를 조망해 본다. 왼쪽 조경동(아침가리골) 계곡이 희미한 안갯속에서 방동약수골 임도를 끼고 펼쳐진다. 

 국립공원을 벗어난 이렇게 방문객이 적은 등산길에도 온갖 편의시설과 등로 보호를 위한 조치들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데, 국립공원 관리공단은 문 걸어 잠근 채 등산로 폐쇄로 일관하니, 도대체 무슨 배짱인가. 아무래도 정치적인 낙하산 인사의 집합체들이 머리가 나쁜 탓으로 밖에 볼 수 없으니 제발 관리공단을 해체하고, 산림청으로 이관하여 전체적인 대간 탐승길 보호계획을 수립할 수 있길 거듭 촉구한다. 아침 식사를 위한 적당한 장소를 찾으며 잠시 내림길을 밟은 후 1020봉 중턱 안부에서 상을 펼친다.(07:20)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속을 데우며 그리 급하지 않은 시간 여유를 갖고, 후미조와 함께 느긋한 웃음꽃을 피운다. 1년을 훨씬 넘는 동안에 지리산에서부터 2000리 길을 이렇게 다정스레 걸어올 수 있었던 자유인 팀원들의 얼굴들이 오늘따라 더욱 곱게 느껴지고 진부령의 축제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관목 숲의 낙엽

10월 29일_일_08:00   

 아침식사를 끝내고 땀이 식은 몸에 한기를 느낀다. 관목 숲을 지나고 다시 짧은 오름으로 1020봉을 넘어 자취만 남은 헬기장을 지나 편한 내림길을 밟은 후 연가리골 갈림길에서 휴식을 취한다.(08:35)

 식후 피로가 쌓여 오면서 오늘따라 왜 이리도 졸린지.. 아예 배낭을 벗고 주저앉는다. 남은 커피 음료수병을 다 비운다. 왼쪽 연가리골 계곡의 단풍이 그런대로 싱싱하다. 이곳은 그나마 가뭄 속에서도 축축함을 맛본 탓인가.. 아침가리, 곁가리, 명지거리... 홍천 내면을 이루는 정감록의 三屯(生屯, 月屯, 達屯)四갈을 내려다보는 이곳 대간 마루금은 착한 민초들의 보금자리를 감싸주는 비빌 언덕으로 이어지리라..  


타쉬겐트 공항으로 향하는 꽤 넓은 길이 저녁 무렵엔 항상 막히는 모양이다. 밤늦은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중앙아시아의 요충지 역할을 하는 공항치고는 좀 작지만, 멀리 예전의 김포공항처럼 생긴 관제탑을 바라보며 차량들이 느린 걸음으로 공항을 향한다. 차선 옆을 오가며 음료수 병을 든 채로 뭔가 간식거리를 팔고 있는 모습은 서울의 상습 침체구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K노인은 잠시 차창을 열고 멀리 날아오르는 저녁노을의 비행기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다. 마치 가지 못할 이국의 땅을 그리워하는 모습처럼, 왠지 그와 이제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이 아쉽고 뭔가 더 알고 싶어 한다.
“인간의 삶이 진화한다는 것은 결국 평화로워지고 행복이란 것을 맛볼 기회가 많아야 되는 것인데.. 역사상 인류의 개척과 진보가 과연 그러했는가.. 스스로 자연 본능대로 무리를 이루며 살아갈 자유를 버리고, 결국 강제로 이룬 집단 속에서, 통제하는 국가권력에 대한 충성의 맹세를 서약하며, 문화와 민족이란 굴레 속에서 헤어날 수 없는 투쟁의 연속일 뿐이지... 이런 정치현실과 국제정세 속에서 이제 또다시 나아가야 할 개혁의 방향이란.. “
20세기를 80 평생 살아온 K노인의 지친 듯한 독백 속에서, 결코 용인될 수 없는 권력의 횡포로 인한 그의 씻지 못할 아픈 기억들을 담아내고 있었다. 스스로 헤어날 수 없는 오늘날 정치역사의 격류 속에서 부딪힐 수 있는 암초들을 빠짐없이 다 맛본 채, 이렇게 먼 곳 어느 하늘 아래서 그의 지나간 일생을 돌이키고 있음이 과연 그가 그토록 갈망하며 찾아 나서던 자유로움과 작은 행복에 어울리는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개혁은 권력층 주변의 공무원들처럼 제 철가방을 지키려는 사람들에 의해 수행될 수는 없는 법이지.. 냉전의 피비린내 속에서 자기 권리를 주장도 할 수 없는 수많은 대중들에 의해 중산층의 지지를 받아가며 인간적 가치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고서는 개혁이란 이루어질 수 없는 법이지.. 분명 혁명적인 일부 계층의 힘에 의한 강제적 변혁과는 거리를 두어야 하겠지... 그런 점에서 한국의 정치 엘리뜨들은 너무나 보수적인 자만에 빠져 있지나 않은가.. 그들이 표방하는 좌든 우든... 민중을 끌고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향해서 가겠다는 혁명은 이젠  그들 스스로도 벗어나야 할 꿈이겠지... “
국가권력의 배제란 참 상상하기 힘든 현실 속에서, 이젠 결국 민족의 테두리를 벗어나 인류의 공존으로 연명해야 할 한반도 고귀한 땅의 힘없는 민중들에게 어떠한 정치적인 개혁을 통하여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인가.. 다 벗어버려야 한다. 적어도 아귀처럼 몰려드는 강대국들의 비웃음 속에서 그들마저도 오래전에 잊어버린 이데올로기들의 대변자 역할을 벗어나야 한다. 오직 이 땅의 영혼들이 편히 날개 짓 할 수 있는 자유를 향하여 영세중립의 작은 정부로 다시 돌아가 독재 권력의 반문화적인 단맛들을 제거하는 날 남북의 민중들에 의한 통일의 춤을 꿈꿀 수 있으리라... 이 땅의 반통일의 원흉은 바로 비대해진 국가권력과 그 힘의 그늘 속에서 향락을 즐기는 일부 권력층이니까...

 

연가리골 단풍

 956봉 오름길을 꽤 힘들게 여기며 20분 남짓 지쳐 오른다. 서쪽 진동리 큰 계곡이 넓게 펼쳐지며 조망은 괜찮은 편이다.(08:55) 후미조가 점점 멀어지며 호젓한 내림길을 천천히 오른쪽으로 크게 꺾어 내린다. 마주 보이는 1060봉이 힘겹게 다가오는 연가리골 2차 갈림길에서 남쪽으로 멀리 오대산이 이별을 고한다. 만만치 않은 오름길을 밟아 1060봉을 지나 1114.6봉 갈림길에서 10여분 휴식을 취한다. (09:30-09:40)

 대원들의 관심은 역시 마지막 진부령의 축제와 1월에 진행될 제주도 한라산 등반으로 쏠린다. 좋은 기획으로 15개월의 동지애를 기념할 만한 보람 있는 마무리를 준비해야겠다. 

 동쪽으로 거의 90도 꺾어내리는 단풍 군락지의 단풍잎은 이미 말라 움츠러들었다. 가을의 향취는 나뭇가지 위의 화려함만은 아니다. 조릿대 숲을 지나며 수북한 갈참잎을 밟는 가을은 더욱 정겹다. 가을 냄새를 느낀다. 낙엽 쌓인 길을 이렇게 호젓한 걸음으로 걸어내리니 문득 10 수년 전 필라델피아 강변의 아침 산책을 떠올린다. 산업용 컴퓨터 모니터 수입을 위해 1주일 정도 머무르며 영화 '록키'의 촬영장소인 강변에서 아침 조깅을 즐기고 있을 때 수북이 쌓여 있는 낙엽을 쓸지 않고 겨울까지 일부러 보존한다는 그들의 낭만에 또 다른 친밀감을 느꼈다. 단지 북쪽으로 이어지는 동네가 갑자기 흑인 빈민촌으로 바뀌면서 무섭게 째려보는 방치된 큰 개들과 껌 씹는 건달들만 없었다면... 

 오른쪽으로 긴 내림길을 한 시간여 밟아 내린 후 미천골 갈림길 샘터가 있는 안부에 다다른다.(10:45) 후미조가 보이질 않고 환자가 발생하여 후미대장이 애를 먹고 있다는 무전소식에 마음이 무겁다. 탈출점은 아직도 멀었는데... 함께 시작한 긴 여행의 마무리 단계에서 끝까지 축제의 날머리에 보이질 못하는 얼굴들을 떠올리니 가슴이 아프다. 지리산 벽소령에서 음정길로 하산할 때 가장 고통스러워하며 그렇게 멀어 보이던 진부령이 이제 얼마 남질 않았는데... 무슨 고집과 용기로 이렇게 버텨오는지 나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분명 조금씩 좋아지는 걷는 힘을 느끼니 이제 정맥 길도 잘 이어갈 수 있으리라..  

쇠나드리 억새

10월 29일_일_11:15 

 크고 작은 봉우리들을 서너 개 오르내리며 쇠나드리가 가까워 오는 잡목 숲을 북쪽으로 걸어 나가니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이름값을 하듯 쌀쌀하다. 길섶의 억새 대열이 한층 더 가을을 정취를 돋운다. 억새바람이 분다. 겨울 칼바람은 아니더라도 늦가을 스산한 고독을 불러일으키는 마루금 안부에 서서 멀리 미천골 넘어 조봉자락을 마주해 본다. 그 넘어 어성천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남대천은 양양을 거쳐 낙산사까지 이어지겠지.. 제대 말년의 배병장은 점점 가까워 오는 서울 생활이 싫어서일까 자주 낙산 해변을 거쳐 어성천 계곡으로 찾아들곤 했었다. 제대 후 마땅히 돌아갈 곳도 없었다. 학교에 복학도 되질 않으니 학생신분도 아니요, 취직을 하자니 학교 중퇴라.. 농사지을 고향도 없다. 제대하는 날 부대 위병소에서 왜 그리 눈물이 나는지.. 남들은 기뻐서 정신없이 신고를 마치는데... 정말 군대 시절이 좋았다고 하면 미친놈 소릴 듣기 딱 알맞겠지만, 내 생애에서 가장 걱정 없이 즐거웠고 요즘도 가끔 주책없이 꿈에 나타나는 말년 배병장이다. 

 지루한 오르내림이 수없이 이어진 뒤에야 쇠나드리 갈림길에 내려선다.(11:45) 중간에 구조침령이니, 조침령 민박이니 하는 엉터리 안내문 때문에 다소 혼란을 일으킨다. 전부 무시하고 지도상의 많은 오르내림과 갈림길 갯 수를 잘 세어가며 독도하는 수밖에 없겠다. 쇠나드리 표지를 걸어 놓고 포즈를 잡아 본다. 부디 작은 보탬이지만 대간 길 발걸음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다시 정성스레 끈을 매어 놓는다.

 벌써 9시간을 걸었으니 계획보다 조금 늦더라도 곧 조침령에 닿을 시간임을 확인하며 점점 뜨거워지는 발걸음으로 마지막 796봉을 오른쪽으로 크게 감아 오른다.(12:05) 10여 마리의 까마귀 떼가 합창을 하며 주위를 맴돈다. 가까이서 마치 까치떼처럼 노니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왠지 지난날의 외로운 까마귀 소리와는 다른 느낌이다. 아무튼 감시하듯 지켜보는 녀석들이 별로 정겹지는 못하다.   


K노인에게 가장 힘든 고문이라는 것은 결코 중앙정보부에서 젊은 수사요원의 물리적인 윽박지름만은 아니었다. 저들 마음대로 각색되어진 수사기록에 따라 검찰에 넘어가 매일 수십 장의 똑같은 진술서 속에서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한 명씩 어린 후배들이나 동료들의 이름을 나열해 가며 상상치도 못했던 시나리오들을 스스로 꾸며 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날 구치소로 돌아와서는 스스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의 진술서 속에서 하나씩 그려지는 소설들이 불과 며칠 전 수사관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황당한 구성들과 점점 닮아가고 있음에 깜짝 놀라지만 다음 날 진행된 스토리는 지워지질 않는다.
가끔씩 면회 오던 아내의 발길이 뜸해지며 월요일마다 학교를 결석한 채 면회 오는 딸아이의 얼굴이 많이 수척한 것으로 봐서 아내의 병이 점점 더 심해지는 모양이다. 내년 봄 중학 입학시험을 치를 막내는 얼굴 본 지도 오래다. 다행히 누나의 보살핌으로 잘 지내는 모양이지만 곧 석방되리라는 몇몇 동지들의 소식통도 잘 통하질 않는다. 검찰과의 지루한 공방이 이어질 뿐이다. 가장 후회스러운 근간의 행적들에 대한 또 다른 회한과, 조금 더 일찍 벗어나질 못했던 권력 주변의 늪에서 결국 이렇게 희생당하는 스스로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잠시라도 세상과의 영원한 이별을 생각하지는 않는 자신이 참 질기다고 여겨졌다.
혁명 후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잠시나마 구경했던 권력 심장부의 치열한 자리 잡기가 결국 강한 통치자의 민생을 위한 경제우선 정책의 의도와는 달리 그들 주변권력자들의 싸움으로 변질되어 정국의 흐름을 주도하기 위한 한건주의 공로 쌓기로 나아가 결국 돌아오질 못할 공안정국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그 와중에서 점점 더 심해지는 대학가의 반정부 시위와 함께 어느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했고 서울대 주변의 소위 지식인 반정부 비판 인사들을 그 첫 번째 타겟으로 삼기에 이르렀다.
젊은 나이에 전쟁 속에서 온갖 시련을 겪다가 한 지아비를 만나 이제 좀 살아 보려나 하든 아내의 창백한 얼굴이 떠오르고 더욱 보고 싶어 지지만, 감옥 속에 있는 남편을 더욱 그리워하며 말없이 아이들을 보듬고 울음을 삼키고 있을 강한 모습이 떠오르며 그나마 또 다른 영광이 훗날 도래할까 하면서 백방으로 줄을 넣어 석방 구명을 시도하는 자신이  초라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어차피 무슨 독립운동을 한 것도 아니요, 혁명을 꿈꾼 것도 아니기에...
과연 민주주의와 반민족의 학술적 이론토대를 연구함이 이 땅의 자유주의 혁명에 무슨 해가 될 것이며, 북녘의 공산주의에 무슨 전략적 도움을 제공하게 될 것인가.. 검찰을 오가며 변명마저 잊어버린 채 가을을 보내고 지척의 옥인동 보금자리를 건너 멀리 인왕산 기슭에 흰 눈이 쌓이는 12월 말, 마지막 공판을 하루 앞두고 그에게 날아든 비보.. 지병으로 힘들게 버티던 아내가... 불쌍한 아내가... 마지막으로 그를 집행유예로나마 감옥에서 나오게 하려는 듯 홀로 K노인의 사라지는 꿈을 따라 삼각산 넘어 쓸쓸한 길을 떠나갔다.

  

쇠나드리 갈림길에서

10월 29일_일_12:30

 잘 정비되고 마지막 날머리 안전시설 통로까지 마련된 정성을 밟고 조침령 삼거리 임도에 내려선다. 5분 정도 걸어 올라가 조침령 도로개설 기념비에 디카를 들이댄 후에 새로 뚫린 조침령 터널 입구의 삼거리까지 너털 걸음으로 하산 길을 걷는다. 30여분의 비포장 임도길에서 지나다니는 승용차량의 먼지가 귀찮아진다. 따가운 발걸음은 지나온 구간들의 힘들었던 순간들을 또다시 떠오르게 하지만 이젠 별로 걱정이 되질 않는 것이 많은 경험을 통해 무디어진 모양이다. 

 방대천 맑은 물에 몸을 담그니 발이 시리다. 열목어가 우글대던 이곳 설피마을 진동리 계곡에도 펜션의 바람이 불고 터널이 뚫렸으니 횅한 가슴을 뚫고 지나는 시린 바람처럼 세찬 바람이 불어 닥치기 시작하고, 언젠가 새도 잠을 자고야 넘든 큰 고갯길에서 아픈 마음으로 산골을 등지는 시골 산꾼의 영혼들이 울음을 삼키리라.. 

 산이 좋아 십수 년 전에 정착한 50대 청년이 외로움을 달래는 "나무꾼과 선녀" 펜션에서 하산주 동동주를 한 잔 들이켜니 점봉산 넓은 자락이 내 속으로 파고든다.   


2006.10.30.  배기호  

점봉산, 곰배령 바람개비-조침령 내림길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백두 32회 설악산 종주(1)(미시령-마등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