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변화와 감각의 높이에 대하여
개미는 눈보다 먼저 촉수를 세운다.
어둠 속에서 길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직 보이지 않는 변화를 먼저 감지하기 위해서다.
낙엽 하나가 흙 위에 닿는 순간의 미세한 진동만으로도,
그들의 세계는 이미 달라진다.
우리가 보기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일지 모른다.
그러나 발밑에서는 이미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
이것은 관찰력의 문제가 아니라,
감각이 머무는 높이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대개 크고 분명한 것만을 사건이라 부른다.
소리가 나고, 이름 붙일 수 있으며,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변화들만을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 사이에서 너무 낮고 조용한 변화들은 쉽게 지나친다.
느끼지 못했기에 없었던 일이 되고,
보지 못했기에 의미 없는 일이 된다.
하지만 세상에는 소리 대신 진동으로 남는 것들이 있다.
아직 말이 되지 못한 감정,
설명되지 않은 예감,
사건으로 불리지 못한 하루의 흔들림들.
지층이 갈라지고 계절이 바뀌는 일도 대부분은 소리 없이 시작된다.
바람이 흙결을 따라 스며들 듯,
변화는 늘 우리가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하는 순간에 진행된다.
온도와 기압이 미세하게 바뀔 때, 공기의 살결은 이미 먼저 반응한다.
귀는 아무것도 듣지 못해도 몸은 안다.
이유 없이 마음이 서늘해지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예감이 스칠 때,
그것은 ‘말 이전의 말’이 우리를 지나가고 있다는 신호다.
우리는 흔히 이해한 뒤에 느낀다고 믿지만,
실은 대부분 느낀 뒤에 이해하려 애쓴다.
사유는 언제나 감각보다 늦고,
언어는 늘 사건이 한참 지난 뒤에 도착한다.
우리는 지진이라 불렀던 타인의 걸음 위를 걷고,
폭풍이라 오해했던 어떤 숨결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를 뒤흔들었던 두려움이나 슬픔이
사실은 아주 작은 누군가의 흔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
혹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오늘이
누군가에게는 견디기 힘든 진동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보이지 않는 울림은 낮은 진동으로 세계를 흔든다.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사라지지 않게.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우리의 선택과 방향을 바꾸는 힘으로 돌아온다.
살의 밑면, 어둠의 골격 아래에서
형체 이전의 질문 하나가 자라고 있다.
우리는 그 이름을 불러본 적이 있었을까.
아니면 감각하지 못한 채,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그 진동 위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개미의 시야 바깥에서,
세상은 오늘도 소리 없이 바뀌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변화는 언제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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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의 시야 바깥에서〉
촉수를 곧게 세운 미물,
흙 속에서 진동을 읽는다.
낙엽 하나의 낙하에도
파장은 번지고,
촉각으로 그려낸 지도가
어둠 속에 떠오른다.
그들의 하늘을 가로지르는
무게 하나.
그러나 들리지 않는 울림.
지층은 느리게 갈라지고,
바람의 결이
흙결을 따라 스며든다.
접힌 발자국,
겹겹이 쌓인 흔적 아래
이름 없는 감각이 숨는다.
온도와 기압이 꺾이며
입자 사이로 스민
숨결 하나가
공기의 살결을 뒤흔든다.
무게를 품은 발소리가
지면 밑을 파고들고,
그림자는
시간의 길이를 재며
계절의 틈을 젖힌다.
귀에 닿지 않는 말들이
피부를 스친다.
작은 진동은
서로 다른 세계를 잇는
투명한 선이 된다.
해석되지 않는 떨림.
이해의 바깥에서
촉각으로만 감지되는
형체 하나.
그 파장은
근육 속으로 스며들어
어느 날,
심장을 두드릴지 모른다.
어쩌면,
곁을 스쳐간 적 있는 존재였을까.
길을 잃은 흔적이
시간의 균열을 지난다.
우리는
지진이라 불렀던 걸음 위를 걷고,
폭풍이라 오해한 숨결 속에 산다.
모두 지나가야 했던 것들이었고,
그렇게 잊혀졌다.
그러나
사유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튼다.
그림자가 바람을 감싸듯,
감지되지 않는 울림은
낮은 진동으로
세계를 흔든다.
살의 밑면,
어둠의 골격 아래,
무게 없는 형체가
조용히 피어난다.
촉각의 어둠에서 태어난,
말 이전의 말.
형체 이전의 형체.
우리는
그 이름을 불러본 적이 있었을까.
혹은,
감각하지 못한 채
지금도
그 진동 위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진동은
이미 지나간 곳에도 남아
지금,
우리 발 아래에서
아무 말 없이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