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선 : 말하지 못한 감정이 먼저 나를 떠나는 순간에 대하여
정오를 가리키는 벽시계 아래에서,
빛은 아직 방향을 찾지 못한 채 방 안을 맴돈다.
시간은 분명 한가운데인데,
나는 어딘가에 닿지 못한 기분으로 앉아 있다.
밝음이 충분한데도
하루는 조금도 환하지 않다.
반쯤 걷힌 커튼 사이로 아침이 들어오지만,
그 빛은 사람을 향하지 않는다.
문턱 위에서 하루는 멈춰 있고,
나는 방 안에 있지만
이미 시간의 바깥으로 밀려난 것 같다.
닳아버린 얼굴의 모서리에
빛이 겨우 스며들지만,
이름은 목 아래에서 조용히 미끄러진다.
불리는 속도보다
사라지는 속도가 더 빠른 이름.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아니라,
나에 대한 설명처럼 존재한다.
그림자는 발밑에서 생기지 않는다.
눈꺼풀 안쪽,
말하지 못한 생각들이 쌓이며 자란다.
질문들은 안쪽에 들러붙어
나를 조금씩 벗겨낸다.
무엇을 묻고 있는지도 모른 채,
나는 계속 나에게서 멀어진다.
회의실에서 침묵은
말보다 먼저 부서진다.
“좋습니다.”
그 짧은 말 뒤,
누군가의 시선이 등 뒤로 미끄러지고
의자 다리는 낮게 울린다.
아무도 듣지 않지만,
분명 무언가가 금이 가는 소리다.
썩지 않는 사과가 식탁 위에 놓이고,
벽지는 하루에 한 겹씩
침묵으로 덧칠된다.
상하지 않는 것들만 남아가는 집 안에서,
나는 점점 더 빨리 낡아간다.
퇴근길,
“오늘 어땠어?”라는 말은
돌아오지 않는 신호처럼 공중에 떠 있고,
존재의 표면은
소리 없는 물집처럼 부풀어 오른다.
터지지 않은 채
안쪽에서만 아픈 방식으로.
먼저 사라진 것은 사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있던 문장들이었다.
설명되지 않는 순간부터
존재는 흐려진다.
방 안의 불은 이미 꺼졌고,
나는 이제 그림자조차 되지 못한 채
타인의 눈동자 속에서
가장 느린 숨결로
조금씩 지워지고 있다.
그늘은 밖에서 오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늘은 늘
내 안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