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여백에서

시간이 멈춘 자리에서 시작되는 것들

by Don Shin

어떤 날,

갑자기 시간이 멈췄다.


모래시계는

끝을 모른 채

자신을 계속 흘리고 있었지만,


금이 간 유리 틈 사이로

시간의 숨 같은 것이

조용히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없이

시간은 꺼졌다.


뒤집힌 침묵이

깨진 조각 위에 가라앉고

기억은

말보다 먼저

조각나 흩어졌다.


시간의 순서를 이어 붙이던 실이 끊기자

사건의 흔적들은

질서에서 무질서로

제자리를 잃고 떠다닌다.


어떤 것들은 나란히 흐르고

어떤 것들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숨보다도 느린 속도로.


닫힌 문틈 밖에서는

아직 만나기도 전에

이별이 먼저 손을 흔든다.


같은 방 안에서도

서로 다른 계절을 두른 몸들이

스치듯 어긋난다.


어떤 고요는

말보다 먼저

살결을 건너와

몸 안으로 번져 들어온다.


잊힌 이름들이

금 간 자국처럼

머리 위를 떠돈다.


빛을 머금었던 잔상은

모양을 잃은 채

끊어진 하루의 뒤편에서

잠깐 떨다가 사라진다.


시간은

종잇장보다 얇아져

공기 속으로 스며들고


말은

침묵의 주름 속에서

천천히 다시 부풀어 오른다.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의 모서리에 서서

서로의 체온을 더듬는다.


손끝은

오래된 상처의 길을 따라

익숙했던 언어를 찾는다.


그러다

찢어진 틈 사이로

아주 느린 빛 하나가 스며든다.


빠져 있던 심장 하나가

시간의 미세한 떨림 속에서

조용히 반응한다.


말보다 먼저

몸이 먼저 다가갔고


끝내 부르지 못한 이름 대신

작게 떨리는 감각 하나가

시간의 빈 공간,

그 여백을 천천히 다시 꿰매기 시작한다.

화, 금,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