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밤, 아무것도 놓치 못한 채
제주에 가시려거든
구름 없는 날 야간 페리를 타자.
땅끝 연안 허름해도 인심 좋은 밥집에 들러,
뱃속은 채우고, 두 손은 비우자.
이제는 발길 뜸한 완행 페리에 오를 때.
부두를 떠나도 아직은 이른 밤,
육지로부터 소리와 빛의 공해
희미해지길 기다리며
갑판에 올라 고요를 품는다.
새벽 3시,
밤과 새벽, 뭍과 섬 그 중간 어드메,
전설을 마주할 완벽한 순간이다.
이 설렘마저 기억하려,
발소리 삼키며 다가간다.
머리 위 새까만 바다,
잘게 부서진 윤슬같은 억만 개의 파편들.
한 번도 이르지 못한 세상 끝자락,
손끝 뻗으면 닿을 듯 거짓말 같은 이 거리.
언젠가 흘려보낸 누군가의 오래된 슬픔,
그 밤을 떠도는 오랜 물결들.
바람은 깊어지고,
물결은 낮아지고,
시간은 멈춘 듯 흐른다.
숨소리마저 방해될까
정지한 시간에 나를 멈춘다.
바다 아래,
잊힌 약속들이 조용히 흔들리고,
이름 없이 떠도는 형체들 사이로
파도는 기도처럼 쓸려든다.
버린다고 사라지지 않는 것들,
떠올리면 다시 살아나는 것들.
그렇게 물살 속을 떠돌다
몸보다 먼저 닿는 길 잃은 목소리들.
숱한 사연을 얼굴에 새기며 지낸 시간들,
고단한 걸음마다 스친 눈물 방울들,
물결 아래 저항하지 못한 채 흘러가는 기억들,
그 시간들이 지나야 새벽이 온다.
새벽빛이 별을 덮고,
파도는 전설을 삼킨다.
이제, 섬이 다가온다.
어찌할 수 없는 허물과 흔적,
제 몫의 침묵을 끌어안고,
멀리 다가오는
그 섬에 오를 때다.
저기, 섬이 기다리고 있다.
이름 없이 떠도는 말들을
그저 바람으로 품으며.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모든 것을 들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