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의도라기 보다는, 모든 것은 우연은 아닌지
돌멩이는
이미 제 자리에 없었다.
발자국은
바람이 지나간 방향으로
가볍게 흩어졌다.
번개가 풀을 스치던 순간
누군가는
식지 않은 것을 손에 쥐었다.
살아남는다는 건
처음부터
설명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물결은
여러 개의 몸을 밀어 넣고 지나갔지만,
그 틈에서 빠져나온
얇은 숨 하나가
다음의 시간을 흔들고 있었다.
울음을 잘못 굴린 혀 위에서
첫 단어가 미끄러졌고
그 단어는 서로를 불러 모으며
점점 단단해졌다.
입안에서 굳은 말들은
서로를 버티다가
마침내
무너지지 않는 것처럼 남았다.
금속은 열을 기억하고
전기는 길을 반복했다.
겹쳐진 선택들은
자기 그림자보다 먼저 닳아갔다.
기억은 늘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굳었다.
뼈에 남은 금,
모래 위에 남았다가 지워지는 발자국,
이미 사라진 것을 가리키는 손짓들,
지도에 없는 길 위에서
누군가는
먼저 도착을 적어 넣었지만,
도착은 언제나
사라진 다음에야 확인되었다.
불타버린 자리 위에
끝내 남는 것은
형태가 아니라
냄새였다.
무너짐은
정말로 아래로 떨어지는 일이었을까.
아니면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다른 방향의 시작이었을까.
말보다 먼저
작은 불씨들이 흩어지고
그 뒤를 따라
늦게 배운 것들이
세상을 기록했다.
그래서 남는 것은 언제나
남으려 하지 않았던 것들,
모든 것은
스쳐간 숨의 무게로만 설명되었고,
그 무게는
손에 쥐는 순간
이미
다른 사람의 것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바람의 의도라기보다는,
우연처럼
잠시 머물렀다
지워지는 방식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