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차 문화기획자의 폐업일기 04. / 2024. 06.04.
100%의 이유는 아니지만, 우리는 소셜하우징 때문에 그만둔다.
사실 소셜하우징이 아니었다면 치솟는 월세, 안 좋은 경기, 엄중한 이 시국 때문에 그만뒀을 수도 있다.
아닌가.
모 이사님이 말씀하셨다. 폐업을 하고 싶어도 못할 수 있다고.
대출이자, 퇴직금, 빚청산. 이게 나의 일이 되었다니. 10년이 거진 다 되어가지만, 익숙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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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소셜하우징 지원사업이라는 게 있다고 누군가 전해줬다.
당시 20여 명의 직원들의 급여, 홍대 앞과 연남동에 두 개의 매장, 사무실과 지하 공방까지.. 이 조그만 회사의 한 달 유지를 위해 나가는 월세와 고정비 몇천만 원이 우스웠다.
혹자는 나가는 월세를 차라리 이자로 낸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고,
또 다른 이는 이렇게 저렴한 금리로 쉽게 돈을 빌려주는 곳이 없으니 이 보다 좋은 기회가 어디 있냐고 했고,
또 또 다른 이는 우리 각자 가지고 있는 전세금 모으고 꼬박꼬박 이자를 월세처럼 나누어서 내고....
그다음이 뭐였더라... 대환대출을 하고... 뭐 이러면...
사실 지금도 회계, 세무에 대해서 무지몽매한 나는 그때 당시 그런 의사결정자가 되면 안 되었다.
시작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성산동 연남동 일대에 남은 마지막 1000만 원대 땅을 잘 구입했고, 경력은 짧지만 정직하고 성실한 건축가를 만났다.
그리고,
늘 그렇듯 우리는 바쁘게 살았다. 원래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도 건물 짓는 일도 나름 신경 썼다.
원래 있던 건물을 부시고, 땅을 파 지하를 만들고, 입주하기로 한 사람들끼리 얼마를 모아야 언제까지 돈을 갚을 수 있는지 등등 나름 열심히 했던 것 같은데...
하지만 '그 누구도 우리에게 일러주지 않았다.'
변동이자와 금리의 잔인함을,
도원결의한 사람들이 갑자기 적이 될 수 있음을,
왜 대부분의 집주인들이 좀 못된 이미지인지,
전세보다 월세가 왜 좋은지,
정권의 변화가 부동산 시장에 얼마나 위협적인지,
건물 전체 근저당이 각 세대에 잡혀 나와서 대출도 보증보험도 어렵다는 것을,
시공사를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을,
돈 대신 받아들이는 회사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게다가 중장기계획에 없던 소셜하우징을 하게 된 것도 참 놀라운 일인데, 한해 20억 규모의 민간위탁 사업을 덜컥하게 되었고, 코어멤버 50% 이상이 그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나의 리더, 나의 동료, 나의 가장 유능한 후배동료, 그리고 가장 유망주로 뽑혔던 녀석까지...
2015년과 2016년 우리는 틀림없이 뭐에 씐 거다.
그동안 매년 성장하던 매출은 민간위탁 사업을 하면서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사무국장이 떠난 자리에서 한 달의 살림살이와 채무관리가 제대로 되었을 리 만무하다.
뭐, 꾸역꾸역 돈을 갚고, 임차인을 내보내고 다시 들이고, 상환유예 신청을 하고, 크고 작은 대출을 받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단 하루도 이놈의 건물 때문에 편하게 살 수 없었는데, 사람들을 모두 입모아 말했다.
"그래도 땅값 진짜 많이 올랐지?"
"그래도 자기네는 건물주잖아?"
"그래도 나중에 정 안되면 건물 팔면 되잖아?"
근데 건물이 안. 팔. 린. 다.
이 대출이자와 금리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고, 퇴직금도 마련해야 하는데 건물이 안 팔린다.
근데 강남 부자들은 우리 건물에 관심이 없대요,
미친 금리 때문에 요즘은 건물이 안 팔린대요,
근생이 없어서 안 팔린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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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는 쉬고 싶은 게 아니라, 이런 걱정과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솔직하게 말해서 난 가벼워지고 싶은 게 아닐까.
수천만 원의 급여 대장에서,
삥 뜯기는 것 같은 부가세 납부에서,
원금보다 많은 대출이자에서,
때마다 급전을 빌리려고 엄마에게 전화하는 나 자신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그동안 어떤 일을 해도 열심히 하고, 머리를 모으고 고민하면 그럭저럭 다 잘 해낼 수 있었는데,
건물을 파는 것은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닌 것 같다.
우리 정말 그만둘 수 있을까?
답을 찾지 못한 채 매일 운동하고 영어공부하고, 공부도 하며 새로운 기회를 찾는 여유 있는 리더인양 열심히 사는 척한다. “이유는 없어 그냥 해.”
우리 정말 그만둘 수 있을까?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