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의 복싱일기-16
꾸준히 복싱을 다닌 지도 이제 3년째다. 실력이 그만큼 늘었는진 알 수 없지만, 어떤 운동이든 '구력'이 중요하니 이제 어디가서 초보인 척은 못한다. 처음 스파링이라는 걸 해본 지 2년이 지난 지난 주, 코치님이 이제 갓 들어온 관원과의 스파링을 제안했다.
"회원님이 좀 대줄 수 있을까요?"
돈 내고 시간 내서 온 곳에서 대놓고 맞아줄 수 있냐니. 역시 복싱장은 신기한 곳이다. 물론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3분 3라운드동안 가드를 올렸다 내렸다 바꿔가며 복싱을 이제 한 달 배운 회원분의 상대가 되어주었다. 처음 상대를 두고 스파링아닌 스파링을 하던 그날의 내 모습이 지금 내 눈앞에 움직이고 있었다. 뒤뚱뒤뚱.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회오리의 시간과 다가갈수록 상대는 멀어지는 마법의 공간속에 초대된 그 느낌.
그래도 거리를 좁혀드리면 잔뜩 힘이 들어간 원과 투로 가드 위를 두드리는 진지한 눈빛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따금 힘 조절이 덜 된 주먹에 흠칫 놀라기도 했지만, 아마 나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게다.
기분 좋은 10분이 지나고 마우스피스를 빼는데 연신 고맙다는 회원님에게 뭐라 답할 게 없다가 문득
"더 세게 때리셔도 돼요"
처음 내가 들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세상이 돌고 돌려면 누군가는 좀 더 맞아줘야 한다.
그러고보면,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내가 맞아줄테니 너는 나아가라- 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정작 요즘 애들은 지르지 않는다는 따위의 말을 하는 사람들만 많아지는 것 같다.
맞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누군가 내지를 수 있고
그렇게 모두의 복싱실력이 늘어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