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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잽잽 Jul 15. 2024

당신이 마지막으로 향할 곳에 대하여

마흔 살의 복싱일기 -15

마지막에서야 알게되는 '혼자'라는 사실


사람의 생은 죽기 전에 결판난다. 누가 옆에 있는가. 어떻게 죽었는가. 그것이 말해주는 상당히 오랜 시간의 삶이 결국 그의 인생이다. 본인에게나 남들에게나 마지막이 전부다. 부고 문자가 잦아지는 40대에 접어들며 그런 생각을 더욱 자주하게 된다. 그렇게 갔구나, 어쩌다 그랬을까, 부질없네, 행복하셨네, 같은 생각들을 잘 알지도 못하는 고인들을 두고 주제넘게 한다.


사람의 생이 죽기 전에 결판난다면, 사람의 하루는 언제 결판날까. 잠들기 전이다. 모든 이들은 밤이 되면 혼자가 된다. 홀로 낮을 보낸 이들조차 낮의 햇살 아래서는 혼자가 아니다. 메세지가 울리고 생각의 고리가 이어지고 관계의 진동이 느껴진다. 반대로 하루종일 군중들 속에서 숨가쁘게 뛰던 이도, 밤이 되고 눈꺼풀이 무거워지면 혼자가 된다. 죽음 앞에 이건희 씨도 혼자였듯(이래놓고 또 진짜 돌아가셨었지? 하고 확인한다.) 잠 앞에 우리는 공평하게 혼자다.


링 위의 밤


그런 생각을 하다, 자기 전마다 글을 써야겠다고 문득 다짐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글을 쓴다. 사실 이전까지는 이 글과 브런치에 내 목표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책으로 펴낸다거나, 인기가 있어진다거나, 그런 하찮은 마음들이 없었다고 하지 못하겠다. 어쩌면 평생, 일반인치고는 꽤 글을 많이 썼던 나는 한 번도 나 혼자만을 마주보며 글을 써본 적 없는 것 같다. 어릴 적 일기는 엄마나 선생님이 본다고 생각했고 그 뒤로는 쭈욱 잠재적인 독자가 늘면 늘었지 줄어든 적은 없다. 인터넷이라는 게 생기고 제일 처음 한 일도 사실 글을 써올린 거니까, 나는 오히려 더 많은 독자를 늘 원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거짓말만 쓴 거짓말쟁이 같기도 하다.


그래도 오늘 밤 가뿐하다. 눈이 기분좋게 무겁다. 샤워를 마친 것처럼 정직하다. 깨끗하게 혼자서 혼자를 본다. 하루를 떠올린다. 그리고 내가 이 감각을 복싱을 배우며 알게된 건 아닐까, 합리적 의심을 해본다. 링 위에 올라가면 종소리에 갇힌다. 처음과 끝이 분명히 있다. 그저 땡 소리일 뿐인데, 3분 동안 나는 이 링 안에 있어야만 한다. 핑계도 없고 도움도 없다. 거짓도 없다. 3분을 오직 내 몸으로 버텨야 한다. 분명한 상대와 겨루는 일인데도 시간이 흐를수록 내게 또렷이 느껴지는 건 링 위에 홀로 있는 나 자신이다.  


인생 결국 혼자 사는거야~ 라는 라떼들의 말에도 실은, 누군가 함께 있으면 더 좋지 라는 기대가 포함돼있다. 나는 복싱을 하며 애초에 그 기대가 끊어지는 순간이 새롭다. 3분의 시간이 흐를수록, 심지어는 마지막 30초 혹은 10초가 남았음을 알리는 알림음이 울리면 더더욱- 내가 혼자라는 변치않는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


혼자이기에 자유롭다


우울한 이야기 같지만 사실 혼자서 돌파해나가야 한다는 건 생각하기에 따라 꽤 재밌는 일이다. 혼자일 때 우리는 자유롭기 때문이다. 아니, 혼자여야만 자유로울 수 있다. 스스로 말미암는다는 말은 결국 혼자라는 거니까. 온갖 관계와 책임과 무게에 얽혀있는 것 같지만, 결국은 내가 마지막까지 어디로 향할 것인가는 내가 정하는 게 링 위에서의 규칙이고 인생에서의 법칙이다.


물론 하루하루 주어진 책임들 속에서 주먹을 지르고 가드를 올리멱 겨우겨우 밤을 맞이한 인생들에게, 혼자여서 결국 자유라는 말은 정신승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건 정신승리보다는 냉혹한 진실에 가깝다. 혼자서 결정하고 의지를 가져야 할 것들을 잠시 미뤄둘 순 있다.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같은 적나라한 질문들이 그 예다. 하지만 라운드가 끝나는 링이 울리고 밤이 찾아오고 죽음의 곁에 이르르면 결국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결국 자유로운 혼자가 될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마지막 순간에 태평양을 향해 내달릴지 사막의 고원을 누빌지 암흑 속에서 허우적댈지는 언젠가부터 내가 혼자 정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모든 혼자들의 복싱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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