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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잽잽 Jul 23. 2024

최두호의 승리와 이정영의 패배

마흔 살의 복싱일기 -19

지난 일요일 아침이었다. 아들과 아내와 자유수영을 하러 구립 수영장에서 대기중이었다. UFC 경기가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라이브로 볼 생각은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내가 휴대폰으로 접속할 때마다 한국 선수들이 등장해 시합을 했다.


이정영의 패배는 자만심의 패배인가


결과는 모두 알듯 한 명의 승리와 두 명의 패배. 이정영 선수의 패배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는 건 많이 아픈 일이었다. 상대와 자신있게 난타전을 벌이다 정말 처참하게 맞고 졌다. UFC에서도 흔치 않은 장면이었다. 그렇게 오래도록 맞으며 버틴 것도 대단하지만 한 번을 클린치로 무마하거나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그게 이번 싸움의 컨셉이었던 것 같고 그 컨셉에 자신이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그 자신감을 비웃었다. 유튜브 하이라이트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그들은 그만큼의 자신이 생길 만큼 무언가 해본 적이 있을까.  이전 글에도 썼지만, 내가 그를 만난 게 10년 전이다. 고등학교에 갓 들어간 나이부터 지금까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살아온 그에게는 그만큼의 자신감이 있었을 수밖에 없다. 그건 내가 제일 강하다는 자만심과는 다르다. 그냥 사실이다.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그냥 꼭 필요한, 그렇게 살다보니 만들어진, 다부진 태도일 뿐이다.


물론 자신감이 항상 승리하는 건 아니다. 마흔 무렵 알게되는 세상사의 이치는-  결국 모든 게 중간으로 수렴하더라는 것이다. 젊은 나이에 자신감이 과하면 실수를 하거나 곤욕을 겪게 된다. 아마도 이정영 선수에게는 그 시간이 지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곧 인생이나 시합의 궁극적인 패배가 아니다. 누구나 패배하고 넘친 것을 조정할 기회를 얻고 그렇게 성장해 나이를 먹어간다. UFC같은 극단적인 케이지만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모든 삶의 현장에서 말이다.


질 때와 이길 때


최두호 선수의 승리는 그래서 더 빛났다. 8년. 자신있게 해오던 일을 8년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조롱당하는 상태에서 다시 무대 위에 오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모두가 하지 못할 거라고 손가락질하는 일을, 그러다 어느덧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것만 같은 순간에 승리로서 자신감을 다시 찾는 기쁨은 어떤 것일까.


나보다 손아래지만, 경기 후 그의 눈물을 보며 자꾸 나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여자의 인생은 잘 모르지만- 남자의 나이 30 중반이 넘어가면 무엇을 더 이룩할 수 있을지 막연해진다. 세상의 중심에서는 확실히 멀어져가고 가슴뛰는 일은 현저히 줄어든다. 바로 그 시점에 내 몸으로 다시 되찾아낸 자신감은 아마 젊은 날의 그것보다 훨씬 오래도록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이지 않을까.


이겨야할 때 도전할 수 있는가


모든 패배와 승리에는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패배와 승리의 '때'라고 생각한다. 져야할 때가 있고 이겨야할 때가 있다. 져야할 때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자신감은 허세가 되고 이겨야할 때 도전하지 못하면 완숙함은 구태함이 되고 만다. 지금 나는 어떤 때일까. 이정영 선수와 최두호 선수 (그리고 최승우 선 까지)를 응원하며 나의 시합을 준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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