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다시 쓴다

by 잽잽

글, 너는 오래 만난 애인일까. 너를 만나야 살 것 같았고 네가 있어야 나인 것 같은 시절이 있었지. 그러다 우린 서로에게 게을러지고 소홀해지고 금방이라도 잊을 수 있는 것처럼 헤어지고 말았지.

잘 지내는 척 그렇게 있었던 시간이 그런 척이었는지 진짜 잘 지냈는지 지금에 와서는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또 너를 만나러 키보드 앞에 앉았다.


분명히 쓸 글이 있다. 글을 쓰지 않는 동안 나는 복싱 생활체육대회도 나가고 이런저런 일상의 일들이 있었다. 아들과 단 둘이 사이판 한 달 살기를 결정했고 준비를 앞두고 있다. 환율은 막 오른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꾹꾹 집어삼키고, 오랜만에 만난 애인의 눈을 멍하니 바라보며, 글을 다시 쓰게 된 경위에 대해 구구절절히 설명하고 있다.


이런 곳에 글을 쓴다는 게 완전한 익명이 보장되는 일 같지만,

글을 쓰는 본인만은 이 글이 누구의 글인지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내가 글을 계속 쓴다는 게 조금은 부끄러웠다.

누가 내 글을 볼까봐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내가 내 글을 보는 게 부끄러웠다.


그럼에도 다시 쓴다.

오래도록 부끄러워할 나의 글을,

언젠가 또 멈추고 또 다시 만나게 될 나의 글을,

써야될 것 같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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