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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잽잽 May 12. 2023

아들에게 화를 내는 법

아들을 키우는 아빠가 되는 법 -5

  아이가 크면서 화의 종류가 조금 바뀌었다. 아기일 때는 그저 피곤해서,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이가 원망스러워서 지치고 짜증이 났다. 그땐 그것대로 버겁고도 불편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다섯 살이 넘어가고 말이 통하고 성격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의 '화'는 훨씬 더 원초적인 화 그 자체에 가까운 것이 되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뻔히 할 수 있는 일인데도 장난치며 하지 않으려 할 때 나도 모르게 가슴 깊은 곳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계절별 맞춤 육아


  사실 아이들에게는 계절이 있다. 그건 나이에 따른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조금 불규칙하고 비정형적으로 생기는 변화들도 있다. 실제로 머릿속이나 가슴 속에 어떤 이슈가 형성돼 자기 나름대로 거기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변화가 옆에서 보면 느껴진다. 어른들은 자신의 그걸 '기분'이라고 부른다. 어떤 계절엔 한없이 애교스럽고 다정하고 말을 잘 듣다가 어떤 계절엔 처음 보는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난다. 그래서 나는 '미친 7살'같은 표현을 아주 싫어하는 편이다. 7살의 특징은 분명히 있지만, 사실 아이들도 자라면서 우리들처럼 하루하루 혹은 어떤 시즌별로 다른 무드를 가지고 살아간다. 아들에게 화를 내려면, 우선 그 무드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물론 나도 늘 실패한다. 아침에 소리를 버럭 지르고 하루종일 후회를 할 때도 더러 있다. 굳이 그 작은 존재에게 그렇게 큰 소리를 낼 필요가 있었을까, 나는 왜 이것밖에 안될까 하는 한숨섞인 자조가 드리운 나날이 꽤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화를 내는 원칙을 정해야겠다고 다짐했고 그렇게 몇 가지 원칙이 생겼다. 그리고 이건 내 육아 스타일이기도 하지만, 철저히 내 중심적인 원칙이다. 화를 낸다는 건 나를 보호하기 위한 나름의 장치니까 내 맘이다.


(아들이 아닌, 나를 위한) 화내기 원칙 일곱 가지

  하나, 나는 아들에게 화를 낼 수 있다. 


  아들에게 화를 내고 본인을 지나치게 책망한다고 다시 화내는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나는 어느 날부터, 내가 아들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낼 수도 있는 아주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지 않으면 육아의 모든 과정에서 나 자신이 완벽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더해져 오히려 화를 참기가 더 어려워진다.


  둘, 아들은 의외로 쉽게 잊는다.


  아침에 화를 낸 후 어린이집 하원을 하며 아까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과를 해본 적이 여러 번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억울한 것은 의외로 아들은 어린이집에서 하루를 즐겁게 보내며 아침에 있었던 일을 전혀 담아두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짝사랑이랄까. 딸들이 어떤진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아들들은 그런 감정처리에 있어서 꽤 쿨하다. 그런 아들 덕분에 나는 조금 불완전하지만, 하나뿐인 아빠로 살 수 있는 것이다.(물론 이게 아들을 샌드백처럼 쓰라는 말은 아니라는 점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셋, 사과를 해야할 때는 최대한 빨리 한다.


  모든 것에는 선이 있는 법. 화를 내다보면 나도 모르게 아이의 자존심을 긁거나 쓸데없는 말로 조금은 폭력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때가 있다. 물론 최선은 그렇게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일어나버렸다면 최대한 빨리 상황을 멈추고 사과를 해야 한다. 어른이 화를 내는 그 순간 아이의 마음은 한없이 쪼그라든다. 그런 기억은 모든 어른들의 어린시절에 있을 것이다. 선을 넘은 화를 내고도 그 마음을 빨리 다림질해주지 않으면, 쪼그라든채로 아이의 마음은 굳어간다. 사과 하고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인지할 뿐만 아니라 불편했던 마음을 금세 털어내고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이런 사과 역시, 아빠인 내가 불완전한 존재이고 언제든 실수를 하면 아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기에 가능하다. 선을 넘지 않고 화를 내서 가장 이득을 보는 건 아빠 자신이다.


  넷, 선을 넘지 않기 위해선 처음부터 단호해야 한다.


  잘해줬는데 돌아오는 게 없으면 더 화가 나는 게 인지상정이다. 아들에게 화낼 때 선을 넘지 않으려면, 시작부터 훈육이 시작되었음을 아이가 인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나의 경우 이건 두 개의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는 약속하기- 이 단계에서는 다정하고 예쁘고 재미있게 이야기한다. 아침밥을 잘 먹기로 약속을 해야 한다면, 그 과정은 즐겁고 유쾌해야 한다. 레츠기릿! 하이파이브! Go for it!  할 수 있다! 서로 응원하며 아빠와 아들 공통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일은 즐거워야 한다.


    두 번째 단계는 훈육하기 - 이 단계에서는 다정함이라곤 없다. 첫 번째 단계에서 분명히 즐겁게 약속을 했는데 밥을 먹지 않고 장난을 친다면? 여기서부터는 훈육이다. 감정 없이 화내는 단계다. 여전히 첫 번째 단계에서처럼 즐겁게 재미있게 말하면 아이는 이게 훈육이라고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장난이 이어질테고 다정하게 말하던 부모는 억울함이 치밀어 오르게 된다. 그러면 소위 '발작버튼'이 눌리게 되고 버럭!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화를 내게 된다. 하지만 훈육의 시간이 시작됐다면 어느 정도의 단호함으로, 반복적으로, 지시적으로, 낮은 목소리로, 짧게 말하면 된다. 


  두 눈을 바라보고 

  '먹어'


  그 외의 말은 필요치 않다. 그런 분위기가 잡혔을 때 아이는 훨씬 더 빨리 반응하고 나 역시 어느 정도 '무감정한' 화를 내고 있는 중이기때문에 그것이 갑자기 폭발적인 분노로 이어지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다섯, 내가 화내는 모습을 아이는 보고있다.


  화가 난다는 것도 일종의 감정처리다. 화가 난다고 모두가 소리를 지르는 것도 아니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것도 아니다. '화'라는 감정을 내가 어떻게 다스리는지 아이 앞에서 보여주어야 한다. 자칫하면 아이는 화를 다루지 못하는 아빠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하거나, 관계에 따라서 주눅든 자아로 자랄 수 있다. 그러면 당장이 문제가 아니라 사춘기에 더욱 큰 문제로 돌아올 거라고 확신한다. 화를 내고 싶으면, 정확히 아이의 눈을 보고 화를 내야 한다. 그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느낀다면, 화를 내다가 실수할 일은 줄어든다.


  여섯, 화를 내기 시작했다면 일단 멈춘다. 


  아까 말한 훈육의 단계가 됐든 언제가 됐든, 내가 스스로 화가나고 있음을 알았을 때는  일단 멈춰야 한다. 모든 걸 멈춰도 좋다. 눈을 감고 말을 하지 않고 숨도 조금 멈춰본다. 부모가 갑자기 그런 모습을 보이면 아이는 굉장히 빠르게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감지한다. 아무리 눈치없고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도 그렇게 눈을 감고 숨을 내쉬며 10초쯤 있으면 쪼르르 옆에 와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보게 마련이다.


  일곱, 겁을 주려면 정확하게 준다.


  화를 내는 진짜 목적이 무언가를 가르치기 위해서라면, 그 방법으로 일종의 '공포심'같은 걸 사용하는 거라면, 가장 정확한 언어로 아주 단순하게 말해야 한다. 학생시절이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선생님과 어른들 앞에서 가장 겁났던 때는 내가 잘못한 것을 아주 정확하게 지적당했을 때, 감추지 못할 실수를 들켰을 때이다. 매질을 하고 욕설을 하던 선생님이 더 무서웠던 게 아니라 내가 따르던 선생님 앞에서 부끄러운 행동을 정확히 지적당했을 때 우리는 훨씬 더 깊은 반성을 한다. 아빠는 어쨌든 아이가 사랑하는 커다란 존재이므로, 아빠가 정확하게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면 아이도 깊이 감응한다. 여기에 굳이 '~하지 않으면 ~할거야'같은 협박은 필요도 없다. 그냥 너의 잘못을 나는 알고 있고 나는 사랑하는 네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 말한다.


  그렇게 하여 오늘 아침 내가 화를 낸 걸 복기해본다.

 

  (상황) 신나게 일어난 뒤 아침밥을 먹지 않고 장난치는 아들 


  1단계 : 훈육의 공간으로 초대하기

  (두 차례 정도) "장난 그만치고 밥 먹어"


  (상황) 그래도 효과가 없다

 

 (아주 낮고 작은 목소리로 천천히, 처음엔 눈을 감고)

   "사랑하는 아들 잘 들어. 아빠는 지금 기분이 상했어. 우린 식사시간에 장난치지 않고 밥을 먹기로 했어. 너는 일곱 살이니까 왜 그래야하는지는 잘 알 거라고 믿어. 아빠와의 약속, 우리가 지키기로 한 예절은 아주 중요한 거야. 아빠도 너와 한 약속을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키려고 최선을 다해. 나는 아들도 중요한 일을 잘 해낼 거라고 믿어. 믿어도 될까?"


   (끄덕)


   이렇게 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거나 지속성이 아주 긴 건 아니지만. 그래도 버럭 소리를 지르며 쓸데없는 말을 쏟아붓는 일은 피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늘 나 스스로에게도 세뇌시키지만 아들들은 그들 각자의 계절이 흘러가야 변하고 또 성장한다. 한겨울에 한여름 수박을 기대하는 어리석은 기대만 버려도, 우리의 화는 꽤 수그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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