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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잽잽 May 09. 2023

7살 아들에게 한글 가르치기-2. 그림일기

아들을 키우는 아빠가 되는 법 -4

  듣고 말하고 읽고 쓰고. 모든 인간의 언어 습득 과정은 이 절차를 따른다. 듣고 말하기까지는 따로 크게 가르칠 필요가 없지만, 읽고 쓰려면 약속된 문자체계를 익혀야 한다. 읽고 쓰는 것에 친숙해지게 하면서 동시에 글자를 가르치기 위해 '월드컵 책 만들기'를 함께 했다면, 동시에 진행한 것이 바로 매일매일 그림일기 쓰기이다.


일기쓰기의 첫 번째 원칙, '해야 하는 거야'


  물론 여기엔 강제성이 따른다. 일기를 도대체 왜 써야 하는가? 아들의 질문에 이래저래 답을 꾸며댈 수도 있지만, 나는 그냥 '해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7살이 되고부터는 8살이 돼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에 부쩍 관심이 생긴 아들에게, 학교에 가면 매일 일기를 쓰므로 지금부터 연습해야 한다고 얼버무렸다. 그런데 웬걸, 의외로 쉽게 납득했다. 그래서 지금도 일주일에 7번은 아니지만, 적어도 4번은 일기를 쓰고 있다. 그렇게 올해만 쌓인 일기장이 총 세 권이다.


  일기를 쓰기로 마음만 먹었다면, 사실 뒤부터는 그냥 내버려두는 제1원칙이다. 횡단보도에서 건널 손을 드는 당연한 것처럼, 일기도 그냥 쓰는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쓰기로 약속한 것이니, '일기를 쓸까?' '일기 쓰는 어때?' '우리 일기 쓰자'와 같은 권유형-청유형은 필요없다. 잠자기 전이 되면 그냥 알아서 일기를 쓰게 하거나, '일기 써'라고 지시하면 그만이다. 처음부터 권유형에 익숙해지면 매일 일기를 쓰기 위해 앉게 하는 자체부터가 고역이 된다. 협상의 여지없이 일기를 쓰기로 했다면, 뒤부터는 아이의 마음대로 하게 해야한다.


일기쓰기의 두 번째 원칙, '마음대로 해도 돼. 하지만 언제든 도와줄게'


  처음에는 글자쓰는 걸 워낙 어려워해서 쓸 때 옆에 앉아 하나하나 알려주며 했다. 그러다보면 당연히 왜 이 쉬운 걸 이해하지 못할까, 'ㅇ'을 왼쪽으로 돌리라는데 왜 자꾸 오른쪽으로 돌릴까, '에'를 써야하는데 자꾸 '어'만 쓰고 넘어갈까, 답답한 일이 한 두개가 아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한 두문장이라도 본인이 꾸역꾸역 써낼 수 있도록 하기까지 어른의 협조는 필수적이다.


  다행히도 그림일기의 장점이 있어 이 과정만 넘기면 의외로 쉽게 글쓰기에 정착한다. 우선,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있기에 여기에 어린이집에서 팽이놀이했던 기억으로 낙서를 하든, 전쟁놀이했던 폭탄의 흔적을 마구잡이로 그리든 내버려두면 본인이 그걸 글로 옮겨써야겠다는 당연한 압박을 느낀다. 그리고 일기쓰는 요령을 조금만 익히고 나면, '오늘은' '좋았다' '누구누구랑 무슨무슨 놀이를 했다'와 같이 반복되는 표현을 익히게 된다. 그러면 그 표현 위에서 혼자서도 일기를 쓸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게 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혼자서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할 때 절대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가지고 타박하지 않는 것이다. 처음엔 나도 옆에서 하나하나 쓸 때마다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맞춤법 등을 지적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겨우 짜낸 아이의 의지를 쉽게 꺾어버리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틀리든 말든 네가 생각나는대로 길게 쓰는 게 가장 좋은 일기라고 말해주고 났더니 혼자서 소리나는대로 한 페이지를 꽉 채우기 시작했다. 


일기 쓰기의 세 번째 원칙, '틀린 걸 고치지 말고 맞춘 걸 칭찬하기'


  물론 본인은 틀리는 걸 싫어하기에, 쓰고나면 꼭 첨삭을 해달라고는 하지만 그럴 때도 틀린 글자를 지적하기보다는 그동안 자꾸 틀리던 글자를 맞춘 걸 칭찬하는 방식으로 빨간펜을 들고 이야기해준다. 


  이야! 쌍시옷 받침을 정확하게 썼네? 글자가 너무 예뻐졌다! 'ㅇ'이 아주 동글동글 귀엽다!


  이런 걸 육아 전문가들은 '감점식'이 아닌 '가점식' 육아라고 하던데, 남자 아이들은 특히 거기에 열광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일기는 숙제같은 개념이라 신나게 쓰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일기 쓰기의 마지막 요령, '아빠도 일기를 써라'


  그러다 최근 고심 끝에 결정한 것이 '아빠의 일기'를 아들이 자는 동안 항상 밑에 붙여쓰는 것이었다. 선생님의 첨삭이라기보다는 '교환일기'처럼 서로의 기억과 감정을 공유하는 창구로 아들의 일기를 활용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 너와 어떤 일을 했고, 아빠는 기분이 어땠고, 내일은 이렇게 지내자는 평범한 글이지만 자고 일어나면 냉큼 아빠가 무슨 일기를 썼나 궁금해하고 그걸 또박또박 읽는 아들의 아침 풍경은, 살갑기 그지없다.


  사실 아빠와의 책만들기나 그림일기쓰기 모두 7살에서야 한글을 깨우치고자 시작해서 가능했던 부분들이다. 그 전 나이에 이런 시도는 사실 좀 버거웠을 것 같다. 뒤늦게 시작한 만큼 좀 더 정확하고 풍부하게 글을 경험하게 하고자 했다. 뒤늦을 순 있어도, 늦는 건 없다. 모든 일에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항상 함께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그러니까 대부분은 한 두 문장을 쓰고 덮어버리고 '좋았다' '재밌었다'로 끝나버리는 일기이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정말 놀라울 만한 그림과 일기를 보여주는 아들을 보면- 한글을 가르치며 옆에서 쌓였던 온갖 부아와 짜증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아이들은 그만큼 놀랍고, 아주 천천히 자란다.

싸인펜으로 만들어낸 풍경화 - 나는 아들이 '저녁 풍경'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는 것이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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